Editor's Note

지난 2월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서 중국의 역할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의외로 과거보다도 더욱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이 이러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첫째 중국은 북핵 문제를 장기적인 맥락에서 관리해야 하는 이슈로 상정하고 있고, 둘째 지속적인 경제성장 및 체제 유지를 위해서는 안정된 국제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 바 현상변경보다는 '현상유지를 통한 안정화'를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동률 EAI 중국연구센터(동덕여대 교수) 소장은 분석합니다.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비핵화 협상에서 중국의 역할이 점차 부각되겠지만, 당분간은 중국이 향후 북미 간 협상 진행 상황을 주시하면서 북한과의 관계를 관리하는데 집중할 것으로 보여, 한국의 바람대로 중국이 비핵화 및 평화 구상 실현을 위한 적극적 중재자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저자는 덧붙입니다.

 


 

하노이 정상회담 ‘노딜’ 에 대한 중국의 ‘조용한’ 대응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예상 밖으로 결렬되면서 한반도 비핵화 협상에서 중국의 역할이 새삼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 비핵, 평화 프로세스에서 ‘중국 소외론’(China passing)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과거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건설적 역할’ 수행 의지를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의 구체적인 역할과 행보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양한 해석과 억측이 혼란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대북 제재 국면에서 ‘중국 역할’에 대한 기대와 요구가 고조되었고, 심지어는 역할에 대한 요구를 넘어서 중국 책임론, 압박론까지 제기된 바 있다. 2018년 남북한, 북미 정상회담이 연이어 성사되고 남북미 3자간 종전선언 가능성이 논의되면서 이른바 ‘중국 소외론’ 도 등장했다. 그리고 돌연히 북중 정상회담이 잇따라 이루어진 이후에는 미국 정계를 중심으로 ‘중국 배후론’이 제기되었다.

중국 역시 ‘건설적 역할’을 역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2년 2차 북핵 위기 이후와 비교할 때 구체적인 역할이 포착되지 않으면서 중국 역할에 대한 논란은 증폭되고 있다. 특히 2018년 이후 비핵화 협상이 역동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상황임에도 중국이 보여준 가장 두드러진 외교 행보는 북한과의 4차례의 연이은 정상회담이었다. 그런데 이 역시 네 번 모두 북한의 요청에 의해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 형태로 이루어진 만큼 중국이 주도적으로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국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예상 밖의 노딜(no deal)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원론적이고 담담한 공식 반응을 내놓은 채 구체적인 행보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의외라 할 수 있다. 중국은 그동안 북핵 문제는 북미 양자 간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일관되게 주장해 왔고, 실제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적극적으로 환영과 지지를 표명해 왔기 때문에 그만큼 ‘노딜’에 대한 당혹감도 컸어야 한다. 비록 북한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미국으로부터 ‘배후’ 의심을 받으면서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전과 직후, 그리고 하노이 회담 직전에 북중 정상회담을 연달아 가지면서 역할에 대한 주목을 받았던 중국이었기에 정작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의 ‘조용한’ 행보가 뜻밖인 것이다.

중국의 예상 외의 신중한 행보는 미중 간 무역분쟁 등 갈등 국면에서 전개되고 있는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보는 중국의 복잡한 의중이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과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2019년 양회(兩會)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을 복기해 보면 이러한 중국의 복잡한 속내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두 사람은 공히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대화가 재개될 수 있다는 낙관론을 적극 피력했다. 그러면서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이 단번에 이루어지기는 어려우며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므로 관련 당사국들은 인내심을 갖고 쉬운 것부터 점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리고 하노이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이유와 배경에 대해 국제사회에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중국은 이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심지어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한 대화 재개에 대한 강한 희망과 기대를 피력했지만 과거처럼 셔틀외교를 하는 등 대화재개를 위한 실질적인 중재자 역할을 모색하고 있지 않다.  

중국은 북미 협상의 결렬이 혹여나 다시 한반도에 긴장을 초래할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협상 재개의 희망을 적극적으로 피력한 것일 수 있다. 그러면서 다른 한편 북미 양국이 신속하게 협상을 진전시킬 가능성에 대해서도 크게 기대하지 않는 듯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요컨대 중국은 북미협상이 파국으로 이어져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는 것도 원치 않지만, 동시에 협상이 급진전되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한반도의 현상변경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는 것에 대해서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사실 북미 정상회담을 지지하면서도 내심 협상 성공 가능성에 대해서 유보적인 견해도 적지 않았다. 특히 트럼프 정부의 의도와 의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비핵화 과정이 단기간에 완료되기 어렵다는 현실을 고려하여 트럼프 정부 임기 이후 정책의 연속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중국은 여전히 북핵 문제를 상당히 장기적인 맥락에서 관리해야 하는 이슈로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 역할 변화와 패턴

중국은 지난 26년간 북핵문제에 대한 대응과 역할에서 일정한 패턴을 보여 왔으며,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중국의 반응 역시 그 패턴과 일정한 연계성을 가지고 있다. 1993년 1차 북핵 위기가 발생한 이후 현재까지 중국은 기본적으로는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협상과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하면서도 점차 자신의 역할을 확대하면서 전략적 입지를 넓혀왔다. 즉, 중국은 1993년 1차 북핵 위기 시에는 ‘조용한 관찰자’ 또는 ‘막후 조정자’라는 제한적인 역할을 한 반면에, 2003년 2차 북핵 위기 이후 중국은 북미중 3자회담을 주선했고, 이어서 6자회담의 주최국으로서 실질적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그리고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에 중국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고강도 대북 제재에 참여하면서 결과적으로 미국과의 협력도 강화해 갔다.

중국이 2003년과 2017년 각각 대화 중재와 제재 강화라는 상이한 행보를 통해 역할을 수행했지만, 두 시기는 북핵 문제에서 미국의 군사적 행동 가능성이 높아지고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즉, 중국은 비핵화는 결국 북미 간 문제이므로 중국의 역할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중국이 지니고 있는 ‘레버리지’ 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에 한반도 위기가 고조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는 북한에 대해 일정한 압박과 설득을 병행하여 대화로 견인하고 긴장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체제가 불안정해지거나 위기가 고조되고 북중관계가 파국에 이를 정도까지 북한을 강하게 압박하지 않는 신중함도 유지했다. 중국은 북한체제의 위기 역시 한반도의 주요한 불안정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북핵 6차 실험이후 고강도 제재에 참여하면서도 제재의 목적은 대화를 견인하는데 있음을 강조해 왔다.

중국이 북핵문제에서 점차 역할을 확대해 온 지난 26년의 시간은 사실상 중국의 부상 일정과 맞닿아 있으며 그런 까닭에 중국은 북핵 문제에서 ‘미국 변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게 되었다. 중국은 북핵은 북미 간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하는 이슈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등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면서도, 북핵 문제로 인해 미국과의 갈등이 심화되는 것을 피하고자 했다. 오히려 중국은 가능한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미국과의 협력 기조를 유지하고자 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정상회담에서 항상 ‘비핵화 원칙’에 합의했고, 2017년 9월까지 9차례의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에도 미국과 협조했다. 요컨대 중국은 이전에도 북핵 문제에 대한 자신의 역할을 점진적으로 확대시키기는 했지만 주도적이고 선제적이었다기보다는 미국, 북한과의 관계를 함께 고려하면서 대응해 왔다. 즉, 중국의 북핵에 대한 대응과 전략에서 미국과의 관계, 북한체제의 안정성, 그리고 한반도 정세 등이 주요한 변수로 작용하며 전략과 역할을 변화시켜 왔지만, 북한이라는 지정학적 완충지대를 관리하려는 정책 기조는 유지되어 왔다.

 

시진핑 정부의 한반도 비핵,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전략과 역할

시진핑 정부에서도 기존의 북핵 정책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시진핑 정부가 직면해 있는 복잡한 국내외적 상황을 고려할 때 한반도 정책은 기본적으로 ‘현상유지를 통한 안정화’, ‘남북한에 대한 균형 외교’ 기조를 유지해 가는 것인 합리적이다. 중국이 새로운 경제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시진핑 체제의 안정을 유지하는 과제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저비용의 안정된 국제환경이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현재와 같이 미국과의 관계가 불확실하고, 불가측한 복합적인 상황에서 한반도 세력관계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는 상황은 중국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안정성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

한편, 시진핑 정부가 직면한 현실은 녹록하지만은 않다. 2018년 이후 한반도 비핵, 평화프로세스가 북미 간 협상을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그동안 중국이 수행해 왔던 ‘중재자’의 역할과 ‘북한에 대한 압박과 설득’의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었다. 중재자의 역할은 한국이 일정 부분 소화하고 있고, 북미 간 직접 대화가 성사됨으로써 북한에 대한 압박과 설득의 수요도 감소하였다. 비핵화 협상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전되고 요동치면서 협상을 견인하고 중재하는 중국의 위상과 입지가 일시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2018년 이후의 전개 양상은 중국에게도 분명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대응이 필요한 도전이 되고 있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견제는 강화되고 있는 반면에 북미 간의 대화와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중국 측 운신의 폭이 제한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의 한반도 정책 또한 성공적이지만은 않다. 한국과는 사드(THAAD) 배치 문제로, 북한과는 핵무기 개발로 인해 한반도 안정화와 ‘투 코리아(two Korea)’ 정책이 도전 받고 있다. 한반도 주변 4강 가운데 남북한 모두와 일정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강국이라는 전략적 위상이 도전 받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지향하고 있지만 동시에 한반도의 현상변경보다는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한반도에서의 전략적 위상을 회복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중국에게 북핵 문제가 중요한 안보 현안이기는 하지만, 초미의 과제로 상정하고 정책의 우선순위에 두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여전히 북핵 문제를 상당히 장기적인 차원에서 관리해야 하는 이슈로 상정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한반도의 불안정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중국의 전략적 입지가 약화되지 않도록 하는 차원에서 북한과의 관계 복원을 시도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중국의 복잡한 셈법은 비핵화 협상과 연동될 수밖에 없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와 관련이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이라는 민감한 사안을 불거지게 할 수 있다는 현실을 중국도 경계할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미중 간의 갈등 상황에서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협상 테이블에 올라오게 될 경우 한반도는 새로운 불확실성의 상황으로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기 때문에, 중국은 가능한 한 이러한 상황을 지연시킬 필요가 있다. 따라서 중국은 향후에도 한반도 비핵, 평화프로세스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기보다는 향후 북미 간 협상의 진행 상황을 주시하면서 북한과의 관계를 관리하고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는데 우선순위를 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장기적으로는 비핵화 협상의 그 어떤 시나리오에서도 ‘중국 역할’은 갈수록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3자, 또는 4자 종전선언 논의에 대한 중국의 불만 제기, 10개월간 4차례의 이례적인 북중 정상회담,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배후설’ 제기 등은 바로 중국의 역할이 결코 간과될 수 없다는 저변의 흐름을 충분히 시사해 주고 있다. 비핵화가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결국 북미수교,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한의 개혁개방 체제로의 연착륙 등으로 이어져야 하는데, 그 고비마다 중국의 역할은 중요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전략적 우위 하에 전개되고 있는 현재의 미중 경쟁국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을 성사시키려는 의지가 확고하다고 하면 북미 간에 전개되는 비핵화 협상 단계까지는 미중 갈등이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비핵화 프로세스가 평화체제 구축 등 한반도 질서 전환과 관련된 이슈로 빠르게 진전될 경우 미중 경쟁이라는 요소가 장애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로 인해 심지어는 비핵화 프로세스의 진전까지도 역진시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요컨대 중국이 직면하고 있는 복잡하고 불확실한 국내외의 정세를 감안할 때, 중국이 한국이 희망하는 비핵, 평화구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협력하는 ‘촉진자’ 또는 ‘적극적 중재자’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현실에 있다. 따라서 한국은 북미협상을 중재해야 하는 과제 못지 않게 중국이 ‘긍정적 역할’을 하도록 설득해야 하는 난제도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

 

 

■ 저자: 이동률_ 동덕여자대학교 교수. EAI 중국연구센터 소장. 중국 북경대학교 국제관계학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통일부 정책자문위원과 현대중국학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 대외관계 및 중국 소수민족, 중국의 민족주의 등이다. 최근 연구로는 "시진핑 정부 '해양강국' 구상의 지경제학적 접근과 지정학적 딜레마", "Deciphering China’s Security Intentions in Northeast Asia: A View from South Korea", 《중국 미래를 말하다》(편저), 《중국의 영토분쟁》(공저)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최수이 EAI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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