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미국미래 2030" 특별 논평의 첫 번째 보고서로, 트럼프 대통령 등장을 전후하여 나타난 백인민족주의 정체성 정치를 분석하고 미국의 미래정치를 조망한 손병권 중앙대학교 교수의 워킹페이퍼가 발간되었습니다. 1990년대 이래 대두된 이민문제에 대한 미국 백인들의 불만은 단순한 경제적 위협 때문이 아니라, 미국의 전통적 가치와 유럽계 백인의 위상이 퇴색되고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저자는 이렇게 등장한 백인 민족주의 정체성 정치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등장이 그 계기이며, 불법이민 문제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한 정치권 공화당의 입장을 비판하는 공화당 유권자들의 지지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여론이 결집되도록 ‘기회의 창’을 제공한 온라인 미디어가 트럼프 세력의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미국 민주당이 저소득.저교육 수준 백인 노동자들에 대한 적절한 생활이슈적 대안을 마련하고 이민정책에 대한 백인의 불만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볼 것을 저자는 또한 강조합니다.

 


※ 아래는 본 워킹페이퍼의 서론입니다. 전문은 하단의 첨부파일을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I. 문제의 제기

이 글은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을 전후하여 나타난 ‘백인 민족주의’ 정체성 정치의 내용을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미국의 미래정치를 조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서 이 글은 이민문제와 관련된 미국 정체성 정치의 기원 및 등장 배경을 먼저 설명하고, 이어서 트럼프 후보의 등장이 가져온 백인 민족주의의 활성화를 살펴본 이후, 마지막으로 미국정치의 가까운 미래상을 전망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서 아래에서는 미국의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이념적 정의 및 민속·문화적 정의의 두 가지 관점을 살펴보고, 1990년대 이후 후자의 관점에서 ‘진정한 미국인’을 파악하자는 주장이 강화되면서 2016년의 백인 민족주의 정체성 정치가 부상했다는 점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미국은 건국 이후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면서 다원주의를 토대로 발전해 온 국가였다. 그리고 19세기 이후 이러한 다원주의 원칙의 배경에는 미국이 다양한 이민자로 구성된 다인종·다문화 국가라는 사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미국의 경우 개신교 서유럽계 백인 이민자뿐만 아니라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동유럽, 북유럽, 남유럽의 카톨릭 이민자들이 증가하여, 이들 새로운 이민자가 정착하는 도시지역에서 영국계 개신교도 선이주민들과 이후 도래한 새로운 카톨릭 이민자들과의 다양한 갈등도 빚어졌다. 이후 미국 대륙횡단철도의 건설과정에서 중국으로부터 이민이 있었고, 이후 20세기에 들어서서 아시아 각국으로부터의 이민과 1990년대 이후 남미로부터의 이민이 급증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이민자 국가로서 미국은 전통적으로 혈연적이고 문화적인 요소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 인권, 제한정부, 자유시장 등 자유 민주주의의 제반 가치에 대한 시민의 공약을 토대로 국가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다문화국가로서 성장해 온 미국에 대해서 혈연적 주류문화를 상정하는 것은 소수인종 및 비백인 민속집단에 대한 문화적 압박으로 보일 수 있었고, 따라서 미국의 국가 정체성은 미국적 신조(the American Creed)를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미국 구성원이 진정한 미국인인가의 여부는 바로 이러한 미국적 신조에 대한 공약여부로 결정되었다(Huntington 1983).

그러나 이와 같은 미국적 신조에 토대한 국가 정체성을 인정하면서도 사실 이러한 신조 역시 유럽계 개신교 문명의 정치적, 종교적, 문화적 전통과 절연되었을 경우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기에 이르렀다. 다문화 국가는 결국 다신조적 국가가 될 것이기 때문에, 결국 미국적 신조라고 하는 것도 유럽 개신교 문화의 전통과 연결될 경우에만 의미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미국적 신조라는 정치적 가치는 국가적 유대감을 유지하기에는 매우 취약한 것이라는 주장이 등장한 것이다(Schlesinger 1998; Huntington 2004). 이러한 주장의 핵심은 문명과 문화적 기반이 지원해 주지 않는 정치적 신조는 장기간 유지될 수 없고 그 자체로서 국가 정체성의 핵심 요소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이 점차 힘을 얻어 감에 따라서 결국 국가 정체성은 주류문화를 형성하는 ‘국민집단’(national group)에 대한 일체감으로 정의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관점은 자유, 평등, 인권 등과 같은 가치나 원칙에 대한 지지나 공약은 국가 정체성을 유지하기에는 취약한 것이며, 국가 정체성은 특정 국가를 형성하고 있는 주류집단 – 미국의 경우 서유럽계 혹은 넓게는 유럽계 백인 – 에 대한 일체감을 중심으로 정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경우 이러한 논리는 건국 이후 미국 사회의 주류가 되어 온 유럽계 백인 중심의 기독교 문명에 뿌리를 둔 국민집단으로 유럽계 백인에 대한 일체감 여부가 결국 미국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는 백인, 유럽, 기독교, 좀 더 좁게는 백인, 서유럽, 개신교를 중심으로 한 국가 정체성에 대한 일체감이 유지가 될 때 미국을 존속시키는 사회적 유대감(social bond)이 강화되고 국가 정체성이 진정한 토대가 구축된다는 주장이었다. 주류 국민집단을 중심으로 문화적, 혈연적인 강한 유대감을 통해서 국가가 특정한 상징과 의례에 대해서 국가에 대한 공통의 존경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표피적인 원칙에 불과한 미국적 신조에 대한 지지는 언제든지 다른 종류의 가치나 원칙에 의해서 대체가 가능하다는 반론이 제기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결국 국민집단에 대해서 강한 일체감을 보이는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을 구별하여 전자가 후자를 차별하고 배제하는 논리를 만들어 내게 된다. 주류 백인에 대해 강한 일체감을 보이는 ‘진정한 미국인’과 이러한 일체감이 약한 ‘주변화된 미국인’ 사이에는 긴장이 있을 수밖에 없고, 전자에 의한 후자의 차별과 배제의 노력이 경주될 수밖에 없었다(Theiss-Morse 2009; Kinder and Kam 2009). 진정한 미국인인 전자의 내집단(in-group)은 주변화된 미국인인 후자의 외집단(out-group)을 배척하게 되고, 후자는 혈연을 변경시킬 수 없는 이상 2등 시민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거나 아니면 부단히 국민집단에 동화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민집단과의 투쟁을 통해서 승리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모국으로 귀환해야만 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변화된 미국인인 외집단이 내집단인 유럽계 백인에 대해서 그들의 주류 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승리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면에서 볼 때, 외집단인 소수인종이나 이민자들은 내집단인 백인의 문화 속에서 하위문화를 구성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럴 경우 사회적 다원주의나 정치적 올바름이 들어설 자리는 사라지게 된다.

2015년 이민문제를 둘러싼 미국 주류 국민집단인 백인의 불만, 특히 저소득·저학력 백인의 불만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면서 격렬한 표현으로 반이민의 노선을 내건 트럼프 후보의 등장은 소수인종과 이민자들로 인한 백인의 주변화에 대한 불안, ‘미국의 캘리포니아화’에 대한 우려를 배경으로 해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트럼프의 등장과 그가 표방한 ‘미국 제일주의’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 등의 구호는 바로 클린턴 이후 꾸준히 추진된 민주당의 사해동포주의적 이민노선과 세계화, 그리고 민주당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한 ‘정치적 올바름’의 물결 속에서 이러한 백인들의 우려와 불만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트럼프 후보는 이민문제를 자신의 핵심 정책공약으로 삼아 백인들의 선거동원에 성공하여 마침내 대통령의 지위에 오른 것이었다.

 


 

■ 저자: 손병권_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미국 미시간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국 정치, 미국 외교정책, 비교의회 및 정당론 등이다. 최근 연구로는 『미국 의회정치는 여전히 민주주의의 전형인가?: 정당정치에 포획된 미국의회』(2018), "트럼프시대 미국 민족주의 등장의 이해" (2017)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이영현 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7) ylee@eai.or.kr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6대 프로젝트

미중관계와 한국

세부사업

미래의 미국

Relate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