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차태서 성균관대 교수는 북한이 북방한계선 이남으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도발에도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유엔안보리의 규탄결의안이 통과되지 못했다며 강대국 간 경쟁 논리가 북핵 문제의 향방을 좌우하는 상황이 도래했다고 설명합니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의 비호를 믿고 도발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차태서 교수는 전략적 인내로 회귀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 정책의 새로운 접근법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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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단극시대 북핵문제의 성격변화

 

오늘날 미국의 대북한 전략의 변화를 분석함에 있어 한 가지 선행되어야 할 일은 북핵문제가 발생한 탈냉전 초기와 2022년 사이에 나타난 구조적 조건들의 변화에 대한 고찰이다. 북한문제와 관련해 특히 중요한 두 가지 변동 요소는 전지구적 세력배분에 있어 다극체제가 부상하였으며 북한의 핵보유가 거의 기정사실로 되었다는 점 등이다.

 

첫째, 세계정치의 패권이행기 국면으로의 진입에 따라 북핵문제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였으며, 북한 또한 새로운 구조적 조건에 맞춰 자신의 대전략을 전환하고 있다. 지난 탈냉전기 30년간 북핵이슈는 미국 주도 자유세계질서에 대항하는 불량국가(rogue state)의 문제로 규정되었다. 즉, 북한은 미국이 건설한 문명 표준과 국제 사회의 주요한 규범을 어긴 문명 세계의 외부자(pariah)로 규정되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기본적으로 북미관계에 존재하는 안보 딜레마의 상호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북한이 자유세계 질서의 규범을 어겨서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시각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북한은 정당한 외교 협상자로 간주되지 않아온 것이다. 아울러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경제적 제재, 적극적으로는 레짐 체인지 추구 등의 처벌이 추구되었다.

 

그러나 다극체제로의 이행과정에서 북핵문제의 본질이 WMD 확산방지나 NPT 체제수호 같은 자유주의적 국제규범의 문제에서 미중간 지정학적 체스게임의 일환으로 일정 정도 전환되고 있다. 2022년 3월 이래 모라토리엄을 깨고 북한이 ICBM을 포함한 다종다양한 미사일 발사를 재개하였고, 급기야 동년 11월에는 북한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탄도 미사일을 발사하는 일까지 벌어졌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유엔안보리의 규탄결의안 조차 통과되지 못한 사실은 이런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었다. 전후 미국주도 자유세계질서의 핵심요소 중 하나인 안보영역에서의 비확산규범이 깨져나가고, 대신 강대국간 경쟁논리가 북핵문제의 향방을 좌우하는 상황이 출현했음을 고지한 셈이다.

 

김정은 정권 스스로도 강대국 정치 귀환의 맥락에서 자신의 문제를 재인식하면서 전략을 수정하고 있는데, 가령 “신랭전”의 도래 혹은 “일극세계로부터 다극세계로의 전환이 눈에 뜨리게 가속화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한반도 차원을 넘어 지역의 군사적 균형 변화에 따른 군비증강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폭로로 밝혀진 것처럼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고전중인 러시아를 돕기 위해 포탄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으로 새로운 반미연대체의 구성을 획책중이다. 이로써 북핵문제는 국제사회에 의한 제재와 처벌을 통해 다루어지는 사안으로서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역내의 강대국간 정치의 갈등과 협상의 대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북한 역시 주도적으로 이러한 지정학 게임에 북중러 삼국의 연합을 공고화 하며 한미일에 맞서는 형태로 참여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종합하면, 향후에도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비호를 믿고 자신감 있게 여러 도발행위를 감행할 가능성이 높으며, 설령 7차 핵실험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의한 추가제재의 메커니즘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어두워진 북한 비핵화 전망

 

둘째, 북한은 2017년 이미 일정한 양의 핵무기와 ICBM 같은 운반체를 갖추고서 사실상의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2019년 초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에는 한반도 비핵화 목표와는 완전히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9년 12월 채택된 이른바 “정면돌파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한과 미국 모두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강공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2022년 연초부터 미사일 실험을 연달아 진행하기 시작한 북한은 자신이 정한 시간표를 갖고서 트럼프 시기 공약한 약속들에 구애받음 없이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얻기 위한 공세적 태세를 명확히 해왔다.

 

가령, 2022년 1월 20일 김정은은 “선결적으로, 주동적으로 취하였던 신뢰구축조치들을 전면 재고하고 잠정 중지했던 모든 활동들을 재가동하는 문제를 신속히 검토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리고 3월 24일 결국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다시 발사함으로써 스스로 부과한 모라토리엄을 파기해 버린 데 이어, 4월 25일 김정은은 “우리 국가가 보유한 핵 무력을 최대의 급속한 속도로 더욱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계속 취해나갈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 핵무력의 기본 사명은 전쟁을 억제함에 있지만 이 땅에서 우리가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 조성되는 경우에까지 우리의 핵이 전쟁 방지라는 하나의 사명에만 속박되여 있을 수는 없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급기야 9월 8일 최고인민회의는 법령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정책에 대하여”를 채택하여 선제 핵공격과 “비대칭 확전 전략”을 암시하는 매우 공격적인 핵 독트린을 대내외에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핵전략의 변화가 전술핵과 같은 소형 핵무기 개발과 결합할 경우, 향후 남한과의 분쟁에서 북한이 핵을 실제 사용하는 상황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위태로운 사태전개로 여겨진다.

 

2022년 9월 김정은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핵을 “국체”라고까지 정의하며 “흥정물”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북외교 목표를 정권교체라고 적시한 마당에 당분간 북미간 혹은 남북간에 진지한 협상이 진행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한동안 북한은 빗장을 걸어 잠근채, 한편으로는 남한과 미국의 정권교체를 기다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방공업혁명 2차 5개년 계획에 따라 “전쟁 억제력을 질량적으로 강화하고 국가 안전을 위한 필수적인 전략 전술적 수단의 개발 생산을 더욱 가속화”하면서 비핵화가 아닌 군축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자 노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의 변화조짐?

 

2021년 4월 30일 발표된 바이든 정부의 공식적인 대북정책의 목표는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이며, 기존의 자유패권적 관점에서 국제안보규범의 위반자로 규정되는 북한에 대해 제재와 압박을 가하면서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무장 포기를 유도하겠다는 전통적인 단극시대의 대북정책노선이 고수되고 있다. 그런데 이른바 “세심히 조정된 실용적 접근법(calibrated and practical approach)”이라 이름 붙은 바이든 시대의 대북정책은 트럼프식과 오바마식을 모두 뛰어넘은 제3의 독트린이 될 것이라는 호언장담과 달리 2022년 말의 시점에서 평가해 볼 때, 사실상 전전임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로 회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잣대로 북한을 타자화시키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가운데 실제적으로도 대중 전략경쟁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이슈들에 밀려 북핵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에너지가 미국 내에 결핍된 상황이다. 비록 어떤 대화에도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는 개방적 자세를 지니고 있다는 제스쳐를 반복적으로 내비치고는 있지만,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평양을 비핵화 협상에 유인할 구체적인 인센티브가 결여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워싱턴은 지난 11월 미중정상회담의 사례와 같이 궁여지책으로 문제를 우회해 베이징이 북한문제의 해결을 방치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역내에 미군의 전력자산을 더 배치할 수 있다고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중국정부는 도리어 미국이 북한의 합리적 안보우려를 고려해야 한다면 응수하는 형국이다. 결국 이 지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2020년대 초반의 시점에서 북핵문제는 갈수록 두 초강대국간 패권경쟁의 하부 이슈로 편입되고 있으며, 이에 문제의 해결이 더욱 미궁으로 빠지고 있다는 암울한 사실이다.

 

이와 같이 변화된 전략적 조건 속에서 미국 내에서도 북한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분출하고 있어 면밀한 관찰이 요구된다. 특히 현실주의적 “군축학파(arms control school)”의 부상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현실주의자들은 북한을 현실주의의 한 행위자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북한에 대한 일종의 전략적 공감대(strategic empathy)를 가진다. 즉 북한을 홉스적 무정부 상태에 있는 하나의 정상 국가로 보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핵무기는 안보 딜레마에 처한 북한의 게임 이론적 차원에서 합리적인 선택일 뿐이다. 전형적인 무정부적 상황에서 안보 딜레마에는 미국과 북한 모두가 서로 얽혀 있기 때문에 북미 간에는 협상이 필요하다.

 

현실주의자들의 북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냉전 때는 소련과, 탈냉전기에는 중국과 공존하듯이 불유쾌하지만 북한에 핵을 남겨두고도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정적인 2차 공격력을 유지한 상태에서 공포의 균형을 통해 이 상황을 관리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기본적으로 북미 사이에 일정한 타협을 이루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CVID, FFVD, 레짐 체인지 같은 탈냉전기 자유주의에 기반한 해법은 모두 불가능하며 북한이 핵을 계속 가질 것이라는 전제하에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주류 정책가들이 꿈꾸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은 이루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무리수를 유도해 위험한 상황을 낳을 수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타협을 위해 미국이 종전 선언 등의 일정한 양보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조치를 통해 북한이 갖고 있는 안보 딜레마에 관한 생각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젠킨스(Bonnie Jenkins) 미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이 2022년 10월 카네기국제평화기금의 핵 정책 컨퍼런스에서 북한과 군축과 관련해 다양한 논의를 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힌 점이다. 젠킨스 차관은 북미양국이 “마주앉아 대화할 의지가 있다면 군축은 언제든지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하면서 “단지 군축뿐 아니라 위협 감소, 전통적인 군축 조약으로 이어지는 모든 것, 군축의 모든 다른 요소들에 대해 그들과 (대화)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물론 국무부는 바로 다음날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공식적으로 이같은 군축협상론을 일축하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미국의 대북정책목표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부인에도 불구하고 기성 30년간의 비핵화 패러다임을 벗어나 군비통제와 같은 마이너한 접근법에 대한 논의가 미국의 관가에서 공개적으로 등장했다는 점은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며, 향후 대북정책에 대한 워싱턴의 담론지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 면밀히 추적 관찰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

 

※ 본 논평은 “Divining the North Korean Nuclear Problem in a Multipolar World” 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차태서_2018년부터 현재까지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고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센터 연구원, 공군사관학교 군사전략학과 전임강사, 중앙대학교 국익연구소 전임연구원 등을 역임했다. 연구 성과로는 “Whither North Korea? Competing Historical Analogies and the Lessons of the Soviet Case”, “Is Anybody Still a Globalist? Rereading the Trajectory of US Grand Strategy and the End of the Transnational Moment”, “Republic or Empire: The Genealogy of the Anti-Imperial Tradition in US Politics” 등 외교정책과 국제정치이론에 대한 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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