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현승수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심화되는 미러 갈등이 북한의 도발을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경제 호환성 등 내재적 요인과 제재 압박 속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외부적 요인 등으로 인해 러시아가 북한 경제에 돌파구를 마련해줄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대북 비난 결의나 신규 대북 제재 결정을 저지할 가능성은 높다고 분석합니다. 현 연구위원은 탈냉전 국제 질서가 흔들리고 동북아 국가 간 갈등이 신냉전 양상을 보이는 만큼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된 이후 나타날 미러, 미중, 중러 관계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아울러, 러시아의 지지 없이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만큼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한 논의의 장에 러시아가 배제되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합니다.

■ Global NK Zoom&Connect 원문으로 바로가기(For the English version, Click here)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0개월이 경과했다. 초기 예상과는 달리, 러시아는 군사력에서 턱없이 부실함을 보여주었고 의외로 우크라이나는 선전하고 있다. 러시아가 이미 자국령으로 선포했던 헤르손 일부 지역을 우크라이나 군이 탈환하면서 협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무엇보다 한국 땅에 맞먹는 영토를 빼앗긴 우크라이나가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다. 협상으로 휴전이나 정전이 성립되더라도 분쟁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팔레스타인이나 나고르노·카라바흐처럼 저강도 분쟁으로 남을 수 있다.

 

이 전쟁을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대결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러시아를 무너뜨리려는 서방의 음모로 보는 시각도 있다. 또 전쟁 원인을 미국과 서방이 제공했다고 보는 이들도 있으며, 원인이야 어찌됐든 이웃 나라 국경을 넘어가 무고한 민간인을 희생시킨 푸틴 대통령의 행위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푸틴이 옛 소련을 재건하려는 야심을 드러냈다는 견해도 있다. 온갖 페이크 뉴스가 난무하는 지금, 전쟁의 진실을 밝히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전쟁이 30년 동안 지속돼 오던 탈냉전 세계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전망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전 세계에 밀어닥친 에너지 부족과 식량 위기 사태도 이번 전쟁이 단순히 국가나 지역 차원의 분쟁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북한의 도발과 북·러 밀착

 

우크라이나 전쟁은 멀리 떨어진 한반도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올해 들어서만 30번 넘게 탄도 미사일 발사를 감행하고 있는 북한의 행태가 이 전쟁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에 강경 입장을 보이는 바이든 미 행정부와 한국의 윤석열 정부, 한동안 중단됐던 한미 연합 훈련 재개가 미사일 도발의 주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악화한 미·러 갈등이 북한의 이례적 도발을 부추기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적지 않다. 김정은 조선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대미 적대감을 불씨 삼아 러시아와 관계 밀착을 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무기와 군수품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탄약과 무기, 군복까지 제공받았다는 보도도 지속적으로 흘러나오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는 이를 미국이 획책하는 정보전에 불과하다고 일축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러가 눈에 띠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기 힘들다.

 

일단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나섰을 때 세계 언론은 크게 놀랐다. 러시아의 군사 행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친러 국가로 분류되는 중국이나 이란, 인도조차도 러시아가 벌인 전쟁에 중립적인 입장이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내 친러파 세력이 세운 루한스크 공화국과 도네츠크 공화국을 정식 국가로 승인한 나라는 거의 없다. 러시아를 제외하면 시리아 정도다. 북한이 여기에 포함된다. 더 나아가 2022년 9월 푸틴이 우크라이나로부터 빼앗은 네 개 지역, 즉 루한스크와 도네츠크 공화국, 헤르손주와 자포리자주를 러시아 영토로 합병한다고 선언했을 때 북한은 즉각 이를 지지하는 외무성 담화를 발표했다. 전쟁 발발 이후, 유엔에서 북한은 러시아에 대한 규탄 결의안에 반대표를 던지고 러시아는 새로운 대북 제재 도입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서로를 감싸는 데 열심이다.

 

김정은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과거와 같은 동맹은 아니더라도 동맹에 버금가는 수준까지는 끌어올릴 계산인지도 모른다. 중국과 러시아가 준동맹 수준으로 국가 관계를 밀착시켜온 사례를 모방하고 싶을 수도 있다. 중·러 두 나라는 서로 지정학적 이해와 국익이 완전 일치하지는 않지만 공통의 목표를 위해 상호 연대와 전략적 밀착을 강화해 왔음을 김정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중·러 공통의 목표는 세계 패권 국가인 미국을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다극적 세계 질서를 구축하는 것이다.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은 미국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대는 끝나야 하고 또 그 끝이 머지 않다고 본다. 군사력에서는 여전히 세계 2위의 자리에 있는 러시아와, 경제력으로 G2 반열에 오른 중국이 힘을 합친다면 탈냉전 이후 30년을 지배하던 미국 단극 시대를 종식시킬 수 있다는 게 중·러 두 나라 정상의 일치된 인식이다.

 

김정은은 밀착된 중·러 관계 속에 북한도 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듯 보인다. 국가 규모나 경제력에서 턱 없이 부족한 소국이지만, 북한은 핵 무력을 법제화하면서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2018년 1월 푸틴은 김정은을 “유능하고 성숙한 정치가”라고 극찬한 적이 있다. 푸틴은 2017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김정은이 핵·미사일 실험을 반복하면서 미국에 압박 수위를 높이던 상황과 관련해 기자단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에는 김정은이 이겼다고 생각한다. 그는 전략적인 과제를 달성했다. 핵탄두를 갖고 있고, 사실상 전 세계 어디든 잠재적 적대국 영토에 도달할 수 있는 사정거리 만3천 킬로미터짜리 미사일도 보유하고 있다. 그는 틀림없이 유능할 뿐만 아니라 이미 성숙한 정치가다.” 그때로부터 두 달이 지난 2018년 3월 대통령 의회 연두교서에서 푸틴은 미국을 핵 공격하는 시뮬레이션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미국과 서방을 비난하며 “아무도 우리와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고 아무도 우리가 하는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들어야 할 것”이라고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푸틴의 당시 발언 그리고 이후 전개된 러시아와 미·서방 간 갈등,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흐름을 보면, 푸틴이 김정은식 벼랑끝 전술에서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또 최근 북한이 보여주고 있는 이례적인 연쇄 도발이 단지 미국이나 한국만 겨냥한 것이 아닐 수 있다. 러시아와 중국에 자신의 결기를 보여주려는 김정은의 전략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북·러 관계의 가능성과 한계

 

사실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북한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여러모로 노력해 왔다. 그가 대통령직에 오른 첫 해에 북한을 방문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두 나라가 혈맹으로 불리던 냉전 시기에도 소련 정상이 북한을 방문한 적은 없었다. 푸틴은 소련이 사라지면서 러시아가 세계를 경영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전략적 자산을 상실했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북한은 회복해야 할 지정학적 자산이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는 북한을 챙기기보다 한국과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더 관심이 많았다. 소련의 지원이 끊긴 북한은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렸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로 난국을 타개하려 시도했고, 유엔과 미국은 대북 제재 강화로 응수했다. 북한 경제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러시아가 북한과 관계를 회복하려면 북한 경제가 어느 정도 정상화될 필요가 있었다. 러시아는 북·러 협력에 최대 걸림돌로 남아 있던 북한의 채무를 탕감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2014년 러시아 의회 하원은 북한이 과거 소련으로부터 빌렸던 110억 달러 중 100억 달러를 탕감하고 나머지 10억 달러는 20년 거치로 상환받는 협정을 비준했다.

 

또 러시아는 2001년부터 이른바 남북러 삼각 경협을 남북한에 제안해 왔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러시아 가스관 그리고 송전망을 북한을 경유해 남한까지 연결하는 거대 구상이었다. 러시아는 남북러 삼각 경협이 성사되면 러시아는 물론 남북한 모두에게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뿐만 아니라, 남북 관계 개선에도 기여한다고 생각했다. 2011년 8월 북한 지도자 김정일이 러시아를 방문해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자리에서 남북러 경협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당시 이명박 정부도 러시아의 제안에 관심을 보이면서 역사적인 경협 프로젝트가 곧 실현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업은 좀처럼 궤도에 오르지 못했고, 북한의 연이은 핵·미사일 도발로 유엔 대북 제재가 강화되면서 좌초되고 말았다. 특히 2016년 1월 북핵 4차 실험 직후 유엔의 대북 결의안 채택 과정에서 러시아는 북한의 핵 실험에 반대하고 대북 제재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남북러 삼각 경협을 살리기 위해 제재안의 수정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그러나 러시아의 노력이 사업 재개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2021년 6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 행사에서 푸틴 대통령은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북 제재가 아닌, 북한의 안전 보장 여건을 조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남북러 3각 경협이 효과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러 밀착이 강화되면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경제적 지원이 증가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 북·러 경제 관계는 대단히 미미한 수준이며, 두 나라 경제 사이에 내재한 구조적 한계는 좀처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양국 사이에 경제 호환성이 낮아 북한이 러시아에게 제시할 수 있는 경제적 카드가 거의 없는 실정이고 양국 무역 규모도 매우 작다. 러시아는 과거 소련 때처럼 무상 원조에 기반한 대북 경제 관계로 회귀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더욱이 제재 압박 속에서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러시아가 북한 경제에 돌파구를 마련해 줄 가능성도 크지 않다.

 

하지만 북·러 관계가 강화되면 러시아가 얻을 이익보다 북한이 받을 수 있는 이익이 훨씬 크다는 점은 분명하다. 앞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북한이 러시아 입장을 일관되게 지지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러시아 역시 2022년 1월 북한 탄도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 채택에 중국과 함께 반대표를 던진 것을 시작으로, 대북 비난 결의나 신규 대북 제재 결정을 번번히 저지하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러시아에 대한 지지가 직접 자국과 관련되지 않은 사안이기 때문에 상징적 연대를 표시한 셈이다. 이에 반해, 러시아가 북한을 감싸는 행위는 북한에 실질적 피해를 가져올 수도 있는 외부 압력을 저지한 실력 행사다. 동북아와 한반도에서 냉전 때처럼 진영화가 고착될 경우 가장 큰 이익을 볼 나라는 북한이다.

 

향후 전망과 제언

 

향후 북한과 러시아가 어느 수준까지 관계를 밀착해 들어갈지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떤 식으로 종결될지 지켜 봐야 한다. 만일 러시아가 전쟁에서 참패하고 외교적 고립과 경제난에 빠질 경우, 북한에 대한 지원 양상도 크게 바뀔 것이다. 또 미·러와 미·중, 중·러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 갈지도 주목해야 한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있고 중·러 연대는 여전히 견고한 듯 보이지만, 중국이 향후 러시아를 어떻게 대할지가 북·러 관계를 예측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변수다. 러시아가 북한과 밀착하는 상황을 중국이 달가워하지 않을 수도 있다.

 

탈냉전 국제 질서가 흔들리고 동북아 국가들 간 갈등이 진영화와 신냉전 양상을 보이는 지금,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국과 러시아 관계도 큰 시험대에 올랐다. 그동안 러시아 극동 지역 개발과 남북러 삼각 경협을 지렛대로 삼아 북핵 문제 해결에서 러시아의 지원을 끌어내려던 한국의 대러 외교 기본 틀은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러시아가 동북아에서 미국 견제를 위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한, 한국이 북한 문제, 특히 북한 핵·미사일 개발 관련 사안에서 러시아와 협력하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북핵이 주는 위기보다 미국으로부터 오는 지정학적 도전을 더 큰 위협으로 본다. 러시아가 굳이 북·중·러 진영을 굳히기 위한 전략을 노골화 하지 않더라도 북한과 러시아는 세계 질서 재편 과정에서 대미 견제라는 공통된 전략 목표 아래 한 목소리를 낼 가능성이 크며, 이는 우리 정부의 대북·통일 정책 추진에 큰 장애로 작용한다.

 

하지만 어려워진 여건 속에서도 한국은 북핵을 논의하는 장에서 러시아를 배제하지 않는 자세가 중요하다. 북핵 문제의 다자적 해결은 러시아의 일관된 입장이며, 러시아의 지지 없이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점에서 러시아는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협력 파트너다. 무엇보다 한국 정부의 강력한 비핵화 의지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노력을 러시아 측에 이해시키기 위한 논리 개발이 필요하다.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변하지 않는 한국의 통일·대북 정책 기조여야 러시아를 설득할 수 있다. 5년의 짧은 호흡으로 20년 넘게 변하지 않는 러시아의 긴 호흡을 상대하기는 쉽지 않다.

 

※ 본 논평은 “The Russia-Ukraine War and North Korea-Russia Relations” 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현승수_ 통일연구원 평화연구실의 연구위원이다. 일본 도쿄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외교통상부 외교안보연구원 책임연구원,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 HK연구교수를 역임하였고, 현재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 한국유라시아학회 부회장으로 있다. 주요 연구영역은 러시아 및 유라시아 국제정치, 러시아 안보 정책, 북·러 관계이다. 저서로는 『중·러 협력과 한반도 평화·번영』(공저), 『한반도 평화·번영 실현을 위한 국경 협력』(공저), 『동북아평화협력구상과 유라시아 협력 추진을 위한 다자주의적 접근』(공저) 등 다수가 있다.

6대 프로젝트

북한 바로 읽기

세부사업

대북복합전략

Keywords

Relate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