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최근 북한이 채택한 ‘핵무력정책법’은 핵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력으로 만들겠다는 지향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황일도 국립외교원 교수는 해당 법령이 러시아의 공식 핵 정책 교리와 유사성을 보인다며, 북한이 러시아와 유사한 접근법을 한반도에 도입하려 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북한이 러시아와 같이 핵에 대한 보복능력인 2차 공격능력을 확실하게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에 대한 확장 억제 정책을 집행함에 있어 제약을 느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평가합니다. 도리어 북한의 이 같은 시도는 우발적 핵사용 위험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키고, 동북아시아 전역의 안보를 위태롭게 만들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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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된 2010년대 중반 이래, 향후 이들의 핵 교리가 중국식 최소억제(minimal deterrence) 기반에 머무를 것이냐 거부억제(denial deterrence)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냐는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 초미의 관심사였다. 2021년 1월 조선노동당 8차 당대회 이래 본격화된 북한의 전술핵 구축 행보 혹은 핵 실전전력화 행보는 이 질문에 대한 평양의 명확한 대답이었다. 핵무기를 최후의 응징보복용으로 사용한다는 초기의 태도에서 벗어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질 경우 재래식 교전의 와중에도 먼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태도로의 공식적 전환이다.

 

물론 재래전의 와중에도 핵을 사용할 수 있다고 위협함으로써 상대의 재래식 군사행동조차 어렵게 만들겠다는 계산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10년대 이후의 파키스탄이나 1960년대 미국/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경우처럼 ▲잠재적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고 ▲상대에 비해 재래식 전력이 열세라고 느끼는 국가들은 이렇듯 상대의 재래식 침공을 전술핵 공격으로 격퇴하겠다는 교리를 공통적으로 채택한 바 있기 때문이다. [1] 그러나 이들 국가의 당시 교리나 태세가 모두 상대의 대규모 지상군 침공 같은 상황을 전술핵 사용의 조건으로 언급했다는 점에서, 북한이 최근 공식화하고 있는 선언정책과 핵 교리는 선행사례에 비해서도 핵 사용 문턱이 매우 낮고 자의적이다.

 

극단적인 불확실성을 과시함으로써 억제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9월 8일 평양이 채택한 ‘핵무력정책법’을 통해 정점을 찍었다. 해당 법령의 구체적인 문구와 형식, 전제들은 평양이 최근 구축해가고 있는 핵 실전전력화 교리와 태세가 어떤 지향점을 갖고 있는지 뚜렷하게 보여준다.

 

I. 핵 전력의 임무와 지휘통제

 

북한은 2013년 4월 “자위적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데 대하여(이하 ‘핵보유국법’)”을 채택한 바 있다. 핵무력정책법은 11조 1항을 통해 이 법이 2013년 핵보유국법의 효력을 대체하는 것임을 명확히 밝혔다. 세부 내용에서 두 법의 가장 큰 대비점은 ‘핵무력의 사명’을 다루고 있는 항목이다. 2013년 법령 2조가 “우리 공화국에 대한 침략과 공격을 억제, 격퇴하고 침략의 본거지들에 대한 섬멸적인 보복타격을 가하”는 것으로 핵무기의 용도를 규정하고 있는 반면, 새 법령 1조는 1항에서 “전쟁을 억제하는 것을 기본사명으로 한다”면서도 2항에서는 “전쟁억제가 실패하는 경우 적대세력의 침략과 공격을 격퇴하고 전쟁의 결정적승리를 달성하기 위한 작전적사명을 수행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2013년 법령의 언급은 ‘섬멸적 보복’을 위협함으로써 상대의 핵사용을 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이 경우 핵사용은, 그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양측 모두의 공멸을 전제한 위협이었던 셈이다. 반면 올해 법령은 이에 더해 “전쟁에서의 결정적 승리”를 추가적으로 언급함으로써 핵무기 또한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력으로 만들겠다는 지향점을 밝히고 있다. 핵무기를 사용하고도 생존 혹은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새 법령의 이러한 특징은 6조 ‘핵무기의 사용조건’이 규정하고 있는 5개의 구체적인 상황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들 규정은 모두 상대의 공격이 핵공격인지 재래식 공격인지를 구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다른 핵무장 국가의 선언정책에 비해 핵사용 결정의 수위를 크게 낮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재래식 전쟁의 와중에도 자신들은 얼마든지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실전전력화 교리의 극단적인 형태다. 핵사용의 문턱(nuclear threshold)을 최대한 낮추어 언제든 사용이 가능한 위태로운 태세를 유지함으로써 상대의 어떠한 군사행동도 핵무기를 통해 억제하겠다는 취지에 가깝다.

 

이렇듯 ‘어떤 상황에서 핵을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핵무기를 어떻게 관리, 통제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동전의 양면이다. 특히 북한처럼 재래전에서의 선제적 핵 확전을 위협하고자 하는 국가라면 유사시 핵무기의 실제 사용을 결정, 실행하는 절차가 매우 간단하거나 현장의 지휘관에게 위임돼 있다고 과시할 필요가 생긴다. 이른바 핵전력의 지휘통제(nuclear command & control) 이슈다. 새 핵무력정책법 3조 1항과 2항은 “핵무력은 국무위원장의 유일적 지휘에 복종한다” “국무위원장은 핵무기와 관련한 모든 결정권을 가진다”고 규정하면서도, 3항은 “핵무력에 대한 지휘통제체계가 적대세력의 공격으로 위험에 처하는 경우 사전에 결정된 작전방안에 따라…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타격이 자동적으로 즉시에 단행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1,2항에서는 중앙집중형(assertive) 지휘통제라는 원칙을 언급하면서도, 3항에서는 유사시를 대비한 사전위임형(delegative) 지휘통제를 병행적으로 구축할 것이라고 언급해 그 탄력적 적용을 꾀한 셈이다.

 

평양이 재래전의 와중에도 먼저 전술핵을 사용해 전장에서의 우위를 점하는 교리를 추구한다면, 평양은 미국의 압도적 핵전력이 부과하는 참수 작전이나 무장해제 타격(disarming strike)의 위험에 맞닥뜨리게 된다. 북측의 ICBM이 미국 측의 이러한 1차 타격과 미사일방어(MD)를 뚫고 살아남아 미국 본토에 상당한 피해를 입히는 상황을 워싱턴이 심각하게 우려한다면 이러한 대응 옵션에 제약이 있을 수도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 북측 핵 전력이 이러한 확증보복능력(Assured Retaliation Capability)의 문턱을 넘어섰다고 워싱턴이 판단하게 될 개연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2]

 

따라서 현재 상황에서 북측은 미국의 대규모 핵보복을 저지할만한 수단이 마땅치 않다. 이러한 카드가 없다면 재래전 와중에 먼저 핵무기를 사용해 전황을 유리하게 끌고 가겠다는 평양의 계산은 군사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워진다. 이른바 ‘자동적 핵 타격’에 대한 언급은 다탄두(MIRV) ICBM이나 신뢰할만한 SLBM 능력 확보 등을 통해 대미 확증 보복능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릴 때까지 어떻게든 미국 측의 대규모 핵 보복을 피하기 위한 나름의 고육책인 셈이다. 선제적 핵사용 이후에도 지도부 궤멸이나 최고지도자의 참수 같은 극단적 상황을 어떻게든 막아보겠다는 시도다.

 

II. 2020년 러시아 핵 정책 문서와의 유사성

 

핵무력정책법의 구조나 문장, 단어의 용법에서 드러나는 또 하나의 뚜렷한 특징은 러시아의 공식 핵 정책 문헌과의 유사성이다.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는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핵 교리 관련 문서를 작성한 바 있는데, 그 가운데 최근 버전에 해당하는 2020년 6월의 대통령 명령 ‘핵 억제 영역의 러시아 국가정책 기본 원칙에 대하여(Об Основах государственной политики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в области ядерного сдерживания, 이하 ‘기본원칙’)’의 경우 평양이 핵무력정책법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참고한 문헌으로 보인다. 우선 각각 법령과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법제화된 문서라는 점에서 그러하고, 분량이나 주요 항목의 구성 역시 흡사해 형식상의 공통점이 뚜렷하다.

 

내용상의 공통점도 두드러진다. 2020년 러시아의 ‘기본원칙’이 3조 19항에서 다루고 있는 핵 사용의 조건이나 1조 4항에서 언급된 지침의 목적, 2조 15항에 등장하는 핵 억제력과 실전용도의 동시 유지에 대한 언급은 사실상 앞에서 살펴본 핵정책무력법의 주요 내용과 매우 흡사하다. 즉 ▲재래전 와중에서의 선제적 핵사용 옵션 과시 ▲핵무기를 억제전력과 실전전력으로 모두 활용한다는 이중 교리 ▲핵사용 문턱 낮추기를 통한 재래식 열세 상쇄 등이 두 문서에서 모두 공통적으로 발견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20년의 ‘기본원칙’ 문서는 러시아가 전장에서의 전술핵 확전 위협을 통해 미국이나 NATO의 군사행동을 저지하거나 물러서게 만드는 이른바 ‘비확전을 위한 확전(Escalate to De-escalate)’ 교리를 구체적으로 보여준 문서였다.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 군사당국과 학계에서 의심하던 해당 교리의 존재가 이 문서를 통해 실증된 셈이었다. ‘비확전을 위한 확전’ 교리는 올해 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모스크바가 핵사용 가능성을 반복적으로 암시함으로써 현실화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물론 미국과 NATO의 직접적 군사개입 자제가 이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평양은 러시아 측 교리가 효과를 발휘한 결과라고 인식하고 관련 교리와 선언정책의 적극적 공개를 서둘렀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유사한 상황을 한반도에서도 연출해 미국 측의 확장억제 가동과 전시증원을 저지하겠다는 것이 핵무력정책법의 근본 목적인 셈이다.

 

III. 시사점: 능력과 교리의 괴리

 

그러나 결정적 한계가 있다. 북한은 러시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비확전을 위한 확전’은 러시아가 미국과 상호확증파괴(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수준의 대등한 핵전력을 보유한 국가이기 때문에 상정할 수 있는 교리다. 확전의 끝에는 결국 공멸 뿐이므로 미국 역시 러시아 측의 확전 위협을 심각하게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다. 반면 앞서 설명했듯 북측의 대미 타격능력에 대한 미국 측의 인식은 확증파괴는 물론 확증보복(Assured Retaliation)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북측이 러시아를 따라 선제핵사용을 위협한다 해도 미국 측이 이 때문에 확장억제 실행 등에서 제약을 느낄 공산은 크지 않다. 평양이 무엇을 추구하든, 최소한 워싱턴의 인식은 이에 훨씬 가깝다.

 

추구하는 교리와 실제 능력 사이의 괴리, 혹은 평양의 인식과 실제 현실 사이의 이러한 괴리로 인해, 북측은 자신들이 선제적으로 핵을 사용한 이후에도 미국 측의 대규모 핵사용 응징을 피할 수 있는 ‘기묘한 구조의 상호 핵 억제’를 만들어낼 묘안이 없을지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중이다. 앞서 본 극단적인 핵사용 조건 낮추기와 자의성 과시, 위임된 혹은 자동화된 보복 핵 사용 위협은 모두 이를 위한 고육지책에 해당한다.

 

문제는 그러한 평양의 시도가 우발적 핵사용의 위험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남북 혹은 북미 사이의 국지적 충돌이 자칫 평양의 무모한 핵 실전전력 사용으로 이어질 경우 그 다음은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전체의 핵 참화가 될 확률이 충분하다. 평양은 이를 통해 자신들의 안보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안보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을 뿐이다. 북측의 정책결정권자들이 이 차가운 진실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주변 당사국들의 가장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황일도_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조교수로, 북한 문제와 핵 억제, 군사안보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를, 연세대학교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일보사 기자와 화정평화재단 21세기 평화연구소 연구위원, 스웨덴 스톡홀름 안보개발정책연구소(ISDP) Visiting Fellow를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북한 군사전략의 DNA’(2013)와 ‘김정일 공포를 쏘아올리다’(2009)가 있다.

 

※ 본 논평은 “Analysis of North Korea’s Nuclear Force Policy Act: Intentions and Drawbacks” 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1] Ildo Hwang, "Common Pattern of Nuclear Doctrine Evolutions and North Korea’s Recent Concept of Nuclear Escalation," National Strategy 27, no. 3 (2021).

[2] Hwang Ildo, "Resumption of ICBM Tests: North Korea’s Intentions Seen from the Nuclear Deterrence Perspective," IFANS FOCUS, no. 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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