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북한 정권은 김일성 정권 이래 ‘백두혈통’을 통해 세습 정권의 정통성을 강조해왔습니다. 그러나 권력 승계 과정에서 불변성과 연속성이 강조됨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 세습 전후에는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의 석좌연구위원은 김정일 시대의 선군통치와 김정은 통치를 대외안보전략, 정권체제, 정권주도세력 차원에서 비교하고, 이전 시대에 비해 김정은 통치체계가 유연성을 상실하고 독단적인 형태로 변했다고 지적합니다.

북한은 권력이 세습될 때마다 ‘유훈통치’ 즉 불변성과 연속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그리고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의 권력 세습 전후에, 통치의 목표, 체제와 방식에 매우 다른 점이 존재했다. 여기서는 김정일 시대의 선군통치(1994-2011)와 김정은 통치(2011-현재)를 비교한다. 첫째, 대외안보전략, 둘째, 정권체제, 셋째, 정권주도세력이 비교항목이다.

 

대외전략

 

선군통치의 대외안보전략의 핵심은 한미와의 잠정 타협에 기반한 긴장완화였다. 북한은 3중의 이득을 취했다. 첫째, 한미로부터의 안보 위협이 완화되었다. 둘째, 핵/미사일 개발 및 국내 체제 재정비에 필요한 원조와 자금을 벌어들였다. 셋째, 협상 지속을 통해 위협 완화 및 원조 획득의 이득은 누리되, 회담을 지연시키고 합의 성사는 거부했다. 이를 통해 북한은 시간을 벌었다. 이러한 전략 기조 하에서, 1993 제네바 합의, 2000/2007 남북정상회담, 2000-2007 한국에 대한 긴장완화 활용 정책, 2003-2008년 6자회담이 추진되었다.

 

김정은 통치의 대외안보전략의 핵심은 모든 대내외 비용을 감수하면서도 핵/미사일 능력을 증강시키는 것이었다. 목표는 3가지이다. 첫째, 대미 확증 보복 능력 완성을 바탕으로 한반도에서 군사우위를 확립한다. 둘째, 증가된 핵/미사일 능력을 지렛대로, 북한에게 구조적으로 유리한 한반도 안보 질서를 구축한다. 셋째, 북한의 최대 입장을 한미가 수용하도록 강요한다. 북한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핵/미사일 능력이 증강되고 그리하여 안보 정세가 한미에 더 불리해질 것이라고 협박한다.

 

국정체제

 

선군통치 국정체제의 특징은 세 가지였다. 첫째, 국방위원회가 중앙당을 대신하여 국정의 중심이었다. 국방위원회의 핵심 임무는 (핵/미사일 개발을 포함) 현재와 미래의 군사적 대외 억제력 유지, 그리고 군대와 국가의 내부 와해 방지였다. 국방위원회는 국정전반 그리고 주요 자원을 장악했다. 둘째, 선군체제는 행정을 당에 앞세웠다. 중앙당 기관들이 아니라 국방위원회가 국정 중추였고, 군사 지휘관이 군대 정치위원에 대해, 기관/기업소에서는 지배인이 당비서에 상급에 위치했다. 셋째, 국정체제가 보다 분권적으로 조직되고 운영되었다. 하부단위의 운신공간과 자율성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넓어졌다. 이는 내키지 않지만 불가피했던 바의 체제 재정비의 산물이었다. 북한은 당시 중앙의 하급과 지방에 대한, 그리고 정권의 주민에 대한 장악력이 전반적으로 약화된 상황에 직면했다. 정권의 장악력 약화를 인정하되 더 이상의 퇴각에 대한 방어선을 세운다는 목적에서 재정비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전략 기조 하에서 1998년 헌법개정에 의해 명실상부 ‘선군’ 국정체계가 성립했다. 경제적으로는 2002년 71 경제개선조치가 취해지고, 동년 9월 ‘선군경제노선’ 출범했다. 아울러 시장 확장, 대남 경제관계 활용, 무역 확대 등이 용인되고 관리되었다.

 

김정은 통치의 국정체제는 선군통치의 그것과 대조되는 3가지 원칙에 입각한다. 첫째, 정치국, 당중앙군사위원회, 당중앙 전원회의와 같은 중앙당 기구가 국정의 중심에 위치한다. 둘째, 당을 행정에 앞세우는 당-국가 국정체제가 복원되었다. 중앙당 기관은 국무위원회와 내각의, 군 정치위원은 군 지휘관의, 기업소 당비서는 기업소 지배인의 상급자가 된다. 셋째, 당-국가 국정체제는 중앙집권의 강화 그리고 하부에 대한 정치-조직적, 행정적, 사상적 통제와 동원을 강화하는 것을 지향한다. 시장 확장과 분권화는 중단되어야 한다. 그 대신 국가의 경제 통제 강화, 정치적 감시와 사상통제의 강화, 3대혁명소조와 같은 감시 겸 동원 기관의 활약, 그리고 당과 국가의 조직적 강제력에 기반한 대중노력동원이 생산 증대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

 

국정주도세력

 

선군통치에 국정주도세력은 군부였다. 선군통치는 세 가지 점에서 군부의 이익 증진에 부합하게 운영되었다. 첫째, 군부 인사가 당-정의 주요 직책에 임명되었다. 과거에는 당간부가 정과 군의 주요 직책에 임명되었었다. 둘째, 국방위원회가 국가경제를 장악하고 운영했다. 국방위원회는 국방 건설과 군부 이권을 최우선으로 충족한다는 원칙 하에서 국가경제를 운영했고 경제 이권을 배분했다. 군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군량미를 풀지 않았다. 셋째, 군부는 시장확대의 최대 수혜자였다. 군부 산하의 무역회사들이 주요 수출품인 광물, 수산물, 임산물의 수출에 관한 주요 이권을 차지했다. 군부 단위들은 이러한 원자재의 생산과 유통에서 다른 권력 기관에 비해 상대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었다. 군부는 노동력과 운송수단의 동원능력에서 다른 기관을 압도했고, 또한 보위부나 보안부의 정당한 또는 부당한 단속과 간섭을 거부할 수 있었다.

 

김정은 통치에서 국정주도세력은 당과 당간부이다. 김정은 통치는 이들의 이익 증진에 부합하게 운영되고 있다. 첫째, 주요 당간부가 정-군의 주요 간부로 임명되고 있다. 둘째, 명목상 내각이 경제운영의 중추로 기능한다. 내각은 사실상 중앙당의 하부기관이다. 군부가 관장하던 무역 이권은 상당부분 내각으로 이전되었다. 김정은이 지시하면 군은 군량미를 풀어야 했다. 셋째, 김정은 통치의 최대 수혜자는 당-정-공안기관이 주관하며, 각급 행정조직과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바의 조직적 사상적 행정적 차원의 감시와 통제에 종사하는 다양한 간부들이다.

 

결론

 

김정일 선군통치와 김정은 통치를 비교하면, 연속성과 함께 단절과 변화가 존재한다. 그 이유는 각자가 당면했던 대내외 안보도전과 그에 대응하는 정권안보 대전략, 국정체계와 국정주도세력이 달랐기 때문이다. 상대적 견지에서 보았을 때, 김정일 통치는 실용적이고 온건하며 유연했다. 김정은 통치는 도그마틱하고, 강경하며, 경직되어 있다. 김정일은 통치 말기 3년(2009-2011)동안, 대중국 개방 및 경제협력의 확대 그리고 한미와의 핵문제 타협 재성사(229합의)를 위해 적어도 표면상 노력했었다. 김정은은 아버지의 이러한 두가지 전략적 선택을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자신의 통치를 시작했다. 현재 김정은 나이가 37세이고, 북한 남자의 평균 나이가 72.6세이다. 우리는 적어도 앞으로 35년간 김정은 정권과 함께 할 것이다. 

 

※ 본 논평은 원문인 “A Three-Way Comparison Between Songun Politics and Kim Jong Un’s Rule” 의 국문 번역본입니다.

 


 

박형중_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 독일 마부륵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통일부, 외교부, 국정원, 민주평통, 합참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와 스웨덴 안보 및 발전연구소(Institute for Security & Development Policy)의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북한의 정치경제, 남북관계와 대남/대북정책, 비교독재/사회주의 등이다. 최근 논문으로는 “김정은 집권 10년 대남정책,” “김정은식 국정전략과 인물/기관체계 개편”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이승연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5) | slee@eai.or.kr
 

6대 프로젝트

북한 바로 읽기

세부사업

대북복합전략

Relate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