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종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학교(Harvard University)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고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국정관리대학원 교수 및 동아시아연구원 원장으로 재직중이다. 현재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이하 동북아구상) 정책을 구체화하기 위해 외교부 내에 연구팀을 발족했다고 한다. 대북정책에서 신뢰를 강조했던 현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한 과제였던 동북아구상에서도 신뢰를 강조하고 있다. 이해관계가 첨예한 동북아 국제관계에서 신뢰가 있게 되면 불신으로 인해 과장되기 쉬운 위협인식을 완화하거나, 또는 상대방의 의도를 오판하여 작은 갈등이 큰 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동아시아에서 역내 국가들 사이의 사회경제적 상호의존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안보나 역사 문제에 있어 갈등과 분열이 상존하는 상황을 “아시아 패러독스”라고 지칭한 바 있다. 박대통령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신뢰를 구축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고, 이 구상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과제로 자리매김되어 있었다. 정부는 동북아구상의 논리를 다듬는 대로 국내 전문가와 시민사회에서 공감대를 얻고, 내년부터는 주변국에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동의를 이끌어 낼 계획인 모양이다. 일부에서는 현 정부 임기 내에 동북아정상회담 개최 및 동북아평화협력 선언, 사무국 유치 등의 로드맵도 제안하고 있다. 본 구상에 포함되는 국가들은 일단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몽고를 포함하여 총 6개국(북한 포함시 7개국)이다.

 

동아시아에서 협력을 제도화하려는 노력이 한동안 계속된 결과 이미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APEC), 아세안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 아세안+3(ASEAN Plus Three: APT), 동아시아정상회의(East Asia Summit: EAS) 등 많은 협력체들이 만들어졌다. 통상분야에서는 양자간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FTA)이 거미줄처럼 늘어 왔을 뿐만 아니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RCEP),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 등 보다 큰 지역단위의 다자간 자유무역지대 창설도 활발히 논의 중이다. 이처럼 많은 협력체들이 난무하지만 오늘날 중국과 일본, 중국과 동남아 국가들 사이의 해양분쟁, 독도문제를 둘러싼 한일간 갈등은 매우 위험스러운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과거 식민지 침탈의 역사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일본은 진실규명과 반성 및 배상 문제를 둘러싸고도 주변국과 화해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 못하다. 협력체가 부실하니 제대로 기능할 수 있는 안보 ‘아키텍쳐’를 만들자는 논의도 있지만 무엇을 만들자는 논의 자체가 피로감을 불러오면서 제도주의 노력에 힘이 빠진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신뢰라는 담론을 들고나온 것은 참신해 보인다. 그런데 동북아 국제관계의 차가운 현실에 어떻게 신뢰를 구축하겠냐는 방법론에 들어서면 뚜렷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

 

포괄적•우회적 협력보다 영토 및 해양분쟁 의제화를 통한 신뢰구축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제안되겠지만 우선 지양할 일부터 생각해 볼 수 있다.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구상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 2007년 12월 집권한 호주의 케빈 러드(Kevin Rudd) 총리는 2008년 6월에 아시아태평양공동체(Asia-Pacific Community: APC)구상을 제안해서 관심을 끌었으나 2010년 6월 사임까지 이 구상을 별로 진전시키지 못했다. 일본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도 2009년 9월 집권을 전후해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제시했으나 다음해 6월 사임하면서 담론만을 남겼다. 집권 2년 차에 들어서면서 이명박 대통령도 2009년 신아시아구상을 발표했으나 순방외교 수사에 그쳤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는 5년으로 보장되어 단명한 내각책임제 총리들보다는 여건이 나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당장 내년부터 이 구상이 본격화된다 해도 주어진 시간은 4년에 불과하다. 동북아구상이 앞선 정부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포괄적인 협력이나 섣부른 공동체론이 아니라 처음부터 한가지 핵심적 문제에 초점을 두어 동북아구상을 정책화하라고 주문하고 싶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에 초점을 둘 것인가? 이에 대해 쉽게들 동의하는 생각은 동북아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뚜렷하게 갈리는 전통적인 안보 쟁점에서 협력하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환경•자연재해•사이버안보 등 비교적 이해갈등과 불신의 정도가 낮은 문제들에서 협력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여러 분야에서 협력이 습관화되면 언젠가 신뢰도 구축될 것이라는 것인데, 이는 경제적 교류협력으로 상호의존이 심화되면 국가들이 평화를 선호하게 된다는 기능주의적 평화론에 가깝다. 이와 같은 접근방식의 가장 큰 문제는 지금까지 동아시아지역 내 경제적 상호의존성의 심화가 평화를 담보하는 신뢰구축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영토나 역사문제에 관한 외교마찰이 경제협력을 지연내지는 무산시키는 경우가 훨씬 많았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1997년 시작된 한일자유무역협정 논의는 긴 연구 끝에 정부간 협상단계에 들어갔다가 2003년 독도문제로 한일관계가 악화되면서 중단되었고, 아직도 양국간 협정은 이뤄지고 있지 못하다. 경제에서 안보로의 낙수효과(spill over effect)보다는 안보에서 경제로의 냉각효과가 한일간에 자주 일어났던 셈이다. 오늘날의 중일간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을 보고 있자면 향후 의미있는 중일간 협력이 가능할지 우려된다. 이렇듯 동북아의 해양영토문제로 불거지고 있는 갈등과 분쟁 가능성은 신뢰구축을 장기적인 시각에서 우회해서 나아가기에는 너무 급박해 보인다. 따라서 동북아구상에서 평화를 담보하기 위한 신뢰구축을 원한다면 마땅히 상호불신과 갈등의 진원지를 겨냥해야 한다.

 

동북아지역 내 신뢰가 가장 없는 문제에서 신뢰구축을 시작하자면 당연히 해양영토 분쟁과 역사 갈등 두 가지 문제에 봉착한다. 역사문제는 과거 제국주의 침략사를 둘러싸고 일본이 한국 및 중국과 화해하는 일이다. 그동안 역사해석의 격차를 줄이고 편향적 역사교육을 지양하기 위해서 한일간 역사공동연구나 교과서 공동집필의 노력이 있어 왔고, 종군위안부와 같은 피해자의 인권문제는 다자적 해결방식 추구로 진화해왔다. 역사문제는 세대가 지나면서 그야말로 ‘장기적’으로, ‘자발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이는 국민 정서 차원에서 상호불신의 뿌리는 되겠지만 국가간 관계를 대결적으로 몰고가 상호 평화를 해치는 수준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반면에 해양영토분쟁은 자칫 전쟁국면으로 확산될 수도 있는 화약고와 같아 역내 평화를 해칠 가능성이 있는 가장 중대한 위협이다. 따라서 동북아구상이 평화협력을 위해 몰입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해양영토분쟁이다.

 

해양영토문제가 동북아, 나아가 동아시아 평화를 해칠 가능성은 구조적으로 증대할 전망이다. 중국을 보자. 중국이 해양분쟁 문제를 양보하기 어려운 이유는 군사력에서 오는 자신감보다는 국내정치 사정이 더 커 보인다. 경제사회적 격차가 커지면서 실용주의 개혁개방파와 공산주의 이념파 간의 갈등은 증대될 것이고 이념파는 집권 개혁파를 영토문제 유약성으로 공격할 것이다. 이념파의 애국주의 공세가 드세지면 일본의 센카쿠 섬 국유화 이후의 현 상황을 중국이 타개해야 할 정치적 필요를 강하게 느끼게 된다. 일본을 보자. 센카쿠 열도에 영유권을 실효적으로 갖고 있는 일본은 현재의 법체제로도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지만 내년도에 집단적 자위권을 통과시키면서 중국과 혹여라도 군사적 충돌이 생기면 미국에게 개입할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워싱턴의 지도자들은 센카쿠섬을 둘러싼 중일간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우연히 발생한 사고가 군사적 행동을 추동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상황전개 가능성에 대해 매우 우려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독도문제야 물리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일본이 국제재판소 제소 공세를 펼치면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이고 나아가 특정 우익세력이 돌출적인 물리적 행위를 벌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와 일본의 북방4개섬 반환문제는 지역 해양영토분쟁 가운데 물리적 충돌 가능성이 가장 낮은 조용한 분쟁이지만 양국간 가장 중요한 외교현안의 하나로 존재해 왔다.

 

영토 해양분쟁에서 신뢰구축을 위한 한국의 이니셔티브

 

동북아 영토 및 해양분쟁에서 한국이 이니셔티브를 취하기 어렵다는 통상적인 주장에는 두 가지 논거가 있다. 첫째는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강대국이 자국보다 힘이 약한 한국의 리더십을 수용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만이 남지나해에서 아세안(Association of South East Asian Nations: ASEAN) 국가들과 해양분쟁의 수위를 높여나가지 못하게 중국의 공세를 억제할 수 있고, 일본이 과한 반응을 못하도록 관리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물리적 충돌을 억지하려는 네가티브(negative) 처방이지 신뢰구축을 통해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는 포지티브(positive) 처방이 아니다. 중국은 자국 영토 가까이에서 미국이 이러한 포지티브 역할을 하는 것을 계속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일 중 어느 한 국가가 센카쿠 분쟁에서 더 이상의 충돌을 막고 현상유지를 위한 대타협을 할 수 있을까. 각국의 지도자들이 국내 정치적 비판을 감수하면서 이러한 타협안을 내놓기도 지난해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일 양국간 분쟁에 한국이 직접 나설 수는 없지만 해양영토문제에 관한 역내 다자간 대화 구축에 나설 수는 있다.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보다 국력이 약해 위협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중일이 서로에 대해 가지고 있는 호감도보다 각국이 한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호감도가 더 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독도문제나 어업협정, 불법어업 등의 이슈에서 주변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당사자이기 때문에 다자대화에 나서야 한다.

 

한국이 해양영토문제에 있어 이니셔티브를 취하기 어렵다는 두 번째 논거는 이 문제가 전통적인 안보문제와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의 성격상 한국은 물론 어느 국가도 실질적 협력을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해양영토문제는 다면적이다. 양보하기 어려운 영유권이나 군사전략과 관련된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업을 비롯한 해양자원의 이용은 배타적 수역과 공동 수역의 문제로 나뉘어지고, 해저자원은 공동개발이 도리어 편익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해양 환경보전은 다자간 협력을 절실히 요구한다. 따라서 영유권 갈등의 경우 해결 자체보다는 이것이 군사적 분쟁으로 치닫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다자협력의 주요 목적이 될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동북아 국가들은 아세안 국가들이 노력해 온 신뢰구축(confidence building) 과정에서 배울 점이 많다. 동남아 국가들의 신뢰구축이 법적•공식적 규칙으로서 구속력이 약하다고 비판받지만 동남아 국가들은 조약이나 다자대화를 통해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규범을 나름대로 구축했다. 해양자원의 이용 문제는 형평성 있는 규칙을 만들어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므로 영유권 갈등보다는 협력이 수월할 것이다. 해저자원의 공동개발이나 환경보전은 아마도 비교적 가장 수월하게 다자간 협력을 실행해 나아갈 수 있는 영역일 것이다. 이렇듯 해양영토문제는 난이도가 다른 의제들을 포함하고 있어 수월한 의제부터 협력을 시작해 신뢰를 쌓아 가면서 어려운 의제로 옮겨갈 수 있을 것이다.

 

정치 지도자간 신뢰형성을 시작으로 하는 제도화

 

신뢰연구자들 사이에서 신뢰는 다면적으로 논의되어 왔다. 경제적 시각에서는 위험을 축소하려는 전략으로 비용과 편익의 관점에서 신뢰의 결과를 중시하는가 하면, 윤리적 시각에서는 규칙의 구조하에서 사회화를 통해 생기는 정서적인 상태를 중시하였다. 전자의 관점에서 흔히 인용되는 신뢰의 정의로는 러셀 하딩(Russell Hardin) 의 “A trust B to do x”가 있다. 이는 B가 x를 할 것이라는 A의 지식이나 믿음대로 B가 행동하는 것으로, 이렇게 A가 신뢰를 주는 것은 A의 이해(interest)와 일치하도록 B가 행동하는 것이 B의 이해에도 맞다고 A가 전제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타인을 다룰 때 신뢰를 주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이유를 이러한 이해방정식으로 설명하는 이들은 신뢰가 집합행동 딜레마를 해결하는 데 유익함에 주목한다. 기질적이거나 정서적인 신뢰를 중시하는 후자의 시각에서 흔히 인용되는 정의로는 데니스 루소(Denise Rousseau et als.) 등의 정의가 있다. 그들에 의하면 신뢰는 “타인의 의도나 행동에 대한 긍정적 기대에 근거하여 취약성(vulnerability)을 감수하려는 의지의 심리적 상태”이다. 신뢰와 비슷한 개념으로 믿음(confidence)이 있는데 이는 기대한 행동이 실현될 것이라는 예측에 기반하여 대안의 고려없이 기계적으로 상대방의 의견이나 행동에 따라주는 것이다. 반면에 신뢰는 상대방의 동기, 의도, 미래 행동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대안을 고려한 끝에 선택된 믿음이기 때문에 철회가 가능하고 깨질 가능성도 있다. 반복되는 교환의 긍정적 경험과 감시 및 제재를 갖춘 제도는 신뢰의 지속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제도화 이전의 상황에서는 신뢰자(trustor)가 위험을 감수하면서 신뢰를 주는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

 

국가관계도 결국은 정치 지도자, 곧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따라서 동북아구상을 신뢰외교의 차원에서 성찰하자면,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먼저 신뢰를 주는 신뢰자의 강한 의지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렇게 본다면 갈등을 줄이고 평화를 담보하려는 목적의 신뢰외교는 기능적 협력을 통해 여건이 조성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정치 지도자들이 먼저 상대방에게 신뢰를 보여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해양영토문제에 있어 양자•삼자•다자간 정상외교가 다층적으로 쌓이고 깊어지면서 신뢰형성이 선행되어야 인식공동체의 조성, 관리기제의 형성, 공통된 규범의 창출 등 일련의 제도화 노력들이 힘을 받을 수 있다.

 

동북아구상 실행을 위한 박근혜 정부의 자산

 

지금까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새로운 지역정책이 구상되고 추진되었다. 지역의 범위는 물론 지역협력체 내에서 한국의 위치설정도 달랐다. 김대중 정부는 동아시아, 노무현 정부는 동북아, 이명박 정부는 글로벌 무대에서 각각 한국의 위치를 협력 촉진자로, 핵심 이해당사국간의 균형자로, 입장이 다른 국가군 사이를 잇는 가교자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외교적 노력의 결과 박근혜 정부는 최근 다자무대에서 높아진 한국의 위상을 물려받았다. 박대통령이 집권 첫 해 상반기 동안 미국, 중국과의 정상회담에서 거둔 성과도 괄목할만하다. 특히 현재 중국이 가지고 있는 박대통령 개인에 대한 존중과 호의는 한국이 주도적으로 해양영토문제 관련 동북아 다자대화를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중국을 참여시키는 데 유익할 것으로 여겨진다. 작년부터 최악으로 치달았던 일본과의 외교도 정상화시켜 역내 다자대화의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박대통령의 국내외적 이미지는 원칙, 청렴, 호의와 같이 다른 사람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요인을 잘 갖추고 있어, 동북아 역내 다자대화에 나서기 좋은 자산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이 ‘신뢰성’(trustworthiness) 자산은 박대통령이 다자대화에 나서면서 먼저 주변국 지도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리더십에 사용될 수 있다. 첫 신뢰자가 되는 길은 두 가지 위험부담을 수반한다. 첫째는 신뢰를 담은 동북아구상 제안에 대해 주변국 지도자들이 호응하지 않거나 나아가 더 불신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박대통령이 잃을 것은 없는 결과이다. 둘째는 해양영토문제의 관리를 위해 다자대화에 나서는 행보가 국내에서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일이다. 최근 안정적으로 높아진 박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을 고려할 때 이는 가능성이 낮은 전망이다. 오히려 지지율 상승이 박근혜 정부 등장 이후 그간 보여준 외교안보분야의 리더십 때문이었기에, 의미있는 동북아구상 제안 역시 국내에서 크게 환영받을 공산이 크다.

 

이러한 위험에 대한 계산을 넘어서 신뢰외교의 징표로서 동북아구상을 제안하는 것은 시민교육에 유익한 효과가 있다. 공감(empathy)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현상을 보는 역지사지의 태도를 일컫는 말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는 데 효과적이다. 공감이 상대방의 입장에 심정적으로 동의하는 ‘동감’(sympathy)을 반드시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자기와 다르거나 반대하는 입장을 이해하여 대화를 계속하면서 신뢰를 쌓아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박대통령이 솔선수범해서 보여주는 공감의 실천은 한국민은 물론 주변국의 시민들에게도 감동과 협력의지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동북아구상이 신뢰외교로서 이전의 지역평화정책과 구별되려면 제도보다는 지도자의 신뢰 리더십이 핵심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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