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 중국연구패널 보고서 No.3

 

저자

신종호(申鍾浩)_경기개발연구원(GRI) 통일․동북아센터 연구위원.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北京大學(Peking University)에서 국제정치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양대학교 강사 및 국회입법조사처(NARS) 외교안보팀 입법조사관을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중국정치외교 및 동아시아 국제관계이며, 최근 연구성과로는 "중국-대만 간 교류협력의 특징과 남북관계에 대한 시사점"(2010), "중국의 국제위기관리 행태 및 미중관계에 대한 함의"(2010), "중국의 소프트파워외교의 전개와 국제정치적 함의"(2009), "중국의 다자안보협력전략과 미중관계: ARF, SCO, 6자회담을 중심으로"(2008) 외 다수가 있다.

 

 


 

 

Ⅰ. 머리말

 

역사적으로 대만문제는 중미관계에 영향을 미친 가장 핵심적이고 민감한 사안으로 작용해왔다. 이유는 바로 대만문제는 중국의 내정문제이면서 미국요인과도 불가분의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줄곧 ‘하나의 중국’ (One China) 원칙에 의거하여 대만문제를 자국의 주권 및 영토와 관련된 핵심이자 내정문제로 간주해 왔다. 반면, 미국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대만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고, 1970년대 중미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양국이 대만문제 해결을 위한 원칙적인 합의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카드’로 대만문제를 활용해왔다.

 

냉전 및 탈냉전시기 대만문제를 둘러싼 중미관계는 기본적으로 미국이 주도하고 중국은 이에 반응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다. 즉, 미국은 소위 ‘전략적 모호성’ (strategic ambiguity) 에 기초하여 대만문제를 동북아에서 중국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는 ‘카드’로 활용함과 동시에 미국의 중요한 무기•상품 시장으로서 대만과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러한 미국의 대만정책에 대해 중국은 대만문제가 내정문제라는 점을 들어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미국에 대한 전면적인 대항보다는 대만문제로 인한 갈등이 전체 중미관계의 악화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두어왔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전후로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의 부상이 가시화됨에 따라, 대만문제가 중미관계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이전보다 줄어들었고, 그대신 새롭게 나타난 ‘중국요인’이 중미관계에 보다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만문제를 둘러싼 중미관계 역시 기존의 ‘미국 주도, 중국의 대응’ 형태에서 점차 ‘미국의 주도권 약화, 중국의 적극 공세’로 변하고 있다. 즉, 금융위기 해결과정에서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모색해야 하는 미국의 입장과 대만문제에 대한 미국의 양보와 존중을 기대하는 중국의 입장이 일치하면서 중미관계에서 차지하는 대만문제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최근의 양안관계(兩岸關係)의 강화 역시 대만문제의 중미관계에 대한 민감성 하락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글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대만문제가 중미관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이전에 비해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 이러한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핵심변수로 3가지(미국요인, 중국요인, 양안관계)를 제시하고, 이들 변수들이 대만문제를 둘러싼 중미관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고찰한다. 이를 위해 먼저, 냉전과 탈냉전 시기 대만문제를 둘러싼 중미관계를 살펴본 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만문제가 중미관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3가지 핵심변수를 통해 고찰할 것이다. 결론에서는 향후 대만문제를 둘러싼 미중관계를 전망한다.

 

Ⅱ. 냉전과 탈냉전시기 대만문제를 둘러싼 중미관계

 

소위 ‘대만문제’는 19C말~20C초 중국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 및 1940년대 국공내전(國共內戰)의 결과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중국의 내정문제라고 할 수 있으나, 미국이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대만문제에 개입하면서부터 국제문제로 비화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1971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 회복 이후 소위 ‘하나의 중국’ 원칙이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원칙으로 승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만문제 해결에 대한 양국의 기본적인 인식 차이가 존재했고, 결국 대만문제는 현재까지 중미 갈등의 가장 첨예한 사안으로 작용해왔다.

 

1. 대만문제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정책

 

(1) 중국의 대만 인식 : 내정문제이자 통일의 대상

 

청일전쟁(1894~1895)에서 패한 청조(淸朝)는 마관(馬關)조약(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일본에게 대만을 할양하였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하자 장제스(蔣介石)가 이끄는 국민당은 1943년 11월의 ‘카이로선언’의 규정, 즉 “일본이 강탈한 중국의 영토인 만주, 대만 펑후(澎湖)군도는 중국에 귀환한다”는 점을 근거로 하여 1945년 10월부터 대만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기 시작함으로써 대만문제가 태동하게 된다. 이후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국민당 정권이 대만지역으로 이주하여 중화인민공화국과 대립관계를 형성함으로써 대만문제는 더욱 복잡성을 띠게 된다.

 

1949년 이후 중국은 대만문제를 자신들의 주권 및 영토보전과 관련된 핵심문제로 간주해 왔다. 즉, 역사적으로 대만은 중국 대륙의 불가분의 영토이기 때문에 중국에 있어서 대만문제의 해결은 국가주권, 영토보전, 민족통합, 자주성 회복 등으로 대표되는 국가안보이익과 관련된 가장 핵심적인 전략문제이자, 중국의 내정문제라는 것이다(中共中央文獻編輯委員會 1994, 348). 특히 중국은 자신들이 중국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정부로서 국제사회의 공인을 받은 1971년 이후부터 대만문제는 중국의 고유한 내정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더욱 강하게 갖게 되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대만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곧 양안통일을 의미한다. 중국은 1971년 이후 국제적으로 공인 받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은 중국과 불가분의 일부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대만의 독립이나 이탈을 인정할 수 없고, 필요하다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통일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그 동안 미국이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를 계속하거나 대만의 독립을 조장하는 정책을 취할 경우 중국은 즉각적이고 단호한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다. 특히 중국은 비록 1987년 11기 3중전회 이후 기존의 무력적 방식에서 평화적 방식으로 통일방식을 전환했지만, 중국의 주권이 손상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중국이 주도하는 대만문제 해결을 여전히 강조하고 있다는 점은 바로 중국이 대만문제를 자신들의 고유한 내정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이다.

 

또한 중국은 대만문제를 중미관계는 물론 동북아지역의 전략구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으로 인식한다. 중국의 안보전략의 핵심 목표는 중국의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 실현을 위한 평화롭고 안정적인 국제안보환경의 조성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냉전시기는 물론이고 탈냉전시기에도 자국의 안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또한 잠재적인 위협 국가인 미국과의 군사적 대항을 피하는 것이 중국의 중•장기적인 전략 목표 중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閻學通 1997). 따라서 중국의 국가안보와 발전전략에 있어서 대만과 대만해협은 중국의 해상교통과 해상안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가치를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 동남연해 해상의 중요한 병풍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국방안보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다.

 

(2) 중국의 대만정책 : 강•온 정책 병행

 

1949년 이후 2008년까지 중국의 대만정책은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단계는 1949년부터 1978년 12월 개혁개방 노선을 결정하기까지의 시기로서, 중국은 무력을 통한 대만해방과 외교적 수단을 통한 대만의 국제적 고립을 동시에 추구하였다. 중국공산당은 1949년 국민당을 대륙에서 축출한 이후 대만과의 통일을 미완성된 전국해방전쟁으로 인식함으로써 무력을 통한 대만문제 해결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당시 중국의 무력 수단을 통한 대만 해방 정책은 1950년대 미국의 대만문제에 대한 개입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계속)

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중국의 미래 성장과 아태 신문명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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