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에서 중국의 부상은 다양한 예측과 논쟁을 불러오고 있다. 중국의 부상은 어디까지 일지, 중국이 과연 미국을 넘어서 명실상부한 최고 강대국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지, 특히 중국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에 변화를 추구하며 도전할 것인지, 관련해서 중국이 미국과는 다른 리더십을 국제정치에서 추구할 것인지 등 중국은 세계질서재편 논쟁의 한가운데에 서있다. 가령, 국제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When China Rules the World의 저자인 Martin Jacques는 중국은 유럽, 미국의 팽창적 패권주의와는 달리 문화적 패권과 영향력을 추구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와는 반대로,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Robert Kelly는 중국의 팽창적 패권주의에 주목하며,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일극지배(unilateral dominance)를 예견하였다.

 

위에 논의된 각각의 질문에 대한 견해가 무엇이든지 간에 중국의 부상은 중국을 빼고는 국제정치를 논할 수 없다고 할 만큼 전지구적 파급력이 있다. 다시 말해, 중국은 안보, 경제, 환경을 포함한 국제정치 전 영역에 막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어떤 전략적 목표를 가지고 세계질서를 재편해 나갈 것인지가 중국 부상의 핵심 관심 사항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고는 중국의 부상이 국제정치사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를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통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한 국가의 강대국 부상이 그 국가의 역사에 큰 의미를 가질 수 있겠으나, 국제정치사적으로 보자면 누가 패권국인가 만큼이나 권력이동이 가져오는 기존질서재편의 가능성과 내용이 중요한다. “패권국 미국”만큼이나 “미국의 패권”이 국제정치사에서 중요한 이유이다(Ruggie 1982). 따라서 중국 부상의 국제정치사적 의미는 중국의 부상이 전세계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어떤 해답과 어떤 제도적인 변화를 제공하게 될 것인가와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전지구적 차원에서 인류가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세계가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공멸의 위기에 처해있다는 논점이 있다. 국가 간 사활을 건 안보딜레마,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과 기후 문제가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중동, 동유럽, 동중국해, 남중국해 등에서 강대국들이 치열한 안보경쟁을 벌이고 있고, 세계경제는 지난 20년 동안 부침을 계속하며 지속가능한 경제발전 모델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환경과 기후문제는 지구공멸의 가능성까지 내포하고 있다.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의 급격한 성장은 이러한 현상을 확대, 재생산하는데 각 국가의 선의와 관계없이 일조하게 되었다.

 

지구공멸론은 근본적인 세계질서재편이 없다면 국가를 비롯한 개별정치단위들의 흥망성쇠와 무관하게 전지구적인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 전지구적으로 당면하고 있는 안보, 경제, 환경, 기후 위기의 심각성은 “누가 패권국이 되느냐”라는 질문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지난 400년 가까이 존속되어온 기존의 국가-주권 시스템이 문제해결 능력에 있어 한계에 봉착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국가-주권 시스템은 그동안 국가 간 양자협정과 다자주의 국제기구 등을 활용하여 상기한 안보, 경제, 환경과 기후 문제들을 다루어왔는데 이러한 문제해결방식은 더 이상 전지구적 난제에 효과적인 대응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지구적 공멸의 위기는 단순히 특정국가의 정책적 실패를 넘어서 국가들의 이기적 국익추구를 규범화 시키는 국가-주권 시스템이 그 한계를 명확하게 보이고 있는 반증이다.

 

따라서, 중국 부상에 따른 세계질서재편 논의의 핵심은 국가-주권 시스템의 변화와 개혁에 있다. 세계질서재편에 있어 중국의 역할에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다시 말해, 중국이 이러한 시스템 변화의 요청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어떤 리더십을 통해, 어떻게 비전을 정책적으로 연결할 것인지가 중국부상이 국제정치사에 있어 시대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실질적인 내용이다.

 

향후 10-20년 사이에 국가-주권 시스템이 종언을 고할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면, 핵심 이슈는 국가-주권 시스템의 바탕 위에서 그 운영과 작동원리의 변화가 될 것이다. 세계질서 운영과 작동원리의 개혁과 관련해서 중국이 고려할 수 있는 세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을 기반으로 한 미국, 유럽, 중국의 세계 분할 “삼두체제” 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세계질서 법제화 및 초국가 권위 확립”이다. EU가 이에 대한 근접한 예시가 될 수 있다. EU는 독일과 같은 핵심국가와 회원국들 간의 협의로 작동되는 초국가적 권위체제인데, 두 번째 시나리오는 이러한 EU 운영원리가 세계차원으로 확장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국가와 초국가 권위체제가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다층적 권위체제에 기반한 운영원리이다. 이슈별 초국가 권위체제 확립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세계정부론”을 들 수 있다. 기실 “세계정부론”은 최근 부활하였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끝나고 활발하게 논의되었다가 냉전 직후 사라졌던(1945-1950년) “세계정부론”이 최근 15년 사이에 다각도로 검토되며 새로운 대안질서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Cabrera 2010, 2015). 현재 “세계정부론”은 한 형태의 모델이 아닌 여러 층위에 걸쳐 논의되고 있다. 전세계 정치, 경제 권력을 쥔 세계정부(Wendt 2003)로부터,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관리권만을 보유한 세계정부(Campbell 2003), 미국과 같은 연합정부 성격의 세계정부(Deudney 2007; Rodrik 2000), 전세계 시민정부를 표방하며 “글로벌 의회”(Global Parliamentary Assembly)를 중심으로 통치하는 세계정부(Held 2004; Nussbaum 2006) 등 “세계정부론”에 관한 다양한 경쟁 모델들이 제시되고 있다.

 

중국은 위에 제시된 세 가지 세계질서재편 시나리오 중 어떤 것을 21세기에 추구할 것인가? 어떤 시나리오가 세계의 공동번영을 지속시키면서도 국가-주권 시스템에 내재한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중국이 이슈별 초국가 권위체제 확립을 미국, 유럽 등과 도모한다면 중국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고 어떤 형태의 리더십을 창출하여 추구할 것인가?

 

중국이 현시점에서 국가-주권 시스템을 개혁해 낼 수 있는 적임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장애요인과 가능성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잦은 영토분쟁에서 보듯이 중국은 어떤 의미에서 여전히 주권 지향적이다. 중국은 상호의존적인 글로벌리제이션의 시대에 완전한 주권(full sovereignty)이라는 신기루를 구축하려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한편, 근대 국가-주권 시스템을 중국이 창안하지 않았다는 점은 이 제도에 대한 중국의 역사적 애착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은 유럽제국들에 의해 19세기말 국가-주권 시스템으로 편입되었다. 19세기말 유럽식 국제질서에 편입된 이래, 중국은 왕조의 붕괴, 공산주의 체제 등장 및 확립, 개방 이후 중국식 사회주의 전환 등 국내 정치질서의 변화와 함께 국가-주권 시스템에 적응, 저항과 도전, 패권 창출 시도 등 수많은 크고 작은 변화를 거쳐 왔다. 적응의 예는 “왕조붕괴-조공 시스템 붕괴-1국가 1주권 인정”으로 점철된 중국의 근대국제관계의 시작이다. 저항과 도전은 중국의 비동맹주의, 제3세계 지도국으로 활동, 자본주의에 대항한 마오식 사회주의 대안과 국제화 시도를 들 수 있다. 최근의 중국은 패권 창출을 시도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중국의 G-2 활동, 미국과의 신형대국관계 확립, 군비확충(해군력 강화), 위안화 국제화, 신실크로드 구상,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sian Infrastructure Investment Bank)과 신개발은행(New Development Bank) 설립 등 대안적 경제시스템의 제도화, 중국식 개발원조, 상하이협력과 중앙아시아 교두보 확보에서 등에서 확인될 수 있다(신성호 2014; Lee 2015). 이러한 활동 과정과 결과로서 중국은 전지구적 군사안보, 경제, 환경과 기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문제의 원인이자 해결의 주체이다. 따라서 중국은 근대 국가-주권 시스템과 긴장관계를 늘 유지하여 왔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중국이 역사적으로 기존 질서의 피해자와 수혜자의 경험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술한대로, 21세기 벽두에 일어난 중국 부상의 국제정치사적 의미는 기존의 국가-주권 시스템을 뛰어넘는 대안적 세계질서의 운영과 작동원리를 중국이 제시하고 실행 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따라서 중국내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세계질서 담론을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은 세계질서의 미래를 가늠하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중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세계질서 재편 담론은 대안적 세계질서 구축과 재편을 지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기존의 국가-주권 시스템에서 중국이 어떻게 패권국이 될 수 있고 획득된 패권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머물러 있는가? ■

 

 


 

 

저자
이용욱
_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캔자스 대학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하고 남캘리포니아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연구분야는 국제정치경제, 구성주의, 동아시아 지역협력 및 금융지역주의, 그리고 다자주의 무역 질서이며 저서 및 편저로는 《동아시아 지역질서의 복합 변환과 한국의 전략》(2014, 공편), 《국제정치학 방법론의 다원성》(2014, 공편), 《China’s Rise and Regional Integration in East Asia: Hegemony or Community?》(2014,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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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프로젝트

미중관계와 한국

세부사업

중국의 미래 성장과 아태 신문명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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