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일 관계를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북핵 폐기를 둘러싸고 남북, 북미, 북중 정상회담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면서 한국과 일본이라는 양자 관계에 눈이 덜 가는 게 사실이다. 양국의 최대 관심사였던 일본군위안부 문제도 물밑으로 들어간 듯하다(그러나 착시일 뿐이다). 

한국에서는 북핵 폐기 과정에서 일본만 뒤처지고 있다고 보면서, 이는 압박만을 주장해온 일본의 자승자박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반면, 일본은 현재의 변화를 활용하려는 쪽으로 방향 선회를 하면서도, 한국이 너무 낙관적인 것 같다고 걱정이다. 그러니 마주 앉지 않고 등을 대고 대화를 하는 느낌이다.

대화의 내용은 어떤가. 지향하는 목표나 전망이 다르다. 그런 사실을 확인하고 대안을 고민하는 자리가 있었다. 한국의 동아시아연구원(EAI·원장 손열)과 일본의 겐론NPO(대표 구도 야스시)가 22, 23일 한국고등교육재단(사무총장 박인국) 컨퍼런스 홀에서 개최한 제6회 한일미래대화였다. 한일미래대화는 두 기관이 해마다 양국 국민을 대상으로 상대 국민에 대한 인식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양국의 전문가들이 모여 토론하는 정기 모임이다. 올해는 한일 국민 상호인식조사 결과로 본 외교정책에 대한 국민여론,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평가(이상 22일, 공개), 한일관계의 신뢰구축, 한반도의 미래와 한일협력, 자유질서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한일협력(이상 23일, 비공개) 등 5개 세션이었다. 최근 현안을 거의 망라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공개와 비공개 회의 모두 참여할 기회를 가졌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나온 발언들을 일일이 다 소개할 수는 없어 북핵 폐기와 관련된 발언들을 13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정리해봤다. 그랬더니 한국과 일본의 생각에는 역시 차이가 존재했다(물론 양국에서 주류와 다른 의견이 나오기도 했으나 대체로 주류의 입장을 전달한다. 주류의 의견이 모두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13개의 카테고리는 ①북한을 보는 눈 ②한국의 역할 ③미국의 역할 ④중국의 역할 ⑤일본의 역할 ⑥남북정상회담 ⑦북중정상회담 ⑧미북정상회담 ⑨한미동맹과 주한미군 ⑩기존 대북 제재 완화 여부 ⑪프로세스 추진 방법 ⑫포괄적인 미래 전망 ⑬한일협력의 가능성이었다. 

이들 카테고리 중에서도 한국과 일본의 시각차가 더욱 두드러지는 것은 ①북한을 보는 눈 ④중국의 역할 ⑤일본의 역할 ⑨한미동맹과 주한미군 ⑩기존 대북 제재 완화 여부 ⑪프로세스 추진방법 ⑫포괄적인 미래 전망이었다. 비록 도식적이긴 하나 이들 순서에 따라 한국의 입장을 보면 북한은 통일과 평화 공존의 대상으로서 이번에는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고, 중국은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일본의 역할은 필요하긴 하나 제한적이고,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존재는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받을 것이며, 기존의 대북 제재는 완화할 필요가 있고, 북한의 입장도 고려해 가며 로드맵을 만들어야 하며, 이번 프로세스는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일본은 불량국가 북한의 진정성을 믿기 어렵고, 중국은 북핵 폐기보다는 자국의 영향력 확대에 더 관심이 크며, 일본도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고, 한미동맹이 흔들리는 것은 일본 안보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대단히 우려스러우며, 기존 대북 제재는 계속 유지할 필요가 있고, 빠르고 강하고 철저한 로드맵이 필요하며, 북핵 폐기가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으로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가 동시에 진전되고, 그것을 다름 아닌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 당황스럽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 같으면서도 뭔가 삐걱대는 느낌을 주는 것은 이처럼 의견이 일치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동시에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일 관계를 양자 관계가 아니라, 북핵 프로세스 전체에서 조망하면 다른 그림이 보인다. 나는 북핵 폐기 프로세스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은 적어도 4가지 패러독스에 빠졌다고 생각한다. 

첫째, 말로써 북한 비핵화의 당위성을 얘기할 때는 의견이 일치했으나 실제로 비핵화 행동에 들어가자 이견을 노출하는 패러독스다. 앞서 언급했듯 여러 대목에서 의견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은 앞으로도 쉽지 않은 과제다. 

둘째, 북핵을 폐기하라고 강력하게 압박을 받고 있는 북한이 오히려 한국이나 일본보다는 선택의 폭이 넓다는, 주객전도의 패러독스다. 요즘 북한의 태도를 보면 G2.5의 시대가 온 것 같다. 나는 강대국을 ‘다른 나라 눈치 보지 않고 외교노선을 바꿀 수 있는 나라’라고 정의하는데, 요즘 북한이 그런 것 같다. 그러니 G0.5는 북한이다. 게다가 북한은 한국, 중국, 미국 지도자를 만나고 싶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입장을 확보했다. 종합적으로 보면 미국이 갑, 북한이 을, 중국이 병, 한국은 정, 일본은 무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시간도 북한과 중국이 더 유리하다. 미국은 2년, 한국은 4년 안에 핵폐기의 로드맵이 시행되길 원한다. 2년은 트럼프의 남은 임기, 4년은 문재인 대통령의 남은 임기다. 그런데 중국 시진핑은 20년, 북한 김정은은 40년 걸려도 괜찮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협상에서 누가 유리할지는 자명하다. 

셋째, 자국의 안전을 위해 북핵 폐기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국의 안보가 위태로워지는 패러독스다. 대화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북한의 요구를 들어줄 필요가 있다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미연합훈련을 중지시키고, 공공연하게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싶다는 말도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더 중요한 포인트는 지금까지는 금기사항이었던 문제들이 아주 가볍게 논의되고, 아주 빨리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주한미군의 역할이나 규모에 변화가 있을 경우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더 나아가 동아시아 전반의 안보 환경에도 급격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변화는 대응을 요구하고, 그 대응은 또 다른 변화를 몰고 올 것이다. 양국 모두 자국의 방위력 증강문제를 고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넷째,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상대적으로 역할이 적은데도, 현상변경이 이뤄지거나 현상변경을 담보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한국과 일본이 부담해야 한다는 패러독스다. 이것도 트럼프 대통령이 공언하고 있다. 한국은 그럴 의사를 갖고 있고, 일본도 북한과 수교를 하게 되면 한일국교정상화의 전례에 따라 경제원조를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미국이 모든 비용을 한국과 일본에 떠넘길 이유는 되지 못한다.

이들 패러독스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한국과 일본은 양자 관계에 매몰돼 서로 반목을 하기보다는 손을 잡고 공동대응을 하는 것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우선 이번이 북핵을 폐기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는 점은 모두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는 실패할 것이기 때문에 협조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성공을 시키기 위해 적극 협조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압박하고, 미국을 설득하고, 중국을 견제해야만 한다. 그럴 때 양국은 서로에게 필요하다. 한국은 거의 없는 과속방지턱을 더 만들어야 하고, 일본은 너무 많은 과속방지턱을 솎아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은 정말로 협력이 가능할까.

한일미래대화의 마지막 세션, ‘자유질서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한일협력’은 바로 그런 의문에 답을 하기 위한 것이다. 즉, 한국과 일본은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협력을 해야 하지만, 그 전에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에 협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일이 공유하는 가치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와 인권이다. 미국과의 동맹도 있다. 아시아에서 이 모든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유이(唯二)한 나라가 한국과 일본이다. 이런 논리에 서면 한일간의 협력 필요성이 좀 더 뚜렷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국민 정서가 협력을 가로막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한일간의 협력에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인 전문가도 있다.

그밖에도 언급할 만한 테마가 몇 개 있었다.

6자회담의 부활 문제. 일본으로서는 현재 남북미중 중심으로 돌아가는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에 참여하기 위해 유명무실해진 6자회담의 부활을 기다린다. 다만, 6자회담 같은 바텀-업 방식이 효과가 없었기 때문에 최근의 톱-다운 방식이 먹히는 것이라는 의견도 많아 부활 여부는 불투명하다. 중국 입장에서도 6자회담은 북한에 대한 이중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통로로써 나쁠 것은 없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 일본의 최대 현안이기 때문에 아베 신조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때 이 문제를 꼭 거론해달라고 부탁했고, 두 정상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본인 납치 문제가 일본 국내 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간접 대화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즉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국교정상화와 경제 지원 문제와 함께 포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아베 총리도 결국 포괄적 해결 방식으로 선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김대중-오부치 21세기 새로운 파트너십 공동선언 20주년. 최근 들어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이 선언을 언급하며 양국 간의 교류확대를 호소한 일도 있었고, 양국의 각료나 대사들도 자주 이 선언을 입에 올리고 있다. 이를 주제로 한 토론회와 세미나 등도 많이 열렸다. 나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 두 가지 의견을 갖고 있다. 하나는 양국 관계가 영 회복이 안 되다 보니 예전의 좋았던 시절을 상징하는 선언을 불러내 표피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또 하나는 선언을 인용하거나 기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선언을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선언에는 구체적인 실천계획이 많이 들어 있으니, 구태여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일간의 협력과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유효한 방안으로 많이 거론된 것이 전 지구적 문제에 양국이 공동으로 대응하라는 것이었다. 두 나라가 갖고 있는 역량을 살려 손을 잡으면 경제나 안보면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충고였다. 그러다 보면 등을 돌려 마주보게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마주 앉게 되면 그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양국의 신뢰와 의지, 그리고 리더십이 필요한 데 그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신뢰를 쌓아야 행동에 들어갈 수 있느냐, 행동을 하면 신뢰가 쌓이느냐는 어려운 문제에 다시 봉착하게 된다.

그래도 이번 한일미래대화는 지난해보다는 건설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는 위안부 문제 와 북핵 문제에 대한 양국의 입장차가 분명했고, 접근의 실마리도 찾기 힘들었다. 주제도 ‘표류하는 한일관계와 북핵문제’였다. 그런데 올해도 완벽한 해결책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역사 문제에 대한 논의는 줄어들었고, 북핵 폐기와 관련해 양국의 차이점을 확인하면서도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필요성에는 공감했다. 그 공감을 한일 양국이 스스로 얻은 게 아니라, 밖의 상황이 강요한 것이라는 게 조금 울적하긴 하지만. 

<한국측 참석자=문성묵(한국국가전략연구원 통일전략센터장) 박인국(한국고등교육재단 사무총장·전 주UN 대사) 박철희(서울대 국제대학원장) 손열(동아시아연구원장,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신각수(전 주일 대사) 신범철(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 선임연구위원) 신성호(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심규선(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기금교수·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윤덕민(전 국립외교원장) 윤병남(서강대 사학과 교수) 이대근(경향신문 논설주간) 이숙종(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전 동아시아연구원장) 이승주(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 이원덕(국민대 일본학연구소장) 이정환(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이철희(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전봉근(국립외교원 교수) 정병국(바른미래당 국회의원) 조세영(동서대 일본연구센터소장·전 외교통상부 동북아시아국장) 진창수(세종연구소 일본센터장) 하영선(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일본측 참석자=가와시마 신(도쿄대 대학원 종합문화연구학과 교수) 니시 마사노리(전 방위성 사무차관) 니시노 준야(게이오대 법학부 교수) 다카스기 노부야(전 한국후지제록스 대표이사 회장) 도구치 히데시(전 방위심의관) 사와다 가쓰미(마이니치신문 외신부장) 사카타 야스요(간다외국어대학 국제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소에야 요시히데(게이오대 법학부 교수) 스키타 히로키(교도통신 특별편집위원) 오구라 가즈오(전 주한대사) 이주인 아쓰시(일본경제연구센터 수석연구원) 고다 요지(전 자위함대사령관) 구도 야스시(겐론NPO 대표) 후지사키 이치로(전 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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