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저에게 지난 사랑방에서의 시간을 묻는다면,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통해 비로소 나와 우리의 국제정치학을 꿈꾸기 시작한 소중한 순간’이었다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사랑방 한 학기동안 넓은 시공의 축을 함께 여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들과의 만남은 나를 버리고 그들의 머리와 가슴으로 들어가 그들의 심상을 읽어내면서, 그들이 삶의 고민 속에서 어떤 앎을 찾아 헤맸으며 어떤 꿈을 실천해보려 했는지를 고찰하는 과정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순탄하지 않은 삶을 불평하기보단 삶에서 비롯된 진한 체험에서 비롯된 절실한 고민들을 학문으로서 극복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껏 진정한 공부를 해오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져 있었던 저에게 그들의 모습은 의미 있는 앎을 위해 내 삶에 질문을 던지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내내 그들이 해주는 이야기에 푹 빠져 밤새는 것도 마다하지 않으며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지치고 나태해지는 순간들도 많았습니다. 지금껏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질문과 익숙하지 않은 경험을 마주하고 체현하는 과정에서 오는 이질감이 낯설고 어려웠습니다. 또 한 주 내내 끙끙 앓으면서 고민했던 생각들을 말과 글로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때마다 큰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결국 끊임없는 자기성찰의 과정을 통해 삶에 다가오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껏 짧은 배움의 길을 걸어가면서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더 많았기에, 저의 삶을 바로 마주보는 것 자체를 무작정 두려워했던 건 아닌지 깊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반성을 단순한 성찰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게 처음이기에 매주 크고 작은 고비가 찾아왔지만, 하영선 선생님 그리고 15기 동기 분들과 함께하면서 앞으로 제가 걸어갈 앎의 여정을 함께할 지적 동반자를 만나고 저의 삶에서 시작하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는 ‘살아있는 공부’를 비로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껏 역사의 전철을 밟아온 선배들의 삶, 앎, 꿈, 함에 비추어 나의 삶에서 시작하는 질문을 던져보는 시간을 보냈다면, 사랑방을 마무리하는 지금은 나의 국제정치를 꿈꾸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 것 같습니다. 미래의 주인공이 될 우리에게 사랑방은 자신이 속한 시공간의 맥락에서 삶에 영향을 미치는 과거와 현실을 제대로 알고자 할 때 비로소 미래를 바라다보는 안목을 기를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었습니다. 또한 수동적으로 구미의 국제정치학을 답습하기보다 상대의 지평으로 들어가되 자신의 비전으로 돌아와 내 시야가 그들에게로 넓어질 수 있도록 설명과 이해의 조화, 그리고 물상과 심상의 결합을 고민하는 양손잡이 투수의 눈과 힘도 길러주었습니다. 이로써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자 하시는 ‘사랑’은 타를 앎으로써 아를 이해하고 함께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는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 봅니다. 그리하여 ‘나’라는 개인을 넘어 ‘우리’라는 전체를 함께 품는 사랑 속에서 제대로 된 앎을 통해 ‘세계’라는 거대한 삶터를 더 낫게 하려는 미래의 국제정치학을 구상해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21세기 복합 변환의 시대를 맞아 보다 입체적으로 세계정치의 흐름을 읽어내기 위해서 단순히 멀리 떨어져 관망하는 ‘관찰자’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체험자’로서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용기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시공간적으로 동양과 서양, 그리고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살면서 현재를 바라보는 지평에서 다양한 행위자들이 여러 무대에서 펼치는 그들의 연기를 바로 볼 수 있는 시각을 갖출 때, 비로소 매력적인 꿈을 꿀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 스스로 작지만 날렵한 ‘늑대거미’가 되어 촘촘한 그물망을 만들고, 21세기 다가올 복합의 시대를 바로 볼 수 있는 미학적 상상력을 계속 키워가고 싶습니다. 나아가 제가 바라보는 존재들의 순간적 인상들을 사진 찍듯이 남기기보다, 보다 긴 호흡으로 저의 삶이 위치하는 시공간에 대한 애정 속에 끊임없는 자기조직화를 통해 다른 이와 한마음 한뜻으로 공진하고 공생할 수 있는 국제정치학을 그려가고 싶습니다.

 

사실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부터 주변의 많은 고마운 분들께서 사랑방을 적극 추천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어마어마한 공부량에 대한 악명도 익히 들어왔던지라 선뜻 사랑방으로 향하는 문을 용기 내어 두드리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마지막 날까지 망설임에 망설임을 거듭하다 사랑방의 문을 두드린 건 공부를 평생의 업으로 가져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처음 국제정치학도가 되어야겠다는 초심은 주어진 과제나 상황을 해결하기에 급급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노력도 하지 않을 때마다 조금씩 옅어졌습니다. 자연스레 연구에 대한 자신감도 줄어들고 진정한 공부를 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자괴감에 한없이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용기를 낸 덕분에 어려운 시국에 점점 더 공부가 외롭고 힘들게 느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만이 가득했는데도 불구하고 학문의 여정을 함께 걸어가는 더없이 소중한 인연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것 투성이에 앞으로도 수없이 깨지고 넘어지는 순간을 마주하겠지만 저희가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매번 같이 고민해주시고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시는 하영선 선생님의 가르침을 항상 기억하며 꿈을 향한 길을 계속 걸어가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시간이 지나 다시 이 곳에 돌아왔을 때, 모두가 나와 우리가 함께 하는 창조의 국제정치학으로 향하는 길을 힘차게 걷고 있는 주인공으로 더욱 성장해있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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