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 3월 15일 많은 유럽인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가운데 네덜란드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에 이어 극우 포퓰리즘이 네덜란드로 확산돼 넥시트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마크 뤼테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성향의 집권 자유민주당이 승리하면서, 유럽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하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고 강신구 아주대 교수는 분석합니다. 집권여당이 제1당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과거보다 표심이 분산되면서 향후 정국이 불안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3월 15일, 네덜란드 의회의 하원(Tweede Kamer)을 구성하는 150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총선거가 실시되었다. 근래의 네덜란드 총선으로는 드물게 유럽인들의 높은 관심 속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서, 유럽연합과 이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한숨을 돌렸지만, 뒤에 남은 입맛은 영 개운치가 않다. 찜찜하다. 이 글에서는 필자가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찬찬히 하나씩 풀어보고자 한다.

 

우선, 이번 네덜란드 총선이 많은 유럽인들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록 과거의 영화는 달랐을지언정 현재의 네덜란드가 유럽과 유럽연합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객관적으로 그다지 크지는 않다. 유럽연합 전체 28개 회원국 중 하나로, 인구비율로 따지면 5억이 넘는 전체 유럽연합의 구성원 중에서 1,700만 수준인 네덜란드의 시민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3 퍼센트에 불과하다. 인구수를 굳이 짚어보는 이유는 이른바 공동 결정(co-decision) 절차에 따라 유럽연합의 입법부로서의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유럽연합각료이사회(the Council of the European Union)와 유럽의회(the European Parliament) 모두 쟁점에 대해 투표로 결정할 경우, 회원국들에게 인구비례에 따른 가중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751명으로 구성되는 유럽의회 의원 중, 네덜란드에서 선출되는 의원수는 26명(약 3.5 퍼센트)으로, 인구비례에 따른 결과이다. 비록 네덜란드가 유럽연합 총 28개 회원국 중 경제 규모로는 6위에 해당하며 유럽연합의 운영을 위해서도 여섯 번째로 많은 기여를 하고 있지만, 그 규모는 유럽연합 전체 예산의 5.8 퍼센트 수준에 불과할 뿐이며, 가장 많이 기여하는 독일(약 21.4 퍼센트)의 4분의 1 수준이다.

 

그러나 이러한 객관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번 네덜란드 총선은 유독 많은 유럽인들의 관심 속에서 치러졌으며, 그 배경에는 현재의 유럽이 처한 시대적 상황이 존재한다. 이번 네덜란드 총선은 2015년 이후 난민위기(refugee crisis)가 전 유럽을 강타한 가운데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브렉시트, 2016년 6월)됨에 이어,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 트럼프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이후(2016년 11월) 처음으로 실시된 국가 단위의 선거였다. 비록 지역은 다르지만, 이러한 흐름은 국가들 간의 협력과 통합을 추진해왔던 기성 정치권에 대항하여, 통합의 혜택에서 소외된 시민들의 반감을 자국우선주의로 조직화하는 데 성공한 반기성주의(anti-establishment) 정치세력의 승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2017년에는 3월 네덜란드 총선을 시작으로 4월 말, 5월 초에는 프랑스의 대통령 선거, 9월에는 독일의 총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과거 유럽선거의 역사를 살펴보면 비슷한 시기에 치러지는 선거에서 비슷한 결과가 국경을 넘어 재현되는 것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1990년대 중•후반 중도좌파 성향의 ‘제3의 길’(The Third Way) 운동이 일으킨 바람이 그러했으며, 2000년대 초•중반부터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적 보수주의 바람이 그러했다. 이와 같이 국경을 초월해서 발견되는 유사한 선거의 양상은 어느 하나의 선거결과가 다른 선거의 유권자에게 전파되고 학습된 결과라기보다는 비슷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유사한 갈등이 등장하고, 이에 대한 대응도 역시 유사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으로, 그 자체가 유럽통합이 그 만큼 심화되고, 그로 인해 유럽 사회가 점점 동질화되고 있는 현상의 한방증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원인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남아있지만, 근래의 유럽 선거에서는 이와 같은 도미노 현상이 종종 발견되었고, 이번네덜란드 총선은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으로 시작된 반유럽 통합•반세계화•반기성정치의 흐름이 계속 이어지느냐 마느냐를 가름하는 중요한 시험대로 인식되었다. 이것이 이번 네덜란드 선거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주목을 받게 된 주된 이유이다. 더욱이 네덜란드는 올해 선거가 계획되어 있는 프랑스, 독일과 함께 오늘의 유럽연합(the European Union)을 탄생시킨 모태가 된 유럽석탄철강공동체(the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의 6개 창립국(the Original Six) 중 하나가 아니던가. 따라서 이번 총선은 네덜란드가 유럽연합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넘어서는 상징적 파급력을 가진 선거로서 받아들여졌다. 이번 총선에 나선 집권 자유민주당(Volkspartij voor Vrijheid en Democratie, VVD)의 마르크 뤼터(Mark Rutte) 총리가 스스로 이번 선거를 유럽연합의 운명을 결정짓는 토너먼트의 ‘준준결승’(quarter-final)으로 묘사하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나섰던 것도 이러한 흐름에 대한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의 배경 설명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번 네덜란드 총선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반이민•반유럽연합•반이슬람주의를 주장하는 헤이르트 빌데르스(Geert Wilders)가 이끄는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자유당(Partij voor de Vrijheid, PVV)이 원내 최다수당이 되느냐의 여부였다. “네덜란드를 다시 우리의 것으로!”(The Netherlands Ours Again!)라는 마치 트럼프를 연상시키는 슬로건으로 시작되는 자유당의 매니페스토(manifesto)는 한 페이지에 채 미치지 못할 정도로 짧은 것이었지만, 그 내용은 이슬람 사원과 학교의 폐쇄, 이슬람 경전인 쿠란의 판매금지, 이슬람 난민의 유입금지 등과 같은 반이슬람 조치와 함께 네덜란드의 유럽연합 탈퇴를 포함하고 있었다. 내용의 일부는 네덜란드가 가입되어 있는 국제규약에 위배됨은 물론 네덜란드 헌법에도 부합하지 않는 극단적이고 국수적인 것이었지만 대중의 판단은 사뭇 달랐다. 난민위기가 본격화된 2015년 여름 이후 실시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빌더르스의 자유당(PVV)이 정당지지율에서 뤼터 총리가 이끄는 자유민주당(VVD)을 앞서는 것으로 보고되었으며, 이 흐름은 선거를 며칠 앞둔 2월까지 유지되었다. 브렉시트에 이은 넥시트(Nexit)의 공포가 유럽연합을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더 현실화 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이변은 없었다. 뤼터 총리가 이끄는 온건보수성향의 자유민주당(VVD)이 빌더르스의 극우 포퓰리즘 성향의 자유당(PVV)의 거센 도전을 뿌리치고 제1당 수성(守城)에 성공한 것이다. 이른바 ‘샤이 트럼프, 샤이 빌더르스’(shy Trump, shy Wilders) 현상이 이번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선거 결과를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유럽연합 지지자들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뤼터 총리는 출구조사를 통해 총선 결과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난 후 열린 자유민주당의 총선 축하연에서 “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 당선 이후 이어지던 ‘잘못된 포퓰리즘’을 네덜란드가 멈추게 한 밤이다. 민주주의의 축제다”며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와 내막을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유럽연합 지지자들조차 마냥 안도하고 기뻐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표현이 다소 거칠지만) 선거의 뒷맛이 개운치가 않고 찜찜하다. 우선 선거 결과를 보면, 집권연합의 총리를 배출한 자유민주당은 비록 제1당으로서의 지위는 유지했지만 2012년 결과와 비교하면 득표율에서는 5.3%p, 의석수에서는 41석에서 33석으로 8석이 감소했다. 이러한 결과를 두고 승리를 말하기에는 겸연쩍고 민망하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패자는 자유민주당과 함께 집권연합(government coalition)을 구성했던 노동당(Partij van de Arbeid, PvdA)이다. 노동당은 5.7%의 득표율로 9석을 얻는데 그쳤다. 이는 2012년 대비 득표율에서 19%p가 감소한 것이며, 의석수에서는 29석이 줄어든 것으로, 실로 참담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집권연합을 구성했던 두 당(VVD와 PvdA)을 합치면, 득표율로는 24.3%p, 의석수로는 37석이 감소한 결과로 반타작을 조금 넘긴 셈이다. 이에 비해 극우성향의 자유당은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두었던 2010년의 24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012년보다 2.9%p가 증가한 13%의 득표율로 5석 많아진 20석을 확보한 ‘성과’를 거두었다. 결국 이번 선거는 어느 누구의 승리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결과를 낳았다. 집권연합의 줄어든 표가 자유당의 증가된 표보다 훨씬 더 많았다는 것은 여러 정당에 의해 표가 나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는 역대 최다인 28개의 정당이 경쟁했다. 그 결과, 13개의 정당이 의석을 확보함으로써 유효 정당수가 2012년 5.7개에서 8.1개로 증가함으로써 극심한 파편화(fractionalization) 양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는 기성정치권 전반에 대한 시민의 불신과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앞으로의 정국이 보다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필자를 더욱 우려하게 하는 부분은 결과 자체보다는 선거의 내용적 측면이다. 기실 의회제(parliamentary sys-tem) 국가의 특성상 선거 결과가 차기 정부를 직접 결정짓지는 못한다. 특히 네덜란드와 같이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로 인해 다당제 의회가 일상적으로 등장하는 상황에서는 정부구성을 위한 협상의 과정이 필수적이며, 이 과정에서 선거의 결과와 유리되는 정부가 등장하는 예가 종종 나타난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 극우 자유당이 제1당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환호했지만, 설혹 자유당이 최다수당이 되었더라도 자유당이 주축이 되는 정부가 구성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네덜란드 의회선거의 특성상 자유당이 단독으로 과반수의 의석(76석)을 확보할 가능성은 전무했으며, 거의 모든 주요정당들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자유당과의 연정 가능성을 일축하는 공약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제1당이 정부구성에서 배제된다는 것이 ‘민주주의’에 걸맞지 않은, 그래서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것 또한 의회제 민주주의가 운영되는 방식 중 하나이며, 필자가 선거의 결과보다 내용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이번 선거에서 집권 자유민주당의 제1당 유지와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두 가지 장면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뤼터 총리가 선거를 불과 6주 가량 앞둔 1월 22일 전국 주요 신문에 네덜란드 시민들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의 형식으로 선거광고를 게재한 것이다. 이 공개서한은 네덜란드에 정착한 이민자들에게 ‘네덜란드의 가치와 문화를 받아들이고, 네덜란드인들처럼 행동하라. 이것이 싫으면 떠나라’(Act normal, or go away)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자유와 관용을 네덜란드의 핵심 가치로 설명하면서, 이 가치를 ‘강요’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선거 막바지에 발생한 터키와의 외교분쟁이다.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재외국민(터키인)의 지지를 결집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문하려 했던 터키 장관들의 입국을 불허한 것이다. 이 조치는 만약 터키인들의 군중집회가 네덜란드 주요 도시에서 성사될 경우, 이것이 시민들의 반이슬람 정서를 자극하여 자유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 선제적으로 취해진 것이었다. 이 두 장면 모두 반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극우 자유당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이번 총선에서 온건보수성향의 자유민주당이 제1당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일정부분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 두 장면 모두 자유와 관용이라는 가치와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비록 위의 두 사례는 모두 자유민주당과 관련한 것이긴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거의 모든 주요 정당들의 정책노선이 보다 우경화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은 이번 네덜란드의 선거를 관심 있게 살펴본 이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결국 이번 총선에서 유럽통합을 지지하는 네덜란드가 ‘승리’했지만 그들이 그리는 네덜란드와 유럽은 지금까지의 네덜란드와 유럽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번 선거의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유이다. ■

 

 


 

 

 

저자

강신구_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미국 로체스터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비교정치제도, 의회정치과정, 유럽정치 등이다. 주요 연구로는 "The Influence of Presidential Heads of State on Government Formation in European Democracies"(2009), "Representation and Policy Responsiveness" (2010), "어떤 민주주의인가? 제도와 가치체계의 조응을 통해 바라본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방향 모색" (2011), "준대통령제의 개념과 실제" (2014), "반이민정당의 성장이 주류 좌•우파 정당지지에 미치는 영향" (2015)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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