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 3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함에 따라 국회 차원에서도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조짐입니다. 최대 쟁점은 역시 통치구조 개편에 관한 내용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소위 ‘책임총리제’로 불리는 분권형 정부제와 ‘대통령 4년 연임제’를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문 대통령은 개헌안을 통해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제안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선우 전북대 교수는 대통령 재임 2년 차에 총선을 치르게 함으로써 이것이 중간평가의 성격을 갖게 하여 견제와 균형의 기제로 작용하도록 구상한 것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하면서도, 권력기관에 대한 인사권이 여전히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있는 점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이러한 구도에서는 대통령의 ‘임기 중 제왕적 통치-임기 말 레임덕 현상’이라는 문제가 반복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이 교수는 감사원장 및 국정원장을 제외한 3개 권력 기관장의 추천권을 국회로 이관하는 방안을 제안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전격적인 헌법개정안 발의로 정국이 뜨겁다. 기대 반 우려 반일 터다. 사실 1987년 민주화와 함께 제정된 현행 헌법에 대한 문제제기는 그간 끊이지 않았다. 온전히 성공한 대통령보다 실패로 기억된 대통령들이 훨씬 더 많은 탓이다.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 시기에 이르러서는 민주화 이후 초유의 국정마비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따라서 상당한 정치적•사회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개헌 추진을 무작정 더 미루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국회개헌특위가 구성되어 국회 차원의 개헌안을 제출하려던 계획이 당파적 이해관계의 차이로 무산됐고, 따라서 문 대통령이 현행 헌법에 의거해 스스로 개헌안을 발의하는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문 대통령의 발의 이유에 대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정파적 충돌로 인해 개헌안의 진의는 어차피 완벽하게 신뢰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개헌안 발의는 반드시 누군가는 넘었어야 할 문턱이었다. 무엇보다 과거 대통령들의 다양한 정치공학적 계산에 따른 개헌담론 자체의 회피나 국면돌파용 깜짝 제안 등으로 인해 번번이 그 과정이 시작조차 될 수 없었음을 감안하면, 비록 국회 통과와 국민투표라는 쉽지 않은 정치과정이 남아 있긴 하나, 그 절차의 첫 문을 열었다는 점에서만도 중대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문제는 결국 개헌안의 내용이다. 우선 전문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필두로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역사를 명기함으로써 민주 헌법임을 천명하고, 자치, 분권 및 지역 간 균형발전과 자연과의 공존까지 추가함으로써 지방자치 및 친환경의 시대정신을 분명히 한 것 등에는 별반 이견이 있기 어렵다. 특히 지방자치 강화를 위한 조항을 대폭 신설한 것은, 보기에 따라 미진한 감이 없지는 않으나, 지방자치를 헌정의 근간 중 하나로 확약한다는 점에서 적잖은 변화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국적과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보장돼야 할 기본권의 주체를 국민에서 사람으로 확대하고, 그 생명권 및 신체와 정신을 훼손당하지 않을 권리, 그리고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 권리 등까지를 명시한 것은 이전보다 훨씬 더 진일보한 민주적 가치들을 담아내고 있다고 평가할 만하다. 나아가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의 도입 역시, 비록 그 요건과 절차를 마련함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하겠지만, 직접민주주의의 확장이란 시대적 요구에 다분히 부합하고 있다 하겠다.

아울러, 경제민주화 조항에 상생을 추가하고 토지공개념을 적시하는 한편, 장애·질병·노령·실업·빈곤 등으로부터의 사회적 위험에 대한 사회적 보장 및 노동권의 강화, 그리고 소상공인 보호와 사회적 경제의 진흥을 위한 노력을 명시한 것 등은 점증하는 양극화의 억제 및 계층 간 균형발전의 추구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이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고 본다. 한편, 본 개헌안의 경우 제7조에 해당하는 퇴직 공무원의 직무상 공정성 및 청렴성 유지 의무에 관한 조항이 유독 눈에 띄는데, 그간 전관예우의 극심한 폐해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개혁 시도가 그 위헌성 논란으로 인해 획기적으로 진척될 수 없었음을 고려하면, 이 또한 대단히 고무적이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대통령발 개헌안은 그간 사회적 논쟁들로 점철됐던 많은 사안들에 대해 기득권의 보호보다는 대체로 분배지향적 개혁에 대한 의지가 더 강하게 투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개헌안에서 가장 논쟁이 많은 부분은 역시 통치구조와 관련된 내용일 것이다. 기실 개헌안의 국회 통과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걸려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국회는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축소하고자 국회에서 추천 또는 선출되는 총리가 대통령으로부터 독립하여 집행기능의 일부분을 담당하도록 하는 분권형 정부제를 주장해 왔다. 반면 문 대통령은 이번 개헌안을 통해 사실상 매우 확고한 형태의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제안하고 나섰다. 이는 국회에서의 합의 여부에 따라 개헌안이 상당 부분 변형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개헌과정이 4년 연임의 대통령제에 상당히 근접한 형태로 통치구조를 바꾸느냐 아니면 현 상태를 온존시키느냐 하는 문제로 축약될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물론 개헌론자들에 따라 대통령제 이외의 정부 형태에 대한 선호가 있을 수 있고, 필자 역시 통치구조의 측면에서 이번 개헌안이 과연 최선인가에 대한 확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향후 통치구조에 관련된 주요 쟁점들이 대체로 ‘대통령 4년 연임제’의 작동원리를 중심으로 제기될 소지가 크고, 국민들의 이에 대한 지지가 상대적으로 높으며, 실제 제도적 설계가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본 정부형태 또한 꽤 성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는 점에서, 현 시점에서는 대통령제를 전제로 본 개헌안을 평가하는 것이 일단 온당할 것으로 사료된다.

먼저 ‘대통령 4년 연임제’에 관해 가장 우려했던 부분 중 하나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주기의 중첩 문제였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 재임 2년 차에 총선이 치러지게끔 유도함으로써 후자가 중간평가의 성격을 가질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통상 대통령제의 가장 주요한 약점 가운데 하나로 여소야대 또는 분점정부의 잦은 출현이 지적되는데, 적잖은 경우에 이를 해소하고자 양 선거의 주기를 인위적으로 맞추려는 제도적 변화를 시도하곤 한다. 하지만 분점정부 상황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대통령제의 운영원리에 내재된 견제와 균형의 핵심적 기제로도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본 통치구조의 정상적 작동이 의미하는 바 역시 대통령과 국회가 분점정부 상황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통치에 기여할 수 있게끔 유인할 수 있음이라야 마땅할 것이다.

또한 개헌안의 총리임명과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면, 상대적으로 완결성 높은 대통령제를 추구하고자 할 시,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고 국회가 이를 인준하는 현행 방식을 그대로 담고 있는 대통령 개헌안에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대통령제란 행정부 운영에 대한 최종적 책임소재가 명백히 대통령에게 부여되는 통치구조인 만큼, 국회가 총리를 추천하는 것은 그 작동원칙과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국회로선 총리 추천을 통해 분권형 대통령제 혹은 이원집정부제와 유사한 효과를 보고자 하겠으나, 내각 불신임권이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국회가 총리 추천권을 행사하는 것은 그 의도와 달리 분권효과는 별반 기하지 못한 채 오히려 대통령과 국회 간 비생산적 충돌의 가능성만 높이는 제도적 부조응성을 낳게 될 공산이 크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문 대통령의 개헌안에는 특히 대통령의 인사권과 관련해 꽤 우려되는 부분들도 없지는 않다. 우선, 현행 헌법과 비교했을 때, 소위 권력기관들에 대한 통제와 관련된 조항들에선 별반 큰 변화를 찾아볼 수 없다. 이를테면, 개헌안은 검찰총장을 비롯해 그 밖의 법률로 정한 공무원들의 임면을 둘러싼 대통령의 주도권을 대체적으로 온존시킴으로써, 검찰총장, 국정원장, 경찰청장, 국세청장 등 4대 권력 기관장들에 대해 대통령이 예전과 거의 유사한 수준의 독점적 장악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실상 보장하고 있다. 감사원의 경우에만 독립기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으나, 감사원장 임명 및 감사위원 구성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실제 감사원이 대통령으로부터 얼마나 자율적으로 그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지 다소 의문이 든다. 심지어 이번 개헌안은 그간 대통령의 국회 통제를 위한 기제로 계속 비판 받아 온 국회의원의 장관겸직조차 그대로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의 인사권과 관련해서는, 굳이 따지자면 이전에 비해 사법부 독립성에 대한 보장을 조금 더 강화하려는 의도 정도가 눈에 띌 뿐이다.

결국 이렇게 볼 때, 대통령이 임기 중 ‘제왕적’ 권력을 행사하도록 허용하는 한편, 임기 말에는 극심한 ‘레임덕’에 시달리게끔 유도해 온 현행 통치구조적 요소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하겠다. 권력기관에 대한 인사권이 대통령에게 집중돼 있는 한 이들 구성원의 충성과 이탈이라는 과거의 악순환은 계속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는 대통령의 연임이 가능해진 새로운 환경 속에서 해당 기관들이 과연 대통령의 첫 임기 동안 정치적 중립성을 철저히 지킬 수 있을지에 관해서도 심각한 우려를 자아낸다.

그러므로 총리 추천권과는 반대로, 감사원장 및 국정원장을 제외한 3개 권력 기관장의 추천권을 국회로 이관하는 것은 국회의 합의안 마련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해 봄직하다. 물론 감사원 외에 검찰, 경찰, 국세청 등 3개 기관들이 공히 행정부 각 부처의 외청 형태로 되어 있기 때문에 국회가 이들 기관장에 대한 추천권을 행사하는 것이 법 형식상으로는 부적절할 수 있다. 하지만 여야 합의를 전제로 국회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그 수장들을 임명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이러한 논란을 우회하면서도 본 권력기관들의 실질적 중립성을 기하는 데 훨씬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대통령제 하에서 그간 지속적으로 목도되어 온 대통령의 ‘제왕적’ 통치에 이은 임기 말의 ‘레임덕’이란 지극히 기형적인 패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기도 하다.

끝으로, 문 대통령의 개헌안처럼 만약 ‘대통령 4년 연임제’가 현실화된다고 가정했을 때, 새 헌법상의 통치구조적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회의 위상 및 기능의 대대적 강화가 필수적임을 당부하고자 한다. 대통령제란,행정부와 의회가 각기 독립적으로 구성되고 상호 간 존폐에 영향을 줄 수 없게끔 강제함으로써 권력분립을 지향하는 만큼이나, 의회로 하여금 입법을 책임지고 행정부를 향해 효과적 견제를 할 수 있도록 매우 균형감 있게 설계돼야 하기 때문이다. 즉 대통령제일수록 오히려 의회가 강해져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테면, 문 대통령의 개헌안처럼 정부가 계속 법률안을 발의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경우, 그 요건에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단순히 감사원장 추천권을 넘어 감사원의 국회 이관까지도 원점에서부터 다시 논의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상대적으로 우리 국회에 부여된 권한들이 꼭 적다고만은 볼 수 없다. 문제는 입법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비대한 행정부를 효과적으로 견제하기엔 그 인적·물적 자원들이 여전히 매우 빈약하다는 점이다. 국회가 정부안보다 더 우수한 법안을 발의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효과적인 대행정부 감시•감독이 아닌 ‘발목잡기’에 주로 골몰해 온 것 또한 실은 이러한 권한과 자원의 불일치로부터 기인한 바 크다. 그럼에도 반의회 정서가 유독 강한 한국의 현실에서, 국회의원 정수 증대를 포함해 국회 측에 인적•물적 자원을 추가로 부여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개헌이 성사되기 어려운 만큼이나 사후 과제 또한 결코 간단치 않다.

개헌 과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이 지난한 과정이 새 헌법의 탄생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어느 단계에서 어떤 이유로 중단될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문 대통령으로선 지금부터 국민투표 시점까지의 기간 동안은 물론, 그 이후에도 개헌의 당위를 국민에게 계속 설득하되, 또 다른 한편으론 국회의 합의 또는 합의안을 끊임없이 독려해 나가야만 할 것이란 점이다. ■

 


 

저자

이선우_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영국 글라스고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비교정부제도, 러시아 정치, 동아시아 국제관계 등이다. 주요 논저로는 “Prosecutors and Presidents in New Democracies” (2017), “메드베데프-푸틴 양두체제의 제도적 기반” (2015), “정부형태를 둘러싼 제도적 정합성과 바람직한 한국의 개헌 방향” (2015)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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