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했습니다. 헌정 사상 대통령에 대한 첫 탄핵 결정이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를 낳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시대에 맞지 않은 통치 스타일에 있다고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지적합니다. 박 전 대통령은 민주화된 지 30년이 지난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70년대식 권위주의 방식으로 통치하려 했고, 결국 국민의 저항에 부딪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시 말해, 이번 탄핵 결정이 기존 국가 통치체제에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벗어나 균형적 시각에서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8인 전원의 의견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했다. 작년 12월 9일 국회가 234명 의원들의 찬성에 의해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를 결정한 지 3개월 만의 일이다. 지난해 10월 말 광화문 광장에서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본격화된 이후의 오랜 정치적 논란이 마침내 마감되었다.

 

현직 대통령이 국민의 힘에 의해 권좌에서 내려온 것은 우리 정치사에서 두 번째 있는 일이다. 첫 번째는 1960년 4.19 혁명 때다. 3.15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국민의 힘에 밀려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해야 했다. 그러나 당시의 저항은 격렬했고 적지 않은 이들이 희생되거나 다쳤다. 정치적 위기의 해결이 폭력적이고 비제도적 방식으로 이뤄진 것이다. 이에 비해 이번의 정치적 위기는 민주적이고 헌법적인 틀 안에서 이뤄졌다. 국민들은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사태와 권력형 비리 스캔들에 분노했고, 촛불집회를 통해 대통령의 무능과 불통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그 후 국회가 그 뜻을 받아 탄핵을 소추했고,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소추를 최종 인용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정치제도를 통해 그 절차대로, 그리고 평화적으로 대통령을 하야시킨 것이다. 4.19 혁명과 비교할 때, 한국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성숙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편, 탄핵이 이뤄진 2017년은 민주화가 실현된 지 30년이 되는 해이다. 30년 만에 또 다시 분노한 수많은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나갔다. 당시의 요구는 ‘대통령 직선제’로 요약되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것이었다. ‘체육관 선거’ 대신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 독재와 장기집권의 방지에 대한 요구가 민주화라는 정치적 변화로 이어졌다. 이에 비해 이번에는 대통령이 연루된 스캔들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인 불공정, 소외, 무관심에 대한 아픔이 깔려 있었고, 대통령의 퇴진을 넘어서 새로운 정치 질서의 확립, 국가 시스템의 개편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함께 담겨져 있다. 저항의 방식이라는 측면에서도 30년 전과는 매우 큰 차이를 보여주었다. 30년 전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이 화염병과 돌맹이로 상징되었다면, 이번의 저항의 상징은 촛불이었다. 평화적일뿐만 아니라 축제와도 같은 방식으로 정치적 저항이 표현되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에 내재된 갈등도 그대로 드러났다. 탄핵을 둘러싼 입장 차이에 따라 촛불집회와 그것을 적대시하는 이른바 ‘태극기 부대’ 간의 격렬한 정치적 대립이 발생했으며, 이를 통해 세대, 이념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이 재현되었다.

 

이번 대통령 탄핵은 민주주의와 헌정주의의 승리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적법한 절차를 통해 선출한 대통령이 임기 만료 이전에 강제로 물러나야 하는 상황은 국가적으로 볼 때 안타까운 일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러 가지 원인을 꼽을 수 있겠지만 역시 제일 먼저 지적해야 할 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개인적 성격과 리더십의 문제이다. 탄핵의 직접적인 사유가 된 것은 박 대통령이 최순실이라는 민간인 비선에 지나치게 의존했고 또 최순실이 그 점을 이용해 국정을 농단한 때문이기는 하지만, 사실 박 대통령의 통치 방식은 그 자체가 너무 구식이었다. 박 대통령은 2010년대의 한국 사회를 1970년대와 같은 방식으로 통치하려고 했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국가를 이끌던 1960~1970년대와 비교할 때, 오늘날의 한국은 너무나도 복잡해졌고, 또 사회 각 영역의 자율성도 크게 증대되었다. 대통령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대통령이 혼자 말하고 장관들은 받아 적기만 하는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으로는 산적한 현안을 제대로 해결해 낼 수 없었다. 더욱이 직언과 문제 제기를 할 만한 인물은 애당초 내각과 청와대에 두지 않았다.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집권당과의 관계도 원활하지 않았고, 설득과 소통으로 국민의 신뢰를 얻어내지도 못했다. 특히 어린 학생들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박 대통령의 대응은 소극적이었고 수세적이었다.

 

그 대신, 박 대통령은 주변의 몇몇 측근과 권력 기관에 의존했다. 이 때문에 상황이 악화되어 갔지만 대통령의 눈치만 살필 뿐 누구 하나 나서서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할 수 없었다. 검찰은 민정수석의 눈치를 보며 제대로 나서지 못했고, 언론 역시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여당은 집권기간 내내 사실상 국정 운영에서 소외되어 있었다. 국정 운영에 빨간불이 들어오고 우려할만한 상황이 발생해도 사전에 이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은 작동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이런 통치 방식이 대통령에게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했다.

 

이번 대통령 탄핵은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대적 교체의 의미가 있다. 이번 사건과 함께 우리 사회는 이제 박정희 시대와 결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된 지 3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대통령, 청와대, 관료, 경제, 교육 등 사회 곳곳의 운영 방식은 여전히 박정희 시대로부터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 막강한 권력의 대통령, 관료 주도의 경제발전, 재벌 중심의 불균등 발전 등 발전주의 국가 모델은 이미 1997년 외환위기 때 한계가 드러났다. 그러나 2007년 대선을 전후해서 오히려 박정희 신드롬이 일었고, 그 이후 박정희 시대의 모델이 우리 사회에 다시 적용되었다. 그러나 이제 토건 사업도, 대기업 중심의 수출 전략도, 제왕적 권력의 대통령도 모두 그 한계를 드러냈다. 이제는 새로운 정책 목표와 전략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또한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흔드는 이들이 상징하는 냉전적 반공주의, 성장 중심주의라고 하는 과거의 보수주의로부터 보수 정치가 어떻게 변화해 나가야 할 것인가도 주목해 봐야 할 점이다. 박정희를 넘어선 한국의 보수 정치는 어떠한 가치를 담아야 할지 그에 대한 암중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이미 보수 정당은 분열했다.

 

이번 탄핵이 주는 또 다른 의미는 이른바 ‘87년 체제’의 극복이다. 이번 탄핵 사건은 그간의 민주적 공고화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통령제가 갖는 문제점과 한계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지난 30년 간 절차적 민주주의에서는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에 대한 효과적인 견제와 감시는, 이번 사건에서 보듯,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다른 한편으로는, 제왕적이라고 하지만 실제 정책 추진이나 집행에서는 매우 취약한 대통령의 리더십도 그간 여러 차례 확인되었다. 이 때문에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응답이 매우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제는 권력 교체와 공정한 선거뿐만 아니라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통치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줄이고 총리와 내각이 정책 결정과 집행에 있어서 실질적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개편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이와 관련해서 한 가지 더 지적할 점은 현행 우리 대통령제의 안정성에 대한 것이다. 임기의 안정성을 주된 특징으로 하는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지난 10여 년 사이에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벌써 두 번이나 소추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실제로 대통령 탄핵이 실현되었다. 향후에도 정치적 상황에 따라서 대통령이 또 다시 국회로부터 탄핵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별로 놀랄 일이 아닌 것이 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제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잦은 탄핵의 가능성은 정치적 안정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상시적인 정부 해임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통치 형태는 내각제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총리와 내각에게 의회 해산권을 부여해서 의회의 불신임을 견제할 수 있는 권한을 동시에 부여하고 있다. ‘87년 체제’를 넘어서기 위한 제도 개선의 논의에서 이러한 점도 깊이 있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우리 민주주의의 진전과 함께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모두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사건이 현실에 맞지 않는 낡은 시대를 보내고, 또 다른 국가적 도약을 위한 새 시대를 여는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모두가 한마음으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

 

 


 

저자

강원택_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EAI 시민정치패널 위원장. 영국 런던정치경제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논저로는《한국인의 국가정체성과 한국정치》,《한국 선거 정치의 변화와 지속》,《보수정치는 어떻게 살아남았나》,《통일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대한민국 민주화 이야기: 민주화를 향한 현대한국정치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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