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 8월 2일 미국은 러시아의 중거리핵전력(INF) 조약 위반을 비난하며 해당 조약의 탈퇴를 공식적으로 선언했습니다.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이번 미국의 INF 조약 탈퇴는 중국이 참여하는 새로운 INF 조약 체결을 위한 전략적 압박 카드로 활용하거나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아시아 동맹국들을 활용하여 중국을 겨냥하는 중거리 탄도·순항미사일을 배치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더불어 동북아 차원에서 전개될 새로운 INF 논쟁은 미중 간 군비경쟁은 물론 미국과 중국의 동맹국가들의 군비경쟁을 가져올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합니다. 동북아의 INF 논쟁으로 인한 미중 갈등관계의 확장이 향후 북미 비핵화 프로세스로까지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새로운 한반도 평화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한 대장정의 앞길에 머피의 법칙이 적용되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8월 2일 미국은 러시아의 중거리핵전력(Intermediate-Range Nuclear Forces, 이하 INF) 조약 위반을 비난하면서 지난 1987년에 체결된 동(同) 조약의 공식 탈퇴를 선언했다. 2019년 2월 2일 미국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성명을 통해 6개월 이내 INF 조약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공식 천명한지 정확히 6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미국의 INF 조약 탈퇴에 맞서 러시아 정부도 “1987년 12월 8일 미국 워싱턴에서 소련과 미국이 체결했던 INF 조약 효력이 미국 측의 주도로 이날 중단됐다”고 밝히면서 INF 조약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미국의 INF 조약 폐기 의도

32년 만에 일어난 INF 조약 폐기는 국제안보의 미래 및 국제정세 변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역사적 변곡점으로 기록될 것이 틀림없다. 특히, 앞으로 전개될 중거리핵전력 문제는 유럽의 안보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과거와는 달리 동북아와 한반도 평화에 부정적 충격을 가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미국의 INF 조약 탈퇴를 계기로 현재 동아시아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이 더욱 가속화될 뿐만 아니라 역내 안보딜레마가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번 미국의 INF 조약 탈퇴는 러시아를 명분으로 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동아시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확장을 막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의도로 미중 간 전략적 경쟁의 맥락과 궤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도 이러한 입장이나 의도를 굳이 숨기고 있지 않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선임연구원이었던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은 2011년 8월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칼럼에서 중국의 중거리미사일 전력강화를 막기 위한 차원에서 INF 조약을 파기하거나 중국을 신규 회원국으로 가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또한 2017년 4월 당시 미 태평양사령관이었던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 대사는 의회 증언에서 중국이 배치한 탄도·순항미사일의 90% 이상이 INF 조약 가입국 위반사안이라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이러한 미국의 우려처럼 2010년 이후 중국은 남중국해 주변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반접근지역거부(A2AD)전략의 일환으로 중거리미사일 능력을 강화해 왔다. 예를 들면, 중국은 DF-11(600km), DF-15(800km), DF-16(1,500km), DF-21(1,700km), DF-25(4,000km)의 중거리탄도미사일과 CJ-10(2,500km)의 순항미사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상발사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DF-21D는 2013년 중국이 미 해군 항공모함에 대응하기 위해 실전 배치한 세계 최초의 대함탄도미사일이다. ‘항공모함 킬러’라 불리는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1,800~3,000km에 이르고 요격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미국에 가장 위협적인 무기이다.

 

미국, 아시아 동맹국에 INF 배치 원해

미국은 그동안 INF 조약 때문에 중국의 INF 능력 신장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지상발사 중거리미사일을 시험·배치할 수 없었다. 따라서 이번 미국의 INF 조약 탈퇴는 중국이 참여하는 새로운 INF 조약 체결을 위한 전략적 압박 카드로 활용하거나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아시아 동맹 국가들을 활용하여 중국을 겨냥하는 중거리 탄도·순항미사일을 배치하고자 하는 것이다. 최근 한 언론보도는 개리 새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정책 조정관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INF 조약에서 탈퇴한 이유 중 하나로 중국이 조약에서 빠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은 “신형 정밀유도 중거리미사일을 아시아 동맹국에 배치하고 싶다”고 밝히면서 “배치 장소는 동맹국과도 논의해야 하지만 배치할 미사일은 INF 사거리”라는 점을 확실히 했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의 이러한 발언은 이번 미국의 INF 조약 탈퇴는 중국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우회적으로 동맹 국가들의 반응을 간접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의도도 깔려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향후 미국이 중국을 겨냥하여 괌이나 미국의 아시아 동맹 국가들에게 배치할 중거리미사일에 내포된 전략적 함의는 지난 1980년대 유럽 상황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유럽과 상이한 동북아 INF 논쟁 구도

주지하다시피, 지난 냉전시대 유럽 안보에서 핵전쟁의 위험성을 증폭시킴과 동시에 냉전 종식을 촉진한 중거리핵전력 논쟁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소련 간에 서로의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전략핵무기 균형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발생했다. 그러므로 미국과 소련은 중거리핵전력의 위험성을 통제하면서 이를 관리해 나갈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냉전 종식을 촉진한 1987년 12월의 INF 조약을 이끌어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미국의 INF 조약 탈퇴로 향후 동북아에서 전개될 중거리핵전력 논쟁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서로의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전략핵의 불균형 구조가 존재하고, 특히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에 배치될 수 있는 지상발사 중거리미사일은 중국 본토를 겨냥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향후 동북아 차원에서 전개될 INF 논쟁을 바라보는 미국과 중국의 인식과 대처방안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차이점으로 인해 이번 미국의 INF 조약 탈퇴와 그에 따른 미국의 새로운 중거리미사일의 시험·배치가 동북아 정세에 미치는 파장은 과거 유럽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다차원적이고 다층적인 전략적 함의를 가진 것이다.

 

중국의 전략핵증강 또는 중·러 동맹 공식화 가능성

무엇보다도 먼저, 전략핵무기 차원에서 미국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에 있는 중국은 미국의 중거리미사일 배치에 대한 대응책으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략적 입장을 취할 것이다. 하나는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전략핵능력을 신장시키는 전략핵무기 군비증강이다. 이를 통해 중국은 미국과 서로의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전략핵무기 균형을 달성코자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과 대등한 전략핵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와 사실상의 안보동맹을 맺는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의 전략자산을 활용하여 미국의 압박을 상쇄시켜 나갈 수 있다. 중국이 어떠한 정책 대안을 취하든 동북아 차원에서 전개될 새로운 INF 논쟁은 미중 간의 군비경쟁을 촉진할 것이고 역내 주요 국가들에게 새로운 유형의 군비경쟁을 강요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전략적 부조화에 따른 주기적인 동맹 딜레마 분출

이번 미국의 INF 조약 폐기가 던져주는 두 번째 전략적 함의는 동맹 딜레마를 야기할 것이라는 점이다. 즉, 미국의 새로운 INF 배치를 둘러싸고 미국과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가들(한국, 일본, 호주) 간에는 타협점을 찾을 수 없는 ‘전략적 부조화’에서 연유하는 주기적인 안보갈등을 겪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이 동맹국에 배치하고자 하는 지상발사 중거리미사일의 대상은 다름 아닌 중국 본토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배치 장소는 동맹국과 상의해야 한다.”는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의 발언과 관련하여 일부에서는 중국 상하이와 5,000km 떨어진 미국의 동맹국인 호주 북부 다윈에 미사일을 배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냈다. 이에 대해 머리스 페인 호주 외무장관은 “우리는 중국을 호주의 아주 중요한 파트너로 보고 있고ᐧᐧᐧ우리는 가장 강력한 동맹국인 미국과 핵심 파트너인 중국과 함께 협력해 안정과 안보, 번영을 추구할 것”이라는 극히 일반적이면서도 매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새로운 중거리미사일을 동맹국의 영토에 배치하고자 하는 미국의 전략적 구상은 그것이 중국 본토를 겨냥하고 있기 때문에 동맹 국가들과의 정책공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동맹국의 입장에서 중국 본토를 겨냥한 미국의 중거리미사일 배치는 단순히 동맹 공조나 동맹 강화 차원이 아니라 심각한 국가적 안보이익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미 비핵화 프로세스에 부정적 여파

미국의 INF 조약 폐기는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2019년 하노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미 비핵화 프로세스는 다가올 북미 협상을 위해 숨 고르기 상태에 있다. 아마도 한미연합 군사훈련이 종료된 이후 북미 실무협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간에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제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등 북미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전되어 한반도 비핵화의 윤곽이 더욱 뚜렷해지더라도, 동북아 차원에서 전개될 새로운 INF 논쟁은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 북한의 중단거리미사일과 중장거리미사일 폐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선적으로, 동북아 차원의 새로운 INF 논쟁을 고려하여 북한은 스커드·노동·무수단과 같은 중단거리 미사일 항목을 비핵화 대상에서 배제하거나 아니면 이의 폐기에 대해 매우 소극적인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즉, 북한은 비핵화 과정의 일환으로 핵 운반수단인 미사일 폐기와 관련하여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화성-15호와 같은 대륙간탄도미사일 폐기에는 미국과 합의하더라도 미국의 동맹 국가들의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중단거리 미사일 폐기에는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역으로 비핵화 과정에서 미국과 동맹 국가들 간의 동맹 딜레마를 부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북한의 중단거리 미사일은 기본적으로 미국에게는 위협이 되지 못하지만, 한국과 일본 등 미국의 동맹 국가들에게는 사활적인 위협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동북아 차원에서 전개될 새로운 INF 논쟁은 자칫 잘못하면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미국의 대북 군사적 압박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향후 북미 비핵화 프로세스가 북미 모두에게 긍정적으로 작동할 경우에는 상관없겠지만, 북미 비핵화 프로세스가 또 다른 교착국면에 봉착하거나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북미의 속도감이 현저하게 다를 경우, 이를 타개하기 위한 강압전략 차원에서 INF 쟁점은 북한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대북 경제재재와 더불어 대북 군사제재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북미 비핵화 프로세스가 미국의 대선 과정과 일정 정도 연계될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으로부터 가시적인 비핵화 성과를 얻어내기 위해 INF 쟁점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북한이 비핵화 과정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만에 하나 대미 압박 차원에서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을 단행했을 경우, 미국은 이에 대한 대책의 일환으로 동맹국가에 INF를 배치하여 북한을 강하게 압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발생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화 위주의 한반도 비핵화 구도를 벗어난 것이자 전통적인 북미 대결구도로의 복귀를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지난 수년 동안 치킨게임 양상을 보여 왔던 미·러의 안보정책은 궁극적으로 INF 조약 폐기를 초래했다. 더군다나, 이번 미국과 러시아의 INF 조약 폐기는 다가오는 양국의 새로운 전략무기감축조약의 운명마저도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 걸쳐 미중 전략적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새롭게 논의될 동북아의 INF 논쟁은 미중 경쟁관계를 더욱 악화시켜 나갈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INF 논쟁으로 인한 미중 갈등관계의 확장이 북미 비핵화 프로세스로까지 이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

 

 

저자: 이수형_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 취득하였으며, 북한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이다. 연구분야는 국제관계사, 나토와 유럽안보, 한미동맹과 동북아 국제정치 등이다. 주요 저서로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상과 대북정책(공저, 2017), 맷돌의 굴대전략: 한반도 평화통일 전략구상(2014), 북대서양조약기구(2012)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백진경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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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프로젝트

미중관계와 한국

세부사업

중국의 미래 성장과 아태 신문명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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