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지난 9월 24일 치러진 독일 총선에서 메르켈 총리가 예상과 달리 힘겨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비록 4연임에는 성공했으나, 집권 세력의 지지율이 크게 하락한 가운데 극우 정당이 제3당으로 부상하면서, 메르켈 총리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좁아졌습니다. 게다가 사민당의 대연정 거부로 새 연정을 구성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현재로서는 기민/기사련에 자민당과 녹색당이 연합하는 ‘자메이카’ 모델이 가장 유력하다고 김면회 한국외대 교수는 분석합니다. 자민당과 녹색당 간 난민•유로존 정책에 대한 입장 차이로 연정 구성이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주정부 차원에서 연합정부를 구성한 사례가 있음을 감안할 때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자메이카 연합정부가 등장할 경우, 독일의 유럽통합 정책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김 교수는 예측합니다.

 

 


 

 

 

9월 24일에 치러진 총선(연방하원 선거) 이후 독일 정치계가 요동치고 있다. 통합 유럽을 선도하는 독일이기에 선거 결과에 대한 유럽 각국의 남다른 반응도 감지되고 있다. 선거 결과가 예상과 달랐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낮은 지지율을 획득한 정당들의 당혹스러움은 역력하다. 총선 이후 정국의 향방을 둘러싼 논의 역시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총선 결과가 공표되자마자 한편에선 조급하게도 조기선거의 가능성을, 그리고 다른 한편에선 다양한 정치세력 간에 조합을 이루는 색다른 연합정부 모델을 거론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들이 예상했던 현 총리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과 집권정당 기독교민주연합(기민연, CDU)의 무난한 승리는 실현되지 못했다. 빗나간 예상으로 정국은 당분간 정상궤도에 진입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래저래 제19대 독일 총선 결과에 대한 분석, 해석, 전망 작업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제19대 독일 총선 결과는 다음 다섯 가지 특징으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극우주의 정치세력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드디어 연방하원에 진입하였다는 점이다. 유럽 통합의 심화와 난민 수용 정책에 선명한 반대 입장을 개진하고,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독일을 위한 대안은 지난(2013년) 총선(4.7%)에 비해 무려 두 배 이상이나 높은 12.6%의 지지율을 획득하면서 일약 원내 제3당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1949년 이후 전개된 독일 현대정치가 색다른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이다. 극우주의 성향의 정당이 의회에 진입하지 않은 유럽 국가 중의 하나가 바로 독일이라는 정당학자 홀트만(Holtmann)의 판단은 이제 더 이상 정확하지 않게 되었다. 주의회 선거에서의 잇따른 성공에 이어 연방차원에서도 견고한 지지율을 과시함에 따라 독일을 위한 대안은 이제 독일 정치에서 유력한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둘째는 독일 정치를 주도해 온 기민/기사연과 사민당 양대 정당의 지지율이 급격히 추락했다는 점이다. 금번 총선에서 기민/기사연과 사민당의 지지율은 각각 32.9%와 20.5%에 그쳤다. 이는 지난 총선에서 얻은 지지율에 비해 각각 8.6%p, 5.2%p가 낮은 수치이다. 이는 지난 60여 년 동안 양대 정당이 얻었던 득표율 중 가장 낮은 수준이기도 하다. 이번 총선에서 양대 정당이 얻은 지지율 합계는 53.4%에 불과하다. 반면 군소정당인 자민당은 10.7%를 확보하여 원내 재입성에 성공했고, 또 다른 군소정당인 좌파당과 녹색당도 각각 9.2%와 8.9%를 얻어 무난하게 연방하원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여기에 더해 독일을 위한 대안은 전체 709석 중 무려 94석을 배정받으면서 처음으로 연방하원에 모습을 드러내며 새로운 군소정당이 되었다. 전통적으로 양대 정당의 지지율 합이 65%선을 넘어섰던 점을 고려할 때, 양대 정당의 비중이 확연히 위축된 모양새다. 양대 정당의 지지율 추락과 군소정당군의 약진 및 정당 파편화로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국정 운영을 내세워 온 독일 정당체제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셋째, 선거과정에서 ‘보다 많은 정의’ (mehr Gerechtigkeit)를 앞세운 제도권 좌파의 대표주자인 사민당의 정치적 위상이 급격히 추락했다는 점이다. 빌리 브란트 총리 시절 최고 46%에 이르렀던 사민당의 지지율은 그 이후부터 경향적으로 하락해 왔다. 2009년 총선에서 23%의 지지율을 얻었던 사민당은 2013년 총선에서 25.7%로 약간 상승하는 듯했으나, 이번 총선에서는 역대 최저치인 20.5%에 머물렀다. 같은 좌파 정치 세력인 녹색당이 분화하여 안착하고 독일 통일 이후 등장한 좌파당(Die Linke)의 성장으로 인해 사민당은 견고한 지지 세력을 유지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2005년 이후 기민/기사연과의 두 번에 걸친 대연정 시기에 사민당은 이러한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고, 그 결과 사상 최악의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독일 사민당이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민당은 또 다시 제기되고 있는 대연정에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당내에서는 좌파정당에 걸맞은 확고한 좌표 설정 요구가 드세질 것으로 보인다.

 

넷째, 세력 대결 관점에서 총선 결과는 좌파에 대한 우파의 승리로 정리할 수 있다. 사민당의 지지율은 추락했고, 제도권 좌파 세력으로 분류되는 녹색당이나 좌파당 역시 지난 총선과 엇비슷한 지지율에 만족해야 했다. 현상 유지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미래는 불굴의 의지에 의해 건설된다”고 외쳤던 녹색당은 지난 총선에 비해 0.5%p를, 그리고 사민당의 실용주의 노선에 반기를 든 좌파당은 0.6%p를 더 확보하는 데 그치면서 미미한 상승세를 보였다. 반면 ‘보다 살기 좋은 독일’을 내걸었던 기민연의 지지율 하락폭은 보다 우파적인 입장을 견지하면서 “새롭게 생각하자”(Denken wir neu)를 내세운 자유민주당(자민당, FDP)의 선전과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지지율 급상승으로 벌충되었고, 그 결과 의회 내의 세력 분포는 우파 쪽으로 급격히 기울게 되었다. 자민당은 무려 지난 총선에 비해 5.9%p가 더 높은 10.7%의 지지율을 얻었다. 향후 독일정치의 향방을 대략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다섯째는 ‘속이 텅 빈 승리’라는 조롱에도 불구하고, 현 총리 메르켈이 총리직 4선 연임에 성공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2005년 이후 득표율엔 다소의 부침이 있었으나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총리, 전후 최연소 총리, 동독 출신의 첫 통일독일 총리라는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메르켈은 원내 제1당의 지도자 자리를 줄곧 유지하면서 ‘민주적인’ 16년 장기집권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로써 자신의 ‘정치적 아버지’인 헬무트 콜(Helmut Kohl) 전 총리와 동일한 기간 동안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기대만큼의 지지율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장기간에 걸친 집권 경험과 국내외적으로 확인된 국정 운영 능력을 바탕으로 메르켈은 새로운 환경에 조응하면서 주도적으로 대응 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총선 이후 독일정치가 당면한 문제는 연합정부 구성 건이다. 단일 정당이 원내 과반을 넘기 어려운 독일정치에서 연합정부 구성 문제는 선거 이후 언제나 거쳐야만 하는 통과의례이다. 현재 가능한 조합은 기민/기사연과 사민당이 연합하는 대연정과 기민/기사연에 자민당 및 녹색당이 연합하는 소위 자메이카 연합정부 구성 모델이다. 독일을 위한 대안이 기존 정당으로부터 철저히 배격되고 있는 상황에서 전체 의석 709석의 과반인 355석 이상이 가능한 조합으로는 두 경우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민당이 이미 대연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입장을 재확인한 상태여서 후자의 연합정부 구성만이 유력한 상황이다. 문제는 기사/기민연과 자민당 그리고 녹색당의 연합정부 구성이 실현가능하냐는 점에 있다. 지금까지 세 정파 간에 연방차원에서 연합정부를 구성한 경험이 없고, 지향하는 정치 노선이 상이한 상황에서 세 정파 간의 연합정부 구성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미 주정부 차원에서 세 정치 세력이 연합정부를 구성하여 시험한 경험이 있고, 정책 차원에서도 상이한 부분만이 아니라, 유사점도 꽤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세 정파 간의 연합정부 구성 가능성은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2009년 자알란트(Saarland)주에서 처음으로 세 세력 간에는 연합정부를 구성한 적이 있고, 슐레스비히-홀슈타인(Schleswig-Holstein)주에서는 현재 자메이카 연합정부가 운영되고 있다. 동 세 세력 간의 주정부 차원의 연합정부 운영 경험은 연방차원에서의 연합정부 구성을 용이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자메이카 연합정부 구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입장은 그 근거를 자민당과 녹색당의 상이한 입장 차이에서 찾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전략과 난민 수용 상한제를 중심으로 한 난민정책 및 유로존 위기 극복 전략을 둘러싼 부문에서 두 세력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앞세우며 확연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정보화 분야와 경제정책 등에서 이들 두 세력은 거의 동일한 정책을 지향하고 있다. 앞으로 수개월에 걸쳐 진행될 지난한 연합정부 구성 합의문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조율사 역할을 해야 하는 메르켈의 정치력이 요구되고 발휘되어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자메이카 연합 정부의 등장이 독일의 유럽통합 정책에 급격한 변화를 몰고 오지는 않을 것이다. 통합 유럽으로부터 가장 많은 이익을 보고 있는 독일이 기존의 정책을 앞장서 변경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자메이카 연정에 참여할 정당들 간의 유럽정책에도 큰 차이는 없다. 지지율 하락으로 인한 기민연의 상대적 입지 약화에도 메르켈 주도의 자메이카 연합정부가 기존의 정책을 계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럽이 강화되는 것이 곧 독일이 강화되는 것이다.”라는 기조 속에 새 정부는 기존의 정책을 큰 틀에서 지속해 나갈 것이다. 기민연 소속의 재무부장관 쇼이블레(Wolfgang Schäuble)의 긴축정책, 즉 슈바르츠 눌(Schwarze Null)노선과 통합 유럽이 결코 ‘채무공동체’(Vergemeinschaft von Schulden)가 될 수 없음을 자메이카 연합정부에서도 독일은 반복해 나갈 것이다. ■ 

 

 


 

 

저자

김면회_ 한국외국어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 글로벌정치연구소 소장. 독일 자유베를린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독일정당, 유럽통합, 독일노동조합 등이다. 대표 논저로는《유럽의 민주주의: 새로운 도전과 과제》(공저),《독일의 평화통일과 통일독일 20년 발전상》(공저), "통일 25년, 구동독 지역 정치지형 변화 연구", "독일 극우주의 정치 세력의 성장 요인 연구: 정당 쇠퇴와 정당체제 변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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