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이래 한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본 워킹페이퍼에서 손열 동아시아연구원 원장(연세대학교 교수)은 한일관계 개선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저자는 한일 간 포괄적인 협력을 위해 인수위가 구체화된 정책 기조와 목표를 설정해야 하며 일본과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추고, 정부조직의 지식과 자산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I. 대일 정책의 도전 과제

 

윤석열 신정부는 사실상 마비 상태인 한일관계를 풀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를 떠안았다. 현재 양국 간에는 정상회담을 포함하여 정부 사이에 대화 채널이 거의 작동하지 않고, 경제거래는 축소되어 있으며, 국민 수준의 교류도 막혀 있다. 양국 정부는 역사문제를 둘러싼 감정적 대립으로 불신의 소용돌이에 빠져 상대국과 협력을 주저하고 상대국의 전략적 가치를 평가 절하하며 종종 적대적으로 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들은 장기화된 관계 경색에 피로감을 표출하고 있다. 2021년 EAI와 겐론 NPO 공동 한일국민상호인식조사에 따르면 한국 여론은 장기 교착상태인 한일관계의 개선과 협력을 지지하고 있다. 45%에 달하는 국민이 미래지향적으로 대립을 극복해야 한다는 의견을 표출했고, 28.8%는 적어도 정치적 대립은 피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는 등, 압도적 다수인 74.6%의 국민이 현재 대립국면을 벗어나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표 1>).

 

<표 1> 한일 양국이 상대국과의 관계에 있어 취해야 할 입장(2021)

출처: 동아시아연구원(EAI)-겐론NPO, 한일상호인식조사(2021)

 

한편, 한국이 맞고 있는 국제정세도 일본과의 관계 회복과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이 여러 부문에 걸쳐 확산하면서 한일 양국 간 이익 수렴의 분면이 늘어나고 있고 그런 만큼 협력의 유인도 커지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축으로서 동맹국 간 협력을 강조하면서 한일 두 동맹국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2월 백악관이 공개한 <인도태평양 전략(Indo-Pacific Strategy>에는 한일관계의 개선을 명시하였고, 10대 핵심 노력 과제(ten core lines of effort) 중 하나로 한미일 삼각협력을 꼽으며 기존의 북핵 대응에서 넘어서서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주요 기제로 삼고 있다. 동중국해, 남중국해, 대만해협의 안정을 위한 안보협력, 아세안 중심성 지지, 공급망의 안정성과 회복탄력성 향상, 첨단기술 개발, 역내 인프라 지원 등 지역 안보에서 경제-기술 분야까지 확장하여 삼국 간 공조, 그리고 한일 협력을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대내외적 요청에 부응하여 윤석열 당선인은 대선 기간 한일관계 개선을 약속하며 ‘김대중-오부치 선언 2.0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하였다. 1998년 발표한 이 파트너십 선언은 ‘역사를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한다’고 하면서 역사 인식을 넘어 양국 간 정치, 안보, 경제, 문화, 기후변화/환경 등 다방면에서 협력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이렇듯 포괄적인 협력을 새롭게 실천하려면 윤석열 정부는 ① 구체적인 정책과 방법론을 가져야 하며, ② 정책에 대해 여론을 형성하고 국회의 지지를 얻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추고, ③ 정부 내 관련 조직의 지식과 자산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인수위원회는 일본 문제에 대해 정책-소통-조직 활용의 삼위일체를 이루는 대응 태세를 모색하고 준비해야 한다.

 

II. 문재인 정부 검증

 

1. 정책 검토(Policy Review)

 

인수위 외교안보분과가 수행해야 할 첫 번째는 기존 대일 정책에 대한 면밀한 검토이다. 종종 인수위 팀은 마치 점령군처럼 행세하며 직전 정부의 정책과 차별화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이곤 했다. 새로운 정책 브랜드를 내걸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상 내용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대선 캠페인이란 제한된 시간에 마련된 공약이 기존 정책을 밀어내고 그대로 차기 정부 정책으로 자리 잡아서는 곤란하다. 인수위는 기존 정책의 면밀한 검토를 통해 바꿀 것은 바꾸고 계승할 부분은 살려서 공약의 내용을 풍부하게 채우고 정교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그 출발은 문 정부가 내건 대일외교의 공과를 철저히 검증하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일 정책 키워드는 “투 트랙(Two track) 외교”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를 정조준하여 일본 측의 전향적인 조치 없이는 한일 정상회담을 열지 않겠다는 이른바 “원 트랙 외교”로 양국관계 전반의 경색을 가져온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역사문제 갈등으로 인해 양국관계 전반이 얼어붙는 사태는 피해야 한다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역사문제와 안보·경제협력 사안을 분리하는 “투 트랙 외교”를 내걸며 관계 개선에 나섰다. 그러나 역사 트랙에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형해화하고 대법원의 강제동원 배상 판결을 지지하는 등 강경 대응으로 일관한 한편, 협력 트랙에서는 북핵 해법에서 이견을 보였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CPTPP) 추진 및 인도태평양 전략 등에서도 일본이 주도하는 지역협력 구상이라는 이유로 미온적으로 대응하였다. 나아가 아베 정부가 강제동원 판결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에 불만을 품고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의 수출규제를 전격적으로 단행하는 원 트랙 외교를 추진하자, 문 정부도 맞대응에 나서 무역보복을 주고받고 안보 대립으로 전선을 확장하여 투 트랙 외교를 파산상태로 몰고 갔다.

 

이러한 파탄 상태의 일차적 책임은 일본 아베 정부의 수정주의적 역사관과 그에 기반한 역사 현안 다루기에 있다. 그러나 이는 이미 알려진 현실적 조건이었으므로 이를 전제로 한 투 트랙 외교 방책이 나와야 했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역사 사안을 여타 사안과 분리하여 한편으로 역사문제를 놓고 싸우면서 다른 한편으로 안보, 경제, 문화 등 사안별 협력을 실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문 정부는 이런 방향으로 움직였고, 결과적으로 위안부 갈등에 따라 악화된 대일인식은 사안별 협력을 저해하였다. 요컨대, 역사 갈등이 어느 정도 관리될 수 있을 때 사안별 협력이 가능하고, 역으로 사안별 협력으로 신뢰를 쌓아 나가면 역사 갈등에 대해서도 더욱 협력적으로 임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투 트랙 외교란 한일관계를 관리하고 개선하는 방법론일 뿐, 정작 문 정부 대일 정책은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다. “무엇을 위한 관계 개선인가”라는 질문에 대답이 마땅치 않았다. 여기에는 일차적으로 일본에 대한 전략적 위상 평가가 낮았던 점을 들 수 있다. 일본의 경제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하락함에 따라 한국의 대일 교역에 대한 경제적 유인이 상대적으로 낮아졌고, 안보적 측면에서도 일본의 전략적 위상이 하락한 점은 사실이다. 특히 남북관계 개선 및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최우선 외교정책으로 삼은 문 정부는 일본의 전략적 역할이 크지 않고 오히려 훼방자(spoiler)에 가깝다는 인식을 가졌다.

 

기능적 협력의 유인이 크지 않다면 역사 갈등의 개연성은 높아진다. 문 정부가 위안부 합의를 형해화한 후 후속 조치를 미루고,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에 대한 외교적 대응을 사실상 방기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에 대한 전략적 가치를 하향조정 함으로써 예상외로 큰 외교적 부담을 안았다. 일본과의 거리두기는 한미일 대북 공조를 약화시키고 한미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나아가 한국의 지역 외교 반경을 제약하였다. 일본이 주도해 온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Free and Open Indo-Pacific: FOIP), 쿼드(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Quad),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등이 지역 차원의 개발·안보·무역협력의 중심적 기제로 부상함에 따라 일본과 거리두기에 나선 한국의 활동공간이 축소되었다. 일본의 전략적 위상을 경시한 결과이다.

 

2. 커뮤니케이션 능력 검증

 

인수위의 두 번째 과제는 지도자의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대한 엄정한 평가이다. 대통령은 실력 있는 전문가를 적재적소에 발탁하는 임명권자인 동시에 대일외교의 최전선에 위치한 외교관 역할을 담당한다. 한일관계는 국민 여론에 크게 영향받는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여론 형성에는 지도자의 소통, 행동과 이미지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후보 시절 현재 한일관계 경색 상황이 문재인 정부가 지나치게 국내정치적으로 한일관계를 다룬 탓이라 비판하면서 실용주의적으로 대일관계를 다루어 나가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먼저 국내적 소통의 측면 즉, 국회 및 야당과의 협조와 국민 여론 형성 과정을 검토해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의도하였건, 의도하지 않았건 간에 대일외교의 선봉에 섰다. 지난 5년간 양국관계가 분리·통제의 수준을 넘어간 데에는 강경 대응을 주도한 한국의 청와대와 여당이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특히 2017년 대선 후보 시절 위안부 합의 파기·재협상을 공언한 이래, 위안부 합의에 대한 부정적 평가, 역사 현안에 대한 공식 담화 등 주요 사안마다 대통령(청와대)이 직접 발신하였고, 그 근저에는 강렬한 반일 민족주의가 깔려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역사 수정주의자인 아베 신조 집권 하의 일본이 우경화되고 있다는 판단하에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정체성의 정치를 강화하였다. 청와대와 여당은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을 둘러싼 일본 정부의 보복 조치에 대해 “노 재팬,” “노 아베,” “흔들리지 않는 나라” 등 슬로건을 걸고 반일정서를 담은 강경한 메시지를 지속해서 표출하였고, “토착 왜구”라는 표현까지 등장한 바 있다. 강렬한 배타적 민족주의가 정치적으로 표출된 결과 대일외교는 국내적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2021년 11월 실시한 동아시아연구원과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를 보면 한일관계에 대한 여론은 보수-진보 진영으로 날카롭게 분단되어 있다. <표 2>를 보면, 보수 유권자는 차기 정부 대일 정책 우선 사항으로 “미래지향적 협력”(45%)을 “역사문제 해법 마련”(25%)에 우선시하는 반면 진보 유권자는 “미래지향적 협력”(23.8%)보다 “역사문제 해법 마련”(53%)을 꼽고 있다. 대북정책과 대미정책에서 보수-진보가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처럼 대일 정책도 정쟁의 대상이 된 것이다.

 

<표 2> 외교 정책의 이념적 양극화

출처: 동아시아연구원, 2022 대통령의 성공조건 & 신정부 외교정책 제언 인식조사(2021)

 

이렇듯 대통령과 청와대가 주 메신저로 등장하며 초래한 외교정책의 이념화와 국내정치화는 일본 여론에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2020년 한일국민상호인식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26%인데 반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는 1% 남짓하다. 이렇게 상대국이 자국 지도자에게 강한 비호감을 표시하는 경우 상대국에 대한 외교(특히 공공외교)는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된다. 같은 해 일본인의 문재인 정부의 대일정책에 대한 긍정평가는 2.8%, 부정평가는 57.3%에 이르고 있다(한국인의 아베 정부의 대한정책에 대한 긍정평가는 5.4%, 부정평가는 78.4%).

 

3. 조직 역량 및 기능 검증

 

셋째는 일본 문제를 다루는 정부 조직의 역량과 기능 평가이다. 대통령이 대일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자신이 이끌어가는 거대한 정부 조직을 제대로 파악하고 효과적으로 활용하였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일 정책에서 이른바 “청와대 정부”의 한계가 노정되지 않았는지, 주무 부처인 외교부의 역할은 어떠하였는지, 시민사회와의 관계는 어떠하였는지 등 검토가 필요하다.

 

외교 사안에 대한 대통령의 직접적인 개입은 곧 청와대가 외교를 주도한다는 뜻이다. 청와대가 주요 정책을 입안하고 부처가 실행하는 체제가 되면 내각과 각료의 정책 권한이 축소된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국가안보실은 외교안보정책의 컨트롤 타워로서 부처 간 정책 조정을 넘어 주요 정책 결정을 주도하였으며 심지어 사안에 따라 직접 외교교섭에도 나섰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이 일본과 비밀협상으로 위안부 합의를 주도하였고, 문재인 정부 역시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시민사회수석실이 위안부와 강제동원 문제를 담당해왔다. 강제동원 판결 이후 외교 갈등 해소를 위한 고위급 교섭, 그리고 지소미아 종료 선언 등은 청와대가 주도하고 발표하였다. 외교 관계라고 볼 수 없는 북한과의 교섭의 경우 외교부가 아닌 청와대가 나서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일본과의 교섭에 외교부가 아니라 청와대가 직접 나서는 행위는 논란의 여지가 크다.

 

청와대가 외교정책을 주도하고 행정부 주무 부처인 외교부는 집행만 하는 이른바 “청와대 정부”로서의 성격이 점점 커지게 되면, 상대적으로 제약된 정보의 신호(signal) 속에서 정책 결정을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한일관계와 대일 정책에 관한 의사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는 외교부와 재외공관(주일대사관)으로부터 나옴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자신이 관리하는 외교부와 거리를 두고 청와대 참모에 의존하면 자신에게 전해지는 신호를 해석하는 데 상당한 장애를 받게 된다. 이는 상당 부분 청와대란 조직의 정치적 성격에 기인한다. 청와대 참모진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을 보좌하고 대통령의 인기(지지도)에 민감한 조직이다. 그 주요 구성원들도 대통령 선거 캠프 출신들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선거 후 청와대에 들어가 ‘영원한 캠페인’을 수행한다. 대국민 지지라는 프리즘으로 주요 외교정책 사안을 판단하는 경우 상당한 왜곡이 생길 수 있다. 한일관계를 장기적 시야로 — 백년대계 차원에서 — 접근하거나 역사, 경제, 안보, 기후변화 등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이해하기보다는 정책이 초래할 단기적 인기/지지율에 지배되는 것이다.

 

청와대 주도 체제하에서는 정책의 책임성이 저하된다. 청와대의 권력은 제도적으로 나온다기보다 대통령의 개인적 신임에 달려있다는 점에서 속성상 임의적이고, 폐쇄적이며, 책임소재가 분명하지 않다. 2015년 위안부 합의 검토 사례를 보면 문서에 의한 업무뿐만 아니라 전화 한 통으로 업무 지시가 이루어지는 등 사후적으로 책임 소재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 책임정치, 민주주의 외교 정신과 배치된다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청와대로 업무가 집중되면 업무의 폭주로 단기적 대응에 급급하거나 적절한 시기 대응을 놓치게 되는 폐해가 발생한다. 2018년 10월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이 난 이후 한국 정부는 일본 측의 외교적 협의 요청, 제3자 중재 요청 등에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한 가운데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 보복 조치로 양자 관계의 파국을 맞았다. 또한, 위안부 합의 검토와 화해치유재단 해산 이후 정부의 책임 있는 대응 부재도 꼽을 수 있다. 청와대에 정책 결정 권한이 집중된 속에서 무대책(inaction)이 외교적 난관을 초래한 것이다. 요컨대, 청와대는 보유하고 있는 조직 역량에 비해 과잉권한을 행사했지만, 외교부는 상당한 조직 역량에도 불구하고 과소 권한 및 과소기능의 문제점을 노정하였음을 알 수 있다.

 

III. 6대 정책 제언

 

1. 대일정책에 있어서 신정부와 인수위가 해야 할 첫 번째는 대일 정책의 기조와 목표를 설정하는 일이다. 신정부가 내건 “김대중-오부치 선언 2.0”은 “올바른 역사 인식에 기반한 미래지향적 협력”이란 원칙적 선언이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신정부는 일본과 지역의 미래, 신질서를 함께 만들어간다는 공동의 목표를 세우고, 특수한 양자적 관계 차원이 아니라 지역적, 지구적 차원에서 공통과제를 해결해 가는 자세로 교류와 협력을 이끌어 추락한 상호 신뢰를 복구해 가며 역사 현안 해결의 진전을 꾀하는 전략을 취해야 한다.

 

2. 신정부는 한편으로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문제 등 양대 역사 현안을 임기 초에 정리하여야 한다. 위안부 문제의 경우 과거 합의를 존중하며 후속 조치를 이루어 간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강제동원 문제의 경우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는 대신 더는 금전적 요구를 하지 않는다는 선언이 바람직하다.

 

3. 신정부는 미래지향적 협력과제에 전향적으로 나설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지역을 단위로 한 양국의 협력 의제는 안보, 무역, 투자, 개발, 첨단기술, 기후변화, 에너지, 문화 등 다양한 이슈 영역으로 확대되어 있다. 이는 대체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관련된다. 역내 규칙 기반 질서를 위협하는 행위, 북핵 문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시도와 경제 강압 문제, 자유무역 체제 수호, 인권과 첨단기술 개발, 공급망 회복 탄력성 확보 등 지역적 이슈에 한일 양국이 협력해 가는 과제라 할 수 있다. 이중 특히 한국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과 쿼드 플러스(Quad Plus) 협력은 향후 양국 협력의 시금석이 될 주요 사안으로서, 일본과 조심스러운 조율이 이루어져야 한다.

 

4. 대통령은 야당과의 협조와 국민적 총의를 중시하여 대일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정부와 대통령은 주요 외교 사안에 대한 사려 깊은 소통으로 야당의 협조와 국민의 단합을 이루어 리더십에 필요한 정치적 지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반면 정치적 분열과 대립을 초래하는 경우 정책적 실패에 직면하게 된다.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배타적 민족주의 정서는 국민적 역량을 결집하는 순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외교정책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실용주의적 접근을 어렵게 하는 역기능을 초래하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는 반일 민족주의의 유혹을 넘을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민간의 힘을 활용하는 것과 정책 결정체계를 정비하는 방법으로 성과를 기할 수 있다.

 

5. 민간 지식과 네트워크를 활용해야 한다. 한일 양국 내 엄존하는 반일감정과 혐한감정을 낮추고 신뢰 회복을 위해서 신정부는 민족주의의 배타적 정체성을 넘기 위하여 민간의 힘을 적극적으로 빌려야 한다. 민간수준의 역사 대화와 역사공통개발 경험을 축적하여 상호 신뢰를 구축하고 국민적 이해와 공감의 폭을 넓혀가는 본격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공간 속에서 양국은 역사를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보는 자세, 혹은 상대방을 양자 관계적 시야, 자국과 관련 사안을 통해서만 이해하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상대방을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보고 복합 정체성을 구성하여 공진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6. 무엇보다도, 대일외교에서 청와대 권한 축소 및 조정 기능 강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신정부는 대일 외교정책 결정과 교섭 권한을 주무 부처에 맡기고, 청와대는 고유의 비서 기능에 더욱 충실하도록 조직 개편을 이루고 운영해야 한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대일 정책은 한일관계 양자 차원을 넘어 미중관계, 한미관계, 지역 외교, 경제 외교와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 청와대는 직접 정책을 주도하기보다 컨트롤 타워로서 주무 부처 간 정책 조정기능을 담당하도록 정리를 해주어야 한다. 특히 청와대가 직접 외교교섭에 나서는 행위는 제한된 범위 내에서 수행해야 한다. 역사문제 처리의 경우, 이에 적합한 정책 결정 조직도를 만들어내어야 한다. 주무 부처인 외교부와 여성가족부 등 유관부처, 시민사회 단체, 청와대 안보실과 시민사회수석실 간 유기적인 거버넌스 체제가 만들어져야 한다.■

 


 

저자: 손열_EAI 원장,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시카고대학교 정치학 박사. 전공 분야는 일본외교, 국제정치경제, 동아시아국제정치, 공공외교이다. 최근 저서로는 Japan and Asia's Contested Order (2019, with T. J. Pempel), Understanding Public Diplomacy in East Asia (2016, with Jan Melissen), “South Korea under US-China Rivalry: the Dynamics of the Economic-Security Nexus in the Trade Policymaking,” The Pacific Review (2019), 32, 6, <한국의 중견국외교>(2017, 공편), <위기 이후 한국의 선택: 세계 금융위기, 질서 변환, 한국의 경제외교> (2020, 공편), (2020, 공편)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이승연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5) | slee@ea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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