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오랫동안 군부 통치를 겪은 미얀마 시민들에게 민주주의는 낯선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개혁 개방 시기 2015년 총선을 계기로 민주주의 발전을 목표로 내건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며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이룩했습니다. 신영환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위촉연구원은 이러한 배경에서 EAI <미얀마 시민사회 역량 강화> 프로젝트의 취지와 성과를 설명하며 시민사회가 주체가 되어 움직일 때 미얀마가 2021년 쿠데타 이후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2021년 2월 1일 미얀마의 수도 네피도에서 역사상 또 하나의 비극이 한 에어로빅 강사의 비디오카메라에 희극처럼 포착되었다. 군부가 이끄는 일련의 차량들이 연방의회를 장악하기 위하여 진입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에어로빅 강사는 코로나19의 팬데믹으로 마스크를 하고 있었고 젊은 세대 다운 발랄한 몸동작을 촬영하고 있었다. 카메라 포커스는 2021년의 현대를 담고 있었지만, 배경이 된 차량 행렬은 1962년과 1988년의 먹구름을 떠올리게 했다.

 

미얀마의 민주의 역사는 좌절의 역사였다. 식민지 지배를 뒤로 하고 독립 정부를 수립했을 때에도 정부의 무능과 분열적 정치 사회 환경은 불안과 무질서를 극복하지 못한 채 군부의 정권 찬탈로 귀결되었다. 군부독재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 결집했던 1988년의 8888 항쟁과 미얀마의 국교라고 할 불교 승려까지 가세했던 2007년 샤프란 혁명도 모두 두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군부의 폭력 진압에 좌절되었다. 미얀마 군부는 국가적 통합과 질서를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손쉽게 국가 권력을 찬탈하는 쿠데타 전문 집단이 되었고, 그 속에서 시민적 저항의 피와 목숨은 좌절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민주주의와 자유는 “규율” 속에서 마치 군부의 “시혜”가 있을 때에만 제한적으로 가능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대한 미얀마 시민의 열망은 간단히 좌절되지 않았다. 많은 민주주의 운동가들이 투옥되고 정치적 망명의 길에 올랐지만, 시민사회는 군부 독재를 종식시키고 자유를 쟁취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내적 역량을 결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2015년에 찾아왔다. 아웅산 수찌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이 11월 총선에서 떼인 세인의 연방단결발전당(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 USDP)을 압도하면서 군부독재의 긴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무려 75%가 넘는 미얀마 시민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했으며, 결집된 시민사회의 의지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정치적 승리를 이끌었던 것이다.

 

2021년의 쿠데타는 과거처럼 손쉽게 군부의 뜻대로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시민의 저항은 비록 쿠데타 초기에 비해 규모가 줄었지만, 양곤과 만달레이 등 대도시의 거리에서 계속되고 있다. 시위대를 향해 조준 사격하는 등의 폭력적 진압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한 시민적 저항은 전술적 변화를 꾀하고 있다. 민주주의 복원의 구심점이 되고자 하는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 NUG)에 대한 미얀마 국민의 지지는 전국적이며 광범위하다. NUG의 활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발행한 채권은 10시간 만에 모두 소진되었다. 수익성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민주주의 복원에 대한 미얀마 국민의 열망을 반영한 것이다.

 

현재 미얀마에서는 무분별한 폭력으로 공포를 조장하며 권력 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는 군부와 지치지 않고 저항의 메시지를 발신하며 민주주의 복원의 기회를 마련하려는 시민불복종운동과 민주진영의 팽팽한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1. 2015년 총선과 미얀마 시민사회의 과제

 

2015년 미얀마 시민사회는 역사적인 기회를 조용히 준비하고 있었다. 떼인 세인의 자유화 정책에 따라 수감되었던 민주주의 운동가들이 석방되었고 해외로 망명하여 국내 저항운동을 지원하던 반체제인사들이 귀국하였다. 전향적 자유화 조치로 군부의 통제가 이완됨에 따라, 과거의 민주주의 운동가들은 시민사회 내부에서 미얀마의 정치 발전 도모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모색하고 있었다.

 

다시 돌아온 그들의 조국은 과거와는 달랐다. 인도차이나 반도에 남은 마지막 ‘잠재력의 땅’이라는 평과 함께 해외 자본의 투자가 적극 이루어지고 있었고, 과거 중국에게만 의존했던 경제는 새로운 추진력을 갖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 속에서 미얀마 시민들도 빠르게 적응하며 사이버 공간에서 사회관계망을 활발하게 형성하고 있었다. 거리로 나가서 피켓을 들고 확성기로 외치는 방식은 변화한 미얀마 시민사회에서 더 이상 호소력을 갖지 못했다. 민주주의 운동가들은 미얀마의 시민사회가 민주주의의 기회를 포착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소수의 정치지도자에게만 기대서는 민주주의의 성취와 발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운동가들이 주목한 것은 2015년 11월로 예정된 총선이었다. 정부가 공언한 것처럼 예정된 일정대로 치러진다면 군부의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주의 문민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이를 위해서는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필수였다. 그러나 연방의회뿐 아니라 중층적인 지역 단위의 의회를 구성하는 총선은 선거의 기회가 정기적으로 주어지지 못했던 일반 시민들에게 복잡하고도 이해하기 힘든 “과제”였다. 어떻게 투표를 해야 하는지 시연을 통해 이해시키는 교육이 필요했다. 민주주의 운동가들은 미얀마 전 국민을 대상으로 총선을 앞두고 투표 교육을 조직적으로 실시했다. 시민사회단체를 조직하여 전국을 돌면서 시민들을 가르쳤다. 시민사회단체들은 대도시뿐만 아니라 전국의 변방을 순회하며 조직적인 투표 교육을 실시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열망과 함께 미얀마의 낮은 문맹률은 교육의 효과를 고양시켰다. 총선의 높은 투표율은 2015년 내내 전국을 돌아다니며 땀을 흘렸던 미얀마 시민사회 운동가들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민주주의 운동가들과 그들이 설립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총선 이후의 과제 또한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견에 따른 압력단체(advocacy group)나 과거의 운동가 집단(activist group)으로 남아있을 수는 없었다. 민주주의 실현이란 역사적 기회에 기여할 수 있는 책임과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했다. 동아시아연구원(East Asia Institute, EAI)이 미얀마의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미얀마 시민사회 역량 강화(Strengthening Civil Society Organizations in Myanmar)’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였다. 이 사업의 목적은 미얀마 시민사회단체들이 민주주의 의제와 정책 과제를 선도적으로 개발하고 미얀마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싱크탱크(think tank)로 거듭나도록 돕는 것이었다.

 

이 사업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추진되었다. 첫째는 경험 공유였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정치발전, 그리고 경제적 성공의 경험에 대한 미얀마 시민들의 호기심은 매우 컸다. 작은 규모의 민간 독립 싱크탱크로서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 EAI의 경험은 미얀마 시민사회단체들이 미래의 조직 발전 방향을 설계하는데 현실적인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었다. 경험 공유는 일방적인 지식과 경험 전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EAI 또한 한국이 상대적으로 잘 알지 못하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이해하고 탐구해야 했다. 독립 이후 현대 미얀마가 경험했던 정치 경제적 과제와 사회문제에 대한 생생한 역사와 정보는 외부세계에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었다. EAI는 미얀마의 정치와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토대로 아시아 민주주의 연구 범위를 확장시키고자 했다. 또한 한국의 개도국에 대한 지원이 경제적인 측면에만 머물러 있다는 점을 문제로 인식하고, 한국의 정치 경제적 발전 경험과 지식을 전수함으로써 수혜국의 내적 역량이 경제 원조의 견고한 성과를 견인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유일하게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한국의 기여외교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사례를 미얀마에서 찾고자 했다.

 

두 번째 축은 네트워크였다. EAI는 주요 전문가들을 노드로 하고 이들을 엮는 네트워크 구축의 허브로서 민주주의 협력의 성공 스토리를 지역과 글로벌 차원에서 확장시키고자 했다. 지역 차원에서는 이미 아시아민주주의연구네트워크(Asia Democracy Research Network, ADRN)를 구축하여 당면한 민주주의 위기에 대응하고 민주주의 싱크탱크들과 공동 의제를 발굴하고 연구를 진행하고있었다. ADRN의경험을 바탕으로 EAI는 먼저 미얀마 내부에서 민주주의 연구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이를 다시 아시아 지역 네트워크와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자임하면서, 이제 막 태동하기 시작한 미얀마의 민주주의와 이를 뒷받침하는 시민사회의 역량이 제고될 수 있는 프레임워크를 마련하였다. 인간이 사회 속에서 상호 교류를 통해 성장하듯, 미얀마의 시민사회단체들도 상호 교류의 채널을 구축하고 EAI를 비롯한 아시아 다른 지역의 싱크탱크들과 소통하며 변화와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2015년 8월 처음으로 경험 공유 및 정책 연구를 위한 워크숍을 시작했다. 그동안 미얀마는 역사적인 총선을 승리로 이끌면서 아웅산 수찌와 NLD가 이끄는 민주주의 문민정부를 수립했고, 또 이듬해 한국은 시민의 힘으로 ‘책임성을 결여한(irresponsible)’ 정부를 퇴진시킨 촛불 혁명을 일으켰다. EAI와 미얀마의 파트너 기관들은 양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경험을 생생하게 나누었다.

 

2. 시민의 열망과 NLD 정부의 한계

 

2010년대 중반 이후로 미얀마 시민사회는 과거와는 다른 비약적인 성장을 경험하였다. 여기에는 시민사회의 역량을 키우기 위한 민주주의 진영 인사들의 노력이 주요했다. 군부는 8888 항쟁 이후 양곤대학을 학생운동의 핵심부로 지목하면서 폐쇄해버렸다. 뿐만 아니라 의학, 기술 등의 교육을 제외한 인문사회 고등교육을 금지하거나 극도로 제한하였다. 군부 정권은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까지 박탈하면서 권력의 자율성을 탐하였다. 부분적으로 주어진 자유의 틈 속에서 미얀마 시민사회는 그동안 박탈당했던 교육의 권리를 만회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펼쳤다.

 

EAI와 함께했던 파트너 기관의 주요 활동 영역은 이를 잘 보여준다. 산디거버넌스연구소(Sandhi Governance Institute)는 미얀마 여성의 역량 강화와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양곤정치학교(Yangon School of Political Science)는 군부가 대학 공교육에서 금지했던 정치학 교육을 민간 차원에서 부활시켰다. 오픈미얀마이니시어티브(Open Myanmar Initiative)는 정부와 의회의 현황을 데이터화하고 정치인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국내외 연구자 및 일반 시민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만달레이의 젊은 의사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욘치야르(Yone Kyi Yar Knowledge Propagation Society)는 도서관을 설립하여 지역 사회에 지식을 전파하고 젊은 세대의 건설적인 토론의 장을 구축하였다. 카친주의 주도 미찌나에 위치한 나우셩개발연구소((Naushawng Development Institute)는 공공교육 서비스로부터 소외된 소수민족 젊은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해외 NGO들과 협력하여 학교를 운영했다.

 

특별히 2015년 전국을 누비면서 펼쳤던 시민사회단체들의 투표 교육이 결실을 거두면서, 이들의 시민사회 역량 강화 활동은 추진력을 갖게 되었다. ‘미얀마 민주주의 연구 네트워크(Myanmar Democracy Research Network, MDRN)’는 아시아 지역의 싱크탱크 네트워크와 연결되었고, 해외의 성공 사례들을 배우고 이를 다시 국내 어젠다로 개발했다. 아시아와 세계의 민주주의 전문가 및 학자들은 양곤을 방문하여 지식과 경험을 나누었고, 사회관계망을 통해 소통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리고 2020년 선거를 앞두고 이들은 5년 전 투표 교육을 보다 체계적으로 수행했다. 비록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제약이 있었지만, 제한된 조건에서도 미얀마 국민들의 여론조사를 수행하는 등 연구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적인 열망을 등에 업고 등장했던 NLD 정부는 민주주의 과제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 기득권의 군부와 국민의 민주주의 요구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오히려 민주적 가치를 외면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자칫 다시 군부에게 권력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는지, 정치 엘리트의 속성에 기인한 것이었는지, 군부와 전략적 제휴를 맺는 듯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떼인 세인 정권 하에서도 보장되었던 시민사회와 의회 의원들 간의 소통 채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시민사회단체와 해외 NGO의 자유로운 활동을 법으로 규제하고 관리하고자 했다. 로힝야족에 대한 군부의 폭력에 침묵하거나 오히려 두둔까지 했다. 캠퍼스 내에 정치적 표현을 금지하고 학생운동 지도자를 체포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2015년에 비해 소수민족의 선거권 및 피선거권을 더욱 제한하는 조치가 내려졌다. 팬데믹을 핑계로 2020년 선거 캠페인을 통제하고 언론인의 자유로운 취재 활동을 금지하기까지 했다. 정부 방송사만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허용되었다. NLD 정부를 향한 ‘민주적 독재(democratic dictatorship)’라는 비판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오로지 국민적 지지 말고는 정치적 자산이 없었던 NLD 정부는 비록 2020년 총선거에서도 압도적 승리로 관대한 국민의 재신임을 얻었지만, 군부의 쿠데타 앞에 너무나도 조용히 무너져버렸다. 다시금 역사의 난제는 시민의 손에 맡겨졌다.

 

지금껏 많은 시민들이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면서 목숨을 잃었다. 2021년 12월 25일 시점에서 공식적으로 집계된 사망자만 1,375명에 이른다. 8,254명이 투옥되었으며 이 중 39명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형수 중에는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도 2명 포함되어 있다. 물론 이 수치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중론이다.

 

미얀마 시민의 저항 운동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초기에는 대규모 군중집회가 중심에 있었고, 밤마다 일정 시간 동안 냄비와 양철을 두드리면서 저항의 메시지를 발신하는 집회도 있었다. 또한 밤에 일정 시간 동안 소등하여 위성을 통해 전 세계가 깜깜한 미얀마를 볼 수 있도록 하며 저항 의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하는 등 군부의 잔혹한 진압이 계속되자, 마치 플래시몹(flash mob)과 같이 게릴라성 시위를 하고 순식간에 흩어진다거나, 사람이 아닌 곰 인형을 거리에 전시하여 시위를 하기도 했다. 상공에서도 잘 보일 수 있도록 “우리는 민주주의를 원한다(We Want Democracy)“라는 거대한 글귀를 새기고, 세 손가락을 펼친 사인을 페이스북에 릴레이로 공유하면서 의지를 다짐하기도 했다.

 

다양한 저항 운동과 함께 군부 정권에 대한 시민불복종운동도 더욱 확산되고 있다. 초기에는 군부가 소유한 산업 생산품의 불매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현재는 군부 정권의 자금줄을 압박하기 위해 납세를 거부하고 있다. 정부가 공급하는 전기 요금을 지불하지 않음으로써 곳곳에서 정전사태가 발생하고 더이상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불편이 초래되고 있지만, 미얀마 시민들은 기꺼이 그 불편을 감내하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에도 시민의 안전과 보건을 철저히 외면했던 정부에 더이상 기대하는 바가 없다. 공적 서비스는 마비되었고, 시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 정부와 시민사회의 이격은 회복할 수 없게 되었다.

 

미얀마 시민은 국제사회가 미얀마 민주주의 복원을 지원해주기를 끊임없이 호소했다. 주 UN 미얀마 대사의 용기 있는 선언과 미인대회에 참가한 미스 미얀마의 눈물어린 호소는 아직도 많은 세계 시민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UN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선언만을 되풀이할 뿐 실질적으로 미얀마 시민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어떠한 조치도 실행하지 못했다. 중국은 사실상 민 아웅 흘라잉 정권을 뒷받침하고 있고, 아세안은 미얀마 군부 정권의 대표성을 인정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최근 캄보디아 훈센 총리는 네피도를 방문하여 민 아웅 흘라잉을 접견했다. 이에 대해 민주주의 국가들은 어떠한 실질적인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미얀마 시민들은 수개월 전처럼 UN과 국제사회에 눈물로 호소하지 않는다. 국제사회의 무위를 겪으면서 이번 사태 해결이 오로지 그들의 투쟁임을 값비싼 교훈으로 깨달았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싸움을 미얀마 시민들은 해나가고 있다.

 

3. 에필로그

 

 

군부가 네피도를 장악한 지 1년이 다 되었다. 여전히 미얀마 사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군부는 무고한 시민과 취약한 변방 소수민족들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과 만행을 자행하고 있다. NUG는 아직 이 모든 사태를 수습할 만큼 힘과 자원을 마련하지 못했다. 그리고 도시 거리에서는 시민들의 기습 시위가 지침 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젊은이들은 무장을 택했다. MDRN의 일원이었던 만달레이 주의 한 의사는 시민들의 평화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미얀마 연방주의를 꿈꾸던 소수민족 학생은 혁명군에 입대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한편 젊은 부부는 2세를 출산했고 결혼 소식을 전한 새로운 커플도 있다. 그들이 ‘봄의 혁명(Spring Revolution)’이라 불렀던 저항은 한 치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리고 험난한 혁명 속에서 미얀마 시민들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역사가 그들의 편에 서는 순간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

 


 

저자: 신영환_고려대학교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에서 위촉연구원, 대구여성가족재단 경영기획실장.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동아시아연구원 수석연구원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관심은 동아시아 국제관계, 중러관계, 지정학, 한국외교, 개발협력 등이다. 주요 저작으로는 “Myanmar’s Broken Democracy “Disciplined” by the Military: Analysis on the Quality of Procedure in Fledging Democracy“(2022), "중국의 협력적 대륙전략과 팽창적 해양전략: 니콜라스 스파이크먼의 지정학 이론을 중심으로"(2021), "Is Japan the "Britain" of East Asia? A Geopolitical Analysis of Japan's Long-term Strategy on the Korean Peninsula"(2020)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전주현 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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