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아세안은 회원국인 미얀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의 방식(ASEAN Way)’을 고집하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관해 이재헌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세안의 문제 해결 능력이 미얀마의 아세안 가입과 아세안 의장국 선언에 이어 미얀마 쿠데타 발발로 그 한계를 분명히 드러냈다고 설명합니다. 국제사회가 아세안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일 뿐 미얀마 사태에 대한 구체적 대응방안 마련에는 소극적이라고 지적합니다.

1. 들어가며

 

2021년 2월 미얀마 군부는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았다. 2020년 11월에 있었던 선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의회가 소집되려던 바로 그날 쿠데타를 일으켜 2015년부터 5년 남짓 유지되었던 민간정부를 무너뜨리고 2011년 군부에 의한 정치 개혁 이전으로 미얀마의 상황을 후퇴시켰다. 그로부터 1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 사이 미얀마에서는 1,5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군부에 의해 희생당했고, 11,000명 넘는 사람들이 투옥되었다. 옥중 고문에 의해 사망한 사람도 100여 명에 달한다(The Irrawaddy 2022/01/05). 물론 실제 숫자는 이보다 많은 것으로 예상된다. 군부통치에 저항하는 수많은 미얀마 국민들,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 NUG)와 시민방위군(People’s Defence Force, PDF)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군부는 동요하지 않는다. 아세안을 비롯한 지역 기구와 지역 국가들, 미국, 유럽을 위시한 서방국가들, 국제연합(UN)의 비판도 상황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2. 2021년 미얀마와 아세안

 

1948년 미얀마의 독립 이후 지금까지 70년 넘는 역사 가운데 군부통치가 아닌 시기는 길게 잡아도 1948~1962년까지 14년, 그리고 2015년부터 2020년까지 5년, 도합 19년에 불구하다. 54년간 군부통치를 경험했다. 국제사회의 압력과 설득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이었던 미얀마 군부는 2011년 갑작스럽게 정치적 개혁과 자유화 조치를 단행했다. 자유화 조치 4년 만인 2015년 선거에서 아웅산 수찌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이 정권을 잡았고 미얀마의 정치적 자유화,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2020년 11월 5년 만에 다시 치러진 선거에서 민족민주동맹은 또 승리했고 2021년 2월 1일 이 선거 결과에 따라 의회가 소집될 예정이었다. 두 번째 민간정부 출범을 눈앞에 둔 바로 그날 군부는 쿠데타로 미얀마 정치적 자유화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1997년 미얀마가 아세안의 회원국이 된 이후 미얀마는 아세안의 정치적 부담이었다. 아세안은 어렵게 마련된 미얀마 정치적 자유화가 계속되어 이런 정치적 부담을 해결하기를 바랐다. 2021년 2월 쿠데타는 이런 아세안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아세안과 개별 아세안 회원국의 반응이 쏟아졌다. 쿠데타 당일 아세안은 의장성명을 통해 정상으로 복귀,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호소하며 아세안 헌장(ASEAN Charter)의 민주주의, 법치, 인권, 자유를 언급했다(ASEAN 2021, 1).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도 성명을 발표해 정상으로 복귀와 민주화 과정 회복을 호소했다(Ministry of Foreign Affairs, Singapore 2021/03/02). 곧이어 브루나이(2월 24일), 인도네시아 (2월 8일), 태국 (3월 1일, 3월 11일), 필리핀 (2월 9일, 3월 3일), 캄보디아(3월 9일) 등 다른 아세안 회원국도 미얀마 상황에 대한 우려를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Al Jazeera 2021/02/01). 인도네시아 외교장관 레트노 마르수디(Retno Marsudi)는 아세안 주요국 외교장관 논의를 통해 아세안 차원의 대응을 모색하는 동시에 2월 24일 태국을 방문 중인 미얀마 외교장관을 만나 아세안 차원의 우려를 전달하기도 했다(Erwida and Koya 2021/02/24).

 

개별 국가의 반응과 대응을 넘어 아세안 전체 차원에서 움직임이 나온 것은 쿠데타가 일어난 지 거의 3개월이 다 된 4월 24일이었다. 아세안 정상은 아세안 사무국에서 회동을 가지고 미얀마 문제 해결을 위한 5개항 합의(Five-Point Consensus)를 도출했다. 미얀마 민주화 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쿠데타의 주역인 미얀마군 총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도 이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정상들은 1) 폭력의 즉각적 중단과 모든 세력의 자제, 2) 평화적 해결책 모색을 위한 건설적 대화, 3) 대화를 촉진하기 위한 아세안 의장의 특사 파견, 4) 아세안의 인도적 지원, 5) 아세안 특사단에 모든 정치세력 접근 허용 등 5개항 합의를 담은 의장성명을 발표했다(ASEAN 2021/04/24).

 

아세안이 미얀마 문제 해결을 위해 나름 합의를 도출한 점은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의장성명은 미얀마 상황에 문제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부적 갈등과 긴장을 회피하고 이를 전면에 드러내지 않으려는 아세안의 태도를 담고 있다. 아세안 의장성명은 제목에 미얀마를 언급하지 않는다. 5개항 합의는 부록처럼 별도로 달려 있다. 9개항으로 이루어진 의장 성명도 아세안 중심성 등 일반사항, 브루나이의 아세안 의장국 역할에 대한 기대와 평가, 아세안 공동체 건설에 대한 평가, 코로나-19 대응, 대화 상대국과 협력 사항 등을 모두 언급한 후 8, 9항에 미얀마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그나마 제9항은 로힝야(Rohingya) 문제로 압축되는 미얀마 라카인(Rakhine) 주 상황에 대한 언급으로 쿠데타 문제는 아니다.[1] 미얀마 쿠데타와 그로 인한 문제는 제8항과 부록으로 들어간 5개항 합의가 전부다.

 

4월 정상회의에서 합의된 5개항의 이행 과정은 더욱 문제가 많았다. 4월 정상회의에 참여했던 민 아웅 흘라잉이 귀국하자 미얀마 군부는 사실상 이 합의안을 무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아세안의 “건설적 제안을 최대한 고려하겠지만” 현재 미얀마 군부의 최우선 과제는 “법질서의 회복”과 “국내적 평화와 안정”이라고 못 박았다(Bhavan 2021/04/27). 아세안 특사의 파견은 미얀마 상황을 안정화시키기 위한 것인데, 미얀마 군부는 일단 군부가 국내 질서를 회복한 이후에야 아세안의 5개항 합의를 고려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6월 아세안 의장국인 브루나이 제2 외교장관 에리완 유소프(Erywan Yusof)와 아세안 사무총장 림족호이(Lim Jock Hoi)가 미얀마를 방문했으나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 방문은 아세안 특사와 관련해 아세안 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취해진 조치로 이들의 방문이 아세안 특사 자격인가 아닌가를 놓고 아세안 내 혼선만 가중시켰다 (Editorial Board 2021/06/10).

 

이런 혼란 끝에 특사 임명은 공식적으로 8월에 이뤄졌다. 아세안은 8월 4일 에리완 유소프를 특사로 공식 임명했다(Tom 2021/08/05). 우여곡절 끝에 임명되었지만 특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아세안은 아웅산 수치에 대한 접근과 면담이 허용되지 않는다면 미얀마에 특사를 파견할 수 없다는 조건을 걸었고, 미얀마 군부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Grant 2021). 10월에 파견 예정이었던 아세안 특사의 일정은 연기되었다. 아세안 특사 파견이 답보 상태를 거듭하고 있는 사이 하반기 아세안 정상회의가 다가왔다. 미얀마 문제를 다루는 아세안의 의지와 능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은 아세안 특사 파견을 둘러싼 여러 실수로 인해 증폭되었다. 국제사회는 아세안이 지금까지 보여온 행태로 볼 때 미얀마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비판했다. 아세안으로서는 이런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모종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아세안은 화상회의로 치러진 10월 말 아세안 정상회의에 미얀마 대표를 초청하지 않기로 결정했다(ABC News 2021/10/16).

 

아세안 입장에서는 미얀마를 회원국으로 가지고 있는 아세안이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에 미온적이라는 비판에 어떻게든 반응을 해야만 했다. 미얀마 배제는 아세안의 입장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조치였다. 논리적으로 아세안은 미얀마를 배제할 수 없다. 아세안의 의사결정은 특별한 반대의 부재라는 만장일치의 원칙을 따른다(Rodolfo 2006). 아세안이 미얀마를 정상회의에 초청하지 않겠다고 하면 회원국인 미얀마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미얀마 군부 이에 반발했을 것이고 미얀마는 정상회의에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세안이 미얀마를 정상회의에서 배제했다는 것은 미얀마 배제에 관한 아세안 내 합의에서 미얀마는 제외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확대 해석하자면 미얀마 배제에 관한 의사결정에서 미얀마는 회원국으로서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얀마의 회원국 지위를 간접적으로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기술적으로 미얀마를 아세안에서 배제함과 동시에 아세안 차원에서 미얀마의 현 군부를 미얀마의 합법적 정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메시지가 이 결정에 포함되어 있다.

 

상징적으로 미얀마의 정상회의 배제가 주는 메시지는 있지만 실질적 효과에서는 제한적이다. 미얀마 군부를 정상회의에서 배제하든, 아세안이 미얀마를 인정하지 않든 미얀마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군부의 통치에는 직접 영향을 줄 수 없다. 군부가 아세안 정상회의를 앞두고 5,000명이 넘는 정치범들을 석방하는 유화 제스처를 취하기는 했지만, 이런 군부의 제스처가 군부의 통치를 약화시키지도 않았고, 미얀마 내 민주주의와 인권 상황을 해결하지도 못했다(BBC 2021/10/18).

 

3. 두 번의 봉합, 세 번째 실패

 

2021년 미얀마 군부 쿠데타와 그에 따른 아세안의 부담은 이미 1990년대부터 예견된 사태였다. 1990년 선거 결과를 뒤집고 권력을 공고히 한 미얀마 군부는 정당성을 얻기 위해 대외 개방을 통한 경제성장을 추구하면서 아세안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가입한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와 달리 미얀마의 아세안 가입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국제사회의 압력과 아세안 내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얀마를 아세안에 가입시킨 것이 아세안과 미얀마 사이 악연의 시작이었다. 미얀마가 아세안에 가입을 추진하던 시기는 국제사회, 특히 서방국가들이 미얀마에 본격적으로 경제적 압력을 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1988년 민주화운동을 억누른 미얀마 군부는 정당성을 얻기 위해 마지못해 실시한 1990년 총선에서 민족민주동맹에게 크게 패배했다. 군부는 선거 결과를 무효화하고 집권을 이어나갔고 국제사회는 이에 크게 반발하며 선거 결과에 따른 의회 소집, 군부 퇴진을 요구했다. 미국, 유럽을 위시한 국제사회가 미얀마에 경제적 제재를 실시했다. 미얀마의 아세안 가입은 이런 상황에서 추진되었다.

 

미얀마의 아세안 가입은 미얀마 군부 정권에 정당성을 부여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얀마 민주주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국제적인 비난이 아세안에 쏟아졌다. 유럽의 반대가 매우 강했다. 유럽연합은 1996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에 미얀마 대표단이 참가하는 것을 금지했다. 같은 해 유럽연합은 미국의 선례를 따라 모든 고위공직자의 미얀마 방문을 금지했고, 미얀마 군부 인사의 유럽 방문 역시 금지했다. 이 조치로 인해 아세안 회원국이 되더라도 미얀마는 아셈 회의에 참석할 수 없었다. 마찬가지로 유럽연합도 미얀마를 회원국으로 가진 아세안이 주최하는 회의에는 참여할 수가 없었다(Alice 2009, 122-123). 캐나다도 미얀마 회원가입을 들어 아세안과 협력 사업을 중단했다. 미국은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미얀마에 경제적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런 국제적인 압력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은 1995년부터 미얀마의 가입을 위한 제도적 준비를 하나씩 해나갔다(Stephen 2010, 336).[2] 미얀마의 회원가입을 위한 논리를 만들어 냈다. 흔히 건설적 관여(constructive engagement)라 불리는 주장이다. 미얀마와 같이 군부통치, 민주주의, 인권 문제를 가지고 있는 국가를 그냥 내버려 두고 변화하기를 바라기보다는 아세안 내로 끌어들여 대화와 유인을 통해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아세안은 역설했다(Rodolfo 2006, 131-135).[3] 물론 아세안 국가 모두의 입장이 동일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보다 자유주의적이었던 필리핀과 태국 정부는 미얀마 가입에 대해 유보적이었고, 권위주의적 통치하의 인도네시아, 1997년 의장국을 맡은 말레이시아는 미얀마 가입에 대해 보다 긍정적이었다. 미얀마의 아세안 가입은 미얀마라는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적당히 마무리하고 넘어간 첫 번째 봉합이었다.

 

첫 번째 논란에서 적당히 마무리하고 넘어간 문제는 곧 두 번째 논란을 배태했다. 아세안은 알파벳 순으로 회원국이 돌아가면서 의장국을 맡는다. 2006년 아세안 가입 9년 만에 미얀마가 의장국을 맡을 순번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한번 미얀마를 둘러싼 폭풍이 몰려오고 있었다. 2005년까지 미얀마의 민주주의, 인권 상황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안으로 끌어들여 미얀마를 변화시키겠다는 1997년 아세안의 논리는 무의미해졌다. 미국은 미얀마가 의장국을 맡는다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 참석을 보이콧하겠다고 선언했다. 2005년 당시 영국 외교장관 이안 피어슨(Ian Pearson)은 미얀마가 2006년 아세안 의장국을 맡는다면 미국과 유럽은 아세안 관련된 모든 회의에 불참할 것이라 발표했다(Al Jazeera 2005/07/26). 아세안 국가들은 미얀마 군부와 사전 협의를 통해 미얀마 스스로 의장국 차례를 한 차례 건너뛰는 선언을 하는 것으로 문제를 대강 봉합했다(Murray 2005). 아세안은 외부의 압력을 무마하고 미얀마는 체면을 차린 임시방편이었다. 아세안이 미얀마 문제를 적당히 처리하고 넘어간 두 번째 장면이다.

 

두 번의 기회에서 미얀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덮어두고 갔던 아세안의 과거가 2021년 아세안의 곤란한 상황을 자초했다. 2021년에는 단순한 아세안의 행태뿐만 아니라 아세안의 근본 원칙까지 도마에 올랐다. 아세안은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다자협력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의 국제관계, 다자협력에서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아세안 회원국 내 쿠데타에 대한 문제도 효과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지역기구가 어떻게 지역 내 보다 큰 국가를 포함하는 다자협력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다(Aaron 2021). 강대국 틈바구니에 낀 아세안은 아세안 중심성이라는 담론에 기반해 지역 내에서 존재 의미를 찾아왔다. 나아가 미얀마 문제를 놓고 아세안 내 의견 충돌은 ‘아세안의 단결(ASEAN Unity)’까지 흔들었다.

 

1997년, 2005년 그리고 2021년 미얀마 문제와 그에 대한 아세안 대응의 밑바탕에는 ‘아세안의 방식(ASEAN Way)’이라는 원칙이 있다. 아세안 회원국 내 문제에 대해서 내정으로 치부하고 이에 간섭하기를 꺼려온 아세안의 방식과 같은 전통은 지금까지 아세안 회원국들이 아세안 무대에서 자신의 국내 문제로 인해서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일종의 안전장치로 작용해왔다. 아세안 국가들은 아세안 내부의 문제를 드러내고 솔직하게 논의하고 당장 고통이 있더라도 문제를 바로 해결하기보다는 적당하게 타협하고 이면에서 합의하는 방식을 선호해왔다. 아세안 회원국들은 이런 안전장치와 행동방식을 스스로 폐기하고 한 단계 높은 지역협력으로 나갈 유인이 부족하다. 이런 아세안의 태도가 1997년, 2005년의 미얀마에 관한 타협을 만들어 냈고, 이때 해결하지 못한 미얀마 문제는 2021년 또다시 아세안에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4. 글을 마치며

 

2021년 2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이후 아세안은 문제 해결에 있어 또 한 번의 한계를 노정했다. 아세안의 방식에 안주한 아세안, 아세안이라는 지역 기구 뒤에 숨은 아세안 개별 국가들은 미얀마 상황 해결을 위해 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국제적인 여론에 등이 떠밀려 개최한 4월 정상회의에서 도출된 5개 항의 합의도 이행되지 못했다. 아세안 특사를 임명하는데 아세안 국가들은 혼선을 빚었고, 4개월 만에 임명된 아세안 특사도 미얀마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했다. 군부에 가로막혀 군부세력을 반대하는 쪽에는 접근이 불가능했다. 높아지는 비판 속에 아세안은 10월 말 정상회의에 미얀마를 초청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논리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아세안이 미얀마에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지 않음으로 미얀마의 회원국 자격과 지위에 대한 암묵적 메시지를 전달했는지는 몰라도 명확하게 미얀마 군부세력을 비난하거나 미얀마 회원국 자격에 대해 언급하지도 못했다. 어쩌면 아세안 내에서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인식이 만연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미온적인 대응은 결국 아세안에 부담으로 돌아온다. 아세안의 중심성, 아세안 단결 등 아세안의 중요한 원칙들이 미얀마 사태를 계기로 큰 타격을 입었다.

 

물론 지난 일 년 동안의 과정 속에 아세안 만을 탓할 수는 없다. 2월 1일 쿠데타가 일어나자 들끓었던 국제적인 여론, 미얀마 군부에 대한 비난, 언론의 관심은 3~4개월 만에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미얀마에서 군부에 대한 투쟁은 오롯이 미얀마 국민들의 몫이 되었고 이들을 외부에서 지원하는 소리는 잦아들었다. UN 안보리도 중국, 러시아라는 상임이사국의 반대에 가로막혀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국제사회는 미얀마에서 관심을 거두고 국내 코로나-19 대응으로, 미-중 경쟁으로 관심을 옮겨갔다. 그러는 사이 오히려 아세안에 대한 비판은 증가했다. 물론 아세안의 대응이 바람직했던 것은 아니다. 효과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가면서 국제사회는 미얀마 상황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역할을 하기보다 미얀마를 회원국으로 두고 있는 아세안에 대한 비판 수위만 높여갔다. 미얀마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력했던 국제사회가 아세안을 희생양으로 삼고 아세안에 대한 비판으로 자신들의 도덕적, 윤리적 책임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

 

참고 문헌

 

Aaron Connelly. 2021. "The coup in Myanmar and the threat to ASEAN centrality." The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 March 1.

ABC News. 2021. “ASEAN members elect not to invite Myanmar`s military leader Min Aung Hlaing to summit.” ABC News. October 16.

Alice D. Ba. 2009. (Re)Negotiating East and Southeast Asia: Region, Regionalism, and the 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Stanford: Stanford University Press. Pp. 122-123.

Al Jazeera. 2005. “Myanmar to forgo Asean chairmanship.” Al Jazeera. July 26.

Al Jazeera. 2021. “‘Serious blow to democracy’: World condemns Myanmar military coup.” Al Jazeera. February 1.

ASEAN. 2021. “Chairman’s Statement on the ASEAN Leaders’ Meeting.” April 24 (https://asean.org/wp-content/uploads/Chairmans-Statement-on-ALM-Five-Point-Consensus-24-April-2021-FINAL-a-1.pdf).

ASEAN. 2021. “ASEAN Chairman’s Statement on The Developments in The Republic of The Union of Myanmar.” January 1 (https://asean.org/asean-chairmans-statement-on-the-developments-in-the-republic-of-the-union-of-myanmar/).

BBC. 2021. “Myanmar to release 5,000 prisoners held over coup.” BBC. October 18.

Bhavan Jaipragas. 2021. “Myanmar’s junta to consider Asean’s five-point consensus after ‘stabilising’ the country.” South China Morning Post. April 27.

Editorial board. 2021. “Brunei’s disastrous mission.” The Jakarta Post. June 10.

Erwida Maulia and Koya Jibiki. 2021. “Indonesia and Myanmar foreign ministers meet in Bangkok.” Nikkei Asia. February 24.

Grant Peck. 2021. “Envoy aborts visit to Myanmar, straining ASEAN relations.” AP News. October 15.

Ministry of Foreign Affairs, Singapore. 2021. “Minister for Foreign Affairs Dr Vivian Balakrishnan’s Intervention at the Informal ASEAN Ministerial Meeting on 2 March 2021 at 1600hrs.” March 2 (https://www.mfa.gov.sg/Newsroom/Press-Statements-Transcripts-and-Photos/2021/03/02032021-IAMM)

Ministry of Foreign Affairs, Malaysia. 2021. “LATEST SITUATION IN MYANMAR.” February 2 (https://www.kln.gov.my/web/guest/-/latest-situation-in-myanmar).

Murray Hiebert. 2005. “Myanmar Yields Asean-Chair Turn to Defuse Tension.” The Wall Street Journal. July 27.

Rodolfo C. Severino. 2006. Southeast Asia in Search of an ASEAN Community: Insights from the former ASEAN Secretary-general. Singapore: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Pp. 34-35.

The Irrawaddy. 2022. “Head of Myanmar’s Shadow Govt Vows to Continue ‘Second Struggle for Independence’” The Irrawaddy. January 5.

Tom Allard. 2021. “ASEAN appoints Brunei diplomat as envoy to Myanmar.” Reuters. August 5.

 


 

[1] 로힝야 문제에 관한 언급도 미얀마에서 꺼리는 로힝야족의 직접적인 언급 대신 이 문제가 주로 발생하는 미얀마 ‘러카인주 상황(situation in the Rakhine State)’이라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2] 아세안은 1994년 미얀마를 아세안회의에 초청에 아세안우호협력조약(Treaty of Amity and Cooperation in Southeast Asia, TAC)에 서명하게 했다. 미얀마 군부는 이듬해 아웅산 수치의 가택연금을 해제하고 아세안 옵서버 자격을 얻었다. 1996년에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SEAN Regional Forum, ARF)에 미얀마가 회원국으로 참여할 수 있었고, 마침내 1997년 아세안에 가입했다. Stephen McCarthy. 2010. “Burma and ASEAN: A Marriage of Inconvenience.” in Lowell Dittmer. Burma or Myanmar: The Struggle for National Identity. Singapore: World Scientific Publishing. p. 336.

[3] 보다 자세한 내용은 Rodolfo C. Severino. 2006. Southeast Asia in Search of an ASEAN Community: Insights from the former ASEAN Secretary-general. Singapore: Institute of Southeast Asian Studies. Pp. 131-135.

 


 

저자: 이재현_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정치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호주 Murdoch Universit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ARF Eminent and Expert Persons’ Group (EEP) 멤버, 외교부 정책자문위원,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자문위원, 전 한국동남아연구소 전임연구원, 전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객원교수를 역임하였다. 관련 연구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신남방정책의 역할” (2018), “비정형성과 비공식성의 아세안 의사결정” (2019), “G-Zero 시대 글로벌, 지역 질서와 중견국” (2020)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전주현,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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