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33년 만에 쿠데타를 다시 경험한 미얀마는 혼돈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세안이 별다른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중국이 ‘속된 실용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반면, 10년의 개혁 개방 시기를 보낸 미얀마 국민들은 한층 고양된 시민의식으로 시민불복종운동(CDM)을 주도하고 민족통합정부(NUG)를 설립하는 등 다각도에서 민주화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박은홍 성공회대 교수는 미얀마 군부와 암묵적 동맹관계에 있는 국가들이 대부분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 하에 놓여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땃마도-민주진영-국제사회’에 관한 포스트 쿠데타 국면을 언급하며, 미얀마 ‘봄의 혁명’이 ‘새로운 아시아적 가치’의 창출의 기회라고 주장합니다.

1. 시민불복종운동(CDM)이 출범시킨 유일 합법 민족통합정부(NUG)

 

미얀마가 위기에 휩싸인 지 1년이 되었다. 2021년 2월 1일 새벽, ‘국가 안의 국가’로 불리는 미얀마 군부 땃마도(Tatmadaw)가 쿠데타를 단행했다. 33년 만의 쿠데타이다. 민아웅 흘라잉 군총사령관이 이끄는 쿠데타 세력은 아웅산 수찌 국가 고문과 윈민 대통령을 비롯해 민족민주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 당 간부들을 구금하고 1년간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였다. 2020년 11월 8일 선거 이후 유령처럼 떠돌던 군부 쿠데타 소문이 현실화 됨으로써 아웅산 수찌가 이끄는 NLD 정부가 집권 2기에 진입하기 직전 붕괴된 것이다.

 

2016년 3월 1기 NLD 정부(2016-2021)가 출범했을 당시 내건 공약은 2008년 헌법 개정, 소수민족과의 화해를 통한 평화 정착, 경제 부흥을 통한 빈곤으로부터의 탈피였다. NLD 정부는 이중 땃마도의 특권을 보장해놓은 2008년 헌법 개정에 주력했다. 일각에서는 NLD 정부가 땃마도가 개헌을 수용하도록 중국의 힘까지 빌리려 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2016년 NLD 정부가 출범했을 당시 아웅산 수찌가 가장 먼저 방문한 나라는 중국이었다. 로힝야 인권 문제로 서방과의 관계가 불편해지자 수찌의 친 중국 행보는 뚜렷해졌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해 2·1 쿠데타를 두고 내정 불간섭이라는 명분 뒤에 숨더니 결국은 군사정권을 묵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친중 노선을 걸었던 아웅산 수찌와의 외교적 신의를 저버린 것이다. 특히 국익에 도움에 된다면 자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는 정부와의 우호적 외교관계도 상관없다는 중국의 ‘속된 실용주의(vulgar pragmatism)’는 유엔 안보리의 군부 쿠데타 규탄 결의안을 막아냈다. 그 결과 미얀마 국내에 반중 정서가 급속도로 확산되었고, 심지어 쿠데타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반면 쿠데타를 두고 미얀마 민주진영은 발빠르게 대응했다. 쿠데타 직후, 11월 8일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을 대표하는 연방의회대표위원회(Committee Representing Pyidaungsu Hlutaw, CRPH)가 결성되었고, 이어 4월에는 임시정부격인 민족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 NUG)가 출범하였다.

 

현재 미얀마는 지난 해 9월 NUG가 땃마도를 상대로 저항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에 내전 상황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NUG는 미얀마 영토 안에 존재하는 지하정부이자 땃마도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30년 전 해외 망명정부였던 버마민족연립정부(National Coalition Government of the Union of Burma, NCGUB)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NUG는 민선 정부를 무너뜨린 민아웅 흘라잉 불법집단을 대체할 제반 정치세력을 조직해내고 있고, 특히 70년 동안 지속되어온 소수민족들과의 분쟁상황을 끝내기 위해 명실상부한 연방 민주주의 구축을 선언했다. 이러한 뉴 미얀마를 만드는 프로젝트에는 쿠데타 직후부터 시민불복종운동(Civil Disobedience Movement, CDM)을 주도해온 시민사회의 영향력이 지대하다.

 

10년의 개혁·개방 시기를 보내면서 미얀마 국민들의 시민의식은 한층 고양되었다. 이는 2·1 쿠데타가 일어난지 1년이 지났는데도 지속되고 있는 CDM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동안 CDM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장교와 병사들의 병영 이탈이 이어졌고, 이를 기회로 청년층이 주도하고 있는 시민방위군(People's Defence Force, PDF)의 공세가 탄력을 받았다. PDF의 일환으로 외지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청년들이 도시로 다시 들어와 군부를 위협하는 무장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군부 기업으로 알려진 이동통신회사 마이텔(Mytel) 소유의 중개탑들(towers)이 PDF로부터 집중 공격을 당했다. 정당방위 차원에서 ‘조직화된 폭력적 저항(organized violent revolt)’이 시작된 것이다. CDM에서 분화된 PDF는 소수민족무장단체(Ethnic Armed Organizations, EAOs)와 함께 땃마도를 대체할 미래의 연방군으로 기대되고 있다.

 

2. 아세안(ASEAN)의 무능과 중국의 ‘속된 실용주의(vulgar pragmatism)’에 분노한 미얀마 국민

 

11·8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쿠데타 직후 긴급 결의로 구성한 CRPH는 쿠데타 초기에 민아웅 흘라잉을 수장으로 하는 군부세력을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규정하고 국제사회를 향해 이들을 인정하지 말 것을 요청한 바 있다. 이러한 미얀마 민주진영의 요청에 국제사회, 특히 미얀마를 회원국으로 두고 있는 아세안(ASEAN)의 부담은 클 수밖에 없었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들은 2011년 정치 개방이 시작되기 전까지 20여 년 동안 군부 폭정 하의 미얀마에 대한 제재를 단행한 바 있다. 무기 거래 중단, 군 출신 외교관 추방, 군 고위급 간부 비자 발급 불허, 인도적 구호를 제외한 일체의 양자 원조 중단 등을 실행했다. 특히 미국은 군부 통치 하의 미얀마를 ‘폭정의 전초기지(outpost of tyranny)’로 규정했다. 반면 내정 불간섭을 규범으로 삼고 있는 아세안은 ‘건설적 관여(constructive engagement),’ 즉 일종의 ‘포용을 통한 변화’ 차원에서 서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97년 미얀마를 아세안에 가입시켰다. 그렇지만 이듬해 아세안 장관 회의에서 태국 외무장관에 의해 제안된 ‘유연한 관여(flexible engagement)’ 개념은 내정 불간섭이라는 아세안 규범을 넘어서는 것으로서 아세안 회원국의 국내 정책이 다른 회원국들에게 부정적 여파를 미칠 경우 이를 공개 토론에 부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미얀마에서 일어난 군부 쿠데타 이후 이러한 아세안 규범의 변화 움직임은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아세안은 내전 상황으로 악화된 미얀마 위기에 이렇다 할 대처를 못하였다. 단적인 예로 지난해 4월 쿠데타의 주역인 민아웅 흘라잉을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로 불러 미얀마의 평화 회복을 위한 다섯 가지 합의사항을 받아냈지만 이 중 어느 하나 이행된 것이 없다.

 

결국 지난해 10월 아세안은 정상회의에 민아웅 흘라잉의 참여를 배제하는 강수를 두었지만 미얀마 군부는 미동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급기야 2022년 새해 들어 아세안 의장국인 캄보디아 총리 훈센이 미얀마를 전격 방문, 민아웅 흘라잉의 환대를 받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에 대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일부 아세안 국가들이 반발하자 훈센은 미얀마 군사정부에 대해 다소 강경한 태도로 선회했다.

 

국제사회의 눈총을 아랑곳하지 않는 땃마도의 무시 전략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아웅산 수찌의 NLD가 압승한 1990년 5월 총선 결과를 뒤엎은 미얀마 군부에 대한 미국 등 서방의 제재가 가중되기 시작했을 때도, 군부와의 투쟁을 응원하는 차원에서 아웅산 수찌에게 노벨평화상이 주어졌을 때도 군부는 요지부동으로 일관했다.

 

이러한 미얀마 군부의 태도는 이들에게 우호적인 국제사회와 무관하지 않다. 이를테면 지난해 3월 27일 쿠데타 군부가 관장한 국군의 날 기념식에 중국,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들과 태국, 베트남, 라오스 등과 같은 아세안 국가들이 외교사절단을 보냈다.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던 같은 시간에 군과 경찰은 CDM을 벌이고 있던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하였다.

 

특히 땃마도의 반인륜적 행위를 눈감으며 그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는 듯한 중국의 속된 실용주의가 미얀마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중국은 자신들이 그리도 강조하는 내정 불간섭 원칙을 이행하려 했다면 미얀마 군부 땃마도와의 관계를 끊고 군부와 반(反)군부 어느 진영도 지지하지 않는 불가담의 외교를 보여주었어야 했다.

 

냉전 시기 중국은 땃마도 통치하의 미얀마를 있게 한 장본인인 1962년 군부 쿠데타의 주역 네윈 장군이 친미나 친소가 아닌 비동맹 고립노선 ‘버마식 사회주의의 길(Burmese way to socialism)’을 걷는 이상 적대시할 필요는 없었다. 그랬기에 네윈 휘하의 군부가 전격적으로 국유화 조치를 실행하면서 화인(華人)들의 재산을 강탈했을 때도 중국 정부는 이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인내하였다. 네윈이 이끄는 일단의 군부 엘리트들이 실행한 국유화 정책은 자력갱생 모델(autarky model)의 전형이었다. 이들의 목표는 뚜렷했다. 하나는 독립 이후에도 광공업, 상업 분야에서 경제 기반을 구축하고 있던 외국인의 경제 지배를 종식하고 경제의 버마화(Burmanization)를 성취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신(新)식민주의의 침투’를 막아내어 다시는 외국의 지배를 받지 않는 온전한 자주·자립 경제를 창출하는 것이었다. ‘버마식 사회주의’를 내건 군사혁명 엘리트들은 불교와 사회주의의 결합을 선언하는 등 유물론과 거리를 두는 일종의 비공산주의적 좌파(non-communist left)였지만 이들의 혁명노선은 공산주의 모델과 매우 흡사했다.

 

3. 아시아의 비(非)자유주의적 지배구조와 ‘포복형 중국화(creeping sinicization)’

 

현재에 이른 미얀마를 보면 레이건 정부 시기 극우 성향 외교 노선의 중심에 있었던 진 커크패트릭(Jeane Kirkpatrick)의 ‘반공 우파 독재가 전체주의적 좌파 독재보다 낫다’는 냉혹한 체제 비교론이 얼마나 정확했는지를 알 수 있다.

 

요컨대 버마식 사회주의를 천명했던 땃마도의 혁명노선은 버마를 정치적으로는 군부 지배 전체주의 체제의 전형으로 만들었고, 경제적으로는 국가의 실패에 따른 부족의 경제(the economy of shortage)로 전락시켰다. 반면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이 중심이 되었던 반공성향의 아세안 회원국들은 ‘독재자 클럽’이라는 조롱을 받기는 하였지만 추격 성장(catch-up growth)을 이루어냈다. 예컨대 싱가포르 정부가 ‘아시아적 가치(Asian value)’ 담론을 띄울 수 있었던 것도 경제 기적을 이루어낸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여기에서의 ‘아시아적 가치’ 혹은 ‘아시아성(Asianess)’의 핵심은 국가 규율에 대한 복종의 문화이자, 경제적 성과(economic performance)에 기반한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의 승리주의(illiberal governance's triumphalism)에 대한 대중들의 인정과 지지이다. 탈냉전 시기로 접어들면서 아시아적 가치 담론은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으로 표현되는 자유주의적 승리주의(liberal triumphalism)에 도전하였다.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를 옹호하는 아시아적 가치 담론은 ‘보다 많은 규율, 보다 적은 자유(more discipline less freedom)’를 미덕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리콴유나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가 주조해낸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illiberal governance)와 땃마도의 비자유주의적 지배 구조의 차이는 극명하다. 전자가 대외적으로는 개방 정책, 대내적으로는 효율적 관료제를 기반으로 높은 경제적 성과를 냈다면, 후자는 고립주의를 취하면서 군부 엘리트에 특혜를 할당하는 정실주의(nepotism)를 만연시켰기 때문에 한 나라를 최빈곤 국가로 추락시켰다.

 

그나마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에서 개혁·개방 정책을 편 테인세인 정부(2011-2016)는 성과 정당성(performance legitimacy)을 기대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2008년 헌법에 근거, 대부분의 행정을 군이 통제하는 규율 중시 민주주의(discipline-flourishing democracy)는 능력 본위 지배 구조로의 개혁에 장애가 되었다. 아웅산 수찌의 NLD 정부가 들어섰지만 50년 넘게 고착된 군부 지배의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를 혁파하기가 용이하지 않았던 배경이다. 특히 2008년 헌법에 따라 내무행정의 최고 관리자가 군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러기에 2008년 헌법의 대폭 개혁 없는 미얀마의 정상국가화는 가능하지 않았다. 2008년 헌법을 바꾸지 않고는 평화와 번영은 없다는 아웅산 수찌와 NLD에 미얀마 국민들이 선거 때마다 연거푸 절대적 지지를 보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이러한 ‘NLD 신드롬’은 땃마도에게 규율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 그들이 그어놓은 ‘넘지말아야 할 선’을 넘으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땃마도는 이러한 상황을 쿠데타라는 시대착오적인 군사행동으로 대응했다. 국민의 부모를 자처하는 땃마도가 그들 집단의 특권을 수호하기 위해 합헌적 쿠데타까지 가능하게 한 2008년 헌법에 기대어 무모한 행동을 벌인 것이다.

 

1년 전 쿠데타 이후 CDM, 즉 시민불복종운동은 ‘봄의 혁명’을 상징하는 용어가 되었다. 시민 불복종이란 개념은 자유주의를 보편적 가치로 삼은 서구에서 탄생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구 열강은 자유주의를 자국의 국경 안에서만 허용하고 식민지인의 자유권은 무시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임으로써 식민주의를 반대하는 비자유주의적 민족주의 운동을 태동시켰다. 이를테면 미얀마 독립투쟁의 주역인 땃마도의 극단적 민족주의 노선도 분할지배정책을 일삼았던 영국 식민주의와의 투쟁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식민종주국 네덜란드와의 민족독립 투쟁 과정에서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자들과 일본 파시스트 세력 간의 연대가 이루어졌다.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의 경우도 민족주의자들이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프랑스, 미국과 같은 강대국들의 식민주의와 투쟁하면서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를 대안으로 삼았다. 비(非)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되는 아세안 국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국의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의 기원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다. 탈식민화 과정에서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의 수용 정도의 차이는 내부식민주의(internal colonialism)로서의 국가주의로부터의 해방을 공통배경으로 하지만 자유민주주의를 향해서는 '불균등 속도를 보이는 아시아(multi-speed Asia)'를 주조해냈다.

 

특히 중국 공산당국은 1989년 6월 4일 천안문 민주화 시위를 유혈 진압한 과거사를 안고 있으면서도 이렇다할 시민사회의 도전을 받지 않고 건재하다. 그러기에 중국 공산주의 모델은 아시아에서 민주주의에 반하는 학습 교재가 되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에서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의 유지와 확대에 촉진 요인이 되고 있다. 일례로 태국에서 2014년 5월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미국 등 서방으로부터는 비난이 있었지만 쿠데타 군부를 묵인해준 국가가 바로 중국이었다.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포복형 중국화(creeping sinicization)’ 현상이다.

 

미얀마 군부 땃마도 역시 반식민주의 운동의 주역이었지만 이제는 반세기가 넘도록 자국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또 다른 식민주의자이다. 2011년 3월 테인세인 개혁·개방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미얀마 국민은 자유권을 철저히 유린당한 ‘군부 수호자주의(military guardianship)’에 갇혀 있었다.

 

그러나 지난 2·1 쿠데타 이후 미얀마 국민들은 이러한 악몽 국가(nightmare state)로의 회귀를 꾀하는 군부와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자유주의 사상이 연원인 CDM이 토대가 되는 NUG는 소수민족들의 자치권을 대폭 보장하는 자유주의적 지배구조로서의 연방 민주주의를 선언했다. CRPH는 연방 민주주의 건설을 향한 연방민주주의헌장(Federal Democracy Charter)을 공표함과 동시에 2008년 헌법의 폐기를 선언했다. 연방민주주의는 버마족 중심주의(Burman centralism)로부터 탈피하지 못하고 아웅산 수찌 1인의 카리스마에 갇혀 있었던 기존 NLD 중심의 지배구조와는 뚜렷한 차이를 갖는다. 이러한 변화는 CRPH와 NUG의 대표, 제(諸) 정당, 시민사회단체, 총파업위원회(General Strike Committee, GSC), CDM, 소수민족무장단체(EAOs) 등으로 구성되는 민족통합자문위원회(National Unity Consultative Council, NUCC)가 추동해나갈 것이다. ‘봄의 혁명’을 이끄는 다양한 주체로 구성된 NUCC는 혁명평의회이자 제헌의회이다. 나아가 다수의 횡포(tyranny of majority)라는 다수결 민주주의의 결함을 넘어서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가 실험되고 있는 소통정치의 장이다. 영국 식민지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단결 투쟁과 독립 후 연방국가 건설에 합의했던 핀롱회의(Panglong Conference)의 재현이 기대되는, 뉴 미얀마를 만들어갈 중추조직이다.[1]

 

4. ‘새로운 아시아적 가치’의 지평은 초국적 의의를 갖는 ‘봄의 혁명’에서부터

 

땃마도와 암묵적 동맹관계에 있는 국가 대부분은 저항권을 통제하는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 하에 있다. 그리고 이들 동맹의 선두에는 중국이 있다. 하지만 진마웅 NUG 외교부 장관은 미얀마 민주진영에 대한 주변 대국들의 우호적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중국이 NUG와 땃마도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는 태도를 보이려 한다고 판단한다. [2] 중국을 배척 대상이 아닌 변화 가능성 있는 견인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적극 외교(active diplomacy)는, 우선 작년 쿠데타 이후 싱가포르와 같은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 하에 있는 나라들도 땃마도를 향해 즉각적인 폭력중단을 촉구하는 ‘고급 실용주의(cultivated pragmatism)’를 보여주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말레이시아도 온전한 자유주의적 지배구조 하에 있다고 볼 수 없음에도 쿠데타에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해왔다.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 하에 있는 이들 두 나라는 국익 중심 외교를 펼치더라도 자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유린하는 다른 나라 정부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마다하지 않는 실용 외교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아세안 회원국 중 안정된 모습으로 자유주의적 지배구조를 안착시키고 있는 인도네시아가 미얀마 민주 진영에 비교적 우호적인 행보를 보인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렇듯 싱가포르(S), 인도네시아(I), 말레이시아(M) 세 나라가 아세안 회원국 중 땃마도를 압박하는데 앞장서 왔다.

 

심(sim) 카드는 정보화시대에 중요한 통신수단이다. 미얀마에서는 심카드가 개혁개방 시기에 비로소 대중화되면서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공론장을 성장시켰고, 그 누적효과는 2·1 쿠데타 이후 전국적인 CDM으로 분출하였다.

 

SIM 3국이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심카드와 같은 역할을 보다 많이 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땃마도에 맞서고 있는 NUG의 외교력이 중요하다. SIM 3국과 아세안이 쿠데타 정부를 승인하지 않고 땃마도의 병영으로의 퇴각에 압박을 가할 수 있도록 NUG가 외교력을 펴야한다. 민아웅 흘라잉의 쿠데타 세력이야말로 아세안이 이룬 아세안 연계성(ASEAN connectivity)을 파괴하고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 또한 이 세력이 역내 가치사슬(regional value chain)을 교란시키고 있는 주범이라는 것에 중국, 인도와 같은 대국들이 공감하도록 SIM 3국의 힘을 빌어 총력외교를 펴야 한다.

 

<그림1> ‘포스트 쿠데타’와 땃마도-민주진영-국제사회

 

유럽의회는 2·1 쿠데타로 축출된 국회의원들을 대표하는 CRPH와 그들이 띄운 NUG만이 미얀마 국민들의 의사를 반영하고 있는 유일 합법 대표기구라는 공식 입장을 냈다. 미국도 유럽연합(EU)과 함께 쿠데타를 일으킨 민아웅 흘라잉을 중심으로 한 땃마도 지도부과 이들의 조력자들에 대한 제재에 나섬과 동시에 아웅산 수찌 등 정치범들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쿠데타 이후 독자적 제재에 나서는 등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방 진영과 행보를 맞추고 있다.

 

위 <그림1>에서 보면 B1에는 땃마도에 대해 제재를 결단한 미국, EU 등 서방 국가들과 한국 등이 포함된다. 이와는 반대로 B2에는 땃마도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 인도, 러시아 등과 같은 대국들이 속한다. 아세안도 땃마도에 우호적 국가군과 비우호적인 국가군으로 나뉜 상태이다.

 

아래 <그림2>에서 B1에서 B1'로, B2에서 B2'로의 변화가 가능하려면 범민주진영 내 모든 정치세력이 참여하는 가장 폭넓은 정치적 대화 플랫폼인 NUCC가 총력외교, 설득외교, 적극외교를 실행해 땃마도에 우호적인 국제사회의 영향력을 줄이고, 그 대신 NUG에 우호적인 국제사회의 영향력을 키워 최소한 현재의 땃마도와 NUG의 힘의 불균형 상태를 균형 상태로 바꾸어야 한다.

 

<그림2> ‘포스트 쿠데타’ 국면 속의 땃마도-범민주진영 간 힘의 관계

 

2·1쿠데타는 정치 혼돈은 물론 경제 파국까지 감수하면서 테인세인 정부 이전 전체주의적 악몽 국가로의 회귀를 불사하겠다는 미얀마 군부 땃마도의 비이성적 행동이다. 미얀마 전 국민은 이러한 땃마도의 무모함에 맞서 세대, 성, 계층, 종족의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가 되어 저항하고 있다. 반면 쿠데타 군부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국가행정평의회(State Administration Council, SAC) 의장직과 총리직을 겸임하고 있는 절대권력자 민아웅 흘라잉 군총사령관은 애초 1년간 비상통치를 공표했다가 이후 말을 바꾸어 비상통치 기간을 2023년까지 연장하겠다고 선언했다. 군부가 2011년 개혁·개방 국면 이전처럼 정치 전면에 다시 등장해 규율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1962년 항영(抗英)·항일(抗日) 투쟁 지도부의 일원이었던 네윈 장군 주도의 쿠데타 이후 땃마도는 소수민족들에게 평등과 자결권을 보장하는 연방주의(federalism)를 거부하면서 내부식민주의(internal colonialism)를 고착시켰다. 그러기에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 종식을 전제로 연방민주헌법과 연방군을 준비하고 있는 미얀마 민주 진영으로서는 항전 이외에 다른 길이 없다.

 

미얀마 ‘봄의 혁명’이 34년 전 8888 민주항쟁 때처럼 실패로 끝난다면 미얀마는 네윈 군부 치하에서처럼 ‘시간이 정지된 땅’으로 회귀할 것이다. 비자유주의적 지배구조에 필요한 통치술을 전수하고 있는 중국화(sinicization)는 더욱 속도를 내면서 아시아에 자유 민주주의가 뿌리내리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아시아 민주주의의 미래가 뉴 미얀마 건설을 향한 ‘봄의 혁명’의 성패에 달려있다. ‘봄의 혁명’에서 아시아적 경로(Asian way)는 비자유주의적 경로(illiberal way)라는 기존 아시아적 가치 패러다임을 넘어 ‘새로운 아시아적 가치’의 지평을 열고 있는 초국적(cross-national) 의의를 발견하게 된다. ■

 


 

땃마도는 8888 민주항쟁 이듬해인 1989년에 국명을 일방적으로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꾸었다. 2012년 4월 1일 보궐선거 참여를 NLD가 결정하기 이전까지 민주진영은 군사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차원에서 버마라는 국명을 고수했다. 이 글에서는 시대적 맥락을 고려하여 버마와 미얀마 두 국명을 혼용하겠다.

[1] 2022년 1월 27일부터 29일까지 NUCC가 소집한 첫 번째 인민의회(people's asseambly)가 38개 조직, 388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2] 2022년 1월 23일 NUG 한국대표부에서 조직한 간담회에 참석한 진마웅 장관 기조연설을 참고하길 바란다.

 


 

저자: 박은홍_현 성공회대학교 정치학과 및 아시아비정부기구학과(MAINS) 교수. 동대학 아시아NGO정보센터 소장. 대표 저서로 <동아시아의 전환: 발전국가를 넘어> 등이 있고, 미얀마 관련 논문으로 “미얀마 ‘봄의 혁명’: 땃마도 수호자주의의 파국적 선택에 이르는 서사”, ”“미얀마, ‘질서있는 이행’ 모델:‘체제내 변화’에서 ‘체제 변화’로의 진화”, “미얀마2018: ‘로힝자 위기’와 민주주의 공고화의 갈림길”, “민족혁명과 시민혁명: 타이와 미얀마”, “탈식민체제로서의 ‘우리식 사회주의’의 식민성: 수카르노와 네윈 시기의 혁명노선을 중심으로”, “한국민주주의와 인권외교: 버마 군사정부에 대한 외교적 제재의 타당성” 등이 있다. 태국 국립 탐마쌋대학교 정치학부에서 수학한 바 있다. 태국 왕립 쭐라롱껀대학교 정치경제연구소 방문연구원을 지냈다.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미얀마 민족통합정부(NUG) 한국대표부 자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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