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지 일 년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사태를 둘러싼 국제사회 및 한국사회의 관심은 식어가고 미얀마 국민들의 피로도 또한 높아지고 있습니다. 미얀마 민주주의의 미래를 두고 비관적인 전망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주현 EAI 연구원은 군부 탄압과 민주화 운동의 장기화 상황을 ‘민족 통합의 꿈’과 ‘풀뿌리 연대의 부상’으로 재해석합니다. 미얀마 민주화의 주역은 반(反) 군부 시위로 한 데 뭉친 미얀마 국민임을 명확히 하면서, 국제사회 및 한국사회가 사태 당사자들의 주체성과 현장성을 우선시 하여 지원해 줄 것을 제안합니다.

※ 본 보고서는 2022년 1월 27일, 동아시아연구원 “미얀마 시민사회 역량강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최한 “미얀마 민주주의 복원, 어떻게 도울 것인가?” 미얀마 쿠데타 발발 1주년 특별 온라인 세미나를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1. 미얀마의 겨울, 쿠데타 발발 후 1년

 

미얀마는 1948년 독립 이후 70년이 넘도록 군부 통치 역사를 겪었다. 군부 주도로 2011년 급작스럽게 정치 개혁과 자유화를 경험했으나 아웅산 수치(Aung San Suu Kyi)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ational League for Democracy, NLD)이 2015년 선거에서 정권을 잡으면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점차 키워왔다. 2020년 11월 총선에서 NLD가 또 한 번의 승리를 거머쥔 후, 2021년 초의 미얀마는 두 번째 민간 정부 출범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군부는 2020년 총선을 부정 선거로 규정하고 2021년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켰다. 지금까지 1500여 명이 살해되었고 8,700여 명이 체포, 구금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1년이 넘도록 미얀마 민주주의는 봄을 맞이하지 못한 채 추위에 떨고 있다.

 

미얀마 국민들은 끊임없는 반(反) 군부 시위로 민주주의를 되찾고 이 과정에서 과거 민족 갈등을 치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내전 상황과 함께 코로나 위기마저 지속되고 복잡해짐에 따라 미얀마 국민들의 피로도는 물론이고 국제사회의 관심도도 이전보다 많이 떨어졌다. 그러나 인권 유린적 군부 통치와 시민 불복종 운동(Civil Disobedience Movement, CDM)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대내적으로는 군부의 폭력 진압은 지역 커뮤니티 단위까지 확산되면서 미얀마 국민들의 일상과 생계를 파괴하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미얀마인들이 국내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주변국 난민 캠프로 향하게 하고 있다. 한편, 민주 세력은 국민통합정부(National Unity Government, NUG)를 발족하였고, 시민항쟁군(People’s Defense Force, PDF)을 결성하였다. NUG는 한국 대표부를 시작으로 체코, 호주, 영국, 일본, 노르웨이 등에 미얀마연방공화국대표부를 설치했다. 또한 여덟 개의 무장단체, 시민단체, 여성단체 등으로 구성된 저항 시민의 연합체인 민족통합자문회의(National Unity Consultative Council, NUCC)를 창설하여 미얀마 내 다양한 세력들이 서로 연대를 논의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마련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아울러 연방 민주주의 헌법 입안과 향후 총선 전략도 논의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고자 하는 국가들과 국제사회는 성명 외교를 펼치면서 미얀마 군부의 폭력적 인권탄압을 규탄해 왔다. 지구촌 시민사회 행위자들도 기성 미디어와 SNS를 비롯한 여러 채널을 통해 군부의 잔혹성을 고발하고 있다. 특별히 한국은 지난날 자국의 민주화의 경험을 돌아보면서 미얀마 국민들을 군부 폭압으로부터 지켜주고 그들의 민주화 열망에 공감어린 응원을 보내고 있다.

 

동아시아연구원은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 NED)의 후원으로 2015년부터 “미얀마 시민사회 역량강화(Strengthening Civil Society Organizations in Myanmar)”란 프로젝트를 운영해 오고 있다. 해당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22년 1월 27일, “미얀마 민주주의 복원, 어떻게 도울 것인가?”라는 주제로 미얀마 쿠데타 발발 1주년 특별 온라인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본 보고서는 해당 세미나의 발표 및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그간의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한 저항과 연대의 내용을 돌아보면서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진단과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2. 군부 탄압 장기화의 이면, 전화위복

 

NUG는 군부 독재 타도와 함께 미얀마의 다양한 민족과의 연방 민주주의 국가 결성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반 군부 시위로 한 데 뭉친 미얀마 국민들이 연대의 경험을 바탕으로 버마족과 135개 소수민족들 간의 불협화음을 줄여 보기로 한 것은 미얀마 사태의 전화위복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민족 통합의 꿈은 2017년부터 거세게 불어온 미얀마의 민주화 바람을 체험한 2030 세대가 CDM에 적극 참여하면서 더 활발히 논의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소수민족들의 고민을 들을 기회가 이전보다 더 많아짐에 따라 미얀마 국민들 사이에서는 건강한 민주주의 국가를 이루기 위해서 ‘함께 해야 한다’는 의식이 더 짙어졌다. 이는 자연스레 NUG가 기존 NLD 정부보다 더 포용적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연방 민주주의 구축을 위한 선거 전략을 고민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로힝야 이슈를 비롯한 다양한 사안에 건설적 대화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지로도 이어졌으며, ‘현 상황은 오히려 향후 미얀마에서 군부 세력이 퇴진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줄 뿐이다’라는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결연한 선언을 동반했다.

 

NUG가 미얀마의 유일한 합법 정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며 그를 지원하는 활동이 있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PDF를 비롯한 CDM의 거침없는 항쟁이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주축이라며 이들을 지원하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중앙 차원에 국제사회와의 연대나 경제 제재 등의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커뮤니티 별로 풀뿌리 수준의 시민저항운동에 주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미얀마 민주화 운동은 다층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한편, 미얀마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군부의 전략도 교묘해지고 있다. 군부는 지금껏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이른바 “네 가지 단절 전략”을 펼쳐 왔다. 자금과 식량, 정보, 인력을 끊고 상당한 수의 민간인을 학살해 공포를 조장하는 잔혹한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이는 분명히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민주주의와 인권 가치를 수호하려는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기 쉬운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개별 국가나 풀뿌리 지역 공동체, 국제기구 등이 모니터링만 제대로 한다면 향후 미얀마 군부에 제재나 처벌 등의 조치를 내릴 때 유용하게 쓰일 증거 자료를 모을 수도 있게 되었다.

 

내정 불간섭을 방패 삼아 그간 적극적이지 않았던 아세안 내부에서 지난 10월 민 아웅 흘라잉(Min Aung Hlaing) 총사령관의 초청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내부 분열이 일어난 점도 주목할 만하다. UN 총회에서도 지난 6월 ‘미얀마로 더이상 무기가 흘러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라는 말이 오갈 정도로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강한 결의를 내비쳤다. 비록 중국이 기권을 하긴 했으나 반대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군부의 취약성 중 하나인 정당성을 걸고 넘어질 구실이 생긴 셈이다. 또한 치열한 반 군부 저항 과정에서 태국이나 인도 등지로 국경을 넘은 미얀마 국민들이 많아졌으나 한편으로는 그들의 활동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3. 민주화 운동 장기화의 이면, 풀뿌리 연대의 부상

 

미얀마 국민들은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면서 ‘공동의 문제를 마주한 사람들이 어떻게 조직체를 만들고 연대하여 변화를 이끌어낼지’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1년이 넘도록 이어온 저항 운동을 재정비하고 있다. 한국 또한 쿠데타 발발 바로 다음날부터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발표하며 미얀마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친 국가로서 그간의 인권 존중 촉구 및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조치를 평가하며 새로 준비하고 있다. 시민사회 및 국제개발협력 단체, 풀뿌리 레벨에서는 이미 점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들은 주로 성명 외교와 같이 선언적이거나 상징적인 연대의 활동은 열심히 참여해왔는데 정작 가스공사나 포스코 이슈와 같이 경제 제재와 ODA 삭감 조치를 제대로 진단하였는지 되돌아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주민운동연대는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은 이제 겨우 한 살이 된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미얀마 현지와 한국 내 미얀마 커뮤니티의 민주화 운동이 2015년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고 평가한다. 양국 커뮤니티에서 지속적인 민주화 운동을 벌이기 위해 연대의 네 가지 쟁점을 제시한다. (1)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풀뿌리 레벨에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 (2) 포스코나 이노그룹을 비롯한 일련의 기업들과 함께 군부의 경제력, 자금줄을 끊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 (3) 민 아웅 흘라잉이 선포한 차기 선거가 제대로 된 절차 속에서 민주적으로 진행되어 결국에 시민들에게 승리를 안겨줄 수 있도록 NUG의 선거 전략을 마련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4) 저항의 과정에서 유실된 커뮤니티를 일자리와 교육 등의 정책으로 복원해 가려 하는 것이 바로 그 내용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민들이 생계의 문제로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상황을 경험하지 않게끔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기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동시에 미얀마 민족 공동체의 청년들에게 민주주의 가치를 살아내는 리더십 교육을 제공하여 그들이 향후 미얀마의 지역 커뮤니티 회복 작업에 주체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그를 위해선 정부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연대의 다각화 작업이 필요하며, 풀뿌리 레벨의 연대가 중요해진다.

 

한편 국경을 넘나드는 연대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개발 협력 분야는 기술 중심의 역량 강화와 서비스 전달의 프로그램에서 진정한 의미의 권한 강화를 강조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주축으로 한 연대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미얀마처럼 국정 운영 세력이 정당성을 갖지 못하고 오히려 시민들을 탄압하고 있을 때는 협력국 정부와의 밀접한 협의와 정치와의 거리두기를 미덕 삼았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를 위해 첫걸음으로 국제개발협력커뮤니티얼라이언스는 한국 정부가 중단 및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미얀마 ODA 프로그램을 면밀히 검토해 주길 요청한다. 유상원조 사업인 미얀마 송전망 구축 사업이나 전자 정보 통합 데이터 구축 사업은 유지하면서 미얀마 국민들의 생계와 가까운 농업 및 복원 사업, 즉 무상원조 사업이 설 자리를 거의 앗아갔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미얀마 정부를 주요 대상으로 원조 예산을 집행했던 영국이나 미국, 스웨덴의 경우를 참고 사례로 들면서 미얀마 시민사회 강화와 지원을 위한 ODA 프로그램 운용을 촉구한다.

 

예를 들어 농촌 개발 사업을 벌이더라도 해당 지역 내 권력 구조를 세심히 들여다보고 크고 작은 시민 조직에서 민주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커뮤니티 구성원들 간의 변화를 주체로 삼을 것을 당부한다. 해당 사회의 정치 문화나 거버넌스 구조를 세심히 살피지 않고서 기획, 실행되는 프로그램은 기존에 존재하던 구조적 불평등, 기득권층의 특권을 오히려 더 강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미얀마의 봄맞이, 주인공은 곧 미얀마 국민들

 

동트기 직전 새벽이 가장 어둡다고 합니다. 결국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회복될 것입니다.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반드시 회복될 것이기에 양국 시민사회의 논의가 미얀마 민주주의 회복으로 한정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미얀마 민주주의 복원, 어떻게 도울 것인가?: 미얀마 쿠데타 발발 1주년 특별 온라인 세미나”

최종건 외교부 1차관 축사 중에서

 

미얀마의 민주주의는 ‘협약에 의한 민주화(pact democracy)’로 민간 정부와 군부 간의 타협에서 비롯되었다는 평을 받는다. 과거의 경험 때문일까, 관련하여 연방 민주주의 국가라는 NUG의 목표가 또 다른 타협을 주춧돌 삼는 것은 아닐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얀마 역사에 깊게 뿌리내린 군부 통치를 끝내고 성숙한 민주주의로의 길에 접어들자는 의견도 많아졌다.

 

한국의 민주화 역사만 돌아보더라도 미얀마의 민주화는 단기간에 이뤄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얀마의 민주화는 연방 민주주의 국가 설립에서 끝날 게 아니라 군부 세력의 정치적 권한 축소와 나아가 민족 통합과 국내외 이슈의 공론화 등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봄맞이를 지원하고 성원하는 마음은 여전하지만 결국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견뎌야 하는 주체는 미얀마 국민들이다.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지원 방안을 고민할 때 당사자들의 주체성과 현장성을 가장 우선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저자: 전주현_EAI 연구원. <미얀마 시민사회 역량강화>의 프로그램 매니저이자 거버넌스 및 민주주의 연구 사업의 실무자이다. 매거진리더십코리아의 기자이자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가톨릭루벤대학교 유럽학 석사,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유럽지역학 석사,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교육과 학사 교육 과정을 밟았다. 주요 관심 분야로는 독일 및 유럽 정체성, 미디어 리터러시와 세계 시민 교육, 국가별 문화원 운영 전략, 영화 평론 및 한국 문학 번역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전주현 EAI 연구원
    문의 : 02 2277 1683 (ext. 204) | jhjun@ea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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