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투표성향 통해 ‘공정’이라는 화두와 함께 차별과 불공정의 문제가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해 홍태영 국방대 교수는 한국사회의 생존경쟁이 상대방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타자화’의 논리를 확산시켰다고 지적하며, 경쟁이 아닌 연대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본 워킹페이퍼는 사회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 구성원과 공동체 사이의 균형점을 찾기 위한 원칙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EAI는 한국사회에 만연한 양극화와 진영대결, 민주주의의 후퇴, 국가 개입의 확대, ‘차별’과 ‘불공정’ 시비 등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이념으로 자유주의에 주목합니다. 4인의 저자는 한국 현대사에서 자유주의가 갖는 정파적 성격, 이론적 장점과 단점을 정치, 경제, 사회적 맥락에서 고찰하고 미래 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가능성의 논거를 제시합니다.
I. 서론: 타자란 무엇인가?
대구에서 중단된 모스크 건설은 현재 ‘중재불능’ 상태에 있다고 전해진다. 전국에 20여 개가 있는 모스크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잠재되어 있다. 코로나 19에 따른 국민재난지원을 둘러싸고도 ‘국민’이 누구인가는 중요한 문제가 된다. 다른 범죄들에 비해 유난히 부각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범죄 등 이른바 국민이 아닌 사람들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한국의 언론에 등장하고 사건화되는 것은 요즘은 일상에 가깝다. 그러한 외국인과 관련한 사건뿐만 아니라 이른바 정상적인 것과는 구별되는 ‘비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들이 최근에는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표지를 달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언론의 주목 대상이 된다. 결국 강제 전역되고 급기야 죽음으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변희수 하사 사건’은 최근의 대표적인 예이다. 트랜스젠더라는 이른바 성 정체성의 문제와 군이라는 어쩌면 가장 남성적인 집단에서 발생했던 배제의 문제가 또 한 명의 희생을 가져왔다. 지난 2021년 지방자치단체 보궐선거 특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나타난 20대 남녀의 투표 성향의 뚜렷했던 차이는 그간에 쌓여있던 젠더갈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사회 화두 중의 하나가 ‘공정’으로 등장하면서 남녀 차이 혹은 차별과 관련한 ‘불공정’의 문제가 또한 대두되었고, 지난 보궐 선거는 그 투표 성향으로서 보여주었다.
결국 이러한 갈등의 양상들은 하나의 어젠더의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문제들이 중첩적으로 포개지거나 착종되면서 획일적인 방식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러한 갈등에서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적대적 감정이 격화되면서 갈등의 상대방을 배제하고 억압하려 하면서 ‘타자화’ 현상이라는 점이다. ‘타자’란 ‘우리’라는 ‘동일성’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고 배제된 것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그런 타자에 대한 인식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항상 달라져 왔다. 우선 누구를 그 사회의 타자로 설정하느냐부터 문제가 발생한다. 글의 서두에서 비록 외국인 혹은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로 시작했지만, 그들의 문제는 극히 최근의 현상일 것이다. 해방 이후로 한정하여 한국 사회의 타자의 문제를 살펴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다양한 수준과 다양한 공간에 등장하는 타자들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나 근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집단주의의 강조 속에서 이루어진 ‘정체성 부여(identification)’의 역사적 과정이 존재해 왔고, 그러한 정체성 형성의 과정은 결국은 포섭과 강제적 동일화 그리고 그것에 동반되는 배제의 과정, 결국은 일정한 ‘타자 만들기’의 과정을 포괄하고 있다.[1]
근대 이후 한반도에서 국민국가 건설의 과정은 식민지, 전쟁과 분단 등의 특수한 경험과 그 영향, 그리고 이후 북한의 사회주의 건설과 남한에서의 자본주의적 경제발전과 민주화라는 독자적인 길 모색 등을 거치면서 특수성이 존재하였고, 그 과정에서 정체성 형성에 수반되는 ‘타자 만들기’의 경험 역시 존재하였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경제 위기와 사회의 신자유주의화 속에서 나타난 특수성 역시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우리는 한국 사회에 1987년 민주화 그리고 1997년 경제 위기를 겪고 난 후, 이전 시기와는 일정한 단절을 이루면서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그러한 다양한 현상에 대한 진단과 더불어 한국사회의 다양한 타자화 현상과 그를 통한 대립의 격화라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제시하고자 한다. 그러한 제안의 원칙에는 기본적으로 자유주의, 특히 근대적 자유주의의 내재적 한계를 극복하면서 동시에 한국사회의 자유주의적 과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노력과 결부된다. 이는 자유주의가 지닌 근대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동시에 한국 사회에 맞닥뜨리고 있는 자유주의적 과제 및 탈근대적 과제를 동시적으로 해결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II. 무엇이 타자를 만드는가?
수년전 예멘 난민 사태를 둘러싸고 진행된 일련의 과정은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정책적으로 추진되어온 ‘다문화주의’가 얼마나 허울뿐이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제주에 예멘으로부터 온 500여 명의 난민신청자들이 있다는 소식이 전국으로 알려지자, 청와대 인터넷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제주도 불법 난민 신청 문제에 따른 난민법, 무사증 입국, 난민 신청 허가 폐지/개헌 청원합니다”라는 글이 올라왔고, 며칠 만에 20만 명을 훌쩍 넘었던 것이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는 수차례 예멘 난민의 추방을 요구하는 시위가 조직되었고, 수많은 참가자들을 동원하였다. 앞서 언급한 대구에서 모스크 건설 중단 결정은 그것의 연장선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예멘 난민 거부, 모스크 건설 중단 등의 문제는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 이상의 문제가 교차하여 엉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선은 예멘 난민이나 모스크 건설의 거부 등에서 등장하는 공통의 요소는 무슬림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이다. 2018년 예멘 난민 반대 운동은 이들이 왜 왔으며, 그들이 예멘 현지에서 겪었을 고통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으며, 그들이 ‘중동’이라는 지역에서 온 이슬람교도, 무슬림이라는 사실에만 주목하였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무슬림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일종의 문화적 표상을 다시금 소환하였다. 우리가 이슬람교와 무슬림에 대해 가지고 있는 문화적 표상은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으며,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특히나 9.11 테러 이후 그리고 몇 년 전 시리아 지역에서 발생하여 유럽에 난민 사태를 발생시켰던 IS 집단 사태 이후 굳건해진 이슬람에 대한 시각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고, 그것이 소환된 것이다. 특히 예멘 출신 난민에 대한 거부에서 주요하게 제기된 것은 무슬림 남성들로부터 ‘우리 여성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당시 예멘 난민을 반대하던 이들이 들고 있던 피켓에는 “혐오가 아니라. 안전을 원한다.”라는 문구 그리고 “불법 가짜 난민 추방 · 국민 안전 최우선”이라는 문구들이었다. 이와 같은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에는 “보수 정치인, 근본주의 기독교, 청년, 여성들 간의 감정적 연합”이 형성되어 있었고, 그러한 연합 속에서 한국 여성은 우파 정치인과 보수적 기독교의 보호자로서 우월적 위치를 구성하는 수동적 기호로 활용되거나 한국 남성의 보호의 대상으로 재현되었다(김현미 2020; 2018, 220-222).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칭 래디컬 페미니스트와 보수 개신교 혐오세력이 난민이라는 공동의 ‘적’을 배척하기 위해 여성 인권의 이름으로 “위험한 연대”를 형성하였다(김나미 2018; 정혜실 2018). 즉 눈 앞의 공동의 ‘적’을 두고서 오랫동안 적대시해온 오랜 ‘적’과의 아이러니한 연대가 구성된 것이다.
한편으로 2021년 8월 미군의 갑작스러운 아프가니스탄 철수로 인해 갑작스럽게 한국으로 들어온 아프가니스탄 난민들 –현지 한국 협력자들–은 그나마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별탈없이 입국하였다. 그들이 한국대사관이나 기업의 조력자들이었다는 이유라는 것이 우선 고려–난민에 대한 인류애적 호소나 세계시민으로서의 의무의 문제가 아니다–되었기에 별다른 반대 없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 시기 프랑스에 입국한 프랑스 조력자들 가운데 탈레반이 5명 숨어들었다는 보도는 또 다른 위협을 경고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점에서 그들 역시 한국 사회에서 두려워하는 무슬림이라는 점에서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태도로 그들을 대하게 될지는 쉽게 예단하기 힘들다. 최근에는 서서히 그들의 장기체류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는 보도가 흘러나오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마치 1970년대 베트남 보트피플(Boat People)이 부산에 수용되고 어느 한명 남지 않고 모두 다른 나라로 이주하도록 강제되었던 상황을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에서 난민이 법적인 문제이자 사회적 문제로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92년 <난민지원에 관한 협약>과 <난민지위에 관한 의정서>에 가입하면서부터이다.[2] 이에 따라 1993년 12월 출입국관리법과 1994년 6월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에 난민 관련 조항을 신설하고 1994년 7월부터 난민 지위 인정을 위한 신청접수를 받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2000년까지 단 1명도 난민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2000년 대한민국이 유엔난민기구 집행이사국이 된 이후 2001년 에티오피아 출신의 반정부단체 활동가 타다세 레레세 데구에게 1명의 난민 지위를 인정한 것이 처음이었다. 1994년부터 2020년까지 총 71,041명의 난민신청자가 있었지만, 그 중 난민 인정을 받은 경우는 799명에 한정된다. 그것은 경제협력개발기구(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OECD) 국가들의 난민 인정비율이 37%에 이른다는 점에서 겨우 1% 인정을 넘는 한국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3]
2012년 동아시아 최초로 별도의 ‘난민법’을 제정하면서 난민신청자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하는 국제적인 인권 국가로서의 위상을 홍보했던 한국의 입장에서 현실적인 수치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간 한국 사회는 다문화주의를 외치면서 한국사회로 유입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들에 대해 관용을 강조하고 통합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2018년 예멘 난민 사태가 보여준 것은 그것이 얼마나 허울 좋은 구호였으며, 얼마나 임시방편적이고 일시적인 조치들이었는가를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예멘 난민 반대 움직임을 통해서 그간 잠재되어 있던 반다문화, 반이주민 정서가 ‘잠재적 테러리스트’ 또는 ‘잠재적 성범죄자’ 등의 이름을 통해 난민을 낙인 찍고, 또한 그간 이주민, 불법체류자, 조선족 등에 대한 위험한 표상과 결합시킴으로써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비(非)국민’으로 규정짓는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간 한국 사회에서 주요한 담론을 형성하였던 다문화주의는 이제 낡은 혹은 국민을 역차별하는 때라서 “순수한 국민”에게 피해를 입히는 이데올로기로 규정되고 공격받기 시작한다. 반다문화주의자들은 정부의 다문화 정책을 국민과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된 국민에 대한 역차별로 규정하고, 자신들을 인종주의자로 낙인찍고 다문화주의를 옹호하는 언론에 대해서도 반감을 드러낸다(육주원 2016, 120). 반다문화주의 담론은 앞서 난민에 대한 거부 운동 속에서 드러났던 ‘자국 여성보호’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민족의 순수성’이라는 상징적 재현에 대한 집착을 강요하면서 자국 여성들을 대상화하고 ‘자국 여성보호’의 논리를 제기하며 나아가 다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표출하고 있다(Yuval-Davis 2012, 58-62). 그러한 점에서 반다문화주의의 난민 반대와 페미니즘의 연대는 아이러니하거니와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그것이 작동하였던 것은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논리 특히나 절대적인 경쟁 사회 속에서 각자도생해야 하는 자기보호 본능의 자극 때문이다.
마치 세월호 사건 당시 ‘국가의 부재’를 목도하였다면, 이제 새로운 변화 속에서 ‘국민’을 보호해 줄 ‘국가’를 호출하고 나선 것이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는 ‘국민이 먼저’라는 구호로 전환되었고, 그 국민을 보호할 강력한 국가를 요구한다. 한편으로 이미 오랫동안 신자유주의의 강세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국가를 다시 소환하고자 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경쟁의 극단화되고 시장의 영역에서 국가가 사라져갔지만, 그러한 경쟁의 틀을 마련하고 그나마 ‘공정한’ 경쟁을 이루기 위해서 ‘국민들만의 자유로운 경쟁’의 공간을 만들어낼 울타리를 국가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트럼프에 연호했던 것은 미국인들만의 자유로운 경쟁 사회가 만들어지면서 자유로운 사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강력한 국가를 원했던 탓이었을 것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로 마치 국가 권력을 무기력화시키면서 국경을 넘나드는 난민, 이주노동자, 무국적자, 불법입국자 등을 추방하고 그들에게 장막을 쌓아 올리는 강력한 국가를 다시 희망하고 있다. 다문화주의는 마치 국경의 소멸과 국가의 부재를 드러내는 표현인 듯 간주된다.
예멘 난민 문제가 결과적으로 큰 잡음 없이 소멸된 탓에 더 이상 문제가 확장되지는 않았다. 당시 예멘 난민 중 3명이 난민 신청을 했지만 2명이 난민 수용되었고, 이후 3명이 ‘인도적 체류’ 신청을 했지만, 이 역시 재판부가 “외국인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인도적 체류 허가를 신청할 권리가 대한민국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았고, 인도적 체류허가 신청권리는 대한민국 정부의 비호를 요청하는 권리이지, ‘인간의 권리’로서 인정되는 헌법상 기본권이라고 보기 어렵다”라는 판결을 통해 거부하였다.[4] 이러한 판결은 대한민국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주권의 배타적 속성 그리고 인간의 권리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은 국민국가라는 정치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권리로만 실현될 수 있다는 근대적 특성 등을 분명히 따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난민 문제와 관련하여 유럽의 예를 비추어 본다면, 그것이 가지는 쟁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지난 수년 전 유럽에 시리아 난민들이 유입되었을 때, 각국은 쉽게 문호를 개방하지 않았다. 아무리 인권에 호소하더라도 쉽지 않았고, 유럽연합 차원에서 할당제를 실시하기에 이르렀다. 시리아 난민 문제에서 가장 적극적인 표시를 했던 나라는 독일이었다. 흔히 ‘무티(Mutti: 엄마) 리더십’이라는 칭송을 받았던 메르켈의 우호적 조치가 가능했던 것은 결국 독일경제의 조건이었다.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경제적으로 지속적인 불황의 상태와 높은 실업률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면, 독일은 예외적으로 경제적으로 활황 그리고 낮은 실업률 심지어는 노동력 부족 현상까지 있어 시리아 난민 문제에 우호적일 수 있었다(이승현 2016).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각국에서 인종주의적 색채를 지닌 극우민족주의는 여전히 확장세를 얻고 있다.
이에 비추어 본다면, 한국에서 타자의 문제가 급격히 부각되면서 공격적인 혐오 발언을 발생시키고 집단적인 배제의 움직임까지 보이는 부분은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한국사회의 급격한 신자유주의화와 맞물려 있다. 철저한 경쟁 사회로의 진입 이후 살아남기 위한 경쟁에 던져진 개인들은 경쟁 속에서 누군가를 밟고 일어나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고, 그것은 사회를 공존의 모델을 통해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밀어내기 게임의 모델을 따라 구성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낸다. 개인들은 끊임없이 속물적 근성을 발휘함을 통해 경쟁에서 이기고자 하며, 그 경쟁에서 탈락한 자들은 ‘잉여’적 존재로서 취급받는다. 그 경쟁 속에서 경쟁자를 타자화하려는 경향이 발생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2018년 당시 예멘 난민 문제의 경우 특수하게 단지 난민이라는 특수한 존재의 문제만이 아니라 페미니즘 문제는 물론 다양한 사회적 문제가 교차하는 일종의 상호교차성(intersectionality)이 발생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주원 2020). 특히나 최근 한국 사회에 이슈가 되는 페미니즘 문제가 교차함과 동시에 여기에 세대 간의 갈등 문제 역시 중층적으로 결합함으로써 다양한 사회 문제들이 응축되어가는 양상을 띠고 있었다. 예멘의 난민에 대해 무슬림이라는 이유, 그것은 이슬람에 대한 오래된 편견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배척하고자 한다. 그와 동시에 그들을 배척하는 명분에 여성 보호라는 ‘유사 페미니즘’ 논리를 내세운다.[5] 하지만 난민 문제가 사라진 자리에 페미니즘은 사라지고 가부장적 논리가 재등장하였고, 다시 타자화의 대상으로 여성을 지목하게 된다. 최근 20-30대 남성 취업자 및 구직자들은 노동시장의 경쟁 속에서 이중적 억압을 받고 있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우선은 기존 정규직 기성세대 40-50대가 높여놓은 진입장벽과 경쟁해야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 동일 세대 여성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20대 초반의 남성들이 군 복무와 관련하여 받는 피해의식은 결국 그 비난의 화살을 20대 여성에게 돌릴수 밖에 없게 된다. 또한 취업의 치열한 경쟁 속에 여성에게 주어지는 할당제에 대한 반감은 역시 그렇게 켜켜이 쌓여진 피해의식에 또 하나의 무게를 더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의 갈등 표출 혹은 폭발 현상을 둘러본다면, 결국 다양한 사회적 갈등과 소외, 타자화 현상들이 중첩되고 교차되어 응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타자라고 지칭되고 있는 특정한 집단이 이러한 한국 사회의 사회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문제들 속에서 표출되는 모순을 응축하면서 표적이 되어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난민 문제가 불거지는 얼마 전부터 현재까지 사그라지지 않는 문제 중의 하나가 젠더갈등이다. 젠더 갈등의 상징적 계기가 되었던 사건은 ‘강남역 살인사건’이었다. “여자라 살해당했다”라는 상징적 어구들로 나타난 문제는 그간 누적되어온 젠더갈등의 폭발이었고, ‘여성혐오’라는 말이 등장하면서 젠더 갈등이 극단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후 이러한 문제들을 다양한 지점에 폭로된 ‘미투’ 운동 그리고 혜화동 시위를 거치면서 수그러들지 않고 잠재적 폭발력을 지니면서 한국 사회에 지속되고 있다. 특히 이 문제에서 여성들의 고통 그리고 혐오라는 말과 함께 남성들 전체가 잠재적인 살인자나 성범죄자로 간주되는 남성 혐오의 극단적인 양상을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남성들에 대한 공격은 군가산점 문제 등 취업을 앞둔 20-30대 세대들 간의 갈등과 접목되어 갔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드러났던 2-30대 남녀의 대비되는 투표성향은 그러한 갈등의 정치적 표현이었다. 그간 차별시정조치(affirmative action)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여성 할당제가 오히려 역차별 논란으로 번졌고, 남성의 군 의무복무와 그 효과에 대한 막연한 갈등 여지 등이 잔존해 있다. 이에 중첩되어 경제적으로 부동산 가격의 폭등은 세대 간의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것은 또한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공정’ 담론과도 맞물려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강조된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을 저버린 다양한 사건들, 조국 사건을 비롯하여 부동산 폭등과 부동산 투기 과열 등등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과 불공정에 대한 누적된 불만 등등 정권 말기에 이르러서 폭발 직전에 있다.
난민 문제는 눈에 보이는 사건을 계기로 일시적으로 등장하였다면, 그간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누적되어온 갈등의 요소들은 특정한 세력 혹은 집단을 ‘타자’화하면서 극단적인 배제의 시도로 치닫고 있다. 그러한 갈등과 배제 현상 속에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교차하고 중층적으로 얽혀 있는 반면에 그것을 해결해야 할 정치는 ‘실종’ 상태에 있다. 다양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정치의 자리에는 신자유주의적 경쟁 논리가 자리 잡고 있으면서 사회 갈등은 마치 정글과 같은 적자생존의 논리만이 남아 있는 양상을 띠고 있다. 따라서 정글과 같은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경쟁자를 배제하는 방식이고 그것이 ‘타자화’의 논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III. 누가 타자였는가? 한국사회에서 타자를 구성하는 방식과 그 역사
해방 이후 분단, 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남한의 자체의 국가 정체성 및 국민 정체성을 형성시켜 왔다. 해방 이후 남한에서 국민국가의 형성의 과정은 일제의 잔재 위에 국가의 건설과정과 더불어 북한의 ‘인민’과 분리되는 남한의 ‘국민’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1945년의 해방과 뒤이은 48년의 정부 수립과 함께 성립된 제1공화국에서 ‘국민만들기’의 작동적 원칙이 된 것은 ‘반공주의’였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냉전이 전 세계적 정치지형을 결정하였고, 한반도는 냉전의 최전선에 해당하였다. 남북의 대치 상황은 반공주의와 반제국주의라는 틀 속에 갇혔고, 남한은 ‘빨갱이’이라는 존재를 부각시키면서 그들은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설정하였다. 일종의 호모사케르로서 빨갱이는 한국사회 첫 번째 정치적 타자였다. ‘적’으로 상정된 빨갱이는 남한과 대치하고 있는 주적으로서 북한의 인민과 동일시되는 대상이었고, 그러기에 그들 역시 제거해야 할 ‘적’으로 간주되었다. 단일한 남한의 ‘반공적 국민’에게 더 이상의 타자는 존재할 수 없었다. 적과 아를 구분하는 기준은 ‘반공주의’였다.
이후 박정희에 의한 5.16 쿠데타 이후 등장한 정권은 기존의 반공주의와 더불어 ‘경제개발’이라는 국민국가 건설의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냈다. 그에 따라 경제개발의 주체로서 국민의 호명 역시 새로운 동학을 갖게 된다. 5.16 직전의 4.19가 이승만의 억압에 대항하여 ‘자유’를 추구하였지만, 동시에 대중에게는 ‘빵’이 필요하였다. 대중의 빈곤탈출의 욕망은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세력에게 새로운 정당성을 확보할 계기로서 경제개발의 길로 유인될 수 있었다. 대중의 빈곤탈출의 욕망과 쿠데타 정당성의 확보가 결합하면서 1960년대 대한민국은 경제개발의 구호 아래 동원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타자 역시 등장하였다. 예를 들어 경제개발주체로 호명되는 국민을 만드는 과정에서 강제적으로 동원되는 이들은 그간 사회의 주변인으로 존재해 왔던 부랑아들 혹은 폭력배들이었고, 그들을 조직적으로 감금하고 또한 강제노역에 동원하는 방식을 통해 전국민을 경제개발의 주체로 포섭하고자 하였다. 박정희 집권 당시 반공주의는 여전한 원칙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반공과 경제개발 주체로서 국민을 호명하고 만들어내는 작업 그리고 그로부터 배제되는 ‘타자’들이 만들어졌고, 심지어 극단적으로 배제되기까지 하였다.
1970년대 이후 민주 대 반민주의 노선은 분명하게 그어졌고, 1980년 5.18 광주를 거치면서 그것은 더 분명해졌다. 그 대립 구도에서 오히려 타자는 부차적인 문제였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 1970년대 이래 민족주의는 박정희에 의해서든, 그와 대립하는 측에서도 전유해야 할 중요한 이데올로기였다. 서로 ‘민족적인 것’에 대한 올바름을 선점하고자 하였고, 누가 더 민족주의적인가를 둘러싸고 대립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해방 이후 아니 그 이전부터 민족 그리고 국민이라는 집단적 주체가 우선적으로 호명되고 그것에 포함되기 위한 동원의 시간이 존재하였다.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이들도 민족담론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았고, ‘민중’이라는 말을 통해 새로운 주체를 호명하기는 했지만 그 역시 ‘민족적’ 민중이었다. 즉 남한은 장기적으로는 통일된 민족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민족적 민중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1980년대까지는 거대 주체의 시기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서서히 그간 잠재되어 있던 개인들이 깨어나기 시작하였고, 그들은 신세대의 이름으로 거대주체 이전에 개별적 주체임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1990년대는 개인주의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사회적 존재들의 등장은 주목할만한 현상이었고, 그것은 새로운 민주주의의 주체의 탄생이라는 점에서도 긍정적이었다. 1990년대의 새로운 세대들의 등장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소수자들이 이른바 ‘커밍 아웃’을 수행하였고, 그와 동시에 그들은 우리 사회의 ‘타자’로서 등장한 것이다. 물론 새롭게 등장한 소수자들은 이미 우리 사회 속에 존재해 왔지만, 인정되지도 않았고 인정받고자 하지 않았기에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은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이제 커밍아웃과 함께 그들은 존재자로 등장하였고, 그들의 존재에 대한 인정 여부가 문제가 되기 시작하였다. 개인들의 등장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개인성을 추구하는 모습이 등장하였며, 나아가 그동안 사회적 약자라는 이름 속에서 공개적 장소에 등장하지 않았던 이들이 서서히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동성애자들의 커밍 아웃은 물론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장애인들은 이제 열린 사회 속에서 그들의 정당한 권리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장애인 및 여성할당제, 대체복무제 등등 다양한 차별시정조치(affirmative action)을 통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다양한 배려 및 포용정책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상황 속에서 맞게 된 1997년 경제위기는 다른 한편으로 한국사회의 개인주의적 극단화를 가져왔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가족, 직장, 국가라는 나름의 울타리를 통해 개인을 보호하는 형태를 취해 왔다면, 1997년 경제위기는 그 무엇도 개인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은 세계화를 통해 국외로부터 새로운 타자, 즉 외국인 노동자 등 이주민의 입국을 허용하였고, 또한 한국 사회는 이러한 이방인을 필요로 하였다. 그리고 이방인의 숫자는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이고있다. 그들은 외모는 물론 문화적으로 많은 차이들을 보이면서 우리의 주변에 자리잡고 있으며, 한국사회의 새로운 타자로 등장하고 있다.
결국 누가 ‘국민’을 구성하는가? 좀 더 나아가 ‘국민’으로 구성되는 원초적 인민은 누구인가?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차분히 답해야 한다. 해방 이후 오랫동안 당연시되어 왔던 반공주의적이고 경제개발주체로서 국민, 다른 한편으로 철저하게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사유를 품고 있었던 국민이라는 경계가 이제 무너지지 시작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극단적인 양상을 보이는 집단들이 출현하고, 그에 따른 극단적인 대결이 증폭되고 있다. 그것을 가속화하고 또한 대결의 양상을 복잡하게 만드는 상황 중의 하나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이다. 어쩌면 그것들이 동시적으로 교착되면서 더 복잡하고 증폭된 양상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다. 즉 세계적으로 1980년대 말 냉전의 종식과 신자유주의화 진행 그리고 한국에서의 민주화 이행 이후 1990년대 들어서 한국이 서서히 민주주의의 심화의 과정을 진행하고자 하면서 다양한 사회집단의 출현, 시민들의 개인적 욕망의 표출 등이 복잡적으로 엉키게 된 것이다. 또한, 자본과 노동의 세계화 속에서 외국인들의 유입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구성원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통합의 동력이어야 할 정치는 오히려 보이지 않고,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경쟁의 논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결국 다함께 살아가야 할 공존의 논리보다는 누군가를 억압하고 배제하면서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의 논리만이 남아 있는 듯 하다.
IV.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민족주의의 시간이었다. 근대 초 전통적인 왕조 국가에서 근대적 국민국가로의 전환이 실패한 이후 일제 식민지를 거치면서 해방과 국민국가 건설의 주체로서 민족 혹은 국민에 대한 호명이 민족주의를 통해 진행되어 왔다. 그러한 점에서 한국 오랫동안 민족주의가 우월한 나라였다. 그러한 민족주의의 시간 속에서 이방인들의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한 민족주의에 대한 회고적 반성과 새로운 전환의 계기가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따른 외국인 노동자들의 유입, 즉 새로운 타자들의 유입과 그에 따른 공존의 모색 때문이었다. ‘다문화주의’라는 말이 유행처럼 한국 사회를 떠돌았고, 다문화가정, ‘다문화’라는 수식어는 특정한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되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그만큼 다문화주의 즉 이방인에 대한 배타성을 내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다문화주의’는 단지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서술적 묘사의 개념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각자의 문화적 정체성과 그 차이들을 충분히 인정하면서 서로 공존할 수 있다는 규범적 이념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배타성을 띤 호칭개념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한 점에서 다문화주의의 모범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 캐나다의 경우 일종의 모자이크 사회와 같다고 할 수 있다. 각자의 문화적 정체성을 인정받고 동시에 그들이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구성해 내는 방식이다.
한국 사회가 1990년대를 거치고 한일월드컵 응원전에서 보여준 나름의 ‘열린’ 민족주의라는 것을 통해 개방적이고 가능한 배타적이지 않은 민족주의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는 평가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다문화주의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들, 그리고 최근의 예멘 난민사태가 보여준 극단적 혐오감의 표현들, 물론 그 이전에도 무수히 많은 배타적 감정표현의 사례들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현상들을 볼 때, 한국이 과거의 강한 민족주의적 특성이 기이한 방식으로 전환되었다는 것을 짐작게 한다. 신자유주의의 급속한 유입을 통해 개인주의적 특성이 강화되고, 세계화 속에서 충분히 세계시민의 모습을 보이고자 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박정희 시기 경제개발주체로서 국민이 세계 시민으로서 경제적 동물의 극단적 형태로 변형된 것은 아닌가 자문해야 한다.
즉 배타적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규범적으로 지양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가운데서 그것이 새롭게 전화되거나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의 새로운 통합의 이데올로기를 찾지 못한 가운데서 부유(浮遊)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규범적 가치로서 받아들였던 다문화주의가 이미 그 한계를 보였고, 국민들의 거부감까지 표현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호출될 수는 없어 보인다. 2010년 이후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다문화주의의 한계를 스스로 인식하고 새로운 방향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2001년 9.11 이후 미국이나 캐나다의 모자이크적 통합모델에 대비되어 주목받았던 프랑스의 공화주의 모델, 즉 용광로 모델 역시 201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 보여졌던 다양한 갈등 상황에서 그 한계를 뚜렷하게 드러냈다. 공화주의, 특히 유럽연합의 정치적 통합 강화과정에서 하버마스 등이 제시한 입헌적 공화주의는 기존 국민국가 시대의 민족주의의 문화적 요소를 정체성의 원칙으로 강조하던 것과 달리 정치적 원칙에 대한 합의에 기반한 정체성의 형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의 공화주의가 보여주는 모습은 공화주의가 강조하는 정치적 원칙, 특히 라이시테(laï̈cité -세속화의 프랑스적 원칙) 원칙의 경우, 오히려 구체적인 적용에서 무슬림들을 배제, 억압하는 것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6] 즉 일정한 보편성을 추구하는 정치적 원칙마저도 서구중심주의적이거나 문화적 배경을 완전히 사상(捨象)한 채 이해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화주의자들이 강조하는 기본적인 원칙은 그것이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최소한의 요건이자 동시에 공동체의 구성원이 지녀야 할 공동체에 대한 의무 그리고 나아가 권리 등을 포괄하는 원칙으로서 중요한 위상을 갖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주장을 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급격화된 세계화 현상, 즉 자본, 노동, 상품의 끊임없는 이동은 그간 철벽과 같았던 국민국가 시대의 국경을 차츰 허무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국민국가 시대에 통합의 이데올로기로서 유효했던 공화주의가 일정한 한계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실이다. 세계화 속에서 국경이 희미해지고 국가권력이 미치는 한계가 뚜렷하고, 또한 국경을 넘나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국민국가 시대와 같은 공화주의적 애국심을 요구하는 것이 어쩌면 과도한 요구일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유효한 국민국가라는 공동체가 유지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행사해야 하는 것 역시 필요한 몫이다. 그러한 점에서 구성원과 공동체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그러한 균형점을 찾기 위한 원칙을 우선 확립할 필요가 있다.
첫째, 가장 먼저 인정되어야 할 것은 그들의 존재 자체와 그들의 주체성이다. 그들의 통합과 배제의 대상이기 전에 사회적 존재이며, 주체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들은 권력에 의해 인정받고자 하는 존재이기 전에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사회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실현해야 할 인간으로서 존재라는 점이다. 그가 어디에서 왔건, 어떤 피부색을 가졌든, 어떠한 취향을 가졌든, 그것은 그 개인의 주체성의 문제이며, 자유주의적으로 그것이 공동체와 타인에 대해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용인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주체이자 동시에 타자이다. 19세기 말 짐멜은 이방인들이란 우리 밖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이나 다양한 ‘내부의 적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단 자체를 구성하는 요소”라는 점을 강조하였다(G. Simmel 2005, 79-80). 또한, 데리다가 지적했듯이,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법정의 용어에 낯선 이방인이었고, 오이디스푸스가 낯선 땅에 갔을 때, 그 역시 이방인이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 역시 오이디푸스에 대해 이방인이 될 수 있듯이, 우리는 어느 순간, 어느 지점에서 언제든지 타인이 될 수 있기에, 우리 모두는 모두에 대한 타인인 것이다(J. Derrida 2004). 물론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한 이방인은 어느 순간 타자화함으로써 공동체에서 배제하고 억압하는 일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만들어야 할 공동체는 모두가 타인인 그 상황에서 모두가 주체가 될 수 있는 공동체여야 한다. 근대의 합리적 개인이라는 거대 주체 이후 다양한 주체들의 출현과 그 무한한 잠재적 출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그 주체들에 의한 공동체가 필요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두 번째 원칙은 다양한 주체들의 공동체가 연결되는 연대의 이데올로기의 필요성이다. 이것은 그 누구도 공동체 내에서 ‘타자화’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료 시민으로서의 연대가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의 유입 이후, 특히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개인의 경쟁력 강화를 통한 각자도생 그리고 국가 및 사회의 부재의 현실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오랜 동안 경제발전 그리고 민주화라는 목표 속에서 동원되거나 호명되었던 거대주체로서 민족 혹은 국민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경쟁적 개인 주체가 자리 잡은 것이다. 개인들은 그러한 공동체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경쟁에서 뒤처지는 ‘잉여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경쟁자들을 밟고 일어서야 하는 ‘속물적 근성’을 키울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이 주류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고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은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사회가 자리잡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그 경제위기 이전에 경제개발과 민주화를 위해 국민적 연대를 형성하였던 기억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국민적 연대가 민주화 이후 개인성이 확장된 사회 속에서 그러한 개인의 주체성이 실현될 수 있는 계기로 새롭게 구성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에 적합하게 새롭게 구성된 연대의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결국 이렇게 흩어진 개인 주체들을 끌어모으고 공동체적 삶을 유지하면서 살아가게 할 연대의 이데올로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연대의 이데올로기는 기존의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와 같이 다시 내부의 끈을 강화하면서 외부의 장벽을 쌓는 방식이 아니라 세계화라는 상황에 맞게 세계시민적 의무와 우리 공동체의 의무를 동시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첫 번째로 지적했던 개인의 주체성에 기반한 때라서 그들의 주체성을 획일화하지 않는 방향 속에서 개인들의 연대가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과제를 연결 짓는 결국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가치 사이의 접점을 마련하기 위한 일종의 새로운 사회계약의 필요성이다. 근대적 국민국가 시기의 국민적 정체성은 국가에 의한 민족주의적 호명의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고, 그것은 동시에 국민적 주체의 형성과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체성의 부여보다는 스스로 정체성을 구성해내는 주체화 과정(subjectivation)이 필요하며, 그것이 개인 자유의 출발점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공동체의 가치를 실현하고 국가는 그러한 개인들의 자유 실현 조건을 제공하면서 또한 그 과정을 통해 공동체의 가치를 구성해 나가야 한다. 개인들의 주체성이 실현되는 공동체 내에서이며, 결국 개인의 주체성의 실현의 공동체의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뒤르카임이 말했듯이, 국가라는 이름의 공동체는 구성원, 즉 국민의 집단적 의식이 표상되는 공간이어야 한다.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의 담지자로서 개인은 국가라는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위치 지워져야 한다. 시민의 권리가 국가 권력의 인정 하에서 실현되듯이, 시민은 국가라는 공동체에서 시민으로서의 의무의 담지자가 되어야 한다. 이때 의무는 공동체에 대한 의무이며 또한 공동체의 동료에 대한 의무이다. 공화주의의 강한 요구로서 개인적 이익을 희생하면서 공익을 요구하기는 현대 사회에서 쉽지 않다. 그러한 의미에서 개인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이 수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개인의 이익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실현될 때 최대화될 수 있는 구조이다. 그러한 구조가 현실화될 때, 개인의 자유와 공동체의 덕목이 동시에 확장될 수 있다.
최근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정치 영역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현상 중의 하나는 포퓰리즘이다. 인기영합주의 혹은 대중추수주의라고 번역되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포퓰리즘 현상은 정치권이 표를 얻기 위해 무분별한 예산 낭비나 무계획적인 예산지출을 행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포퓰리즘은 또 다른 의미에서는 대중의 적극적인 의사 표현의 방식일 수 있다. 기존의 대표자들에 대한 불신 속에서 직접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려는 욕구가 분출되면서 등장한 현상이기도 하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경쟁이 가속되는 상황에서 경쟁으로 몰리는 개인들은 자신의 이익에 대한 즉각적인 요구를 분출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 그것은 인기영합주의적 정치를 가져오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특정한 집단에 대한 타자화 과정 –‘공공의 적’으로 만들거나 희생양으로 만드는 방식– 을 진행함으로써 포퓰리즘은 억압적 정치의 도구가 되고 있다. 하지만 분명 포퓰리즘은 근대정치의 한계, 특히나 대표에 의한 정치의 한계 속에서 등장한 현상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히려 근대정치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은 대표를 통한 정치의 한계를 넘어서 대중들의 주체화의 계기로 만들 때 가능하다. 또한 그것을 통해 새로운 민주주의적 인민적 주체로 전환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의 급격한 신자유주의화 이후 실종된 정치 그리고 그 자리에 들어선 포퓰리즘적인 대중 정치의 출현은 정치가 새롭게 갱신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것은 지난 2016년 겨울 촛불 시위에서의 시민들이 “정치에 냉소적이긴 하지만 결코 정치를 외면하지 않았던” 탓에 보여주었던 민주주의의 확장의 가능성이기도 하다(이지호 2017, 7). 격화된 경쟁 사회를 연대의 사회의 만들고, 경쟁력을 갖춘 개인들을 만들어내기도 보다는 공동체의 시민으로 개인들을 성숙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선은 정치의 자리를 찾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작업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통합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는 것을 통해 다양한 존재들의 공존을 모색하는 노력을 시도하면서 이루어져야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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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혐오 발언’ 역시 우리가 주체화되는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과정의 일부분이다(J. Butler 2016, 61).
[2] 물론 이전 한국에서 난민수용과 관련한 경험은 1975년 베트남 패망 이후 10여년 이상 유입된 베트남의 보트피플이다. 1975년 당시 한국군과 함께 철수한 1,335명과 한국 화물선이 베트남 인근해상에서 구조한 216명의 난민이 부산임시수용소에 수용되었고, 이 중 한국 남성과 결혼하여 국적을 받은 경우를 제외한 977명이 국외로 이주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인 보트피플이 1977년부터 유입되었고, 부산시 동래구에 설치된 <월남난민구호소>에 수용되었다. 하지만 이들 중 단 한명도 정착이 허용되지 않았고, 베트남인들에게도 한국은 정착하고 싶지 않은 나라였다(정인섭 2009, 204).
[3]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 <출입국. 외국인 정책 통계월보> 2020 참조.
[4] “예멘 난민 인도적 체류 허가 소송 ‘신청권리 없다’ 각하 판결”. <문화일보> 2021. 9. 2.
[5] 마치 일제 식민지 시기 조국을 여성 혹은 누이에 비유하면서 그들을 보호해야 할 남성 가부장적 논리를 내세우는 것과 동일하다.
[6] 특히 최근 극우민족주의 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은 기존 인종주의적 경향의 극우에서 서서히 온건화된 모습, 흔히들 말하는 탈악마화 전략을 선택하면서 프랑스의 공화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공화주의가 비록 정치적 원칙에 기반하고 있지만, 충분히 배타적 이데올로기, 일종의 ‘민족적’ 공화주의를 강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 저자: 홍태영_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정치학 박사를 취득하였다. 미국 워싱턴대학교 방문학자 등을 역임하였고, 2021/2022년 한국정치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국가안보, 정치사상, 한국정치, 유럽정치다. 최근 저서로서 《국민국가를 넘어서, 논문으로 “민족주의적 통치성과 국민만들기”, “프랑스 공화국과 공화주의의 탄생”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윤하은_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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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진 | 2022-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