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이정환 서울대학교 교수는 코로나19 대응 변수의 하나로 국가-사회관계에 대해 분석합니다. 일본은 전후 다양한 국가-사회 시스템을 발전시켜왔지만 의료분야 개혁의 방향을 잘못 잡아 국가적으로 위기를 관리하는 시스템의 발전이 지체되었습니다. 일본이 코로나19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이유는 정부와 의료계에 사이에 후견주의적인 성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사회 부분의 재조직화는 전후 일본의 사회적 안정성의 토대가 되었던 후견주의적 국가-사회관계를 흔든다는 딜레마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I. 서론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위기 대응의 효과성은 각각의 국가가 보유하는 보건의료 능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보건의료 능력을 팬데믹 대응에 효과적으로 동원해내는 각 국가의 통치역량이 편차를 보였고, 각 국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평가에서 보건의료 능력 못지않게 각 국가 위기 대응 체제의 효과적 운용이 중요하게 간주되었다(Kumar 2021). 기본적으로 각 국가 내의 보건의료 능력이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겠지만, 보유한 보건의료 능력에 걸맞지 않은 미진한 코로나19 대응 결과에 대해서는 해당 국가의 위기 대응 체제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2020년 봄에서 2021년 여름까지의 일본이 대표적으로 이에 해당하는 사례이다.

 

1인당 병상 수의 비교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지표는 일본의 우수한 보건의료 능력을 상징한다고 관찰되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시에 일본은 코로나19 환자에 대한 병상 부족을 경험하였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사회 내의 우수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동원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코로나19는 일본의 위기 대응 체제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일본의 위기 대응 체제의 문제점이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등의 기초적 수치에서 일본은 전세계적 비교를 기준으로 할 때 나쁘지 않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코로나19 피해 정도 자체에 대한 평가는 이 글의 초점이 아니다. 동북아 공간의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여 일본의 코로나19 피해 정도를 과대평가하거나 전세계적 비교를 통해 과소평가하는 관점은 코로나19가 일본에 준 정치사회적 그리고 정치경제적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반드시 살펴봐야 하는 핵심적인 관찰 대상의 가시성을 낮출 뿐이다.

 

이 글은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에서 발견되는 일본 위기 대응 체제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찾아보려는 시도이다. 일본 코로나19 대응의 문제점을 논할 때 일반적으로 아베 신조(安倍晋三)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의 정치적 리더십 문제, 후생노동성의 신속하지 못한 대응 자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법적 권한 문제 등의 정책 거버넌스 측면이 많이 논해진다(김영근 2020; 최은미 2020; 최은미 2021; 호사카유지 2020; 竹中治堅 2020; 上昌広 2020; 金井利之 2021). 대부분 큰 설득력이 있는 논의들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일본 위기 대응 체제의 문제점을 정책결정 과정의 거버넌스 뿐만 아니라 일본 전후시스템의 구조적 성격에서도 찾아보고자 한다.

 

국가의 위기 대응 체제의 근간이 되는 국가 통치 역량에는 국가가 활용할 수 있는 역량 자체 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 사이의 협력 메커니즘의 효과성도 포함된다. 코로나19는 전세계적으로 국가의 정치경제적 역할 증대가 더 강하게 대두되는 계기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치경제적으로 국가 역할의 강화 흐름은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보다 거세졌는데, 코로나19는 이를 보다 가속화시켰다. 일본 내에서는 자국의 코로나19 대응의 문제점으로 약화된 국가의 역할 강화가 필요하다는 관점이 강하다. 다만 약화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관점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뉜다. 국가의 사회에 대한 개입의 법적 권한 부족을 강조하는 주장과 국가의 사회에 대한 축소된 재정 지원을 강조하는 주장이 공존하고 있다.

 

국가의 사회에 대한 개입의 법적 권한 부족을 강조하는 관점은 전후 시기에 국가의 사회에의 개입 자제의 전통이 위기 대응의 한계를 초래하였다고 본다. 이 관점에서 일본 코로나19 대응의 가장 큰 문제점은 중앙정부가 사회 민간 부분에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명확하게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있다. 한편, 코로나19 이전에 국가의 사회에 대한 재정 지원의 축소 문제를 강조하는 관점은 전후시스템 자체보다는 재정건전성을 초점에 둔 의료개혁이 일본의 위기 대응 능력을 약화시켰다고 본다. 이 관점에서는 의료개혁으로 변화된 의료 서비스의 성격이 전염병 확산 대응에 부합하지 않으며, 위기 극복을 위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확대 재정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함의를 제공하고 있다. 성격은 상이하지만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에서 국가의 역량 부족을 강조하는 두 관점은 현재 일본 정부의 재정확장과 행정능력 강화를 시도하는 흐름에 모두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일본 코로나19 대응의 문제점에서 국가의 역량 축소 또는 자제의 조건을 지적하는 주장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국가 역량 축소 또는 자제가 일본 코로나19 대응의 문제점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코로나19 대유행이 1년이 지난 2021년 여름에는 국가의 의료계에 대한 적극적 지원책이 수립된 이후였지만, 일본 의료계는 코로나19 환자에 대한 신속하고 유연한 대응 체계 구축으로 쉽게 전환되지 않았다. 국가의 재정 투입이 증가하고, 국가의 민간에 대한 개입의 법적 권한이 증가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효과적 위기 대응을 바로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글은 일본의 전후시스템 속에서 발전한 국가-사회 관계의 성격이 위기 대응에 지체 양상을 가져왔음을 추가적으로 논증하고자 한다. 특히 의료계가 코로나19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배경이 되는 일본의 정부와 의료계 사이의 후견주의적 성격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 주장은 일본의 위기 대응 체계 강화에는 국가의 역량 강화 못지않게 사회 부분의 재조직화가 필요하다는 함의를 지닌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 부분의 재조직화는 전후 일본의 사회적 안정성의 토대가 되었던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를 흔든다는 딜레마를 지니고 있다. 더불어 위기는 사회의 재조직화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기득권의 자기 이익 보호 확장의 계기이기도 하다. 일본의 의료계와 정부 사이의 관계는 일본의 국가-사회 관계가 위기 상황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변동될지 관찰하는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이 글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II에서는 일본의 코로나19 확산의 과정과 이에 대한 일본 정부 대응의 현황 분석과 더불어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일본의 위기 대응의 문제점을 분석할 것이다. 일본 코로나19 대응 문제의 원인에 대한 분석인 III에서는 국가 능력 제한성에 대한 논의와 전후 일본의 국가-사회 관계의 후견주의적 성격의 영향에 대한 논의를 다루고자 한다. IV에서는 코로나19가 일본에 주는 정치사회적 그리고 정치경제적 함의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II. 일본 코로나19 대응

 

1. 일본의 코로나19 확산과 대응

 

시계열적으로 2021년 말까지 일본의 코로나19 확산은 5차례의 대유행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일본에 코로나19 첫 확진자가 발생한 2020년 1월 16일 이후 2여 년 동안 일본은 다섯 차례의 코로나19 확진자의 확산세를 경험하였다.

 

2020년 1월 중국 후베이성으로부터의 입국금지로 시작하여 3월까지 확대된 중국, 한국, 이탈리아 등으로부터의 입국금지 확대로 상징하는 수변(미즈가와) 대책은 코로나19의 일본 국내 확산을 막을 수 없었다. 국내 확산이 아니라 외국으로부터의 전염 방지에 초점을 둔 2020년 초기 일본 정부의 대응 자세는 그해 2월 요코하마항에 정박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 내의 코로나19 확산에 대해 일본 정부의 선내 체류 방침의 대응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뉴질랜드와 같은 전면적 락다운이 아니라면 국내 확산을 막아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려운 코로나19의 속성상 일본 국내 감염 확대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2월 21일 누적확진자가 100명을 넘어섰고, 한달 뒤 3월 21일에 이 수치는 1,000명이 되었다. 누적확진자가 10,000명이 된 것은 4월 18일로, 다시 한달만에 10배가 되었다. 2020년 3-5월 동안의 제1차 대유행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3월 26일 신형인플루엔자등대책특별조치법을 마련한 뒤, 이에 근거하는 긴급사태선언을 4월 7일에 도시부 7개 도도부현에 발령하고, 같은 달 16일에 전국으로 확대하였다. 5월에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들면서 일본 정부는 긴급사태선언을 중지하였다.

 

7월 들어 감염 확산세가 다시 발생하면서 제2차 대유행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제1차 대유행 때와는 달리 경제와 방역의 양립 노선을 강하게 유지하였다. 경기 대응 차원에서 수립된 고투캠페인의 지속은 제2차 대유행기의 감염 확산세를 악화시키는 요인이었다. 8월 3일 40,000명이었던 누적감염자가 같은 달 11일에 50,000명, 20일에 60,000명으로 증가하였다. 경제와 방역 양립 노선 속에서 긴급사태선언의 재개를 꺼려하던 제2차 대유행기 일본 정부의 자세는 아베 총리가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나고 스가 정권이 출범한 9월에도 유지되었다.

 

제1차 대유행 때와는 달리 제2차 대유행이 수습되지 않는 가운데 계절적 요인이 겹쳐서 2020년 11월 이후 감염 확산이 더욱 거세져 제3차 대유행이 되었다. 누적확진자 수치는 10월 30일 100,000명에서, 12월 1일 150,000명, 12월 21일 200,000명으로 급증하였다. 일본 정부는 결국 12월 28일 고투트래블을 중지하는 결정을 내리고, 2021년 1월 7일에 도쿄, 치바, 사이타마, 가네가와에 긴급사태선언을 발령하게 이른다. 제3차 대유행기 일본 정부의 긴급사태선언은 지역 확대와 기한 연장 등의 조정을 거쳐 진행되다가 3월 21일에는 해제된다.

 

2021년 4-6월 사이의 제4차 대유행과 7-9월 사이의 제5차 대유행은 일본 정부의 세 번째와 네 번째 긴급사태선언 발령과 중복된다. 제4차 대유행 동안 누적확진자는 4월 10일 500,000명을 넘고어서고, 5월 2일 600,000명, 5월 19일 700,000명을 넘어섰다. 7월 1일 800,000명의 누적확진자 수는 제5차 대유행 동안 급증하였다. 7월 29일 900,000명에서 8월 6일 1,000,000명에 이르렀고, 9월 1일 1,500,000명을 넘어섰다. 8월 20일에는 하루 확진자 숫자가 25,992명으로 최대치를 기록하였다. 하지만, 제5차 대유행은 확진자 규모에 비해 그 이전의 대유행에 비해 사망자수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한편, 네 번째 긴급사태선언이 모두 종료된 9월 30일에는 1,575명으로 확진자 발생수가 줄어들었고, 그 이후 10월 6일 1,125명을 마지막으로 하루 확진자 발생수가 천명 이하로 진입하였다([그림 1]과 [그림 2] 참조).

 

[그림 1] 일본의 코로나19 확진자수 추세(2020.1-2021.12)

출처: NHK. “国内の感染者数・死者数.” (https://www3.nhk.or.jp/news/special/coronavirus/data-all/)

 

[그림 2] 일본의 코로나19 사망자수 추세(2020.1-2021.12)

출처: NHK. “国内の感染者数・死者数.” (https://www3.nhk.or.jp/news/special/coronavirus/data-all/)

 

한국 내에서는 일본의 코로나19 확산의 피해 정도에 대해 과대 해석이 컸다. 물론 2020년 2월 대구에서의 집단 감염 사태와 2021년 10월 이후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기 동안 한국에 비해 일본의 확진자 숫자가 컸으며, 인구대비로도 일본의 감염 확산세가 강했다. 특히 2020년 말 일본에서 제3차 대유행이 시작되던 시점에서 한국이 확산을 막아낸 뒤 2021년 일본에서 지속된 3, 4, 5차 대유행 동안 한국의 확산은 관리되었기 때문에 상대적 비교 속에 그러한 인식이 클 수밖에 없었다. 한일 양국이 2021년 유사한 백신 접종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일본의 PRC 검사량을 중심으로 하여 일본 정부 방역대책의 실패 인식이 강했다([그림 3]과 [그림 4] 참조).

 

[그림 3] 한국과 일본의 PCR 검사수 비교(천명당 검사수의 추이, 2020.1-2021.10)

출처: Our World in Data. “Coronavirus Pandemic.” (https://ourworldindata.org/coronavirus)

 

[그림 4] 백신 접종(완료자 비율)의 추세 비교

출처: Our World in Data. “Coronavirus Pandemic.” (https://ourworldindata.org/coronavirus)

 

하지만, 글로벌 비교를 볼 때 일본의 코로나19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은 편이다. G7 국가와의 비교를 볼 때 인구 대비 누적확진자 수와 누적사망자 수 모두에서 일본은 피해 정도가 작은 사례에 속한다. 다만, 동북아 4개국(한국, 일본, 대만, 중국)과 호주, 뉴질랜드의 6개국을 비교해 보면, 일본은 한국, 호주와 유사한 피해 정도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그림 5] 참조).

 

[그림 5] 코로나19 백만명당 확진자와 사망자 수 비교(2021년 12월 23일까지 누계)

출처: Worldometer. “COVID-19 CORONAVIRUS PANDEMIC.” (https://www.worldometers.info/coronavirus/) 데이터를 통해 저자 작성.

 

2. 코로나19에 대한 일본 대응의 기능부전

 

피해 수준의 정도로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이 문제였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찾기 어렵다. 2020년과 2021년에 일본 내에서 무수히 많은 일본 코로나 대응 문제점 비판론의 도서들이 출판되었다. 많은 경우 비객관적 비판론 전개도 많으나,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는 입장에서도 비판적 부분은 매우 크게 제기되었다.[1] 비교적 관점에서 관리된 코로나19 피해 수준은 일본의 정부와 의료계의 효과적 대응의 결과가 아니라, 효과적이지 못한 대응에도 불구한 결과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島田眞路·荒神裕之 2020; 牧田寛. 2021; 森田洋之. 2020).

 

일본의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자택대기사망으로 상징되는 의료 대응의 한계성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하지만, 의료 대응의 한계 자체를 일본만의 문제점이라 말하기 어렵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폭발하는 상황에서 의료 대응이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것은 전세계적 공통 현상이었다. 다만, 2020년 1년여 동안 소위 의료붕괴를 염려하면서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의료 대응 체계 강화를 모색하였던 점에 비추어 볼 때 2021년 의료 대응의 경직성이 개선되지 않는 점을 주목해 볼 수 있다. 즉, 폭발하는 환자에 대한 의료 대응이 부족했다는 점 자체가 아니라, 2020년 1년여 동안 의료 대응 강화 정책이 정책결정자들에 의해 강조되고 다방면적으로 추진되었음에도 의료 대응 체계가 효과적으로 개선되지 못한 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일본에서의 의료 대응 한계를 논할 때 가장 상징되어 논해지는 것이 자택요양 중 사망이다. 일본 경시청의 조사에 의하면 2020년 3월부터 2021년 8월까지 의료기관이 아닌 자택이나 요양기관 등에서 사망한 코로나 환자는 817명에 이른다. 이중 2021년 8월에 250명이 사망하여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2] 입원 대기 중 사망자가 나오는 것 자체를 완벽하게 막을 순 없지만, 그 숫자가 커지는 것 자체는 일본에서 우려했던 ‘의료붕괴’를 암시하고 있으며, 일본의 제5차 대유행 당시에 이러한 상황에 근접하였다.[3]

 

일본 정부와 의료계는 코로나19 대응 병상 수 증가에 적극 나서기 보다 코로나19 환자 증가를 관리하는데 초점을 두는 정책을 폈다. 하지만, 2021년 세 차례의 대유행기에 환자가 증폭하면서 코로나19 대응 병상 수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일본의 2021년 확진자 수가 2020년에 비해 크게 증가하였더라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그 수가 적은 편이므로, 코로나 19 대응을 위해 확보 필요로 하는 병상 수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물론 코로나19 환자 전원에 대한 입원 원칙을 유지하는 한, 그 부담은 적지 않다. 다만, 중증자 대응에 필요한 수준의 병상 증가도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코로나19 환자 대응 병상확보 증가가 코로나19 확산세의 2021년에 크게 이루어지지 않은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제기된다. 물론 2020년 여름 이전 2만 개도 안되던 병상이 2021년 말에 4만 개를 상회하는 변화가 있지만([그림 6] 참조), 2021년 코로나19 확산세 속에서 중증자를 감당하는 병상확보는 유연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부분은 1인당 병상 수와 급성기 병상 수에서 일본이 OECD 회원국 중 1등이라는 점을 비추어볼 때 특기할 부분이다([그림 7] 참조). 즉, 일본 내에는 코로나19 대응 병상으로 전환될 잠재적 후보가 되는 병상이 많이 존재하고 있지만, 이들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전환되지 못했다. 2019년 기준 162만 석의 병상 중에서 정신병용 병상, 결핵용 병상, 고량자 만성환자용 병상, 요양 병상 등을 제외하고 90만개의 병상이 잠재적으로 코로나19 대응으로 전환될 수 있는 후보군으로 간주된다(鈴木亘 2021, kindle location 239).

 

[그림 6] 일본 코로나병상 수의 추이(2020.5-2021.12)

출처: 厚生労働省 “療養状況等及び入院患者受入病床数等に関する調査について.” (https://www.mhlw.go.jp/stf/seisakunitsuite/newpage_00023.html) 데이터를 통해 저자 작성

 

[그림 7] OECD 회원국 인구 1000명 당 병상 수 (2019년)

출처: OECD. “Health at a Glance.” (https://www.oecd-ilibrary.org/social-issues-migration-health/health-at-a-glance_19991312)

 

일본이 2021년 제3차, 제4차, 제5차 대유행기에 경험한 코로나19 자택대기사망은 단순히 코로나19 확진자 증폭 때문이 아닌, 코로나19 병상 수 확보가 원활하고 유연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대응의 기능부전으로 인한 결과라 할 수 있다.

 

III. 국가의 제한된 역할과 일본형 민관협동

 

1. 케어중심 의료개혁의 역설

 

일본의 많은 병상 수가 코로나19 대응 병상 수로 전환되지 않는 즉자적 원인으로 병상을 활용하는데 필요한 의사와 간호사의 부족이 제기된다. 2종 상당의 지정감염병으로 지정된 코로나19의 환자는 원칙적으로 ‘감염증지정의료기관’인 전문병원의 ‘감염병 병상’에 입원해야 했다. 정부 방침이 변경되어 이용 병상의 기준이 확대되었으나, 감염병이나 호흡기내과 전문의와 전문간호사가 필요로 했다(鈴木亘 2021, kindle location 294). 게다가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코로나19 병상은 다른 업무와 완전하게 구별된 전문 의료 인력의 배치가 필요로 한다.

 

의료 인력 부족 문제에서 일본의 의료인력의 적은 규모가 연결된다. 세계 1위의 병상 수와는 달리 인구대비 의사 수에서 일본은 OECD 평균을 밑돈다. 2018년 기준 31개 OECD 회원국 중 일본의 인구 천명당 2.49명의 의사 수는 2.48명인 한국의 바로 위인 27위에 머물러 있다. 인구 천명당 11.8명의 간호사 수(2018년 기준)는 OECD 국가 중 상위에서 8번째에 위치하지만, 병상 수의 규모에 비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4] 하지만, 의사 수와 간호사 수의 전체적 규모가 코로나19 대응 병상으로의 전환 지체와 직결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소규모 의원 중심의 일본 의료계의 구조적 조건에서 중급 민간 병원과 공공 대형 병원의 코로나19 병원 대응에의 적극적 역할 전환이 핵심 과제인 가운데, 전체 의료 인력 수가 적은 것이 코로나19 대응 의료인력 부족의 핵심 요인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지난 20여년 간의 일본 의료개혁에서 의료시설과 의료인력 사이의 편차를 해소하고, 효율적 의료 서비스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중점 과제였다. 정부 특히 재무성 입장에서 의료개혁의 근본적 목표는 고령화로 인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의료비를 억제하여, 재정부담을 완화하는 것에 있다. 재정부담 완화 관점에서 볼 때 의료인력의 확대는 추구되기 어렵다. 일본 정부가 의료개혁으로 꾸준히 추진한 방향은 의료시설의 효율적 활용에 있었다.

 

재정부담 완화 관점에서 의료개혁이 처음으로 추구된 2000년대 초반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純一郎) 정권에서는 의료비 억제와 더불어 의료시설의 효율화를 위한 시장원리 도입에 관심이 있었다. 고이즈미 정권은 기존에 금지되던 보험자와 의료기관 간 개별계약의 규제완화, 의료특구에서 주식회사의 의료기관 개설 허용, 혼합진료(보험진료와 자유진료)의 부분적 규제완화 등을 시도하였다(二木立 2015, 91-92). 하지만, 고이즈미 정권 시절에 의료개혁의 시장화 정책지향이 구체적으로 실행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고이즈미 정권에서도 의료시설의 시장화 방향성은 제한적이었지만, 그 이후 자민당 정권과 민주당 정권에서 시장화 지향의 의료개혁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민주당 정권과 제2기 아베 정권에서 의료의 성장산업화 정책지향은 의료개혁의 시장화 방향성을 일치하는 측면이 있으나, 국민의료보험 중심의 의료서비스 강화의 대의는 꾸준하게 지속되었다(二木立 2015, 93-95).

 

지난 20여 년간 일본 의료개혁에서 핵심적 기축은 정부의 의료관련 지출 억제, 개인의 자기부담 비율 증가, 그리고 의료와 돌봄의 일체화였다. 정부의 의료관련 지출 억제는 의료비 보험수가 인상 억제로 상징되며, 의료에 대한 개인의 자기부담 비율은 8%로 인상되었다. 의료시설의 시장화를 통한 효율화 대신에 일본 의료개혁에서 중심적인 것은 ‘큐어(cure)에서 케어(care)로’의 방향성이다. 대표적으로 2013년 <사회보장제도개혁국민회의보고서>에서는 ‘치료하는 의료에서 치료와 지지를 양립하는 의료로의 전환(「治す医療」 から 「治し,支える医療」への転換)’을 명시하고 있다. 치료하는 의료가 급성기 의료에 대한 대응 행위라면, 만성기 의료와 인생최종단계의 의료돌봄이 지지하는 의료가 된다(二木立 2020, 9-10). 의료 서비스를 생활 관리에 집중하는 형태로 전환하려는 일본 의료개혁의 방향성은 시장화와 연계된 신자유주의적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가의 재정부담을 완화하는 한편, 노후와 연계된 돌봄을 의료에 중심에 두고, 이를 위한 지역 단위의 민관협동 체제를 강조하고 있다. 만약 신자유주의를 국가 역할의 축소로 광의적으로 해석한다면 일본의 케어중심 의료개혁도 신자유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의료개혁에서 나타난 국가의 의료 분야에 대한 재정적 관여 감소 노력이 일본의 의료 역량 약화를 가져왔다고 일방적으로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일본의 의료개혁은 지방포괄케어로 상징되는 일본의 지속가능한 생활보장체계 구축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二木立 2017, 15-54). 하지만, 일본 의료개혁의 케어중심적 성격은 코로나19 대응에 잘 부합하지 않는다. 일본의 의료개혁은 의료 서비스가 만성형 노후관리에 최적화는 것에 초점을 두기 때문에, 급성기 전염병인 코로나19에 대한 대응 태세를 구축하는데 장애 요인의 하나가 된다고 말 할 수 있다.

 

2. ‘요청’과 ‘권고’ 기반 법제도의 한계

 

코로나19 대응에 일본 의료 역량을 동원하는데 가장 핵심적 사안은 민간 중급 병원을 코로나19 대응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었다. 일본의 병원 구성비에서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압도적이다. 국공립 의료기관의 비율은 2018년 기준 18.3%로 31개 OECD 회원국 중 네덜란드, 한국, 콜롬비아 다음으로 그 비중이 낮다. 병상 수에 있어서 국공립 비중은 28.7%로 병원의 비중에 비해 크지만, 민간병원은 병상 수에 있어서도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鈴木亘 2021, kindle location 248). 민간병원 중에서 중급 이상의 병원이 코로나19 병상을 많이 운영하도록 하는 것에 정부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으나, 민간병원을 동원해 내는 방법에 있어서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은 다른 국가들과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다.

 

민간병원의 비중이 큰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코로나19 확산세가 급증하였을 때 정부는 민간병원에 코로나19 병상 확보의 행정명령을 내렸다. 유럽의 프랑스, 독일은 물론 미국의 뉴욕주, 그리고 한국에서도 정부의 민간병원에 대한 비상시의 명령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일본은 민간병원에 대한 코로나19 병상 확보의 ‘명령’을 내린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명령’의 법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의료법에는 환자를 받는 권한은 각 병원의 독자 판단에 있다. 병원에 대한 감독권한이 있는 도도부현은 병원에 병상 활용에 대한 지시 명령을 내릴 권한이 없다. 감염병과 신형인플루엔자등대책특별초지법에도 행정당국의 권한은 민간병원에 ‘협력요청’을 하는 것으로 제도 설계가 되어있다. 2021년 감염병법 개정 시에 행정명령의 문구 포함이 논의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귀결된 것은 ‘요청’에 더해서 ‘권고’를 추가하고,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 병원명 등을 공표하는 벌칙을 추가하는 것이 포함되었다(鈴木亘 2021, kindle location 450).

 

위기 시에 국가권력이 사회 부분에 개입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가운데,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에서 국가 개입의 형태로 ‘요청’과 ‘권고’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2021년 2월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일본 정부의 가장 눈에 띄던 행위는 대규모 이벤트 자숙의 ‘요청’과 전국 임시휴교 ‘요청’이었다. 긴급사태선언 시에 영업시간 단축 등이 또한 ‘요청’되었다. 공식적으로는 강제력이 없는 가운데 국가권력의 실제 의도에 대한 사회의 자발적 수용과 자숙의 패턴은 코로나19 경험에서 발견되는 매우 일본적 현상이다(박승현 2020; 鴻上尚史·佐藤直 2020).

 

일본에서 국가권력의 사회에 대한 개입의 비가시화는 전후 일본에서 꾸준하게 지속되어 온 현상이다. 국가가 사회에 대해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전전 일본과 전후 일본은 연속성이 있다. 하지만, 전후 일본은 국가가 사회에 직접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것 자체를 꺼려왔다(湯淺墾道·林紘一郎 2011). 이 점은 전후 평화주의적 사회와 보수주의적 정치권 사이의 대립구도에서 양측 사이의 일정한 타협 결과로 생각할 수 있다. 또는 국가권력과 사회 사이의 분명한 경계 설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국가권력의 시스템 속에서 각 위치에 서있는 주체가 가지는 책임과 권한에 대한 근대성이 부족하다고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가 비판했던 전전 일본의 성격이 전후에도 지속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전후적 성격이던 전전으로부터 지속되던 성격이든 코로나19 속에서 발견되는 ‘요청’과 ‘권고’에 기반한 사회에 대한 국가권력의 명시성이 떨어지는 개입은 일본에서 새로울 것이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일본 의료계는 국가권력이 의도하는 코로나19 병상 확대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강제 없이도 공공성을 위해 자기희생을 자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일본적이라는 일부 일본 복고주의자들의 일본특수론은 코로나19에 대한 많은 민간병원의 대응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국가권력의 사회에 대한 개입의 명시성이 떨어질 때, 사회의 반응은 국가권력에 대한 사회 각 부분이 가지는 권력에 따라 달라진다.

 

3.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의 지속성

 

일본에서 민간병원을 대상으로 ‘명령’이 아닌 ‘요청’과 ‘권고’로 이루어진 정부의 코로나19 병상 확보 요구는 강제성이 없었고, 이에 대한 민간병원의 자발적 응답은 그렇게 인상적이지 못했다. 일본 정부는 명령 대신에 높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민간병원에 제공하였다. 코로나19 환자에 대한 보험수가가 지난 2년 동안 계속 상승하였다. 2020년 4월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중증자 등에 대한 보험수가를 2배 인상하였고 5월에는 3배, 9월에는 5배로 인상하였다. 2021년 4월에는 코로나19 대응에 직접적으로 연계가 없는 의료계에 대한 전반적 보험수가 인상이 추가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정부가 보정예산으로 통해 편성한 <긴급포괄지원교부금>도 대부분 민간병원으로 흘러가는 경향을 보였다(鈴木亘 2021, kindle location 493).

 

하지만, 코로나19 관련 보험수가가 증가되는 것이 민간병원의 코로나19 대응의 적극성으로 연계되지 않았다. 일본 민간병원의 코로나19에 대한 미온적 태도는 병원 규모가 크지 않은 조건과 긴밀하게 연계된다. 민간병원의 소규모성은 코로나19에 대한 전문적 대응에 필요한 의료인력이 각 병원 차원에서 충분하지 않다는 문제를 의미한다. 일본의 소규모 민간병원의 소위 ‘저밀도의료’ 성격은 코로나19와 같은 전염병에 대한 전문적 대응을 하기에 어려운 조건이었다. 미국 등에서 코로나19 중증환자에 대한 대응이 주로 대형병원 중심으로 이루어진 점은 코로나19 대응에서 의료기관의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鈴木亘 2021, kindle location 667).

 

소규모 민간병원이 각각 코로나19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조건 속에서, 더욱 필요한 것은 지역 내 병원 사이의 역할분담이다. 지역 내 대형병원이 코로나19 중증자 치료를 담당하고 중급 민간병원이 경증자 치료를 담당하는 가운데, 환자의 치료 상태에 따라서 환자의 전원을 능동적으로 이루는 체계가 이상적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에서 병원 사이의 역할분담은 작동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2010년대에 추진해온 지역의료구상의 근간에는 병상 수의 축소 목표가 있음에는 틀림없지만, 지역의료구상은 지역 내 병원 사이의 역할 분담을 의미하기도 하다(二木立 2015, 41-50). 즉 지역의료구상 개혁이 잘 진척되었더라면, 코로나19 대응에서의 병원 사이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 민간병원의 저밀도의료 성격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을 수도 있었다는 가설도 가능하다. 하지만, 일본 내 병원간 역할분담은 코로나19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했다고 보기 어렵다.

 

코로나19 이전 진행된 지역의료구상 개혁 논의에서 중급 민간병원과 대형 공공병원 사이의 역할분담 구축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병원 사이의 역할분담에 대한 지역의료구상은 병원들의 병상 수 조정과 연계될 수밖에 없고, 정부 측의 숨겨진 근본적 의도는 역할분담 구축보다 병상 수 축소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병상 수가 병원의 수익과 직결되는 상황 속에서 민간병원의 병상 수 조정에 대한 저항은 강했다.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개혁 시도는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고, 먼저 나선 것은 공공병원의 병상 수 조정이었다. 코로나19 이전의 대형 공공병원의 병상 수 조정은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에 부정적인 요인이 되었다(鈴木亘 2021, kindle location 1224).

 

지역의료구상에서 문제시되는 일본의 과도한 병상 수 자체가 민간병원에 대한 보험수가 제도 설계와 큰 관련성이 있다. 2006년 의료보험 보험수가 개정에서 ‘급성기 병상’에 대해 1일당 1만5,660엔의 높은 보험수가가 설정되었고, 이후 폭발적으로 병상 수가 증폭되었다. 급성기 고도의료 확충을 명목으로 하였지만, ICU 등이 포함되는 고도급성기 병상이 아닌 실제 고도의료 치료와 관련없는 고령자 만성질환을 대상으로 하는 민간병원의 ‘급성기 병상’이 대폭 증가된 것이다(鈴木亘 2021, kindle location 1082).

 

2000년대 이후 ‘급성기 병상’의 증폭 과정과 제2기 아베 정권 하에서의 지역의료구상의 진행 지체 현상 모두 일본 의료 서비스의 효과성 증진과 상충된다. 하지만, 의료 서비스의 효과성 증진 목표를 위해 민간병원 중심 일본 의료계의 이해관계와 대립되는 개혁노선을 일본 정부는 강하게 추구하지 않았다.

 

전후 일본 사회에서 사회세력이 보수정치권에 정치적 지지를 주고 업계의 이해관계를 보장받아온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는 생산성이 낮은 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장기 지속되어 온 현상이었다. 일본의 의료 분야는 농업, 지방, 토건 등의 분야와 더불어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가 강하게 드러나던 대표적 분야이다. 일본 전후 시스템의 변화를 지향하는 구조개혁 노선에서 의료 분야에 대한 국가 재원 투여의 축소와 성장산업화 등의 논의가 계속되어서 나온 배경에는 민간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의료계의 이해추구가 정치권과의 네트워크 속에서 보장되는 가운데 전체적으로 의료 서비스의 비효율성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비판적 시선이 있다. 코로나19의 위기 상황 속에서 일본 민간병원의 더딘 대응과 협조체계 구축의 어려움은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 속 일본 의료 서비스의 경직성이 지속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주고 있다.

 

IV. 코로나19 이후의 일본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일본 정부는 확연하게 국가 역할 강화의 방향성을 선택하고 있다. 제2기 아베 정권의 아베노믹스 자체가 재정건전성의 정책 목표와 부합하지 않는 성격이 컸지만,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재정건전성 확보 자체는 정부 정책 목표에서 우선순위에 있지 못했다.[5] 2020년 회계연도에는 3차례의 보정예산의 추가 편성 속에 150조 엔에 이르는 유례없는 대형 세출 규모를 보여주었다. 2021년 회계연도에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권의 35조엔 규모의 보정예산 추가 편성으로 2020년 회계연도와 유사한 140조 엔 이상의 세출을 지속하고 있다. 2021년 10월 야노 고지(矢野康治) 재무차관은 재정확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담긴 기고문을 『文藝春秋』에 발표하였다(矢野康治 2021). 이것이 담론 차원에서 일본 내에 큰 방향을 불러일으킨 것에 비해서 적극재정 정책의 추구에 실제적 제약이 되지 못했다. 재정정책의 선심성 성격에 대한 재정담당자의 비판론은 코로나19 위기 상황 속에서 사회 보호가 필요하고 이를 위한 국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정치적 담론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재정지출로 상징되는 일본의 적극적 국가 역할론은 의료개혁의 방향성에 대한 변화를 전망케한다. 케어형 의료개혁이 근간을 두고 있는 재정적 고려는 코로나19 이후 의료행정에서 단기적으로 핵심적 고려 사항이라고 보기 어렵다. 일본 의료개혁에 비판적 관점을 제기해온 니키 류(二木立)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해 의료에 대한 국가 지원의 강화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二木立 2020, 3-5).

 

한편, 국가의 사회에 대한 개입의 명시성이 적은 행정체계에 대한 비판론은 일본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 매우 강해 보인다. 코로나19는 일본 행정개혁의 대폭적 변화의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화를 중심으로 하는 행정의 효율화가 가장 먼저 제기되어 진행되고 있다(Iida 2020). 하지만, 행정의 효율화를 넘어서 사회에 대한 개입을 선명하게 하는 법제도 정비가 단기간에 이루어질 가능성은 적다. 위기 시에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와 사회를 강제할 수 있는 헌법적 권한은 일본 현행 헌법상 불분명하다. 일본사회의 리버럴 세력들은 국가권력의 사회 개입의 명시화를 국가주의 강화를 야기하는 위험한 진전으로 우려하고 있다(今井照 2020). 한편, 국가권력이 사회에 개입하는 권한의 명시화 없이도 사회에 대한 실질적 통제관리가 가능하다는 점을 비추어 볼 때, 상당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국가권력의 사회 개입에 대한 법적 권한 명시성 확보에 일본의 보수엘리트들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것 같지 않다. 다만, 최근 경제안보로 상징되는 국가의 사회 부분에 대한 개입 강화의 정책 방향에 대해서 일본 국내적 동의 여론이 커지고 있다. 이점은 국가권력의 사회에 대한 개입의 권한 명시화와는 별개로 실질적인 사회에 대한 개입의 정도는 지속적으로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암시한다.

 

코로나19 대응 기능부전의 원인으로 간주되는 국가의 역량 축소 또는 개입 자제는 코로나19 이후 반대 방향으로 진전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의료 분야에서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가 향후 어떤 쪽으로 변화할지는 전망하기 쉽지 않다. 민간병원의 경직성에 대한 비판론은 의료개혁의 효과성 증진을 위한 개혁 요구를 추동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일본의 다른 저생산성 분야의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의 정치적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크게 약화되었다. 농업, 지역, 토건 등에서의 이익유도정치는 더는 왕성하지 않다. 하지만, 의료계의 정치적 힘은 다른 후견주의 작동 분야들과는 다르다. 더욱이 위기 대응의 전문적 능력을 독점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의료계에게 코로나19는 정치적 영향력의 강화를 다시 가져다줄 가능성도 있다. 후견주의 정치 메커니즘이 전반적으로 약화되는 가운데 의료 분야에서 국가-사회 관계의 성격이 어느 방향으로 변해 나아갈지는 향후 면밀한 관찰이 필요한 대상이다.

 

사회보장정책과 의료정책에 의료계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 자체는 당연하다. 향후 정책과정에서 과거 소규모 민간병원의 자기 이익 추구가 의료의 공공성과 유연성 추구와 동반되지 않았던 문제점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일본의 일부 지역에서 작동했던 의료기관들 사이의 효과적 협력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던 사례는 주목할만하다(김성조 2020; 鈴木亘 2021, kindle location 1501). 의료 분야의 후견주의가 코로나19 대응에서 문제가 된 핵심은 병원의 과도한 자기중심성에 있었다. 이를 극복하면서 동시에 공공 서비스의 안정성을 유연하게 확보할 수 있으려면 보다 적극적인 민관협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후견주의의 국가-사회 관계도 일종의 민관협동이었다. 중요한 것은 민관협동 자체가 아니라 어떠한 민관협동이 공공성과 사회보호에 효과적인지에 대한 고민이다. 후견주의 비판을 넘어서 후견주의를 대체할 국가-사회 관계의 모색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Levy 2015; 宮本太郎·山口二郎 2016).

 

V. 결론

 

일본은 글로벌 비교에서 코로나19의 확산과 이로 인한 피해 정도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심각하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응에서 일본이 뛰어난 사례라고 간주하기도 어렵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해외에 우수사례로 코로나19 대응의 일본모델을 전파하자는 아베 총리 등의 언급은 코로나19 대응의 여러 난맥상이 제기되면서 더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자원과 제도를 활용해 위기에 대응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국가의 역할 증대가 효과적 위기 대응의 충분조건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을 일본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일본 코로나19 대응 기능부전 원인의 상당수는 의료 분야의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 속에서 유래한다. 일본에서 후견주의 정치 메커니즘은 정치과정에서 공공성에 대한 논의를 비가시화시켰고, 유연성있는 정책대응을 어렵게 하였다. 이 글은 코로나19 대응에서 발견되는 일본 의료계와 보건행정의 비효과성이 국가의 역할 수준뿐만 아니라 국가-사회 관계의 성격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일본 내에서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에 대한 비판론은 광범위하고 매우 폭넓게 수용된다.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해서 이미 과거 후견주의 정치 메커니즘이 작동하던 분야에서 후견주의는 과거의 일이 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의료 분야에서 일본의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의 성격이 강하게 남아 있음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가 의료 분야에서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게 될지는 전망하기 조심스럽다. 다만, 후견주의적 국가-사회 관계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론은 후견주의가 전후 일본의 사회보호에 제공했던 순기능과 함께 고민되어야 한다. 공공성과 사회보호의 가치에서 후견주의보다 나은 새로운 국가-사회 관계를 수립할 수 있을 것인가? 코로나19에 대한 일본의 경험을 바라보면서 미래 일본의 전망에서 남는 질문이다.■

 


 

저자: 이정환_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국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전임연구원과 동 대학 국제학부 교수를 역임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일본 정치경제와 일본 외교이다. 주요 논서로는<현대 일본의 분권개혁과 민관협동> (2016), "일본 지방창생 정책의 탈지방적 성격" (2017), "아베 정권 역사정책의 변용: 아베 담화와 국제주의" (2019)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윤하은_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 hyoon@eai.or.kr
 

6대 프로젝트

무역ㆍ기술ㆍ에너지 질서의 미래

세부사업

코로나이후 세계정치경제질서

Relate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