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신년기획 특별논평 "EAI 한국외교 2021 전망과 전략" 시리즈 다섯 번째 저자인 이승주 EAI 무역기술변환연구센터 소장(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의 세계무역질서를 예측하고 향후 한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합니다. 저자는 바이든 신정부가 대(對)중국 강경책을 유지하는 한편, 민주주의 국가 간 협력을 공고히 할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한 최초의 메가 FTA인 RCEP이 바이든 행정부의 다자무역질서 복귀 전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설명합니다. 격변하는 세계무역질서 속에서 한국은 바이든 행정부의 다자주의 복귀를 예의 주시하고, 미국의 CPTPP 개정과 WTO 차원의 디지털 무역 규칙 수립을 염두에 둔 선제적인 대비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주장합니다. 더불어, 세계 통상 환경의 변화에 발맞춰 한미 FTA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진단합니다. 한국은 국내적 차원의 법적ㆍ제도적 정비를 선행함과 동시에, 지역 경제 질서를 위한 한일관계 개선 또한 검토해야 한다고 저자는 제언합니다.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과 세계무역질서의 향방

“America is back.”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세계 경제 침체와 자국 우선주의가 지속되는 가운데 2020년 11월 조 바이든(Joe Biden) 대통령 당선자는 미국이 다시 협력 기반의 다자주의를 선도하는 한편, 불공정하게 이득을 누려온 중국에 대해서는 강경책을 지속할 것임을 명확하게 하였다. 곧 출범할 바이든 행정부가 대외경제정책의 목표와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하였는데, 문제는 방법론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다자주의의 회복을 위해 어떤 리더십을 행사할 것인지를 전망하기 위해서는 트럼프 행정부 4년의 성과와 한계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중국 정책에 있어서 안보상의 이유로 화웨이를 비롯하여 중국 기술 기업들에 대한 거래 제한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강경책을 과감하게 구사하였는데, 이는 전임 행정부들의 ‘외교적 문법’과는 명확하게 차별화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다수의 국내 정책에서 정치적 균열과 갈등을 초래하였음에도 대(對)중국 정책에 대해서는 초당적 합의의 기반을 조성하는 데 비교적 성공적이었다. 바이든 행정부가 대중국 강경책을 지속하는 데 유리한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부담도 함께 물려받았다.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무역 전쟁을 불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한 2017년 미국의 대중(對中) 무역 적자는 3,751억 달러에서 2018년 사상 최대 규모인 4,189억 달러까지 증가하였다가, 2020년 2,835억 달러로 감소하였다. 대중 무역 적자의 감소는 일견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전쟁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2020년 미국의 전체 무역 적자는 오히려 증가하였다. 특히, 2020년 11월 상품 및 서비스 수지 적자가 681억 달러를 기록하였는데, 이 수치는 683억 달러를 기록했던 2006년 8월 이후 가장 큰 규모이다. 무역 전쟁의 결과, 무역 불균형이 중국에서 다른 국가로 이전된 것일 뿐, 무역 불균형의 구조적 원인이 해소된 것은 아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대중국 무역 적자의 감소는 미중 무역 규모가 2017년 6,351억 달러에서 2020년 5,035억 달러로 감소하는 현상을 수반하였다. 미국과 중국이 중장기적으로 상호의존의 수위를 지속적으로 낮춤으로써 ‘관리된 상호의존’의 시대로 이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국제 협력의 복원과 미국-중국-EU 복합 게임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 및 파트너들에 대해서도 일방주의적 행태를 거듭함으로써 대중국 정책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국제 협력의 기반을 약화시켰다. 바이든 당선자는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가 ‘외톨이 미국’을 초래하였다고 평가하고, ‘세계 리더로서 미국의 역사적 역할을 다시 확립할 것’임을 명확히 한 것은 일방주의적 접근으로는 중국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바이든 당선자는 더 나아가 미국이 규칙 기반의 다자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민주주의 국가 간 협력이라는 새로운 수단도 제시하였다. 2020년 12월 바이든 당선자가 민주주의 정상회의(Summit for Democracy)를 개최하여 ‘자유 세계 국가들이 공유하는 정신과 목적을 새롭게 형성’하자고 제안한 것은 민주주의 국가 간 협력이 외교적 수사에 그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바이든 당선자가 표방하는 미국의 다자주의 복귀는 기존 규칙 기반 다자질서의 단순한 복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대내외 시대 변화에 맞게 새롭게 탈바꿈하는 ‘변환(transformation)’을 의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미국-중국-EU 사이의 복합적인 경쟁과 협력의 구도’는 바이든 행정부가 국제 협력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직면할 중요한 도전 요인이다. 중국은 2020년 12월 EU와 투자 협정 체결에 원칙적으로 합의함으로써 바이든 행정부의 다자주의 복귀에 발 빠르게 대응하였다. 투자 협정은 FTA보다 범위가 좁아 그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기는 하지만, 세계 경제 질서와 미국의 대외경제전략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EU의 입장에서 중국과의 투자 협정은 중국과 미국을 동시에 겨냥하는 전략이다. 투자와 금융 서비스 시장에 대한 중국 정부의 규제와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은 잘 알려져 있다. EU는 투자 협정 체결을 통해 중국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의 기반을 마련하였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EU-중국 투자 협정은 미국에 대한 대응 조치이기도 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에 강온 양면책(Good cop Bad cop routine)을 동원함으로써 2020년 1월 미중 1단계 합의를 이끌어 내기도 하였다. EU의 입장에서 볼 때, 미중 1단계 합의는 미국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우월적 위치를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EU-중국 투자 협정은 유럽 기업들이 중국 기업뿐 아니라 미국 기업에 대해서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하는 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EU의 선제적 움직임은 민주주의 협력과 대서양 협력에 기반한 대중국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용이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남겨 놓은 일방주의의 유산이다.

미국의 다자주의 복귀가 바이든 행정부에게 부여된 새로운 시대적 과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을 다자무역질서에 다시 안착시키고, 더 나아가 다자무역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리더십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대외정책과 국내 정책 사이의 재균형이 필요하다. 미국의 다자무역질서 복귀의 필요성이 큰 것은 사실이나, 다자주의 복귀에 따른 국내 정치적 저항 또한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세계화와 자유무역으로 인해 초래된 경제적 양극화와 정치적 균열을 치유하고 다자주의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대결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중산층의 확대를 통해 경제적 양극화와 정치적 균열을 완화함으로써 세계화 대 탈()세계화의 이분법을 넘어 제3의 세계화를 위한 국내 정치적 기반을 형성하는 전략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곧 대외적 차원의 다자주의를 뒷받침할 정치적ㆍ이념적 기반을 재구성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RCEP 타결과 미중 경쟁의 새로운 차원

바이든 행정부의 다자무역질서 복귀 전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미국 대통령 선거 직후 아시아 국가들이 참여한 최초의 메가 FTA인 RCEP이 8년 동안의 지리한 협상 끝에 타결되었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 이후 코로나19 대응 및 경제 회복 대책 등 현안 문제의 해결과 같은 국내 정책에 더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는 친환경 정책과 제조업 노동 정책처럼 정치적 이해관계가 상충될 수 있는 정책들의 균형과 조화를 맞추고, 지지 세력의 이해를 구하는 작업에 상당한 정치적 자원을 투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가 다자주의 복귀에 대한 의지를 천명하였음에도 그 현실 가능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던 것은 바이든 행정부가 대외경제정책에 정치적 자원을 분산시킬 여유가 없는 국내 정치 상황 때문이었다.

그러나 변화의 기운은 외부로부터 만들어졌다. RCEP의 타결이 갖는 경제적ㆍ전략적 의미는 적지 않다. RCEP에 대해서는 시각에 따라 다양하게 할 수 있으나, RCEP 참여국들이 스스로 표방한 “RCEP Guiding Principles”에 견주어 평가할 수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RCEP 참여국들은 ‘현대적이고, 포괄적이며, 고품질의 호혜적 경제 파트너십 협정’(modern, comprehensive, high-quality and mutually beneficial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을 지향하였다. 20개 챕터, 17개 부속서, 54개 이행 스케줄로 구성된 RCEP이 이러한 목표를 모두 달성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적어도 아시아 전역에 걸친 기본 무역 규칙을 도출한 최초의 메가 FTA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욱이 RCEP 참여국들의 면면을 보면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경제적 활력이 높은 국가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을 뿐 아니라, 2050년에는 RCEP 참여국 가운데 7개국이 세계 20대 경제 대국에 포함될 전망이다. 세계 GDP의 29%, 세계 인구의 29%, 세계 무역의 25%를 차지하는 국가들로 구성된 RCEP의 경제적 효과가 미래에 더욱 기대되는 이유이다.

또한 RCEP 참여국들 가운데 한국-일본, 중국-일본은 양자 FTA를 체결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RCEP이 한중일 FTA의 효과를 갖게 되어 동북아, 더 나아가 동북아와 동남아 사이의 경제 통합을 촉진하는 효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된다. RCEP 참여국들이 다수의 양자 FTA를 체결하였음에도 활용도가 높지 않았던 것은 FTA 간 규칙의 불일치와 비일관성으로 인한 ‘스파게티볼(spaghetti bowl) 효과’ 때문이었는데, RCEP은 무역 규칙을 통일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RCEP은 참여국들의 원산지 기준을 통일하고 원산지 증명 절차를 간소화하였기 때문에 활용 편의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지역 가치 사슬 내에서 이루어지는 무역을 활성화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TPP를 대체하여 타결ㆍ발효된 CPTPP가 미국의 탈퇴로 인해 공급 사슬 내 무역을 확대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RCEP이 향후 지역 경제 통합과 지역 경제 아키텍처(architecture)에 미칠 영향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비록 협상의 핵심 요소는 아니나 디지털 무역, 지적재산권, 환경, 노동, 금융 서비스 등을 포함시킴으로써 향후 고품질 FTA로서의 가능성을 열어두었다는 의미도 부여할 수 있다.

RCEP의 전략적 의미는 더욱 크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보호주의의 파고(波高)와 코로나19로 인한 세계 경제 침체에도 불구하고 RCEP이 체결된 데 대하여 ‘자유무역과 다자주의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시진핑(习近平) 주석은 한발 더 나아가 ‘중국의 CPTPP 가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며 향후 지역 경제 질서 재편을 중국이 주도할 것임을 시사하였다. 중국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 공세에 직면하여 내수 수요 확대에 기반한 국내와 국제의 쌍순환(双循环) 전략을 추진하였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중국 경제는 2020년 1분기 경제 성장률 –6.8%를 기록하였으나, 빠르게 회복하여 2020년 약 3% 수준의 연평균 경제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RCEP은 중국 정부가 국내 내수와 대외 무역 사이의 쌍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경우, 역내 가치 사슬과 지역 경제 질서가 중국 중심으로 형성되는 효과를 초래하여 미국이 주도하는 디커플링(decoupling)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인도의 불참이 초래할 효과는 경제적 차원보다는 전략적 차원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인도의 불참으로 인해 아시아 국가들이 자기 완결적 지역 경제 아키텍처를 형성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다. 일본 및 호주와 함께 인도가 RCEP에 참가할 경우,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경제 버전을 수립하게 되어 중국을 지역 아키텍처의 틀 내에서 견제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였다. 미국은 최근 구상 단계에 머물렀던 인도태평양 전략을 실행 단계로 이행시키면서 구체화하는 과정에 있었다. 인도태평양 전략이 쿼드(Quad), Blue Dot Network, Clean Path Initiative, Economic Prosperity Network 등 다양한 방면에서 구체화되는 성과를 나타내기도 하였으나, 무역에 기반한 전반적인 경제 전략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갖고 있었다. 인도의 RCEP 참가는 경제 협력 구상을 보완함으로써 인도태평양 전략의 완결성을 높이고, 이를 기반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으나, 인도의 불참은 중국의 영향력을 더욱 부각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한국의 대응 전략은?

바이든 행정부의 다자주의 복귀 천명과 RCEP이라는 메가 FTA의 체결은 다자무역질서의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무역질서의 변화의 파고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첫째, 한국은 바이든 행정부의 다자주의 복귀를 위한 수순과 방식에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바이든 행정부는 국내 정치적 이유에서 다자주의 또는 메가 FTA로의 복귀를 서두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 세계 무역 규칙을 써야 한다’는 점 역시 명확히 하였기 때문에, 국내 정치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다자주의 또는 메가 FTA의 방식을 찾아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이 선호하는 조항들이 동결된 기존의 CPTPP에 복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이며, 복귀의 조건으로 노동과 환경 관련 규칙을 강화를 제시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바이든 행정부가 민주당 내 진보 진영과 공화당을 설득할 수 있는 정치적 균형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와 동시에 노동, 환경, 디지털 무역 규칙 등을 WTO 의제에 포함시켜 추진하는 이원적 접근(dual-track approach)을 함께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바이든 행정부의 메가 FTA와 WTO 활용에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 우선, 한국은 한미 FTA를 업그레이드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와 한미 FTA를 한 차례 개정한 전례가 있는데, 한국 정부는 세계 통상 환경의 변화를 선제적으로 반영하여 한미 FTA를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함으로써 세계 무역 표준을 선도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WTO 활용과 관련, 한국은 ‘21세기 무역 현실과 20세기 무역 규칙’ 사이의 괴리를 메우는 데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2019년 WTO 76개 회원국은 스팸, 소스코드, 공개 정부 데이터, 상품 무역 원활화, 서비스 시장 접근, 전자 서명과 인증, 온라인 소비자 보호 등 방대한 분야의 전자상거래 협상을 촉진하기 위하여 협상 제안서를 제출하기로 합의하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다자주의 복귀를 위해WTO 차원의 디지털 무역 규칙 수립에 관한 협상을 촉진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한국은 이에 선제적인 대비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디지털 무역 규칙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국내적 차원의 법적ㆍ제도적 정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2020년 1월 데이터 3법이 통과되어 데이터 산업 발전을 위한 법적 기반이 갖추어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디지털 무역의 핵심 사안 가운데 하나인 개인정보의 국외 이전에 대한 규정이 미흡하다는 평가도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다 세밀한 준비가 필요하다. 국내적 차원의 제도적 정비가 이루어질 때 대외적 차원에서 디지털 무역 규칙 수립을 위한 다자 협상에 보다 적극성을 띨 수 있다.

셋째, RCEP의 타결이 지역 경제 질서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검토하고, 변화 방향에 대한 선제적 대비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RCEP 타결 과정에서 이면의 리더십을 발휘한 측면이 있다. 인도가 끝내 불참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중국 견제의 필요성이 컸던 일본이 인도가 참여할 때까지 협상 타결을 지연시키고자 하였던 상황에서 한국은 아세안 국가들과 협조하여 RCEP이 성공적으로 타결되는 데 리더십을 발휘하였다. 이제 한국은 RCEP 타결 이후 지역 경제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리더십을 지속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할 필요가 있다. TPP와 RCEP은 여러 면에서 차별적이다. 비록 동결 조항들이 있기는 하나 CPTPP가 “WTO plus”를 지향하는 고수준의 메가 FTA라면, RCEP은 “WTO-consistent”를 지향하는 개도국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 이처럼 상이한 메가 FTA들을 조화시킴으로써 통합적인 지역 경제 질서를 형성하는 데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CPTPP에 참가하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CPTPP의 개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만큼, 그 실현 가능성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선제적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다.

넷째, CPTPP와 RCEP에 모두 참여하여 지역 경제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국가는 일본이다. 일본은 CPTPP 타결과 출범 과정에서 전략적 다자주의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향후에도 미국의 CPTPP 복귀와 인도의 RCEP 참여를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이 지역 경제 질서에서 리더십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일본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

 

 

■ 저자: 이승주_ EAI 무역·기술·변환센터 소장 ·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국제정치경제, 통상의 국제정치, 글로벌 디지털 거버넌스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사이버 공간의 국제정치경제》(이승주 편), “Institutional Balancing and the Politics of Mega FTAs in East Asia,” 《Northeast Asia: Ripe for Integration?》(공편), 《Trade Policy in the Asia-Pacific: The Role of Ideas, Interests, and Domestic Institutions》(공편) 등이 있다.

 

■담당 및 편집: 서정혜 EAI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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