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EAI는 2020년을 맞이하여 신년기획 특별논평 “EAI 2020 전망과 전략” 시리즈 총 6편을 아래와 같이 게재합니다.

1. 하영선: 북한의 2020년: 2대 난관의 정면돌파전  (2020년 1월 6일 발간)

2. 전재성: 2020년 한국의 미중관계 전략과 대미전략 (2020년 1월 8일 발간)

3. 이동률: 한중관계와 한국의 대중 외교전략 (2020년 1월 13일 발간)

4. 손  열: 2020년 한일관계와 대일정책: 시야를 넓혀야 보이는 갈등 해법 (2020년 1월 15일 발간)

5. 이승주: 미중 무역 전쟁과 한국의 통상정책: 다자주의의 회복과 지역 경제 질서의 재편을 위한 중견국 외교 (2020년 1월 20일 발간)

6. 최태욱: 2019년의 선거제도 개혁과 2020년의 총선: 전망과 과제 (2020년 1월 22일 발간 예정)

 

신년기획 특별논평 "EAI 2020 전망과 전략" 시리즈의 다섯 번째 보고서로, 미중 무역 전쟁과 한국의 통상정책에 대해 분석한 이승주 EAI 무역·기술·변환 연구 센터 소장(중앙대학교 교수)의 논평이 발간되었습니다. 오랜 진통 끝에 미중 무역 협상의 1단계 협정이 타결되었습니다. 미중 양측에 성과와 한계가 뚜렷한 만큼 미중 무역 전쟁은 어느 쪽도 단기간에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기는 어려우며, 향후 진로는 불투명합니다. 저자는 1단계 협정이 무역 전쟁의 종결이 아니라 장정의 한 단계에 불과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국이 향후 불확실성 속 체계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먼저 한국 정부는 미중 무역 전쟁이라는 대외 환경 변화에 독자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이번 합의가 미중 양국뿐 아니라 세계무역 전반에도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실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환기하며, 동지 국가들(like-minded countries)과의 연대를 통해 다자주의적 세계 경제 질서를 재설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역 경제 질서의 변화와 관련하여 한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을 조화시켜 중장기적으로 하나의 지역 경제 질서 재편을 선도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다가올 세계 무역 질서의 재편에 대비한 국내 제도 정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미중 무역 전쟁과 1단계(phase one deal) 협정: 그 결과와 의미는?

‘역사적인(historic),’ ‘중대한(momentous),’ ‘획기적(landmark), ‘거대한 전진(huge step forward).’ 2020년 1월 15일 미국과 중국이 2018년 3월부터 22개월간 치열하게 전개해왔던 무역 전쟁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진행하였던 1단계 협상이 타결된 데 대하여 트럼프 대통령과 이번 협상에 참여했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Robert Lighthizer) 통상대표, 스티븐 므누신(Steven Mnuchin) 재무장관 등이 활용한 수사적 표현들이다. 한편, 중국 측의 공식적인 반응은 이번 합의가 ‘호혜적이고 양측 모두 승리한 협정(mutually beneficial and win-win agreement)’이며, 향후 안정적인 경제 성장 및 세계 평화와 번영의 증진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라는 다소 차분한 것이었다. 미중 무역 전쟁은 좁게는 양국 간 무역 불균형의 해소, 넓게는 상이한 경제 시스템 사이의 갈등, 더 나아가서는 패권 경쟁 등 다양한 측면을 내포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미중 양국은 양자 차원의 문제 해결을 우선 추구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세계 경제 질서의 재편에서 우위를 확보하려고 있기 때문에 다자 차원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다. 미중 무역 전쟁을 정확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이러한 다면성과 다차원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1단계 협정은 미중 무역 전쟁이라는 장정 가운데 도입부에 해당한다. 1단계 협정은 미중 양국이 2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갈등하고 협상한 결과를 중간 정산한 것이고, 이와 동시에 미중관계의 향후 경로를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지표로서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1단계 협정을 구체적으로 뜯어보고, 이를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다시 조망할 필요가 있다.

1단계 협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선, 협정문은 1장 지적재산권, 2장 기술 이전, 3장 식품 및 농산물 무역, 4장 금융 서비스, 5장 거시경제정책, 환율 문제, 투명성, 6장 무역 확대, 7장 양자 평가와 분쟁 해결 장치, 8장 결언으로 구성되었다. 우선, 협정문의 제목이 ‘경제 및 무역 협정(economy and trade agreement)’이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번 1단계 협정이 좁은 의미의 무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보다 광의의 미중 경제 관계 전반에 대한 합의라는 점을 제목에서부터 밝힌 것이다. 협정문의 1장은 지적재산권에 할애되었는데, 이는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서 지적재산권 문제가 차지하는 위상과 이에 대한 미중 양국이 가지고 있는 이견의 수위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 장에는 중국 정부가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광범위한 법체계를 수립하고 이행하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한다고 되어 있다. 2장은 기술 이전에 관한 것으로 미중 양측은 강제적 기술 이전이 상당한 우려의 대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기술 이전이 자발적이고 시장 기반의 조건(voluntary, market-based terms)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4장 금융 서비스에서는 미국 금융 업체들이 오랫동안 요구해왔던 중국 시장 접근에 대한 구조적 장벽을 낮추는 방안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중국 금융 기관들이 보유한 불량 채권을 인수할 수 있는 자산관리기업 면허를 미국 금융 서비스 공급자들에게 발급하고, 비차별적 대우를 제공한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에 더하여 2020년 4월까지 생명, 연금, 건강 보험 부문과 증권, 기금 관리, 선물 분야에서 외국인 지분 제한을 철폐하기로 하였다.

가장 뜨거운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던 무역 불균형 해소에 관한 합의는 6장 무역 확대 분야에 반영되어 있다. 중국은 향후 2년간 약 2,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제품을 수입하기로 합의하였다. 중국 측이 제조업, 농산물, 에너지, 서비스 수입 규모를 각각 777억 달러, 320억 달러, 524억 달러, 379억 달러 늘리기로 하였다. 농산물의 수입 규모가 이전보다 2배 이상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 미디어의 주목 대상이 되기는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중국의 대미 수입 확대는 산업별로 비교적 고르게 분산되었다. 이는 무역 전쟁의 유탄을 맞은 산업의 피해를 복구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경제적 의도가 작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측의 약속에 대하여 미국 측은 예정되었던 관세 부과를 유예하고 일부 관세를 인하하기로 한 반면, 3,75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는 유지하기로 하였다.

1단계 협정의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 것인가? 외형을 보면,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상당히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위에서 언급한 외교적 수사를 통해 1단계 협상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는 마련된 셈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산업정책과 보조금 등 중국의 다양한 관행을 ‘경제적 침공(economic aggression)’으로 정의하며, 무역 불균형의 시정을 넘어 중국의 광범위한 개혁을 이끌어내겠다는 목표를 제시하였던 것을 고려하면 1단계 협정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의 자평과 대조적으로 1단계 합의에 대하여 비판적인 평가도 다수 제기되는 이유이다. ‘출혈을 멈추게 했을 뿐(stop bleeding),’ ‘합의의 이행과 2단계 협상이 더욱 중요,’ ‘대체로 중국에 유리한 결과(largely a deal on Chinese terms)’ 등의 평가가 미국 내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의 합의안은 중국 정부가 굳이 격렬하게 반대할 만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도 아니며, 이미 수년 전에도 합의 가능한 수준이었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이다.

한편, 중국 글로벌 타임즈(Global Times)가 지적하였듯이, 중국 내에서는 ‘미중 양국 모두 1단계 협정에 일정한 유감을 가지며 만족하지 못하지만’ 큰 틀에서 볼 때, 1단계 협정이 ‘비교적 공정하다’는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협정 결과를 놓고 이해득실을 논하는 것은 대체로 정치적 목적 때문에 과장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전략적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 무역 전쟁을 장기간 지속하면서 대폭 하락한 상호 신뢰를 일정 정도 회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이번 협정의 전략적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세부적인 디테일에 얽매여서 큰 틀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의 편린이 드러난다. 물론 중국 측이 일부 관세 인하를 얻어내기는 했으나, 여전히 3,600억 달러에 달하는 수출품목에 대한 관세를 제거하지 못한 것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이다.

미국산 제품의 수입 확대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치(target)를 설정하였다는 것 역시 중국 측으로서는 아픈 대목이다. 구체적으로 협정문 6장 무역 확대(Expanding Trade)에서는 중국이 2020~2021년 사이 2017년 기준 연도에 비해 대미 수입을 2,000억 달러 이상 확대할 것을 보장해야 한다(shall ensure)고 명시하였다. 협정문 부록에는 분야별, 연도별 수치까지 명시되었다. 중국 측이 2020년과 2021년 각각 제조업 329억 달러와 448억 달러, 농산물 125억 달러와 195억 달러, 에너지 185억 달러와 339억 달러, 서비스 128억 달러와 251억 달러 이상 수입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하는 합의의 이행을 모니터하고 상대를 압박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서 중국 측에 불리한 요소이다.

그렇다면 1단계 협정에 이르는 과정과 그 결과가 시사하는 것은 무엇인가? 1단계 협정을 계기로 미중 양국이 일방적인 승리를, 그것도 단기간에 쟁취하기 어렵다는 점이 자명해졌다. 미중 무역 전쟁에는 패권 경쟁의 요소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중국의 부상이 세계 정치의 구조적 변화를 초래하고 이에 대한 상이한 판단과 인식이 패권 경쟁을 가속화하게 된다. 즉, 패권 경쟁 과정에는 구조적 변화, 변화의 의미에 대한 오판, 상대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과 불안감 등이 중첩되기 마련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 미중 무역 전쟁은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불안감, 그에 따른 선제적 대응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현시점에서 중국을 압박할 경우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자신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중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도광양회(韬光养晦)와 화평굴기(和平崛起)를 넘어 중국몽(中国梦)을 실현할 때가 되었다는 시진핑(习近平) 주석의 자신감과,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중국에 가하는 압박에 대한 불안감이 교차한 결과 미중 무역 전쟁을 확전하는 선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번 1단계 협정은 미국과 중국 모두 일방적인 승리가 현실적으로 용이하지 않다는 점을 상대는 물론, 자국에게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미국은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일정한 성과를 이끌어냈지만, 정작 패권 경쟁의 핵심인 미래 경쟁력과 관련된 핵심 쟁점들은 2단계 협상 또는 그 이후를 기약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중국 역시 일부 주요 쟁점에서 선언적 합의를 함으로써 2단계 협상까지 시간을 벌게 되었지만, 수치화된 목표치와 상당히 구체화된 이행 메커니즘을 약속한 것은 집권 이래 권력 집중을 추구해 온 시진핑 체제의 권위에 흠집을 낼 수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은 어디로?

1단계 협정을 계기로 미중 무역 전쟁이 일단 휴지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협정이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라는 점에서 정중동일 뿐이다. 향후 진로에는 거대한 불확실성이 도사리고 있으며, 트럼프 행정부가 반복적으로 확인한 포괄적 무역 협정에 도달하는 과정은 더욱 험난할 것이다. 1단계 협정 이후 미중 무역 전쟁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또한 미중 무역 전쟁의 진로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가? 우선, 미중 무역 전쟁은 시작은 하였으되 결과를 맺기 어려운 ‘유시무종’(有始無終)의 길을 상당 기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백악관에서 진행된 서명식에서 류허(刘鹤) 부총리가 ‘모든 일은 시작이 어렵다’(万事开头难)는 중국 격언을 소개하기도 하였지만, 미중 무역 전쟁은 그 반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 전쟁을 개시하고 1단계 협정에도 합의하였으되, 그 이후 어떻게 마무리할지 출구 전략을 찾기가 결코 용이하지 않다.

협상 동학 측면에서도 2단계 협상은 두 가지 면에서 1단계 협상과 차별적이기 때문에 그 끝을 예단하기 어렵다. 우선, 협상 과정과 단계가 1단계 협상보다 훨씬 더 여러 단계로 분할될 가능성이 높다. 상대적으로 단순한 1단계 협상이 타결되는 데도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2단계 협상은 여러 라운드로 분할되어 타결까지 훨씬 더 지난한 과정을 거칠 가능성이 높다. 므누신 장관이 1단계 협상 타결 직후 “2단계 협상은 다수의 협상 단계(multiple rounds)로 분할될 것이며, 2A, 2B, 2C가 될 수도 있다(phase two may be 2A, 2B, 2C)”이라고 밝힌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사안의 성격 면에서도 2단계 협상은 훨씬 더 치열하고 장기간의 협상이 불가피하다. 2단계 협상에서는 미국이 오랫동안 문제 제기를 해왔던 중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들 – 보조금, 국영기업, 인터넷 검열 – 이 협상 어젠다의 본론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쟁점들은 1단계 협정에서 합의된 내용들보다 복잡성이 크고 국내정치적으로도 민감하기 때문에 더 밀도 높은 협상을 필요로 할 것이다.

둘째, 지적재산권과 기술 이전 강요 문제가 1단계 협상에 포함되기는 하였으나, 이것이 미국산 제품 수입 확대나 금융 서비스 시장 개방 등과 달리 선언적 차원의 합의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 경쟁력 문제는 사실상 다음 협상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1단계 협상의 의미를 ‘집행 메커니즘(enforcement mechanism)’에서 찾는 것은 역설적으로 2단계 협상의 예측 불가능성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과거 미국 통상 협상과 비교할 때, 1단계 협정의 집행 메커니즘이 한층 구체화된 것은 사실이다. 지적재산권의 경우, 중국 측이 합의한 사항의 실행 방법과 시기를 구체화한 행동 계획을 발간하고, 그 결과를 정기적으로 공표하도록 하였다. 미국 측이 이를 중국의 의무 이행을 측정하는 데 활용할 수 있게 되는 등 집행 메커니즘의 절차적 개선이 이루어졌다. 한편, 협정문 2장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진 강제적 기술 이전 문제는 선언적 성격을 띠고 있고, 기술 이전 강요를 중국 정부가 부인하고 있는 상태에서 기술 이전 중지를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 것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또한, 협상 방식 면에서도 1단계 합의의 이행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2단계 협상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 구조적 장애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셋째, 국내정치의 영향력이 본격화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정치의 영향은 미중 무역 전쟁의 불확실성을 더욱 높이게 될 것이다.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 내에서는 합의를 위한 합의로서 내용적으로는 ‘가짜 합의(phony deal)’에 불과하다는 예단이 제기되었다. 1단계 협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당초 공언한 목표에 비해서는 매우 초라한 결과이며, 2020년 대선 시계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가자 대중국 압박이 성공했음을 내세울 수 있는 치적을 필요로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협상 결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비판이 과도한 측면은 있지만, 이번 협정은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시진핑 주석조차도 국내정치 기반의 내구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며, 이는 미중 양국 정부가 향후 2단계 협상에서 제시할 수 있는 양보와 타협의 테두리를 설정하게 될 것이다. 

넷째, 1단계 협상의 과정과 합의 결과로부터 미묘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경제 정책의 변화의 조짐을 읽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1단계 협상의 타결을 ‘역사적 합의이자 거대한 진전’으로 자평한 라이트하이저 통상대표의 현실 인식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협상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에 대해 ‘미중 양국 경제의 상호의존은 현실이며 이를 분리(decoupling)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호의존을 중국 압박에 활용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고 강조하였다. 중국이 대미 수입을 증대하기로 합의한 것은 일차적으로 미중 양국이 축소 균형보다는 확대 균형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라이트하이저의 주장대로 트럼프 행정부가 양국 경제의 상호의존을 무기화한 전략이 일차적인 성과를 거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중국과의 경제적 교류가 미국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중국이 약탈적으로 이를 활용하기 때문에 공급 체인의 재편 및 분리를 과감하고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 통상제조국장 등 트럼프 행정부 내의 강경파들의 시각과 대비된다. 미국 내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경제) 정책에는 그 스펙트럼이 매우 광범위하지만, 정책 결정 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 정책은 라이트하이저와 나바로가 취하는 입장의 중간 지대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압박하고 그에 따라 미중 경제 관계의 불확실성이 지속될 수 있으나, 미국과 중국의 공급 체인으로부터 미국 기업을 분리하려는 시도는 속도 조절에 들어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중국이 과거와 같이 저임금에 기반한 세계의 생산 공장 역할에서 벗어나 지구적 가치 사슬 내에서 업그레이드를 추구함에 따라, 2017년 무렵부터 이미 진행되어 온 주요 다국적기업들의 공급 사슬의 다각화 추세를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라이트하이저의 주장대로 상호의존을 대중 압박에 활용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이 이미 명확해진 만큼 중국으로서도 양적·질적으로 대미 의존도를 낮추어 나가는 추세적 변화를 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섯째, 패권 전쟁이 아닌 패권 경쟁, 특히 기존 패권국이 감행하는 예방적 패권 경쟁에서는 과거 또는 현재 시점의 상대와의 싸움이라기보다는 미래의 세계 질서를 상정하고 이를 역산하여 현시점에서 필요한 선제적 조치들을 취하는 것이 요체이다. 그러나 1단계 협정은 미래 세계 질서의 재건축을 위한 비전과 로드맵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고, 현재의 쟁점들을 해결하는 데 치중한 트럼프 행정부의 조급성이 엿보인다. 디지털 경제와 관련, 미중 양국이 2019년 ‘디지털 경제에 대한 오사카 선언(2019 Osaka Declaration on Digital Economy)’의 틀 내에서, 그것도 디지털 기술이 농업 부문에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협력 메커니즘을 수립한다는 정도의 내용만 있을 뿐 미래 세계 경제 질서의 핵심 요소에 대한 근본적이고 치열한 논의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미중 무역 전쟁의 파고를 넘기 위한 한국의 통상 전략

1단계 합의는 한국 국내외 경제 환경에 불확실성을 초래했던 최대 요인이 잠정적으로나마 해소되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국은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와, 이에 따른 중국의 대미 수출 감소 및 기술 자립 추구로 인해 한국 중간재에 대한 중국의 수요가 감소되는 간접적 효과를 초래하였다. 1단계 협상의 타결은 이러한 불안 요인을 봉합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번 합의가 무역 전쟁의 종결이 아니라 장정의 한 단계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은 향후 상황 전개에 대한 체계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우선, 정부는 이번 합의가 미중 양국뿐 아니라 세계 무역 전반에도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실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1단계 합의가 미중 양국만이 상호 이익을 주고받는 폐쇄적이고 배타적 방식이 아닌, 세계 경제의 번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창출해야 한다는 점을 다른 국가들과 연대하여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는 협정 서명식에서 류허 부총리가 대독한 연설에서 시진핑 주석이 강조하였고, 서명식 후 진행된 브리핑에서 류허 부총리가 미국에 제공한 양허가 다른 무역 상대국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라고 재확인한 사항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중국이 구매를 확대하기로 합의한 품목 중 일부에 대해 제3국으로부터 무역이 전환되는 결과를 예방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농산물의 경우, 중국이 세계 최대의 대두 수입국이기는 하나 브라질 대두 수입을 미국산 대두로 대체하거나 수입 후 창고에 저장하는 등 특단의 방식이 아니고는 중국이 약속한 농산물 수입 확대가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실정이다. 제조업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데, 반도체, 전자기기, 자동차 부품 등은 중국이 수입을 한국에서 미국으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둘째, 한국이 미중 무역 전쟁이라는 파괴력이 큰 대외 환경의 변화에 독자적으로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이 동지 국가들(like-minded countries)과의 연대를 통해 보호무역주의를 퇴치하고 다자주의적 세계 경제 질서를 재설계하는 노력을 배가해야 하는 이유이다. 미중 양국이 갈등을 봉합한 것은 긍정적이나, 이번 합의는 기본적으로 양자주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미국과 중국이 현재의 문제에 대해 일시적으로 타협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미래 세계 경제 질서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은 찾기 어렵다. 이에 대해 한국은 다자주의의 동력을 회복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을 선도할 필요가 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민족주의와 고립주의가 고조됨에 따라 유엔 중심의 다자주의를 회복하기 위한 ‘다자주의를 위한 동맹(Alliance for Multilateralism)’을 제창하고 있으며, 일본, 캐나다, 호주 등이 이에 동참할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미 주요국들은 다자주의의 위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 세계 무역 또는 경제 분야의 다자주의 연대를 선도하여 둘 사이의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를 고리로 동지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지역 경제 질서의 변화와 관련하여 한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을 조화시키는 방안에 대해 본격적인 검토를 할 필요가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의 향방에 대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웠던 2019년 11월 인도를 제외한 15개국이 RCEP 협정문에 가서명하였다. 인도가 제외된 가운데 RCEP 협상이 실질적으로 타결되었다는 것은 세계 무역의 정체, 아시아 지역 통합의 증가, 기존 무역 패턴의 교란 등 지구적 경제 환경 변화에 대한 지역 차원의 대응 필요성에 역내 국가들이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CPTPP는 미중 무역 전쟁의 높은 파고 속에서 베트남 등 반사 효과를 누리는 국가들과 공급 사슬의 재편을 추진하는 국가들이 지역 경제 통합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제도적 틀로서 역할을 시작하였다. 문제는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상당수 역내 국가들이 RCEP과 CPTPP에 모두 참여한 것이 아니며, RCEP과 CPTPP가 지향하는 경제 통합의 수준, 범위, 방식 등이 여전히 상이하다는 데 있다. RCEP과 CPTPP가 상호 경쟁 관계를 형성할 경우 지역 경제 질서 재편에 장애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RCEP과 기존 CPTPP의 조화를 통해 지역 경제 질서 재편을 선도하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일본은 이미 CPTPP 체결과 발효 과정에서 리더십을 행사하는 전략적 다자주의의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한국은 단기적으로 RCEP과 CPTPP가 배타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하며, 중장기적으로는 하나의 지역 경제권을 형성할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하는 작업을 선제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CPTPP 참여 시기와 방식을 본격적으로 준비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넷째, 세계 무역 질서의 재편에 대비한 국내 제도적 기반 정비는 필수적이다. 미중 무역 전쟁은 본질적으로 미래 경쟁력의 향배를 놓고 벌이는 게임이다. 지금까지는 미중 양국이 현재의 이슈를 양자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게임의 성격을 띠었다면, 앞으로는 전선이 신흥 이슈로 이동하고 다자 질서의 수립을 둘러싼 복합 게임으로 변화해 나갈 것이다. 디지털 무역을 포함한 신흥 이슈들에 대해서는 기존 세계 무역 체제 내에 규칙과 규범이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은 상호간의 양자 협상뿐 아니라 다른 주요국들과의 협력을 병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즉, 미국과 중국은 각각 주요국들과 양자 협력을 통해 다자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제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노력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3법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제도적 기반의 정비는 선택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를 자아낸다. 변화가 심한 대외 경제 환경에 탄력성 있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신흥 이슈와 관련한 국내 제도의 정비가 시급하다.■

 

 

저자: 이승주_ EAI 무역·기술·변환센터 소장 ·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국제정치경제, 통상의 국제정치, 글로벌 디지털 거버넌스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사이버 공간의 국제정치경제》(이승주 편), “Institutional Balancing and the Politics of Mega FTAs in East Asia,” 《Northeast Asia: Ripe for Integration?》(공편), 《Trade Policy in the Asia-Pacific: The Role of Ideas, Interests, and Domestic Institutions》(공편)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윤준일 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3) I junilyoon@eai.or.kr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6대 프로젝트

무역ㆍ기술ㆍ에너지 질서의 미래

미중관계와 한국

세부사업

Related Public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