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2018년 무역분쟁을 시작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은 무역을 넘어 기술, 에너지 부문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EAI는 미중 관계의 미래를 조망하고자 2019년 7월 "미중 경쟁의 미래: 4단계 경쟁 동학" 스페셜 이슈브리핑 시리즈를 발간하였습니다. 그 후속으로, EAI는 현재의 미중 경쟁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자 특별 논평 시리즈 "미중 경쟁과 세계 정치 경제 질서의 변환"을 기획하였으며, 발간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이승주, 미중 무역 전쟁의 동학: 외연의 확대와 상호의존의 역습 (8월 23일 발간)
2) 김상배, 사이버 안보와 미중 기술패권 경쟁: 그 진화의 복합지정학 (8월 27일 발간 예정)
3) 신범식, 에너지 이슈와 미중 전략경쟁 (8월 29일 발간 예정)

그 시리즈의 첫번째 보고서로, 이승주 EAI 무역·기술·변환 센터 소장(중앙대 교수)이 집필한 미중 무역 전쟁에 관한 논평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2019년 5월 미중 협상이 결렬되며 양국의 무역 전쟁은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트럼프 정부는 초기에 중국을 향해 무역 불균형을 포함한 비대칭적 상호의존성을 활용하였고, 점차 세계 경제의 네트워크화를 통한 새로운 방식의 경제 전쟁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합니다. 하지만 "상호의존의 무기화에는 역설이 존재한다"고 말하며, 비대칭성을 활용한 무역 전쟁은 네트워크화된 세계 경제로 인해 자국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저자는 평가합니다.

 


 

무역 전쟁의 외연 확대와 장기화

미중 무역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의 장기화는 미국의 압박 강도와 이에 대한 중국의 인식 변화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은 2018년 3월 트럼프 대통령이 500억 달러 규모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을 WTO에 제소하며, 중국의 대미 투자를 제한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행정 명령에 서명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관세와 미중 무역 전쟁은 보복 관세의 부과, 무역 협상, 관세 부과 연기, 협상 타결 실패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화웨이와 관련 기업에 거래 제한 조치를 시행하면서 기술 경쟁의 성격을 가미하게 되었다. 2019년 8월 5일 시진핑 정부가 달러화 대비 위안화 환율이 7을 돌파하는 포치(破七)를 용인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다시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함으로써 무역 전쟁의 외연은 다시 한번 확대되었다.

무역 전쟁의 외연 확장과 동원되는 수단의 다양화는 무역 전쟁의 장기화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초기 대응을 살펴보면, 가능한 한 갈등의 조기 종결을 희망했던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시진핑 정부가 보복 관세 부과 등 대결적 행동을 주저하지 않았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공세를 자국에 대한 직접적 공격을 강조하기보다는 다자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는 등 미국과의 양자적 차원의 정면 대결을 회피하는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이는 미국과의 대결적 국면을 장기화하기보다는 불확실성 제거 차원에서 사태의 조기 해결을 시도하는 것이 차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산 대두에 대한 관세 부과 등의 사례에서 나타나듯이, 미국의 무역 공세가 전례 없이 강력한 것이기는 하나, 트럼프 대통령 또한 무역 전쟁을 지속하기에는 국내정치적 부담이 클 것이라는 시진핑 정부 내부의 판단도 작용하였다.

그러나 2019년 5월 협상의 주요 내용에 대하여 미중 양국이 합의에 도달하였음에도 결국 협상이 결렬된 것은 미중 무역 전쟁에 대한 중국의 근본적 인식을 재확인할 수 있는 단초가 되었다. 시진핑 정부가 미국과의 타협을 추구한다는 것은 ‘합의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불리한 해결책을 수용하겠다는 아니었다. 미국의 압박에 대한 중국의 비판적 인식은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구분된다. 첫째, 미중 양국이 중국 지방 정부의 보조금 지급, 중국 밖으로 데이터 이전을 금지하는 사이버 안전법의 수정, 외국자본에 대한 기술 이전 강요 등의 문제에 이견을 해소하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미국의 문제 제기는 통상 정책의 범위를 넘어 국내 정책과 중국 경제 체제에 대한 과도한 개입이기 때문에 타협하기 어렵다.

보다 근본적으로 중국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을 진행하면서 적어도 세 차례 이상 합의 정신을 위반했다고 비판한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 중에 중국의 지적재산권 탈취 및 기술 이전 강요와 같은 허위 주장을 하고, 이를 근거로 추가 관세를 부과하거나, 2018년 5월 양국 공동 선언이 발표된 지 불과 10일 만에 중국의 경제 체제와 무역 정책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면서, 관세 부과 재개를 발표하는 등” 협상을 뒤로 돌리는 행위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이 결렬될 경우 미국은 유예된 관세를 다시 부과할 수 있는 반면, 중국은 관세 유예를 철회하지 못하도록 요구하는 등 매우 불평등한 요구를 하였다”는 것이다. 결국 비판의 핵심은 “중국이 양보를 하면 할수록, 미국은 더 많은 것을 원한다”는 것으로, 이는 결국 미중 양국 사이의 신뢰 문제로 귀결된다(The State Council Information Office 2019).

시진핑 정부가 미국과의 무역 협상 타결에 쉽게 응하지 않고, 트럼프 행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위안화의 평가 절하를 용인하는 등 갈등의 조기 종결보다는 확전을 불사함에 따라 미중 무역 전쟁은 예상보다 장기화되고 있다. 시진핑 정부의 이러한 선택은 협상의 조기 종결이 과도한 불평등을 수반하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 갈등 해결을 지연시키는 가운데 실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음을 의미한다. 다만, 이러한 선택은 단기적으로는 불평등한 결과를 수용하지 않는 효과는 있으나, 갈등 과정의 관리가 매우 지난하다는 점에서 도사리고 있는 도전 요인이 여전히 만만치 않다.

 

양자주의의 한계

미중 무역 전쟁의 구조적 성격은 갈등 또는 협상의 장이라는 차원에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양자주의는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양자주의를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TPP 탈퇴, NAFTA 개정, WTO에 대한 비판 등에서 잘 나타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을 반영하는 견해들은 중국의 부상이 WTO를 필두로 한 기존의 다자주의질서를 전략적이고 배타적으로 활용한 결과이며,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가 대안으로서 양자주의를 선호한다고 본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양자주의에는 이익 극대화와 협상 결과에 대한 통제 사이에 내재적 모순이 발견된다. 포럼 쇼핑(forum shopping)의 관점에서 볼 때, 양자주의는 이익 극대화보다는 협상 결과에 대한 통제를 선호할 때 선택되다. 양자주의는 다자주의에 비해 이익의 크기는 작으나, 비대칭적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협상 과정의 불확실성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도 양자주의의 이러한 한계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익 극대화를 위해 양자 협상을 동시다발적 또는 신속하게 순차적으로 추구하는 데서 이러한 모습이 읽힌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전통적 동맹국들과 주요 협력 대상국들에 대해서도 자국의 이익을 우선 추구함으로써 정작 가장 중요한 중국과의 협상을 위한 전선을 공고히 유지하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직후 한국에 대해서는 한미 FTA 개정 협상과 방위비 분담 증액을 요구하고, 일본에 대해서는 인도태평양전략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미일 FTA 협상 개시를 압박하며, 인도태평양 전략의 주요 협력국인 인도와 무역 분쟁에 돌입하였다. 즉, 주요 협력국들과도 양자 협상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함으로써 이익의 크기를 늘리는 데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자주의의 한계를 동시다발적 양자 협상으로 극복하려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과의 결전의 와중에 대중 공동 전선의 후방이라고 할 수 있는 주요 동맹 및 협력국들에 대해서도 자국의 이익을 우선 추구하는 이중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즉, 트럼프 행정부는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서는 양자주의를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미중 무역 전쟁에서 전선을 단순화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하는 양자주의의 구조적 한계이다.

 

상호의존의 역습

미중 무역 전쟁은 국가 간 경제 관계에서 금도로 여겨지던 상호의존의 무기화(weaponization of inter-dependence)를 현실화함으로써 대혼란의 서막을 열었다. 관세 부과 중심의 무역 전쟁이 상호의존의 총량적 비대칭성을 활용한 게임이라고 한다면, 상대국 또는 기업의 공급망의 교란을 시도하는 것은 지구적 가치 사슬 내의 비대칭성을 활용한 정밀 타격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미중 무역 전쟁은 이 두 가지 요소의 영향력을 극대화하였다는 점에서 세계가 처한 현실을 자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비대칭적 상호의존의 위험성

미중 무역 전쟁은 ‘파격의 일상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미중 무역 전쟁이 시작되었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일탈적 행동쯤으로 평가절하되고 곧 정상화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가 지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평가는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전쟁을 위해 동원한 수단이 그만큼 파격적이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무역확장법 232조를 활용하고, WTO에 날선 비판을 가하며 양자적 접근을 하는 방식 자체가 새로울 것은 없다. 파격은 트럼프 행정부가 사문화되다시피 한 조항들을 되살려 미중 무역 전쟁이라는 중대한 결전에 과감하게 활용하는 데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파격이 주목을 끄는 이유는 상호의존을 역으로 활용함으로써 국가 간 관계의 일차원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 데 있다. 1990년대 이후 세계 경제는 지속적으로 국가 간 상호의존을 심화시켜 왔다. 이에 대하여 자유주의 계열의 연구들은 복합적 상호의존의 증가가 국가 간 갈등의 비군사적 해결을 유도하여 궁극적으로 평화를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상업 평화론(commercial peace theory)을 주창하였다. 이들에게 상호의존은 평화의 전도사였다. 그러나 현실주의 계열의 연구들은 대다수 국가들이 현실에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비대칭적 상호의존이라며, 그 위험성을 역설하였다. 미중 무역 전쟁은 국가 간 협력의 상징이었던 경제적 상호의존이 상대국을 위협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어쩌면 그동안 애써 외면해왔던) 가능성이 언제든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점을 자각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미중 무역 전쟁 초기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은 비대칭적 상호의존을 활용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다. 중국의 산업정책, 미국 기업 기술 탈취,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 등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다양한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무역 전쟁을 선택한 것은 역설적으로 미중 무역 불균형이라는 비대칭성을 무기화한 것이었다. 2017년 기준 트럼프 행정부는 약 3,700억 달러에 달하는 대중 무역 적자를 안고 있었기에 이를 중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반면, 시진핑 정부는 미국의 관세 부과에 맞서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팃-포-탯’(tit-for-tat) 전략으로 대응하였으나, 미중 양국의 무역 불균형을 감안하면 실탄 부족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웠다. 시진핑 정부가 위안화 절하와 같은 새로운 대응 수단을 모색하는 것도 무역 분야의 비대칭성에서 발생한 구조적 불리함을 다른 방식으로 극복하려는 시도이다.

 

네트워크화된 세계 경제와 무역 전쟁

전후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던 세계화는 1990년대 신자유주의와 IT 혁명과 결합되면서 한층 가속화되었다. 기업들은 비용을 절감하고 혁신의 동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최적의 방식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 지구적 가치 사슬(GVCs: global value chains)이 형성되었다. 지구적 가치 사슬이 경제적 효율성의 실현과 리스크 관리에 효과적인 생산 방식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최종 교역재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이전의 세계화와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지구적 가치 사슬의 형성 과정에서 수많은 행위자들이 초국적 경제 활동을 통해 촘촘하게 얽히게 되면서 세계 경제의 네트워크화가 진행되었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가 지구적 가치 사슬에 포함되기 위해 다국적기업에 최적의 입지를 제공하기 위한 경쟁을 한 결과이다. 과거의 세계화가 단순 지구적 가치 사슬(simple GVCs)에 기반한 것이었다면 현재의 세계화는 복합 지구적 가치 사슬(complex GVCs)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복합 지구적 가치 사슬의 대두는 단순히 국가 간 상호의존의 수준을 높이는 것을 넘어, 세계 각국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밀하게 연결되는 현상을 초래하였다. 영향력의 행사 면에서 지구적 가치 사슬에 참여하고 있는 행위자들에 사이에 상당한 차별성이 존재한다는 점이 새삼 부각된 것은 이 때문이다. 즉, 네트워크 내 행위자들 사이의 연결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함에 따라, 특정 기업과 국가가 상대적으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에 대한 다양한 제재 조치는 세계 경제의 네트워크화를 활용한 새로운 방식의 경제 전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9년 5월 19일 화웨이와 68개 계열 기업에 대한 거래 제한 기업 목록에 포함시키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화웨이에 주요 부품과 운영 시스템을 공급하고 있는 구글, 인텔, 퀄컴, 자이링스, 브로드컴 등 미국 기업과의 거래를 제한함으로써 화웨이의 5G 경쟁 계획은 물론 통신 장비 시장에서 화웨이의 영향력 확대에 제동을 걸겠다는 계획인 셈이다. 이는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가 구성한 공급망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게임이다. 이처럼 세계 경제의 네트워크화는 공급망 내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가 상대 기업과 정부의 ‘목을 조를 수 있는 지점’(choke point)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총량적 비대칭성을 활용한 관세 전쟁이 수입 가격의 인상과 상대국의 보복 관세 부과 등 미국 국내정치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관세 부과를 중심으로 전개된 무역 전쟁은 상대국에 대한 피해를 입히기도 하지만, 자국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또한 시진핑 정부가 미국산 대두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결정을 한 데서 극명하게 나타나듯이 미국 국내정치적으로 민감한 산업 분야와 지역의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한편, 네트워크의 비대칭성을 활용한 게임은 상대국과 기업에 대한 타격은 극대화하고 자국 기업에 대한 피해를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새로운 대안으로 부상하였다. 이 방식은 자국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상대에게 더 큰 영향을 주는 수단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관세 전쟁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미중 무역 전쟁의 결과

그렇다면 아직 현재진행형인 미중 무역 전쟁이 향후 세계경제질서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우선, 단기적 이익 추구와 상호의존의 무기화가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이 중국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자국 이익의 조속한 실현을 위해 상호의존을 무기화하기에 앞서, 중국도 이미 외교안보상의 목표 달성을 위해 동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비대칭적 상호의존을 위협의 수단으로 사용한 전례가 있다. 2019년 6월 오사카 G20 정상회의 직후 일본 아베 정부가 한국의 핵심 산업에 대한 사실상의 수출 규제를 결정한 데서 나타나듯이, 상호의존의 무기화는 미중을 넘어 다른 국가들로 확산될 수 있다. 이는 ‘금도의 보편화’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상호의존의 무기화에는 역설이 존재한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부과를 활용하여 중국을 압박하는 것은 대중 무역 적자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무역 불균형의 시정을 위해 무역 불균형을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의도대로 무역 불균형이 완화될 경우, 비대칭성을 활용한 압박 전략은 그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국가 간 경제 관계의 비대칭성을 활용하여 상대국을 압박하는 경우, 압박이 성공할수록 압박의 효과가 반감되는 기제가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은 지구적 가치 사슬을 활용한 상대국 위협에도 적용된다. 지구적 가치 사슬을 교란하려는 시도는 궁극적으로 가치 사슬의 재편을 촉진하게 될 것이다. 현재의 지구적 가치 사슬은 외교안보적 이유로 교란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기반으로 형성, 유지되어왔다. 그러나 그 믿음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에, 위험 관리 차원에서 지구적 가치 사슬을 재조정하려는 시도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 수준에서도 불가피하다. 4차 산업혁명의 진행과 결합될 경우, 지구적 가치 사슬의 재편은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상호의존을 무기화하는 국가는 단기적으로 상대에게 위협을 가하고 피해를 입힐 수 있을지 모르나, 중장기적으로 그로 인한 이득이 자국에게 귀속되지 않는 역설적 결과에 직면할 수 있다. 특정 국가가 지구적 가치 사슬 내에서 현 시점에서 최적의 위치를 갖고 있다는 것이 미래의 유일한 위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지구적 가치 사슬이 재편될 경우, 핵심 위치를 활용하여 상대국을 위협할 수 있었던 이른바 관문 장악력을 스스로 약화시키게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호의존의 무기화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저자: 이승주_ 중앙대학교 정치국제학과 교수, EAI 무역·기술·변환센터 소장.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연구분야는 동아시아 지역주의, 동아시아 정치경제, 동아시아 국가들의 제도적 균형 전략 등이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 《Northeast Asia: Ripe for Integration?》(공편), 《Trade Policy in the Asia-Pacific: The Role of Ideas, Interests, and Domestic Institutions》(공편) 등이 있다.

■ 담당 및 편집: 김세영 EAI 연구원

           문의: 02 2277 1683 (ext. 208) I sykim@eai.or.kr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6대 프로젝트

무역ㆍ기술ㆍ에너지 질서의 미래

미중관계와 한국

세부사업

중국의 미래 성장과 아태 신문명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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