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진 교수는 베를린 자유대학(Freie Universität Berlin)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국민대학교 국제학부 교수로 재직중이다.

 

 


 

 

들어가며

 

2010년 말부터 중동과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계속되는 민주화 운동은 다시 한 번 세계사적 민주화의 흐름으로 이어질 것인가? 미국의 정치학자 헌팅턴(Samuel P. Huntington)이 주장하는 것처럼 민주화는 파도와 같이 하나의 시대적 흐름으로서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그간 종교나 문화적 요인에 의해 서구적 의미의 민주화에서 벗어나 있던 이슬람권 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민주화 운동은 민주주의의 보편성을 다시 확인해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중국에서도 자스민 혁명이 발생할 것인지 지난 몇 달 동안 국내외 관찰자들은 물론 중국 정부 당국의 관심까지 집중시켰다. 이 글은 최근 이슬람권의 민주화 시위에 대한 중국 내 반응과 더불어 중국 내 민주화 운동 상황 그리고 장기적으로 민주화의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자스민 혁명에 대한 중국의 반응

 

튀니지, 이집트 등에서 민주화 시위가 상당한 성공을 거두자 중국에서도 유사한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다. 실제 중국에서도 정부의 철저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일부 관련 조직이나 활동가들에 의해 그러한 시위가 시도되었다. 이를테면 중국정부에 비판적인 해외 포털 사이트인 Boxun博訊.com에 시위 제안이 게재된 이후, 중국 내 트위터(Twitter)에서도 유사한 시도들이 나타났다. 트워터 글(Tweets)과 함께 블로그, QQ腾讯 등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ocial Network Service: SNS)를 통해서 이같이 활동들이 전개되었고, 중국 당국은 방화벽을 통해서 관련 사이트 접근을 차단하고 메시지 전송을 통제하였다. 그와 더불어 정부는 위의 SNS를 통한 시위 주동자들을 색출하고, 다수의 활동가들을 가택연금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 국제 인권조직인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는 지난 2월 16일부터 3월 말 사이에 중국에서 약 25명의 변호사, 인권운동가 그리고 블로거들이 공안에 의해 체포되었거나 ‘실종’되었고, 100명에서 200명 정도가 연금 등에 의해 활동을 제한 받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중국 당국은 물리적 통제와 더불어 국민들에 대한 선전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관영 〈인민일보人民日報〉는 물론 중앙과 지방의 각종 언론 매체들이 동원되었다. 이들은 중국 사회의 상황이 중동과는 다르기 때문에 변화의 방식이나 속도가 달라야 하며, 특히 당장은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서도 사회적 안정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시키는데 주력하였다. 그와 함께 중국은 중동에 비해 민주주의 제도화 정도가 높다는 점도 강조되었다. 이를테면 중동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종신제 폐지와 최고 지도자의 교체, 기층의 지방인대나 당중앙위원회에서의 선거, 정책에 있어서 인민의 요구 반영 등 민주주의 제도들이 이미 적지 않게 마련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중국 공산당이 이루어낸 그간의 성과와 이에 대한 인민들의 지지도 부각되었다.

 

그러나 정부의 철저한 통제나 선전에도 불구하고 4억이 넘는 중국 네티즌 사이의 정보 확산을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실제 1월 하순 베이징과 상하이 등에서 시위가 예정되면서 해외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하였다. 중국 정부는 대규모 경찰병력을 동원, 장소를 봉쇄하거나 시위자들 소수가 나타날 시 신속히 연행함으로써 시위의 등장을 원천적으로 막았다. 베이징의 대표적인 상점가인 왕푸징王府井에서 몇몇 시위자들이 체포되는 상황이 해외 언론에 목격된 것이 전부였다. 근본적으로 시위 요구가 암묵적으로나마 일반 중국인들로부터 얼마나 호응을 얻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주목할 만한 시위는 성사되지 못하였다.

 

중국 지도부의 대응

 

중국 내 시위 방지에는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지도부가 민주화에 대한 공식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특히 지난 3월 초 제11기 4차 전국인민대표대회가 개최되면서 정치개혁 문제가 국내외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 하에서 중국 공산당의 입장은 당내 서열 2위인 우방궈吳邦國 상무위원장의 입을 통해서 가장 분명하고 단호하게 표명되었다. 그는 상무위원회 보고에서 “우리의 국가정세에서 출발하여 우리는 여러 정당들의 교대에 의한 집권은 하지 않을 것, 지도사상의 다원화를 하지 않을 것, 삼권분립과 양원제는 하지 않을 것, 연방제는 하지 않을 것, 사유화를 하지 않을 것임을 정중하게 표명한다.”고 밝혔다. 그의 말은 그 후 ‘다섯 가지 하지 않음五個不搞’의 구호로서 당의 입장을 체계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선전되고 있다.

 

사실 정치개혁과 관련하여 얼마 전부터 보다 주목을 받았던 사람은 다름 아닌 원자바오温家寶 총리였다. 그것은 그가 다른 지도자들에 비해서 정치체제 개혁의 필요성을 보다 적극적으로 제기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 8월 말 경제특구 선쩐深圳을 방문하여 “정치체제 개혁의 보장이 없다면 경제체제 개혁의 성과가 상실될 수 있고, 현대화의 목표가 실현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을 때, 그의 연설은 정치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변화된 입장을 보여주는 듯 하였다. 적어도 선쩐에서나마 지방 선거를 비롯한 실험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나오기도 하였다. 물론 그의 의견은 보다 보수적인 지도자들의 원칙론적인 정치개혁 입장에 의해 더 이상 확대되지는 못하였다.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는 ‘의법치국依法治國’과 ‘사회주의적 민주정치’ 등 기존의 입장을 반복하였다.

 

3월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개최를 즈음하여 원자바오 총리는 다시 한번 정치개혁 문제를 제기하였는데, 그는 작년에 비해서 보다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여전히 정치체제 개혁이 뒷받침 되지 않는 경우 경제체제 개혁의 성과도 상실할 수 있고 현대화 건설의 목표도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을 언급하였다. 따라서 정치체제와 경제체제의 개혁은 병행하여 추진되어야 하며, 지속적인 개혁을 통해서 비로소 당과 국가가 활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입장은 더 이상 진전되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는 중국과 같은 13억 인구의 대국에서 정치개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순서에 입각한 점진적인 과정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정치개혁은 “안정되고 조화로운 사회환경을 요구하며, 당의 지도하에 질서있게 진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중국의 민주주의를 언급하면서 주로 당과 그 주변 인물들의 입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적절하지 못할 수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본래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되는 것이며, 변화는 외부에 의해서 강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야 인권 및 민주주의 운동 등 향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들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 민주화 운동의 등장 및 현황

 

중국에서 민주화 요구는 가장 가깝게는 1989년 천안문 사건이 있었지만, 당의 지배에 대한 비판은 그 전에도 제기된 바 있다. 그 예로는 1976년 4월 천안문 사건, 1970년대 말의 ‘민주의 벽’과 ‘북경의 봄,’ 그리고 1980년대 초 학생운동 등이 있었다. 민주화 운동은 특히 1989년 천안문 사건을 거치면서 일부 활동가 그룹을 통해서 보다 조직적으로 전개되어 왔다. 다만 국내에서 민주화 운동을 전개하기 어렵기 때문에 당시의 주요 인물들은 대개 해외로 망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하게는 ‘민주의 벽’ 운동을 주도하고 그 이후 국내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추방된 웨이징성魏京生과 왕루오왕王若望 등이 있는데 이들은 해외에서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와 함께 1980년대 제도권 내부에서의 민주화를 시도하다가 국내정치 등의 요인에 의해 해외로 망명한 류빈옌劉濱雁 과 옌자치嚴家其 등도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였다. 그 외에도 1989년 6•4 천안문 사건과 그 이후 국내 민주화 운동을 시도하다가 망명한 왕단王丹과 한동팡韓東方 등 젊은 활동가들이 있다. 이들은 조직 활동, 잡지나 인터넷 사이트의 운영, 국제 인권단체들과의 연대 등을 통해 중국의 민주화와 인권 문제를 제기해 왔다. 이들은 해외운동의 한계로 인하여 점차 주목을 받지 못하고 활동도 감소되고 있지만, 중국 민주화 운동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1990년대 이후 중국 내에서도 민주화 움직임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이를테면 1998년 ‘중국민주당 사건’에서는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 허베이성河北省 우한武汉, 상하이 등지의 당지부 조직원들이 대대적으로 체포되면서 대외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중국민주당은 정치적, 경제적 다원주의를 내세우면서 직접적이고 민주적인 선거에 입각한 입헌 민주주의 건설을 주장하고, 이를 위해서 공산당에 의한 권력의 독점,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였다.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쉬원리徐文立, 왕요우차이王有才, 친용민秦永敏 등 주요 인물들은 체포되어 ‘국가정권전복죄’로 각각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고, 그 가운데 일부는 그 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그러나 2006년 전국적으로 111명의 대표들이 참가하는 당대회가 미국에서 개최되는 등 이들의 활동은 해외에서 계속되고 있다. 최근 중동에서 민주화 혁명이 발생하였을 때, 위 조직은 인터넷을 통해서 중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확산시키는 일을 벌이기도 하였다.

 

또 다른 예로서 2000년에 딩즈린丁子霖 등의 주도하에 구성된 ‘천안문 어머니 운동天安門母親運動’이 있다. 이 조직은 천안문 사건 피해자들의 모친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것으로서, 천안문 사건에 대한 재평가와 관련자 처벌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조직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류사오보劉曉波에 대한 지지, 그리고 민주화 논의의 확산 등의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그 외에도 적극적인 활동가들이 있는데, 이를테면 앞서 언급한 류사오보는 2008년 12월 《영팔헌장零八憲章》을 주도하여, 국가정권전복죄로 11년 형을 선고받았다. 《영팔헌장》은 작가 303인이 서명한 헌장으로서, 여기에서는 무엇보다도 인권과 정치적 자유가 명시되었다. 이 문건은 인터넷을 통해 광범위하게 전파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지지를 표명함으로써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작년 그에게 노벨평화상이 수여되었을 때 중국 정부가 그것을 중국 국내문제에 대한 간섭 내지는 정권교체를 위한 서구의 음모로 간주하고, 수상식 참여를 보이콧 하는 등 강력한 조치로 일관하였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에도 일부 활동가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조치들이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이를테면 중국의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를 해외 간행물에 기고하였던 류시엔빈劉賢斌은 올해 3월 말 국가정권전복죄로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앞서 언급된 천안문 사건, 중국민주당 사건, 《영팔헌장》 등에 참여하면서 이미 9년여의 세월 동안 복역한 바 있다. 비슷한 시점에서 란윈페이冉雲飛 등 3명의 시민운동가들도 ‘국가전복선동’ 혐의로 체포되었다.

 

직접적인 민주화 운동 이외에 인권운동도 점차 대두하고 있다. 그 예로 인권변호사들로 구성된 ‘공맹公盟’을 들 수 있다. 공맹은 특히 2003년 경찰에서 구타로 인해 농민공 순쯔깡孫志剛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내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해당 사건 이후 농민공 수용과 송환 이슈가 사회적 문제로 제기되었고, 그 과정에서 공맹은 중국정부로 하여금 해당 제도를 폐지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뿐만 아니라 공맹은 인권과 같은 사회 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발간하여 인권문제를 여론화 하는데 기여하였다. 공맹은 2008년 3월 14일 티베트 참사와 같은 해 9월 발생하였던 멜라닌 함유 분유 사건 등에 대해서도 자체적으로 조사를 실시하여 보다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 이외에도 공맹은 정부의 정보공개 요구, 인권의식이나 법률지식의 제고, 기층선거에 대한 계몽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결국 중국정부는 거액의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공맹의 활동을 방해하였고, 결국 2009년 7월 사무실을 폐쇄하고, 8월 핵심인물인 쉬쯔용许志永을 탈세혐의로 잠시 구속하기도 하였다.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 공산당내 논의

 

이처럼 국내외에서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당 지도부에서도 이에 대해 비교적 분명한 입장을 표명하게 되었다. 민주정치 건설과 관련한 금세기 최초의 체계적인 정부 문건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 민주정치 건설〉백서는 민주주의 제도의 도입에 대한 지도부의 의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이 2005년에 제출한 이 백서에 의하면, 신해혁명 이후 중국에서 다당제나 의회제도와 같은 서구식 제도의 도입이 중국의 독립과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하고 실패하였다는 점에서 중국은 서구식 정치제도를 쉽사리 도입할 수 없다. 이러한 입장은 당 지도자들에 의해 수없이 반복적으로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지도부 다수가 원칙론적인 반대 입장을 견지함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보다 진보적인 입장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인 예로 당중앙 편집국 부국장이면서 당의 주요 이론가로 알려진 위커핑俞可平이 2006년 가을 발표한 “민주주의는 좋은 것民主是個好東西”을 들 수 있다. 당내 진보적인 주장을 대변한 이 글에서 그는 우선 민주주의를 중국 지도부나 관변 학자들이 상정하는 것처럼 제한된 민주주의가 아니라 보통선거에 입각한 서구식 민주주의로 설정하였다. 그러한 전제 위에서 그는 민주주의의 도입과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는 유보 또는 의구심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였다. 그가 발표한 이 글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복잡한 절차로 인하여 높은 비용을 야기할 수도 있고, 정치사회적 분열과 불안정을 가져올 수도 있으며, 일부 정객이 권력을 탈취하거나 국민을 속이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민주주의는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정치제도이며 민주화는 세계 각국의 역사적인 추세이다. 비록 현재 중국 상황에서는 민주주의 제도가 아직 시기상조라는 전제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이와 같은 문제제기는 민주주의에 대한 당내의 인식 변화로서 국내외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였다.

 

다만 그러한 초보적인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논의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위커핑은 최근 중동 사태 이후 정치발전에 있어서 ‘중국모델’을 언급함으로써 과거의 주장에서 후퇴하고 있다. 그는 중국모델은 개혁개방 이전의 전통적 사회주의, 즉 소련모델과는 다르며 동시에 서구 선진국가들의 사회발전 모델과도 다르다고 설명한다. 특히 서구와의 차이점과 관련하여 그는 소유제 방면에서 전면적 사유화가 아니라 공유경제 위주의 혼합소유제를 실시한다는 점, 정치제도에 있어서 다당제나 의회정치를 하지 않는다는 점, 입법•행정•사법의 삼권분립을 하지 않는다는 점, 의식형태에 있어서 다른 사상을 인정하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주도적 지위를 여전히 견지한다는 점 등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같은 위커핑의 입장은 앞서 언급한 우방궈 상무위원장의 주장과 큰 차이가 없다.

 

결국 제도권 내에서 서구식의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보수와 진보에 상관없이 매우 제한되어 있다. 또한 해당 논의 자체도 상당히 이론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고 구체적인 제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이러한 논의가 당의 정치개혁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결국 민주주의는 거저 얻어질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될 뿐이다.

 

중국 민주화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

 

그렇다면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하는 움직임, 즉 중국 민주화 운동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중국 민주화 운동에 있어 중요한 변수를 몇 가지 생각해 보면 우선 해외 망명 세력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중국의 민주화 세력은 정치세력으로서의 역량이 크지 않고, 소수의 용감한 활동가들의 역할에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주지하듯이 국내에서는 중국 정부의 철저한 탄압으로 인해 조직적인 활동이 거의 불가능하고, 이 때문에 1970년대 말 이후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였던 핵심인물들은 대부분 해외로 망명하였다. 이들은 해외에서 개인적, 조직적 활동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 동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약화되고 있다. 더욱이 해외의 민주화 세력들은 매우 분산되어 있다. 각 세력들 사이에는 상호 조직적 연대도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중국의 국내외 현안에 대해서 이념적인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그 결과 해외 민주세력의 활동이 중국 국내의 지지를 확보하거나 정세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으며, 따라서 이들이 향후 중국 민주화에 핵심적인 기여를 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변수는, 주지하다시피 민주화의 중요한 토양으로 지적되는 중산층의 확대이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중산계층을 형성하는 것은 물론 수적인 증가까지 가져왔다. 자신을 중산층으로 간주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40-50퍼센트에 달한다는 조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분석은 그들이 민주화 지지세력이 아니라 공산당 통치의 기반임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이는 중국에서 중산층이 경제적 성공의 수혜자로서 급속한 변화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반 노동자나 농민에 비해 당원으로 활동하는 빈도가 훨씬 높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제보다는 소비에 중점을 두고 있다. 물론 중산층답게 기본적으로 강한 참여의식과 민주정치 의식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면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중국의 중산층이 상황에 따라서 사회 변혁의 추동력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단기적으로 그들이 민주화의 선봉으로 나서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결국 중국의 민주화를 결정하는 요소들은 매우 복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들에는 중산계층의 성장, 선거확대와 같은 정부에 의한 제도화 노력, 그리고 국민의 권리의식 향상이나 민주세력 및 언론 역할의 강화 등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중산계층의 체제흡수나 보수적 성향, 국민들의 정치적 무관심, 정부의 탄압 등과 같은 요소들은 민주화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경제성장의 지속여부, 국제적 압력 등 정치외적 요소들도 중요하다.

 

중국 민주화 전망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해 본다면, 향후 중국의 민주화에 대해 어떻게 전망할 수 있을까? 단순화한다면 중국의 민주화는 불가피할 것이라는 시각과 중국이 향후에도 성공적으로 탄력적인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시각에 따라서는 어떤 요인에 의해서든 정치적 혼란과 분열이 나타날 수도 있다.

 

첫째는 중국의 지속적인 성장은 불가피하게 민주화를 야기할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는 기능주의적 입장에서 경제성장, 고등교육, 법제화, 언론매체, 선거 등의 확대에 의해 일정 기간 내에 중국의 민주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일부 중국 내 학자들도 이와 비슷한 입장에서 중국의 민주화 가능성에 동의하고 있다. 다만 이들은 민주화의 구체적인 유형에 대해 합의된 관점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민주화 시점과 같은 시기적인 차원이 고려되지 않음으로 인해 원래 제기된 문제에 대한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계속해서 성장하면 결국 민주화가 불가피하다는 시각은 서구나 동아시아 일부 국가들의 경험을 중국에 그대로 적용한다는 한계가 있다.

 

둘째, 사회변화와 관련하여 보다 부정적인 시각에서 민주화 가능성을 제기할 수도 있다. 즉, 사회적 비용을 야기하는 각종 문제들이 축적되면서 현재와 같은 억압적 방식으로는 체제를 더 이상 지탱할 수 없게 되어 자연히 민주화가 진행될 수도 있는 것이다. 각종 문제들에는 부패, 불평등, 노조활동의 제약, 농민들에 대한 차별, 환경문제, 밀수•위조•탈세•조직폭력•정실주의 등 범법행위, 교통사고 등 각종 재해, 금융위기, 공공의 부도덕성에서 오는 사회병리, 실업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문제들이 축적될 경우 당의 정당성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인 집정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게 될 것이다. 물론 경제성장과 소비의 확대,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지위향상 등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적어도 국내외 급격한 경제위기가 발생하지 않는 한에서는 그렇다. 설사 그러한 위기가 발생하고, 거기에 대응하여 중국 정부가 정치개혁 조치를 취한다고 반드시 민주화의 연착륙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통제불능에 따른 혼란의 가능성이 높다.

 

셋째, 중국에서 일종의 탄력적 권위주의 체제가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한국의 박정희 체제와 유사한 탄력적 권위주의는 다양한 의견의 개진, 공정한 선거 그리고 다당제와 같은 서구 민주주의를 허용하지 않고 가부장적 권위와 사회적 합의를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이 체제는 경제성장과 공동체의 복지를 이룩함으로써 상당히 효율적인 정치체제로서 어느 정도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실제 중국은 한편으로 경제성장과 사회복지, 행정적 효율성, 대외정책상의 성과를 통해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다른 한편으로 엄격한 통제나 조직화 및 동원을 통해 체제의 안정을 유지해 왔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방식이 중국지도부는 물론 연구자들에게도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간주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당분간 중국에서 민주화의 가능성은 낮다.

 

마지막으로 점진적인 민주화나 탄력적인 권위주의가 아니라 정치적 혼란과 분열이 나타날 가능성이다. 그것은 정치변동이 자연스럽고 점진적인 방식에 의해 연착륙하는 것이 아니라 경착륙의 형태로 진행되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러한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권위적인 정부가 제도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기 때문에 시장화로 인해 증대되는 사회적 요구나 문제에 대해 제대로 대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적 개혁 방식은 정치발전에 필요한 제도화, 이를테면 독립적인 입법기구나 사법조직, 선거제도를 실현시키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정부의 책임성 결여, 허약한 행정조직, 광범위한 부패와 억압과 같은 문제들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 나아가 정부의 부패와 무능력은 아래로부터 사회적 불만에 직면하게 되고 이것은 동유럽에서와 같이 체제의 붕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러한 급진적 방식은 민주주의를 보장하기보다는 극심한 혼란이나 분열을 야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현실적인 입장에서 보면, 중국에서 민주화의 방향은 불가피하지만 아직 시민사회의 역량과 같은 조건들이 구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에 의한 위로부터의 제한적 민주주의 개혁이 지속적으로 취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정치개혁은 공산당의 약화와 그에 따른 불안정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당에 의한 개혁은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이처럼 공산당에 대한 대안적 세력이 없는 상황에서, 변화에 대한 당 지도부의 의지도 제한적이기 때문에, 중국 정치발전의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고 의외의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국내 정치세력들 간의 복잡한 갈등으로 인하여 쉽지 않은 이행기를 거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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