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I는 한국의 민주화 진전에 따른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2002년 대통령의 성공조건, 2007년 대통령직 인수의 성공조건이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민주화 이후 바람직한 대통령의 역할, 권한, 책임에 관한 제도화 방안을 강구해 왔다. 이제는 SNS기술 확산에 따른 정치환경의 변화 속에 증대하는 정치참여와 소통 요구를 안정적 제도로 담아내려는 요구가 시급하다.

 

이에 EAI는 지난 정부들의 국정운영의 성과와 방식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정치환경에 부합하는 거버너빌리티(governability) 형성과 성공적인 대통령직 수행의 조건을 탐구하고자 ‘2013 대통령의 성공조건’을 기획하였다.

 

2012년 6월 21일에는 문민정부에서 경제수석비서관으로 김영삼 대통령을 보좌한 김종인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을 초빙하여 제5차 라운드테이블을 진행하였다. 회의의 주요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문제는 대통령 본인이다

 

역대 대통령들의 실패를 초래 한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대통령이 된 사람 자신이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나 구체적인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처칠은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될 사람은 사람을 보는 눈과 역사 인식을 갖추어 국가의 흥망성쇠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은 그 시대의 상황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있어야 하지만, 민주화 이후 역대대통령들에게는 그런 점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관료조직에 의존하여 임기를 채워나가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격변하는 국제정세와 국민의식이 수시로 바뀌는 현실에서 보수적인 관료조직만으로는 제대로 국정을 운영할 수가 없다. 준비된 대통령도 현실에 부딪치면 힘든데 아무런 생각 없이 선거기간 동안 즉흥적으로 공약을 만들고 대통령이 되다 보니 관료집단에 기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관료집단을 데리고 개혁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5년 단임의 대통령제에서 취임 1년에 제대로 된 어젠다를 설정하여 국민들에게 인식시키지 못하면 원활한 국정운영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김영삼 대통령의 실패도 자신의 어젠다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취임 이후 정치적 직감에 따라 민심에 반응하는 식으로 국정운영을 했다. 문제가 있다 해도 관료들은 대통령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이와 같은 무책임한 국정운영이 결국 IMF를 초래한 것이다.

 

박정희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정희 정권 18년 전두환 정권 7년, 군사정권 25년의 압축성장과정에서 각종 경제사회적 문제가 누적되어 왔다. 그렇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 이르는 25년 민주적 정치과정에서도 갈등구조는 해결되지 못했다. 그것은 역대 대통령들 모두 하나같이 경제발전의 토대를 구축한 박정희 대통령을 모델로 하여 경제성장에만 치중하였기 때문이다. IMF는 우리사회의 왜곡된 경제구조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김대중 정부는 공적 자금의 투입을 통한 재벌기업 구제라는 손쉬운 경제회복 방안을 선택함으로써 재벌의 힘을 더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노무현 정부 또한 마찬가지였다. 국정운영에 대한 준비 없이 집권을 하다 보니 재벌산하 연구소로부터 나온 정책아이디어에 의존한 경제정책을 실시한 것이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21세기 대한민국의 비전이자 희망이라고 치켜세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좌파정권 10년 동안 재벌의 힘이 더 세졌고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욱 심각해 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성과를 극복하려는 국정운영의 도그마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대통령은 가장 충실한 박정희 모델의 추종자로 볼 수 있다. 박원순 시장이나 안철수 교수 현상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 해야 한다. 국민의식의 발전에 따라 민주화가 진전되었지만 박정희 시대의 경제사회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심한 양극화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해결책을 만들지 않으면 차기 대통령의 성공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경제민주화를 밀고 나가야 한다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가장 분배가 나쁜 나라이다. 정부주도의 경제운용결과는 오늘날 20대 80의 심각한 양극화 사회를 가져왔다. 김영삼 정부 이래 정치적 민주화 과정에서 규제완화, 시장개방, 관치금융 소멸, 권력과 정당의 재벌 자금 의존성 증대 등으로 인해 정부의 권력은 약화되는 가운데, 재벌의 영향력은 집중되고 강화되면서 국가정책기능이 시장권력에 압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로비를 통해 국회 입법 과정에도 영향력을 미친다. 이제 한국의 경제세력은 너무 커져서 사실상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경제세력의 지나친 횡포를 국가가 조절해주지 않으면 심화되는 양극화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한국사회의 갈등구조에 있어 본질은 재벌이다. 재벌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탐욕의 본능이 있어서 쉽지 않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손(시장)이 할 수 없는 것은 보이는 손(정부)이 나서서 해줘야 한다. 경제민주화는 바로 이런 탐욕을 제어할 수 있도록 지켜야 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축구 경기에서 옐로카드나 레드카드와 같은 룰이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한 배경이다. 경제민주화 추진과정에서 경제세력은 강력하게 저항할 것이므로 절대적인 국민 신임을 받는 대통령이 국민의 힘으로 변화를 이루어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시대상황을 적절히 읽고 경제양극화 해소와 사회통합을 내세웠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구체적인 정책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경제민주화의 명확한 비전과 구체적인 정책역량을 갖춘 준비된 대통령이 필요하다.

 

준비된 대통령을 만들어야 한다

 

성공적인 대통령을 위한 제도적 조건으로 4년 중임제의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4년 중임제가 성공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현재의 정치현실에서 4년 중임제로 변경되면 대통령 임기 4년은 8년 임기의 대통령을 위한 준비기간의 의미 밖에 없을 것이다. 정책을 준비하고 사람을 준비한 상태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한다면 5년이라는 기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대통령이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는 국정 어젠다를 제시하고 국민의 호응을 얻으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을 충분히 이룰 수 있다.

 

성공적인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국가가 처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하에 이를 해결해 나갈 정책과 인재를 준비해야만 한다. 보편적인 성공조건으로 대통령은 안보, 경제, 미래를 위한 교육을 알아야 하고 시대의 변화에 따른 다양성을 갖추어야 한다. 거기에 따라 외교통상부 장관과 교육부장관은 누구에게 맡길 것이며, 경제를 총괄할 사람은 누구인지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특히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를 가늠하는 중요한 자리는 국정운영의 브레인인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역대정부의 문제는 대체로 국정능력 없는 선거캠프의 인물을 임명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인재등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국가의 운영시스템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비서실장이 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은 정당이 뿌리내리고 집권하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나 집권자 중심으로 정당이 만들어졌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국처럼 정부의 직책을 소신 있게 수행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가 정당을 통해 제공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진다. 유능한 정치인에게는 정치과정을 통한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또한 대통령직의 성공적 수행을 위해서는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우선 측근인사에 지나치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인재를 알아보고 구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과거 대통령의 실패 사례가 보여주듯이 지나친 탐욕이 없고 주변이 깨끗해야 한다. 특히 이익집단이나 경제세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김종인 이사장은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경제학박사를 취득하고 1973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81년부터 2004년까지 4선의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1989년 보건사회부장관, 1990년 청와대 경제수석을 역임했다. 현재는 대한발전전략연구원 이사장으로 있다.

 

사회자

이숙종, EAI 원장, 성균관대 교수

 

참석자

강원택, 서울대 교수

박형준, 성균관대 교수

윤성이, 경희대 교수

이곤수, EAI 수석연구원

이내영, 고려대 교수

이재열, 서울대 교수

장용석, 연세대 교수

정원칠, EAI 선임연구원

정한울, EAI 수석연구원

한규섭, 서울대 교수

6대 프로젝트

세부사업

민주주의 협력

대통령의 성공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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