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거버넌스를 연구하는가?

 

후기 민주주의 시대의 많은 정책적 문제들은 “민주화,”“권력구조,”“선거제도” 등의 과거 패러다임으로 이해하고 해결해 나가는 데에 분명한 한계점을 갖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1990년대 후반 및 2000년대 초기를 거치면서 미국 행정학계를 중심으로 거버넌스에 관한 논의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후기 민주주의 시대의 정책 입안 및 집행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되기 시작했다.

 

거버넌스를 정의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고 행정학, 정치학, 사회학 등의 분과에 따라 그 이해하는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크게 보아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맥락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시장-정부-시민사회가 협력을 통해 정책 형성 및 입안을 꾀하는 것이고, 둘째는 정부가 과거의 독자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수평적인 방식으로 정책을 집행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수평적 정책입안 및 집행을 위해 중앙과 지방정부간의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며, 지역단위에서는 시민사회 참여자의 직접적이고 자발적인 행정참여가 요청된다. 사회학적 측면에서는 특히 이러한 시민사회 주체의 참여 및 권능화가 거버넌스의 핵심으로 이해된다.

 

한국사회에서 거버넌스 개념이 도입 및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국민의 정부 및 참여 정부의 집권기를 거치면서이다. 정부와 시민사회 간의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두 정부의 이데올로기와 친화성을 가지면서 거버넌스와 관련된 아이디어(가령, 시민사회의 참여 및 권능화)가 정책입안 및 실행의 과정에서 광범위하게 적용되기 시작했다. 노무현정부의 경우는 그야 말로 거버넌스 정부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목소리와 요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과정에서 의사결정이 길어지고, 비용이 증가하는 등 많은 부작용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즉, 정부가 너무 직접주의적 참여방식을 옹호했고 이것이 정책입안 및 집행의 과정에서 효율성을 잠식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거버넌스에 대한 논의는 궁극적으로 한국 거버넌스의 문제가 무엇이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를 찾는 실천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접근법은 기존의 누가 주요 행위자(actor)이고 이슈(issue)는 무엇인가에 초점을 두는 미시적 접근 보다는 한국의 거버넌스 전체를 관통하는 큰 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하나의 주제를 정하고 각자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 경우에도 현재의 한국 거버넌스의 문제점과 이에 대한 거시적인 모형을 제시하는 것이 불가결하다.

 

무엇보다 문제점을 중심으로 한국 거버넌스의 위기는 무엇이고, 이에 대한 처방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문제점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모든 사람들이 문제라고 수긍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문제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이다. 이를 다룸에 있어 거버넌스 연구의 정형화된 방법 보다는 창의적인 방식으로 접근해 가야한다. 궁극적으로는 한국 거버넌스의 문제점을 관통하는 하나의 프레임을 타진해 보는 방식으로 가면 좋을 것이다.

 

한국 거버넌스의 문제점과 고려사항

 

한국 거버넌스 오작동의 원인으로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주체들 간에 경쟁과 협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둘째, 거버넌스에는 자율과 책임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하는데, “자율”만이 강조되는 현실도 문제이다. 셋째, 거버넌스를 위한 네트워크가 성숙하기 까지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데, 이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없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거버넌스 자체가 하나의 권력화 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에서는 거버넌스가 적용되는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는 점에 대해 좀 더 깊게 토론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보이지 않는 장애물”과의 관련성 속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실 한국사회의 경우 선후배연합회, 친목회 등의 비공식모임들이 많은데, 이것은 한국인만의 끈끈한 문화, 정서적인 것에 기반을 둔 것들로써 거버넌스의 실현에 하나의 장애물이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한국에서는 모든 개인이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 보야 한다. 이는 참여를 중시하는 한국적 정치적, 문화적 전통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욕구”를 어떻게 거버넌스의 틀로 수렴할 것인가가 대단히 중요한 과제로 등장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욕구가 과도할 경우에 무조건적인 참여, 그리고 모든 것을 사회운동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 질 수 있으며, 협력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거버넌스의 실현에 장애가 될 가능성이 크다.

 

거버넌스의 핵심은 “협력”이며, 이를 위해 정부, 기업, 시민사회 등의 주요 행위자가 서로를 이해하여 합의에 이르려는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협력과 합의를 촉진시키고 서로를 연결시키는 소통채널 (pipeline)의 확보 및 네트워크의 구축이 중요한데, 이 부분이 매우 취약한 것도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즉, 각 영역이 독자적인 조직화 (self-organizing)라는 측면에서는 성공적이지만 소통채널을 통한 협력에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한국의 거버넌스 문헌 속에서 의회 및 정당의 역할이 과소평가되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거버넌스를 통한 문제 해결의 핵심이 의회 및 정당의 역할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치사회의 역할은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입안과정, 점증하고 있는 의원입법 등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거버넌스를 통한 공동의 문제 해결 과정에서 의회 및 정당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한국의 경우 의회에 대한 불신이 많고 거버넌스를 중심적으로 다루는 행정학자들이 집행 기능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거버넌스 논의에서 의회나 정당 같은 정치사회가 배제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 가령 유엔에서의 글로벌 거버넌스 논의에 있어서는 의회가 중요한 행위자로 고려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요약문은 동아시아연구원(EAI)의 거버넌스 라운드테이블에서 발행한 것입니다. EAI는 한국 정치사회의 복잡한 갈등 구조를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거버넌스의 이론과 정책이 필요하다는 인식 하에, 다양한 학문분야의 신진학자들간 학제적 연구를 위한 거버넌스 라운드테이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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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부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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