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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 특별논평 시리즈] ⑦ 2025 인공지능 기술 경쟁과 세계정치: 한국의 대응 전략

  • 2025-01-13
  • 배영자

ISBN  979-11-6617-852-8 95340

Ⅰ. 인공지능 기술과 세계정치

 

2023년 챗GPT 등장 이후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 기술혁신이 가속화되어 왔다. AI 기술혁신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실제로 구현해 내고 있는 영향력 있는 비저너리(visionary)인 젠슨 황(Jensen Huang)은 CES 2025 기조연설에서 현재 진행 중인 AI 기술혁신의 두 가지 큰 흐름을 언급하였다. 첫째, AI 기술이 이미지와 텍스트를 만들어내는 생성형 AI 단계에서 물리적 인공지능(Physical AI)의 시대로 넘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오래 전부터 인공지능이 제대로 된 지능이 되기 위해서는 물리적 몸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존재했다. 거대언어모델은 남이 만들어 낸 문자 이미지 음성 데이터를 학습한 결과인데 실제로 이러한 방식의 현실 이해는 피상적인 측면이 존재한다. 책으로 요리 방법을 배우는 것을 넘어 실제로 요리를 할 수 있으려면 물리적 환경에 대한 이해와 동시에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며 세계를 인지할 수 있는 몸을 가져야 하고 이를 통해 제대로 된 세계에 관한 모델(World Model) 구축이 필요하다. 엔비디아는 이번에 중력, 마찰, 관성과 같은 물리적 법칙과 공간 감각 등을 훈련하는 물리적 인공지능 ‘코스모스 월드 파운데이션 모델’을 선보였는데, 이는 생성형 AI의 생태계를 장악한 엔비디아의 쿠다 프로그램과 유사한 방식으로, 범용 로봇 개발에 쓰일 수 있는 개방적인 플랫폼으로 활용되면서 로봇의 챗GPT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 자율자동차, 휴머노이드의 시대가 성큼 다가올 것을 기대하게 한다.

 

둘째, 미래에는 엔지니어, 예술가, 학자, 학생 등 모두가 개인용 AI 슈퍼컴퓨터가 필요해질 것으로 예측했다. 엔비디아는 이번에 데스크탑 크기의 시스템에서 최대 2천억개의 매개변수를 가진 AI 모델을 처리할 수 있는 ‘프로젝트 디지츠’라는 최소형 개인용 슈퍼컴퓨터를 선보였다. 이제까지는 AI 서비스 개발이나 응용을 위해 고가 AI 칩을 구매하거나 대기업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해야 했는데, 합리적인 가격과 강력한 성능을 장착한 개인용 소형 AI 슈퍼컴퓨터의 개발로 AI 시대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용이해질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물리적 AI와 개인용 AI 슈퍼컴퓨터가 만나는 지점에서 출현하는 AI 에이전트는 생산활동은 물론 보건, 문화, 정치, 군사 등 인간의 거의 모든 생활에 스며들게 되고, 일방적으로 활용당하는 도구가 되는 것을 넘어 인간의 세계 이해와 선호를 함께 형성하고 선택하며 실행하는 파트너로 자리잡아 갈 것으로 예상된다. 2025년에 이러한 흐름이 보다 분명해지고 구체화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과학기술자나 혁신적인 사업가들에 의해 제시된 비전이 실현되는 과정은, 방적기, 철도, 전기,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 등의 사례에서 보이듯, 자본과 권력이 개입되고 치열한 경쟁과 협력이 역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운데 구조적 흐름과 개인의 선택이 부딪치고 합류하면서 진행되었다. 21세기 인공지능을 둘러싼 비전 제시와 실현에서 가장 독특한 특성은 1980년대 이후 진행된 세계화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미중 패권경쟁이라는 세계정치환경이 기술 발전 방향과 속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며 말그대로 기술과 세계정치가 공진화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인공지능 구동과 관련된 다양한 도구적 장치들은 계층화되고 블럭화된 글로벌 생산네트워크에 토대하여 공급되고, 그 어느 국가도 완전히 자급적인 생산체계를 구축하기 어렵다. 국가들이 인공지능 기술혁신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인공지능 기술이 내포한 위험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나아가 동일한 인공지능이라는 기술을 가지고 어떤 사회를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해 미국, EU, 중국이 내놓고 있는 비전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업들의 경쟁과 협력, 지정학과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재편, 국가별 접근법의 차이와 갈등을 통과하면서 인공지능 기술혁신의 구체적인 모양새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2025년 현재 인공지능 기술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세계정치 요인으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인공지능 정책과 대중 견제 양상,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을 꼽을 수 있다. EU와 유엔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인공지능 규제도 인공지능 기술 발전의 향배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기서는 2025년 인공지능 기술과 세계정치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전개될 것인지 예측해 보고 우리의 대응 전략을 모색해 본다.

 

Ⅱ. 트럼프 행정부 2기의 AI 정책과 미중 AI 경쟁

 

트럼프 행정부 1기는 고학력 이민 비자, 코로나19 이슈 등을 둘러싸고 과학기술계와 뚜렷한 대립각을 형성하였고 과학기술 정책 어젠다에 대해 소홀했다. 미국 최고의 과학기술정책기구인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Office of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OSTP) 국장을 19개월이 넘도록 임명하지 않은 채 공석 상태로 방치했고 전임 오바마 행정부 시기와 비교해 조직의 규모도 대폭 축소하였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다양한 정책들을 발표하였다. 2019년 2월 트럼프 대통령은 지속적인 AI 투자와 혁신 촉진, 차세대 AI 연구 인력 육성 등을 목적으로 하는 ‘인공지능에서 미국의 리더십 유지’ 행정명령에 서명하였다. 2020년 2월에는 연방 정부기관 AI 연구개발 투자를 강화하고, 연방 정부 자원을 AI 기술 개발에 집중해서 미국 AI 리더십을 더욱 확고히 하겠다는 국가 AI 전략, ‘미국 AI 이니셔티브’를 발표하였다. 일련의 정책에 토대하여 ‘국가 인공지능 이니셔티브 법안(National AI Initiative Act of 2020)’이 마련되었고 이 법에 근거해 임기종료 직전 2021년 1월 국가 AI 전략을 감독하고 이행하는 책임을 맡은 ‘국가 AI 이니셔티브국(National Artificial Intelligence Initiative Office: NAIIO)’을 백악관 과학기술정책국 내에 설치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1기 행정부의 AI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는 예산이 적절히 배정되지 못했고 책임기관이 뒤늦게 설치되는 등 AI 국가전략이 실질적으로 이행되지 못했다. 당시 실리콘밸리와 과학기술계를 홀대하는 분위기 속에서 AI의 중요성을 설득하며 일련의 정책들이 수립될 수 있도록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던 인물은 백악관 최고기술책임자(Chief Technology Officer) 마이클 크라치오스(Michael Kratsios)였다. 그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백악관 과학기술정책 국장으로 임명되어, 1기에서 제시되었던 AI 정책들이 힘을 받으며 보다 강력하게 실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미국 내 AI 투자, 교육, 인재 양성을 지원하는 한편, ‘적들이 미국과 다른 가치판단으로 AI를 활용하려 한다’며 강력한 대중 제재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화웨이를 시작으로 중국 IT 기업을 견제한 클린 네트워크 정책도 그가 이끈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 행정부 2기는 AI와 가상화폐에 대한 정책을 이끌게 될 백악관 ‘인공지능 가상화폐 차르’직을 신설하여 페이팔 출신 데이비드 삭스(David O. Sacks)를 지명하였다. 이들과 일론 머스크(Elon Musk), 밴스(JD Vance) 부통령 이외에도 실리콘밸리 IT 부문 출신 인사들이 국방부, 국무부, 보건부, 법무부 등의 요직을 맡아 트럼프 행정부 2기에 대거 입각하면서 AI는 물론 가상 화폐, 우주, 바이오 분야 정책 어젠다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이들이 정책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AI 우위 유지를 위한 투자 증대와 강력한 대중 견제는 트럼프 행정부 1기를 거쳐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초당적 지지를 받으며 유지되었고 트럼프 2기에서도 지속될 것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전 바이든 행정부와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은 미국내 빅테크와 AI 규제에 관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AI 투자와 대중 견제 이외 AI가 가져올 기회를 잡기 위해 무엇보다도 위험을 완화하는 책임 있는 AI 혁신이 중요하다고 보고 2023년 ‘인공지능의 안심 안전, 신뢰할 수 있는 개발과 활용에 관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를 근거로 2023년 11월에 상무부 산하 국립표준기술연구소에 미국 AI 안전연구소가 설립되었다. 또한 이 행정명령에는 모든 정부 기관이 최단 90일에서 최장 270일 기한 내에 지침이나 프레임워크 정비, 정책 수립, 인재 영입시스템 구축 등을 수행해야 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실제로 연방 정부 기관들은 AI 안전을 위한 위험 관리, 프라이버시 보호, 시민의 평등권 보장, 소비자·노동자 보호, 혁신과 경쟁 촉진, 미국 리더십 향상 등을 위한 주요 조치를 마련하여 왔다.

 

아울러 바이든 행정부 시기 연방거래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 FTC)는 기업이 고용이나 주거, 대출 등 개인의 권리나 기회에 영향을 주는 결정을 할 때 AI를 이용해 불법적인 편견이나 차별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였고, 이런 문제에 대해 기존 법령을 엄격하게 적용하였다. FTC는 MS, 아마존, 메타, 구글 등 빅테크를 대상으로 독점 및 AI에 관련된 투자나 협력이 경쟁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조사를 시작하며 이들에 대해 대대적인 전쟁을 선포하고 소송을 제기해 왔다. 새 정부에서 FTC 위원장으로 지명된 앤드류 퍼거슨(Andrew N. Ferguson)은 빅테크의 불법 시장 지배와 관련된 조사는 계속되어야 하지만, AI 규제 및 엄격한 기업 합병 기준 등 일부 의제는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AI 규제보다는 혁신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지면서 AI 안전 신뢰 책임성을 강조한 행정명령이 철회되고 기업에 대한 AI 규제가 완화되는 동시에 초거대 AI 개발 등 대규모 프로젝트가 시작되며 AI 혁신을 위한 투자가 더욱 활발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공지능 부문에서 미국의 우위 유지를 위해 고성능 그래픽 처리 장치(Graphic Processing Unit: GPU), 고대역폭 메모리(High Bandwidth Memory: HBM), 반도체 장비 중국 수출을 규제해 왔고, 반도체, 인공지능, 양자컴퓨팅 등 군사 및 안보와 관련된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 미국 자본의 중국 투자를 통제해 왔다. 중국이 제3국을 통해 AI 칩을 우회 수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동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AI 칩 판매를 제한하였으며, 임기 마지막까지 각국을 동맹국, 중국과 러시아 등 적대국, 그 외 지역으로 3분할하여 AI 칩 수출거래 방식을 차별적으로 규정하는 방안을 마련하였다. 미국에서 대중 견제는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고 새로 지명된 각료 가운데 대중 강경론자들이 포진하고 있어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도 대중 AI 견제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트럼프의 주요 관심과 정책은 무역적자, 일자리, 관세이고 이는 첨단기술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접근한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과 미묘한 차이를 보여 이것이 미중 관계 어젠다의 흐름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주목된다. 트럼프 1기 초반은 미중 간 관세 갈등이 크게 불거졌다. 이후 화웨이 반도체 규제가 본격화되고 섬세해지면서 내걸었던 명분은 지적재산권 침해와 경제적 침략론이었다. 그동안 국가 경쟁력과 안보 관점에서 첨단기술을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대두되어 왔지만, 트럼프 2기에서 무역 대차대조표나 관세가 우선적인 정책 어젠다로 올라가면 상대적으로 첨단기술 의제가 뒤로 물러서고 오히려 중국이 급속히 시장 규모를 확대하고 있는 성숙반도체 등과 같은 중저위 기술 상품들이 관세와 얽혀 더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당면한 근본적인 도전은 미국의 강력한 규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혁신 역량이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기술 굴기의 속도는 확실히 느려졌지만 의지는 더욱 강력해졌고 기술혁신 통로도 다양해졌다. 중국은 미국의 AI 칩과 장비 규제가 본격화되기 이전 막대한 규모의 AI 칩을 구매하여 물량을 확보하였고 우회 수입과 밀수 등을 거침없이 활용하는 한편 고급 인력 유치와 대대적인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꾸준히 기술력을 증강시켜 왔다. 현재 중국에서 텐센트의 ‘훈위안(Hunyuan)’, 바이두의 ‘어니(Ernie)’, 바이트댄스의 ‘더우바오(Doubao), 알리바바의 ‘큐원(Qwen)’등 다양한 생성형 AI 모델이 활발하게 상용화되고 있다. 특히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선보인 ‘딥시크-R1’ 모델이 이제까지 출시된 생성형 AI 모델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중국 AI 발전의 핵심 병목인 미국의 수출 규제와 중국 정부의 검열 환경에서 이루어진 성과여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2025년에 중국 오픈소스 AI의 발전이 더욱 가속화되면서 글로벌 AI 경쟁에서 중국의 입지를 탄탄하게 다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부는 2017년부터 추진한 ‘차세대 AI 발전계획’에 더해 2024년 초반 ‘AI 플러스 이니셔티브’를 발표하여, 제조업의 디지털화, 데이터 개방과 유통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미국의 제재로 수입이 어려워진 엔비디아 GPU를 대체할 중국산 AI 칩의 개발을 위해 노력할 것임을 밝혔다. 중국 기업들은 패키징, 칩렛, RISC-V 등의 기술혁신을 가속화하며 고성능 칩 생산에 도전하고 있다. AI 플러스 이니셔티브는 시진핑 주석이 강조하는 새로운 품질생산력의 첫째 실천 항목으로 정부 업무보고에 제시되었고, AI 알고리즘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부문에서 의미 있는 돌파를 통해 전체 AI 산업망을 포괄하는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고 확장하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현재 AI 부문에서 미국의 우위는 확고하지만 중국의 도전 역시 만만치 않다. 미국과 중국 AI 경쟁의 승패를 최첨단 기술 개발, 특히 중국이 고성능 AI 칩을 개발할 수 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어 보는 견해가 많다. 이러한 관점에는 빠르게 성장하는 새로운 선도산업(leading sector) 부문을 이끌면서 이익과 생산성 등의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을 패권국의 핵심 조건으로 보는 선도부문 이론이 전제되어 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 기술과 세계정치패권과의 관계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제프리 딩(Jeffrey Ding) 교수는 그의 저서 기술과 강대국의 부상에서 ‘선도기술 주도’ 보다 ‘범용기술 채택과 확산’을 강조한다(Ding 2024). 그에 따르면 패권국이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최첨단 선도 기술 개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범용기술의 채택과 확산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과 정책이 중요하다. 간단히 말하면 1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이 화학, 내연기관, 전기 등 다양한 신기술 부문에서 영국이나 미국을 능가하였음에도 결국 미국이 패권국이 된 것은 독일이 개발한 기술들을 중위급 기술전문 교육기관들을 통해 적용하고 확산시키며 미국식 제조시스템이라는 새로운 생산체제 구축으로 성공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최첨단 AI 기술혁신이 어디에서 진행되는가보다는, AI 기술이 경제사회 부문으로 스며들어 경쟁력 있는 새로운 경제사회체제가 구축되는 것이 관건이고 이를 위한 다양한 제도적 기반이 중요하다. AI 부문에서 선두 그룹에 속한 미국과 중국은 AI 기술 개발과 확산에서 서로 다른 특성을 보이고 있고 각각 장단점을 가지고 있어 여전히 미중 간 최종 승부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2025년에도 미국과 중국이 치열하게 AI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양국이 각각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흐름이 전개되면서 블록화가 진행될 것이다.

 

Ⅲ. AI 규제와 글로벌 AI 거버넌스

 

AI 기술 발전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와 동시에 윤리적, 사회적, 경제적, 군사적 측면의 우려가 증가하고 있다. 특히 생성형 AI의 활용이 확산되면서 AI에 잠재된 문제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개인정보 및 지적재산권 침해, 부정확하거나 편향된 정보의 생성 유포 조작, AI의 무분별한 군사적 활용, 국내 및 국제 수준의 AI 격차 증가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주요국들은 모두 인공지능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들을 마련하고 있고 인공지능 관련 규범에서도 국가 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규제의 필요성은 모두 인정하지만 규제의 강도나 초점이 다소 차이가 난다. 미국은 대체로 자율규제와 정부의 지원, EU는 엄격한 규제, 중국은 세부 이슈별 규제 방향을 채택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는 2023년 행정명령을 중심으로 자국 AI 안전정책 방향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AI 규제 영역에서도 미국의 리더십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이 행정명령이 철회될 가능성이 크고 자국 AI 기업 혁신 지원에 방점이 찍힐 것으로 예상되면서 미국이 국제사회 AI 안전 규제 논의를 주도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었다. 중국 정부는 2022년 ‘인터넷 정보서비스 알고리즘 추천 관리규정(互联网信息服务算法推荐管理规定)’, 2023년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 관리 잠정 방법(生成式人工智能服务管理暂行办法)’ 등을 통해 딥페이크 기술과 생성형 AI에 대한 규제의 틀을 제시하였고 이를 토대로 국제 무대에서 AI 거버넌스 관련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2023년 일대일로 정상포럼에서 글로벌 AI 거버넌스 이니셔티브를 제안하여 AI 개발에서 모든 나라가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질 것을 촉구하였고 2024년 7월 유엔 총회에서 중국 주도로 발의된 인공지능 역량 구축에 관한 국제협력 강화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일대일로나 유엔을 토대로 AI 규범 리더십을 구축하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중 AI 경쟁의 심화와 디커플링 흐름 속에서 중국이 글로벌 AI 거버넌스를 주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EU의 경우 2024년 3월 유럽의회에서 인공지능법(Artificial Intelligence Act: AIA)이 통과되었고 향후 약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EU가 마련한 인공지능법은 인간 중심의(human-centric) 신뢰할 수 있는(trustworthy) AI 활용을 촉진함과 동시에 AI로 인한 유해한 영향을 최소화하여 건강, 안전, 기본권 및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것을 입법 취지로 밝히고 있다. EU가 AI 규제를 가장 먼저 명문화하면서 국제규범 형성을 이끌고 있는 배경에는 대규모 디지털 플랫폼을 보유한 유럽 AI 빅테크 기업이 부재한 상황에서 미국 빅테크의 AI 서비스가 EU의 경제적 이익이나 가치(인권, 개인정보 보호 등)를 침해할 부정적인 영향을 차단하고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가 존재한다. AI 기술에서는 앞서 나가지 못하는 대신 AI 안전 규범과 평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AI 안전을 위한 국제 표준 형성을 주도하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AI 규제에서 국가 간 상이한 입장과 조율의 필요성을 인식하며 유엔, OECD, 유네스코, G7 등 다양한 국제기구들도 국가들이 합의할 수 있는 규범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유엔은 2023년 AI에 관한 고위급 자문기구를 설립하여 이를 중심으로 AI 규범에 대한 논의를 지속하며 2024년 이의 최종 결과물인 ‘인류를 위한 AI 거버넌스(Governing AI for Humanity)’ 보고서를 발표하였다(United Nations 2024). 보고서는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따른 글로벌 거버넌스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포용적이고 공익을 위한 AI 거버넌스 원칙을 제안하였다. 아울러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의 AI 개발 및 거버넌스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데이터, 컴퓨팅 자원, 인재에 대한 접근성 향상과 역량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AI 혜택을 공평하게 분배하고 지속가능한 목표 달성을 위해 AI 활용을 도모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보고서는 AI와 관련된 국제 과학 패널 설립, AI 거버넌스 정책 대화, AI 표준 교환 및 역량강화 네트워크 구축, 글로벌 AI 기금 조성, 글로벌 AI 데이터 프레임워크 구축, 유엔 내 AI 사무국 설립을 제안하였다. 제안을 통해 유엔의 글로벌 AI 거버넌스 구상은 기후변화 이슈와 유사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유엔기후변화협약,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패널, 기후기금, 당사국총회(Conference of the Parties: COP) 방식으로 운영되는 현재의 글로벌 기후변화 거버넌스는 이슈에 관해 논의하고 합의안을 마련하는 것을 넘어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원자력발전을 관리하는 국제원자력기구(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AEA), 민간항공기 안전을 관리하는 국제민간항공기구(International Civil Aviation Organization: ICAO)와 같은 독립적인 AI 관리 기구 설립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지만 강력한 리더십 없이 이런 국제기구가 마련되기 어렵다. AI 기술을 둘러싼 각국의 치열한 경쟁과 규범에 대한 다소 상이한 입장, 리더십 부족 등으로, 국제적으로 합의된 규범이나 거버넌스가 출현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세계적인 오픈소스 AI 개발자 공동체인 허깅페이스(HuggingFace)는 2025년이 AI 기술의 경제사회적 변곡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특히 AI 기술 발전으로 인한 윤리적 문제와 프라이버시 침해, 일자리 감소 우려가 고조되어 최초로 AI 관련 대규모 공공 시위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예측하였다. 2025년 AI 기술혁신 가속화는 필연적으로 AI 위험의 증대와 AI에 대한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AI 혁신과 규제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한 국내 및 국제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상황이다. 현재 주요국과 국제기구에서 AI 안전규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국가들마다 입장 차이가 존재하고, 국제기구들도 추상적인 수준의 규범 제시를 넘어 구체적인 내용과 실행 방법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어 글로벌 AI 규범과 거버넌스의 파편화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AI 기술의 발전과 확산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고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어, 특정 국가나 특정 국제기구 수준의 대응만으로는 역부족이다. AI 혁신이 안전과 책임성의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제기구 및 국가 간 협력은 물론 관련 기업, 전문가, 시민사회의 참여를 아우르는 글로벌 AI 거버넌스 모색이 보다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Ⅳ. 한국의 대응 전략

 

현재 진행 중인 AI 혁신과 활용에서 우리의 입지는 취약하다. 한국이 개인용 컴퓨터, 인터넷, 모바일 시대를 헤쳐오는 데 탄탄한 기반이 되었던 전자기기, 반도체, 스마트폰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아이템이 안 보인다. 한국은 무엇으로 AI 시대를 살아갈 수 있을까?

 

엔비디아의 H100을 장착한 서버의 개수나 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 LLM)로는 미국이나 중국에 맞서기 힘들다. 그러나 넋두리만 하고 있을 만큼 상황이 여유롭지 않다. 어쨌든 기존에 이루었던 성과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토대하여 다음 단계를 준비하며 나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에게는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긴 하지만 반도체, 특히 HBM이 있고 구글 메타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과 거대 LLM에 맞서 소버린 AI(Souvereign AI: 국가의 자체 데이터와 인프라를 활용하여 각국의 제도와 문화를 이해하는 AI)를 구축할 수 있는 네이버, 카카오도 있고, 통신사, 스마트기기 생산업체, 전장업체, 소프트웨어, AI 벤처 등이 AI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현재 전세계 AI 투자는 대략 미국 870억 달러, 중국 130억 달러, 한국 25억 달러 수준으로, 전체 AI 투자의 60% 이상이 미국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중국 10%, 한국은 약 1.5-2%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이 데이터나 서버 시장 규모를 고려하여 LLM이 아닌 소형이나 초소형 AI 모델에 특화하는 전략을 선택하는 경우에도 보다 과감한 투자가 불가피하다. 1981년 정부 주도로 산학연이 함께 협력했던 디지털전자교환기 TDX 개발이나 1983년 삼성 이병철 회장의 도쿄 선언 이후 64K D램 개발 투자에 버금가는 한국형 AI 문샷(Moonshot: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적 도전) 프로젝트가 추진되어야 한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AI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기업들은 물론 대학 연구소들이 네트워킹하고 협력하며 AI 시대 한국의 생존 전략과 모델을 모색하고 추진해 나가야 한다. 동시에 AI 기업들의 투자와 활용이 안전하고 책임성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국내 법제들을 정비해 나가야 한다. 한국 AI 경쟁력 강화를 위한 AI 투자 증대와 정부 기업 대학 연구소 간의 총체적인 협력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한국의 최우선 경제안보 어젠다이다.

 

한국 AI 발전을 위해 미국과의 협력과 경쟁이 필수적이다. AI는 그 어떤 기술보다 기술에 담기는 가치의 선택이 중요함을 고려할 때, 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를 함께 지향하는 글로벌 AI 생태계 구축을 위한 국제적 협력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은 AI 부문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누리고 있으며 여러 위기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중요한 가치로 지향하고 있다. 미국의 새 정부도 AI 혁신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며 한국은 보다 적극적으로 다양한 층위에서 미국 새 정부와 AI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2024년 AI 서울 정상회의에서 ‘안전하고 혁신적이며 포용적인 AI를 위한 서울 선언’이 채택되었다. 이 선언은 AI의 안전성 확보, 혁신 촉진, 포용성 증진을 위한 국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간 중심적인 AI 활용을 통해 민주주의적 가치, 법치주의, 인권 및 프라이버시 보호를 추구하고자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 정상회의의 성과를 발전시켜 한국이 글로벌 AI 거버넌스 형성에서 지속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 나가야 한다. 한국은 현재 당면한 리더십의 위기를 현명하게 정리해 나가면서 AI 문샷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미국과의 AI 협력을 강화하며 글로벌 AI 거버넌스 형성에도 적극 참여하여 이미 시작된 AI 시대를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

 

참고 문헌

 

Ding, Jeffrey. 2024. Technology and the Rise of Great Powers: How Diffusion Shapes Economic Competition.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United Nations. 2024. “Governing AI for Humanity: Final Report.” https://www.un.org/sites/un2.un.org/files/governing_ai_for_humanity_final_report_en.pdf (검색일: 2025. 1. 11.)

 


 

배영자_건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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