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531
동아시아연구원 한국리서치 1500명 패널 조사
국민의힘 참패는 지지자에게 희망을 못 준 탓
20대 여성, 국민의힘 비호감으로 민주당 지지
공부는 복습이 중요합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거에서 이겼으면 왜 이겼는지, 졌으면 왜 졌는지 분석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선거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 참패로 끝난 4·10 22대 총선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총선 민심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총선 민심을 받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26년 6월3일 지방선거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진단이 정확해야 올바른 처방을 내릴 수 있습니다.
비영리·독립·민간 싱크탱크 동아시아연구원(손열 원장)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총선 직후인 4월12일부터 16일까지 패널 조사를 했습니다. 한국리서치 정치·사회 패널에서 지역별, 성별, 연령별로 1528명을 비례할당 추출해서 웹으로 조사했습니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2명의 학자가 연구한 내용을 동아시아연구원이 지난 4월24일 오후 ‘제22대 총선 표심 분석과 정치개혁 과제’ 콘퍼런스를 열어 발표했습니다. 동아시아연구원 민주주의연구센터 소장 강원택 교수(서울대 정치외교학부)의 기조 발표를 중심으로 몇 가지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이탈자
2022년 3·9 대통령 선거에서 윤석열 후보는 48.56%, 이재명 후보는 47.83%를 획득했습니다. 0.73%포인트 차였습니다. 서울에서 윤석열 후보는 50.56%를 득표해 45.73%에 그친 이재명 후보에게 4.83%포인트 앞섰습니다.
22대 총선 지역구 투표에서 민주당은 52.23%, 국민의힘은 46.29%를 득표했습니다. 민주당이 5.94%포인트 앞섰습니다.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가 총선에서 꽤 이탈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치 양극화와 소선거구제 상황에서 지지층 이탈은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이탈했을까요? 대선 후보 투표를 총선 지역구 투표와 비교했습니다. 이재명 투표자의 79.4%가 민주당에 투표했습니다. 반면에 윤석열 투표자는 75.4%가 국민의힘에 투표했습니다. 별로 큰 차이가 아니지요?
그러나 서울·인천·경기 수도권에서는 사정이 좀 다릅니다. 이재명 투표자의 82.9%가 민주당에 투표했습니다. 윤석열 투표자는 76.0%가 국민의힘에 투표했습니다. 윤석열 후보에 투표했던 유권자들이 확실히 더 많이 이탈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수도권에서 윤석열 투표자의 11.0%는 이번에는 민주당 후보를 찍었습니다. 이재명 투표자의 4.8%가 국민의힘 후보를 찍은 것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비례대표 투표는 어땠을까요? 2022년 이재명 투표자의 39.0%가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었습니다. 그보다 많은 43.1%는 조국혁신당을 찍었습니다. 윤석열 투표자의 65.3%는 국민의힘을 찍었습니다. 27.2%는 개혁신당 등 다른 정당을 찍었습니다.
# 투표 결정 시기
유권자가 투표할 정당이나 후보를 ‘언제’ 결정했는지는 매우 중요합니다. 기존 지지 정당에 대한 지지 의사가 강하다면 결정을 일찌감치 했을 것입니다. 선거 직전까지 결정을 미루는 유권자는 기존 지지 정당에 대한 불만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2022년 대선 윤석열 투표자 가운데 이번 총선 지역구 선거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찍은 사람들과 이탈한 사람들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국민의힘 후보를 찍은 사람 절반은 투표일 한 달 이전에 지지를 결정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에 이탈자의 무려 62.6%는 투표일 전 마지막 일주일 이내에 결정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이탈자들이 다른 정당에 대한 선호 때문이 아니라 기존 지지 정당에 대한 실망 때문에 망설이다가 마지막 순간에 이탈했음을 보여줍니다.
# 기권한 이유
유재성 계명대 교수는 2022년 윤석열 후보 투표자 중에서 이번 총선에서 기권한 사람들의 ‘이유’를 분석했습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윤석열 투표자 중 총선 기권자는 특별하게 대통령의 업무 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이들이 기권을 선택한 이유가 민주당에 느끼는 분노도 아니었다. ‘야당 심판’이나 ‘이조 심판’ 또는 ‘범죄자 심판’ 프레임이 효과가 없었던 이유다.
그런데 윤석열 투표자 중 총선 기권자는 국민의힘이나 윤석열 정부에 대해 느끼는 ‘희망과 기대’가 총선 참여자에 비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낮았다. 즉 국민의힘을 ‘위해’, 국민의힘의 ‘미래’를 위해, 총선에서 투표할 동인이 없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아니고, 상대 정당에 대한 분노도 아닌, 정부 여당에 대한 희망과 기대의 난망함이 이들이 기권이라는 비참여, 혹은 비결정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선거 캠페인은 이들의 이러한 ‘미래를 향한 복잡하고 예민한 감정’을 헤아리기엔 턱없이 ‘뭉툭’했던 듯하다.”
# 20대 유권자
구본상 충북대 교수의 분석에 의하면, 20대 이하 유권자들은 현재 정당이나 정치인에 대체로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습니다. 강하게 비호감을 느끼는 정당과 정치인이 있습니다. 특히 여성이 그렇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남성 정치인에 대한 강한 비호감, 보수 정당에 대한 부정적 감정은 20대 여성 전반에 퍼져 있습니다. 이런 흐름이 민주당에 대한 지지로 전환된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아직 이들이 감정적으로 민주당을 적극적으로 수용한다기보다는 혐오하는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대안으로 여기는 것으로 보입니다.
20대 이하 유권자들은 다른 연령대와 달리 조국혁신당을 확실한 대안으로 여기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계층 균열
김수인(서울대 박사 과정)씨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우리나라 선거에서 확인된 계층적 요인이 이번 총선에서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는 그 영향력이 더 뚜렷하고 분명해졌습니다.
40대 이하 젊은 유권자들은 지역, 세대 균열을 넘어서 다양한 요인의 영향을 복합적으로 받아 투표 선택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김수인 씨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심화로 계층적 균열이 나타날수록 보수 정당은 집권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영남 출신 지역 변수가 미치는 영향이 줄어드는 가운데 자산가, 남성, 노인으로 지지 기반이 좁아지고 있는 국민의힘에 제공하는 시사점은 새로운 이슈의 개발 선점을 통해 외연을 확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정치 개혁
이번 조사에서는 선거 제도에 대한 의견도 물었습니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 제도를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73.2%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이유는 ‘양극화된 정당 정치를 해소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았습니다. 지지 정당과 무관하게 40% 정도의 응답이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양극화 해소, 불비례성 완화, 대표성 강화의 방향으로 선거 제도를 바꾸는 정치 개혁 작업이 필요해 보입니다.
동아시아연구원과 별도로 동아시아재단이라는 비영리 공익 재단(김성환 이사장)이 있습니다. 조진만 덕성여대 교수가 4월30일 ‘22대 총선과 한국 정치의 명암’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했습니다.
조진만 교수는 “앞으로 한국 정치가 타협과 공존에 기반하여 잘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정파적인 갈등이 심하게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조진만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대해 “수평적인 당정관계 복원, 여야 간 대화 창구 마련, 타협과 협치의 정치문화 조성 등 변화와 혁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한국 정치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 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에 대해 조진만 교수는 “유권자가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아닌 이 대표와 민주당에 국정 운영의 열쇠를 넘겨준 만큼 더는 대안 없는 비판과 반사이익을 통한 정치를 진행하기 어렵다”며 “22대 총선 이후 어떤 모습과 성과를 보이는가의 문제는 미래권력으로서 유권자의 신뢰와 선택을 받는 데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저는 조진만 교수의 여야에 대한 우려와 전망이 대체로 옳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