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가까워진 한일, 제3국 공동진출로 결실맺자

  • 2024-01-14
  • 매일경제 (정승환 기자)

'가깝고도 먼 나라.'

한일관계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문구다. 여기에는 동아시아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과거사 때문에 가까워지기 힘든 한국과 일본 관계가 함축적으로 들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먼 나라는 이제 협력 파트너가 됐다. 한일관계는 지난해부터 해빙 무드에 돌입했다. 미중 갈등과 공급망 재편 등 글로벌 교역 환경 변화에 한일이 함께 대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에는 4년간 지속되던 한일 수출규제까지 완전히 해소됐다.

일본에 대한 국민 감정도 나아지는 추세다. 동아시아연구원(EAI)에 따르면 '한일관계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42.0%로 나타났다. 이는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었던 2019년 88.4%에 비해 절반 이하로 줄어든 수치다.

한동안 소원했던 한일 재계가 최근 협력에 팔을 걷고 나선 것은 반가운 일이다.

지난 11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는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와 도쿄에서 한일 재계회의를 개최했다. 회의가 도쿄에서 열린 것은 2019년 11월 이후 4년여 만이다.

이 자리에서는 단순히 덕담만 오간 게 아니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날 직접 발표자로 나서 양국 간 수소사업 협력 방향을 제시했으며, 한일미래파트너십재단은 15일부터 일본에서 한국 고교 교사 연수를 진행한다. 한국무역협회도 지난 9일 구자열 회장이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 일본대사를 만나 민간 경제협력 확대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무협은 올해 한일 교류 특별위원회를 신설할 예정이다. 한국의 CP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을 위해 양국 경제계가 함께 노력하는 한편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 연대도 강화해나가기로 했다. 양국 간 실천적 협력 의지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게 예전과 달라진 모습이다.

한일 재계가 가까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두 나라가 실질적 결실을 맺기 위해 힘써줬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제3국 공동 진출이다. 특히 아세안지역에서 한일이 공동 산업단지를 만드는 방법을 고려해볼 만하다. 일본이 이미 구축한 산업단지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도 있다. 예컨대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위치한 경제자유구역(SEZ·Special Economic Zones)처럼 일본 정부 공적개발원조(ODA) 차관으로 조성된 산업단지들이 있다. 이렇게 일본이 개척해놓은 산업단지에 한국 기업들이 참여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은 모색해볼 만한 프로젝트다.

이미 한일 기업이 해외 시장 공동개발에 함께 나선 사례가 있다. 롯데케미칼은 이토추상사, 스미모토상사와 각각 수소·암모니아 분야에서 협력하기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고, 제3국 공동사업 등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은 연료전지 등 수소 활용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보유했으며, 일본은 수소 저장·운송 기술에 강점이 있다. 이런 모델들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십분 활용하면 된다.

특히 내년은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이 되는 해다. '과거와 현재가 싸우면 결국 미래를 잃는다'는 영국 정치가 윈스턴 처칠의 말처럼 한일관계가 과거를 넘어 밝은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