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북한 핵정책, 소련·러시아가 닦은 길로 `착착`

  • 2022-11-15
  • 강현태 기자 (데일리안)

자의적 핵사용을 법으로 못 박은 북한이 한미 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에 반발해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평가되는 각종 미사일 도발에 나섰다.

 

공세적 핵정책이 '말'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행동'으로 증명하며 위협 수위를 더욱 끌어올린 셈이다.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유례없이 공세적인 핵정책을 도입했다는 평가에 힘이 실리는 가운데 북한이 냉전 시대부터 꾸준히 소련·러시아 핵정책을 차용해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황일도 국립외교원 교수는 최근 동아시아연구원(EAI)을 통해 발표한 '북한의 핵무력 정책법 분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북한 핵무력 정책법의 구조나 문장, 단어의 용법에서 드러나는 뚜렷한 특징은 러시아 공식 핵정책 문헌과의 유사성"이라고 밝혔다.

 

황 교수는 지난 2020년 6월 러시아가 대통령령으로 도입한 '핵억제 영역의 러시아 국가정책 기본 원칙에 대하여'와 지난 9월 북한이 제정한 핵무력 정책법이 △재래전 상황에서의 선제 핵사용 옵션 과시 △억제·실전 전력으로 핵무기를 모두 활용하겠다는 이중 교리 △핵사용 문턱 낮추기를 통한 재래식 열세 상쇄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핵정책이 "전술핵 확전 위협을 통해 미국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군사행동을 저지하거나 물러서게 만드는 이른바 '비확전을 위한 확전(Escalate to De-escalate)' 교리를 구체적으로 보여줬다"며 "비확전을 위한 확전 교리는 올해 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모스크바가 핵사용 가능성을 반복적으로 암시함으로써 현실화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사한 상황을 한반도에서 연출해 미국의 확장억제 가동과 전시 증원을 저지하겠다는 것이 북한 핵무력 정책법의 근본 목적"이라고 부연했다.

 

북한의 러시아 핵정책 '따라하기'는 냉전 시기부터 꾸준히 이어져 온 흐름으로 평가된다.

 

조동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최근 서울대통일평화연구원 주관 포럼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기 전까지, 특히 1954년까지는 소련의 핵언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며 "노동신문(북한 매체)은 핵무기를 '제국주의의 파괴적 무기'라고 했다"고 밝혔다.

 

조 교수는 "소련이 핵무기를 보유한 뒤 '소련 핵무기는 제국주의 침략을 막기 위한 좋은 핵무기'라고 했다"며 "북한이 똑같이 따라 했다"고도 했다. 미국 핵무기는 '나쁜 핵무기', 소련 핵무기는 '좋은 핵무기'로 구분 지으며 소련 입장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뜻이다.

 

다만 1957년 이후로는 북한이 한국에 배치된 미국 전술핵에 대비하기 위해 수세적인 자체 핵담론을 발전시켰다는 게 조 교수 평가다. 특히 핵보유를 선언한 2005년부터 2011년까지도 '자위적 핵억제력' 개념을 활용했지만, 실질적 핵무기 도입 시기로 평가되는 2012년께부터 소련 핵정책을 또다시 차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2012년 3월 북한이 조선인민군 '전략로케트사령부'를 신설했다"며 "전략로켓사령부는 1950년 소련이 핵무기 부대를 만들면서 사용했던 개념이다. 북한이 핵무기 사용법과 관련해 '소련을 따라가고 있구나'라는 추정이 가능했다"고 밝혔다.

 

당시 소련이 △핵무기를 활용한 선제공격 △통상무기를 활용한 전쟁 발생 시 핵무기 대응 △핵무기 보복 가능성 등을 주요 핵정책으로 채택했던 만큼, 북한 핵정책의 '변화'도 짐작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북한은 2013년 남측 거주 외국인 및 북한 주재 외교관들의 철수를 권고하는 등 전쟁 위협을 고조시킨 바 있다.

 

조 교수는 북한이 2018년부터 평화공세를 펴며 경제 성장을 모색한 것 역시 소련의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평화공세가 본격화될 무렵 △북한군 병력 감소 △북한 군수산업의 민수산업화가 감지됐다며 "1950년대 후반 소련에서 일어났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시 "북한이 핵을 포기하려는 게 아니라 핵무기를 가진 정상국가로 살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는데 우리(문재인 정부)가 (비핵화 의지로) 곡해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전략로켓군을 창설한 소련이 미국 타격용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이후 안보 위기감을 덜고 경제개발, 병력 축소, 국방비 감소에 나섰듯 북한도 같은 과정을 밟았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북한이 이처럼 러시아가 걸어온 길을 뒤따르고 있지만, 실질적 역량 차이는 확연하다는 평가다.

 

황 교수는 "북한은 러시아가 아니다"며 "북측의 대미 타격능력에 대한 미국 측 인식은 확증파괴는 물론 확증보복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북한이 러시아를 모방해 선제 핵사용을 위협한다 해도 미국 측이 확장억제 실행 등에서 제약을 느낄 공산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추구하는 교리와 실제 능력 사이의 괴리로, 북측은 자신들이 선제적으로 핵을 사용한 이후에도 미국 측의 대규모 핵사용 응징을 피할 수 있는 (저수지 발사 등) '기묘한 구조의 상호 핵억제'를 만들어낼 묘안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중"이라고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조 교수는 "북한이 아무리 핵무력을 철도에서 기동시키고, 터널에 숨기고, 심지어 저수지에 숨겨도 여전히 추적 가능한 부분이 많다"며 북한이 향후 핵무기 생존력 증대에 집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강조해온 '핵무기의 질적·양적 강화' 흐름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조 교수는 인도·파키스탄 사례를 참고할 경우, 북한이 핵탄두 숫자를 적어도 100기까지는 늘릴 것으로 관측된다며 "핵심적인 부분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체계를 갖추느냐 못 갖추느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00기가량의 핵무기를 보유할 경우, 육상 핵전력이 한미에 의해 모두 파괴되더라도 SLBM을 활용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만큼, 향후 북한의 '최대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