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중도 좌파가 고학력자 정당 되니 극우파 뜨더라 [핫이슈]

  • 2022-04-29
  • 김인수 논설위원 (매일경제)

더불어민주당은 고학력자 화이트칼라 중심의 정당인 건가. 동아시아연구원(EAI)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대선 종료 후인 지난 10~15일 11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다.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53.9%가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후보에게 투표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받은 표는 42.2%에 그쳤다. 반면 화이트칼라 사무직 근로자들은 54.5%가 이재명 후보를, 41.4%가 윤석열 후보를 찍었다. 블루칼라는 보수우파 정당 후보를 지지했고, 화이트칼라는 진보좌파 정당 후보에 투표한 것이다. 가구 소득 별로 보더라도 월 400만 원 이상 소득 가구에서는 이재명 후보가 더 많은 표를 얻었다. 600-700만 원 소득 가구에서 이 후보의 득표율은 61.7%에 이르렀다. 다만 700만 원 이상 소득 가구에서는 그 격차가 1.7% 포인트로 줄어들었다. 소득이 700만 원보다 훨씬 높은 계층에서는 보수 정당 후보 지지가 월등히 높기 때문일 것이다.

 

이 조사 결과만 놓고 보면 민주당은 분명히 저학력 노동자 계층의 정당이 아니라, 고학력 화이트칼라 계층의 정당이다. 블루칼라는 좌파의 전통적 지지기반이라는 점에서 뜻밖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사실 이런 추세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오래전부터 두드러졌다. 문제는 중도 좌파 정당이 고학력자 중심의 정당이 될수록 극우파가 부상했다는 것이다. 지지 정당을 잃은 저학력 블루칼라 계층이 극우 지지로 옮겨갔다. 프랑스와 미국 대선 결과가 이를 입증한다.

 

프랑스 극우파인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 후보는 지난 4월 대선에서 약진했다. 선거 막판 한때 여론조사에서 현 대통령인 에마뉘엘 마크롱을 2% 포인트 격차로 추격했다. 최종 결과는 마크롱에게 17% 뒤진 41.5% 득표에 그쳤지만, 프랑스에서 극우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는 공포를 유럽 각국에 불러일으켰다. 만약 르펜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평소 높은 친분을 자랑하지만 않았다면 표 격차는 훨씬 좁혀졌을 것이다.

 

반면 중도 좌파 정당인 사회당의 안 이달고 후보는 대선 1차 투표에서 겨우 1.75% 득표에 그쳤다. 14년을 집권한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을 배출하며 2차 세계 대전후 프랑스 정치를 주름잡았던 사회당의 완벽한 몰락이었다.

 

원래 사회당은 저학력 블루칼라를 지지 기반으로 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이들은 우파 정당을 지지했다. 토마 피케티의 책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1956년 총선거에서는 고등교육 이수자의 37%만이 사회당을 비롯한 좌파 정당에 투표했다. 그러나 그 비율이 1973년에는 44%, 1995년에는 49%, 2012년에는 58%로 급증했다. 과거에는 고학력일수록 좌파 정당 지지율이 낮았으나 점차 고학력일수록 좌파 정당 지지율이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케티가 `인민 계급`이라고 칭한 사람들, 저학력 블루칼라는 좌파에게 버림받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자기들을 대변하리라고 믿었던 사회당이 고학력 고소득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변했다고 배신감을 토로했다.

 

그 틈을 극우파가 비집고 들어갔다. 국민연합은 이민자들이 저학력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민을 막겠다면서 인종주의를 부각시켰다. 세계화에 반대한 것이다. 국민연합은 저학력 계층을 위한 포퓰리즘 공약도 쏟아냈다. 드디어 국민연합의 르펜은 2017년 대선 1차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하며 결선 투표에 진출한다. 반면 당시 사회당은 겨우 6% 득표로 1차 투표 5위에 그쳤다. 올해 대선에서 국민연합은 더욱 약진한 반면, 사회당은 더욱더 저조한 득표율을 보였다.

 

이런 현상은 미국도 비슷하다. 미국의 중도 좌파 정당인 민주당은 원래 저학력 노동자 계층의 정당이었으나 어느새 고학력자 중심의 정당으로 변모했다. 고등교육 이수자들은 1948년 미국 대선에서 겨우 30% 정도만이 민주당 후보인 해리 트루먼에게 투표했다. 석박사 학위 소유자의 70% 이상이 공화당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그러나 1990년대와 2000년대부터 투표 패턴이 역전됐다. 고학력일수록 민주당 지지가 늘어났다. 2016년 대선에서 박사학위 소지자들의 75% 이상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다.

 

반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는 저학력 백인 노동자 계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대학 학위가 없는 백인은 2106년 대선에서는 66%, 2020년 대선에서는 67%가 트럼프를 찍었다. 과거 민주당 지지자들이 극우에 가까운 트럼프 지지로 옮겨간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의 주장은 마린 르펜과 비슷하다. 이민자들 탓에 미국의 블루칼라들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주장한다. 이민자들이 못 들어오게 장벽을 쌓겠다고 했다. 무역 장벽을 쌓으며 세계화에 반대했다. 트럼프는 2020년 대선에 불복하며 미국 민주주의를 훼손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화당에서 파괴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저학력 백인 블루칼라 계층의 지지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다시, 대한민국의 중도좌파 정당이라고 하는 민주당 얘기로 돌아오자. 민주당이 고학력 화이트칼라 중심의 정당이 되고 있다는 건 위험 신호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국민의힘보다는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양대 노총은 고소득 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한다는 비판이 높다. 비정규직 저소득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대변할 단체나 정당이 없다는 소외감을 느낄 만하다. 그 틈을 극우 정당이 비집고 들어간다면, 프랑스처럼 한국도 중도 좌파가 몰락할 수 있다. 중도 우파와 극우파가 선거 때마다 1위와 2위를 놓고 경쟁하고, 극좌파가 3위를 차지하는 불행한 사태를 맞을 수도 있다. 민주당은 저학력 노동자 계층을 위한 비전과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몰락할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고학력자가 민주당을 지지한다면서 자부심을 느끼는데,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들의 지지기반인 저학력 노동자 계층을 무시하는 `극우적 발상`일뿐이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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