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미·중 패권 경쟁과 한국의 외교전략

  • 2020-07-16
  • 최병구 前주노르웨이 대사/ 정리=이지연 기자 (데일리경제)

미 백악관은 2020년 5월 21일 의회에 <대중국 전략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보고서는 국방뿐 아니 라 경제·외교 등 다방면에서의 대응 방향을 설정했는 데, 전문가들은 이것은 사실상 냉전을 선포한 것과 다름없다고 보았다. 미・중 관계가 이런 상황까지 이 른 배경을 먼저 살펴보자.

1991년 소련 붕괴로 탈냉전이 시작되면서 세계화와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풍미했다. 중국은 이런 조류를 타고 2010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시진핑은 2012년 최고지도자가 되면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선언했다. 중국이 세계를 이끈다는 야심찬 비전이었다. 그는 2015년 9월 유엔총회 연설과 2017년 1월 다보스포럼 연설에서는 ‘인류운명공동체’라는 것을 내놓았는데, 이 역시 중국 중심의 세계질서를 상정한 것이었다.

미국은 중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더 이상 대응을 늦출 수 없었다. 2011년 3월 국가정보국(DNI)은 중국을 ‘최대 치명적(mortal) 위협’으로 규정했고, 펜스 부통령은 2018년 10월 대중 봉쇄정책을 예고했다.

코로나19와 ‘홍콩국가안전법’ 제정 사태는 미·중 결별을 되돌릴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지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분명한 것은 단기간에 끝날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소 냉전과 같이 장기간 지속될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이 대결하는 분야는 경제·기술·군사·외교 등 다양하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여기에 이념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시진핑은 2013년 “자본주의는 반드시 멸망하고 사회주의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했는데, 미국과의 대결을 이념적 관점에서 보고 있음을 말해준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백악관의 <대중국 전략보고서>는 공격의 초점을 ‘중국공산당’에 맞추고, 시진핑을 ‘국가주석’이 아닌 ‘당총서기’로 부르기 시작했다.

미·중 충돌은 우리에게도 엄중한 도전이다. 대한민국의 명운을 좌우할 수도 있는 문제다. 우리가 이러한 도전에 대응해 나감에 있어 중요한 것은 정체성(正體性)과 지향점(指向點)을 정확하게 설정하는 일이다. 그러함에도 이 점에서 이미 전략적 실수가 있었다. 무슨 말인가.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0월 사드(THAAD) 배치와 관련하여 중국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3不’을 수용했다. 우리 스스로 안보주권을 제약하는 일이었으며, 한・미동맹을 흔드는 일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2017년 12월 시진핑 주석과 회담하면서 양국 관계를 ‘운명공동체’로 불렀고, 베이징대 연설에서는 ‘중국몽을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2년 후인 2019년 12월 있었던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양국 관계를 ‘공동운명체’로 불렀다. 문 대통령이 말하는 ‘운명공동체’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지구상의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와 ‘운명’을 함께 하지는 않는다. 추구하는 이익과 가치가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운명공동체’로 규정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 중국이 추구하는 가치는 분명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가치와 다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 관계에 있다. 한・미동맹과 한·중 운명공동체는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이다.

따라서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보이거나 ‘등거리 외교’를 할 수 없다.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동북아균형자론’(2005), 박근혜 대통령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2015), 사드배치 논란(2016) 등이 이런 사실을 입증했다. 그런데 최근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주미대사는 6월 3일 특파원간담회에서 ‘한국은 미·중 어느 한 나라를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에 국무부는 ‘한국은 이미 어느 편에 설지 선택하지 않았는가’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 대사의 이런 언급이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외교 전략을 가져야 할까?

첫째, 오늘의 대한민국을 가능하게 해준 정체성과 가치를 외교에서도 견지해야 한다. 이는 곧 전체주의의 중국이 아닌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미국과 연대해야 함을 뜻한다. 미국은 70여 년간 기본적 가치를 공유해온 유일한 동맹국이다. 반면 중국이 원하는 것은 한・미동맹 해체다.

아베 일본 총리는 지난 5월 한 기자회견에서 “격화되고 있는 미·중 대립 상황에 어느 쪽에 설 것인가”라는 질문에 “일본은 자유·민주·인권·법의 지배라는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이런 일본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인도는 지난 수년 미·중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모디 총리가 집권 이후 시진핑 주석과 18번이나 회동했을 정도로 중국 견제를 원하는 미국의 기대에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최근 국경 충돌 사태가 발생하면서 미국 쪽으로 기울고 있다. 호주·캐나다 등도 마찬가지다.

한 때 한국에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 말은 진실을 호도했다. 미국은 우리가 경제를 위해서도 떼려야 뗄 수 없는 나라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에서 생기는 어려움은 극복이 가능하나, 한・미동맹 와해가 야기하는 경제 난국은 극복이 어려울 것이다.

둘째, 남북관계가 한국 외교의 행동반경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의 미·중 관계 하위변수 현상은 미·중 패권 경쟁 상황에서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중국의 북한 지지 입장도 강화될 것이다. 현 정부는 대북 올인 정책을 폄으로써 한국 외교가 운신할 수 있는 공간을 좁혀 놓았다. 미국과 중국이 격돌하고 있는 상황에 남북관계로 한반도 상황을 풀어가겠다는 것은 마차를 말 앞에 놓는 것과 같다.

셋째,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적인 트랙에 올려놓아야 한다. 한국이 미·중에 대해 전략적 가치를 가지려면 그리고 한반도 문제와 북한 핵 문제를 풀어나가려면 일본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현 정부 시기 자주 나타난 ‘친일파’ ‘토착왜구’ 등의 인식은 시대착오적이다. 대일 외교를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결국은 우리에게 손해다. 과거에 얽매어 현재와 미래의 이익을 희생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김영삼 대통령(1993.2~ 1998.2)의 대일 외교는 반면교사(反面敎師), 김대중 대통령(1998.2~2003.2)의 대일 외교는 귀감(龜鑑)으로 삼을만하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5년 11월 ‘일본 정치인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한다’고 하는 등 한·일 관계를 악화시켰다. 1997년 11월 금융위기 때 일본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달랐다. 1998년 10월 오부치 총리와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만들어내는 등 양국 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켰다.

넷째, 우리가 견지하고자 하는 기본 원칙을 분명히 설정하고 어떤 사안이 발생했을 때 이를 일관성 있게 주장해야 한다. 또한 국제법과 규범의 문제에서 분명한 태도와 입장을 보여야 한다.

2016년 7월 헤이그상설중재재판소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판결을 놓고 미국·일본·호주·싱가포르 등은 판결 결과를 명시적으로 지지했으나 우리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중국의 반발을 의식한 것이었는데, 법과 원칙의 문제를 놓고 이래서는 안 되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2020년 6월 30일 제44차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영국·일본·호주·캐나다 등 27개국이 공동으로 ‘홍콩국가안전법’ 폐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을 때 한국은 참여하지 않았다. 2016년에는 유엔인권이사회 의장국이었고 현재는 인권이사회 이사국인 나라가 취할 태도는 아니었다.

요약컨대, 미·중 패권 경쟁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는 한・미동맹을 중심축으로 삼아야 한다. 한・미동맹만큼 우리의 핵심이익을 지켜줄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2010년 천안함 사태 때 한 중국 외교관은 ‘미국만 없으면 한국은 진작 손을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미국과 함께 가지 않으면 중국으로부터 어떤 일을 당하게 될지 암시하는 말이다.

통일연구원의 ‘2020 통일의식 조사’(5.20~6.10)에 의하면, ‘미국과의 동맹이 필요하다’는 응답자가 90.2%에 달했고, 동아시아연구원·성균관대 동아시아공존협력연구센터·중앙일보가 공동 실시한 ‘2020 한국인 정체성 조사’(5.6~27)에서도 한・미동맹 강화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44.6%로 나왔다. 2005년 30.3%, 2010년 37.9%, 2015년 43.0%로 꾸준한 증가세를 보였다. 일반인들의 인식이 이렇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다.

지난 6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G7(주요7개국) 확대 시 한국 포함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이 이러한 그룹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미·중 패권 경쟁 시대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힘 있는 지렛대 하나를 확보하는 일이다.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상기 칼럼내용은 필자 개인의견이며, 본지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최병구 대사는 주미국총영사, 주노르웨이대사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한국의 외교안보』(2017), 『외교의 세계』(2016) 등이 있다.

출처 : 데일리경제(http://www.kdpres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