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平壤의 결단을 기대하며

  • 2003-03-10
  • 이홍구 (중앙일보)

"역사 흐름에 동참하느냐가 우리 민족의 앞날을 좌우할 것" 한반도의 평화는 북한이 핵무기를 갖느냐 안갖느냐 하는 선택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시장경제의 동력을 사회발전의 기초로 삼는 역사의 흐름에 북한이 동참하느냐 않느냐가 궁극적으로 우리 민족의 앞날을 좌우할 것이다. 북한이 이러한 역사의 흐름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 외로움과 불안이 극단적 행동을 촉발한다면 이는 민족의 큰 재앙임에 틀림없다.

 

그러기에 우리는 북한이 경제발전을 우선시하는 역사의 주류에 동참하기를, 그리하여 민족공동체의 장래를 함께 기획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요 며칠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를 방문하면서 더욱 절실해진다.


시장경제로 성공한 베트남

 

베트남은 북한 및 중국과 더불어 공산당이 통치하는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다. 프랑스.미국.중국과 전쟁을 겪으면서도 독립을 지키고 통일을 이루어 낸 베트남 민족이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가는 한때 그들과 불행한 관계에 놓였던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한 베트남의 당면과제는 그들이 어떻게 세계화의 물결에 동참해 획기적 경제발전의 계기를 포착할 수 있는가라고 판 반 카이 총리는 직설적으로 강조한다.

 

이를 위해 확실한 시장개방 정책을 추진하여 외국기업의 투자와 진출을 적극 환영하고 관계 법령과 제도를 빠른 속도로 정비하겠다고 약속한다. 2005년께엔 베트남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국제사회와 세계시장의 관행에 동조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렇듯 베트남의 미래를 세계화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추구하는 카이 총리는 어떤 인물인가? 올해 70세인 그는 어린 나이에 프랑스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에 가담했으며 모스크바 유학에서 돌아와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인 호치민의 보좌관으로 일했던 것을 자랑스럽게 회상한다. 베트남공산당의 정치국원인 그는 1997년부터 총리로서 경제발전을 지휘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는 철저한 공산주의자이며 민족주의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러한 그의 정치적 신념이 그로 하여금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주저할 아무런 이유는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를 베트남의 발전과 베트남 국민의 복지를 위해 역사의 흐름에 동참하고 세계화의 물결을 이용한 경제발전의 기수로 만든 것이다.

 

베트남은 오랜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언제나 중국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중국공산당이 주도한 개방정책이 얼마나 괄목할 만한 경제발전을 가져왔는가를 잘 알고 있으며, 여러 면에서 그 과정을 유익한 참고로 삼는다.

 

그러기에 아세안의 회원국이 된 베트남은 중국과 아세안이 자유무역협정 (FTA)을 맺기로 원칙적 합의에 이른 것을 주목한다. 매년 3백만명 이상의 중국 관광객이 아세안을 찾고 있으며 1만명이 넘는 중국 유학생이 말레이시아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 등도 주의깊게 관찰하고 있다.

 

한편 너무나 많은 제조업체나 외국인 투자가 중국으로 몰려가고 있음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공산당이 주도하는 중국과 베트남의 사회주의 경제가 시장경제의 물결을 타고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두 나라 사이에 새로운 유대감을 싹트게 하고 있다.

 

왜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이 보여준 과감한 선택, 즉 공산당이 주도하는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뒤늦게나마 시도하지 못하는지 우리로서는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한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허구적인 정치 연극보다 경제발전을 위한 제반조치를 차분히 취해가는 실사구시적 지혜가 필요하다.


핵무기 전략 과감히 바꾸길

 

대만해협을 사이에 둔 중국과 대만의 긴장이 정치와 이념을 앞세울 때 소강상태로 이어지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정치지도자들이 전혀 무대에 오르지 않은 가운데 50만에 가까운 대만인이 상하이(上海)에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는 북한이 하루 속히 경제발전을 최우선시하고 역사의 흐름 속에서 지혜로운 정치적 결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 핵무기개발 등 극단적 조치가 경제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세계적 추세에 동참하는 데 결정적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다.

 

중국과 베트남만이 시장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북한이 결단을 내릴 때 우리는 환영하고 지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