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김옥균 묘 앞에서

  • 2006-06-26
  • 하영선 (중앙일보)

죽은 사람과의 만남은 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오래간만에 한말 우리 역사의 슬픈 주인공인 김옥균(1851~1894)의 도쿄 아오야마 묘를 찾았다. 이번 방문은 조금 특별했다. 혼자가 아니라 21세기의 김옥균 20여 명과 함께한 답사여행이었다.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는 "嗚呼 抱非常之才 遇非常之時 無非常之功 有非常之死(아 슬프다.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비상한 시국을 만나 비상한 공이 없이 비상한 죽음만 있었으니)"라는 묘비문의 시작은 오늘따라 유난히 애절하게 가슴에 다가왔다. 아무도 돌보지 않아 잡초만 무성한 묘 앞에서 21세기의 젊은 주인공들과 함께 19세기 조선과 21세기 한반도의 비상시국을 함께 고민하는 묘지 세미나를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매력남 김옥균은 실패한 19세기 386정치인들의 중심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여 년이 지난 오늘 그를 찾는 데는 이유가 있다. 21세기 386정치인들이 과거의 시각에 붙잡혀 미래의 변화를 제대로 내다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 김옥균은 예(禮) 중심의 천하질서가 부국강병 중심의 국민국가질서로 대변환을 겪고 있는 비상시국의 긴박함을 제대로 읽고 있었다.

 

그런데 왜 비상한 공을 이루지 못하고 총에 맞아 죽은 시체마저 갈가리 찢기는 비상한 죽음을 맞이해야 했는가. 한마디로 비전을 실천할 수 있는 국내외 역량 동원에 실패한 것이다. 바깥으로는 아편전쟁(1840) 이래 비교우위를 상실한 천하국가 중국 대신에 화려하게 등장한 새로운 주인공인 구미 열강의 근대국가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었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재빨리 아류 근대국가로 성장한 일본의 도움을 위험을 무릅쓰고 시도했으나 호랑이 굴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 셈이 됐다. 안으로는 당시 민영익 등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 주도 세력과의 협력에 실패하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결국 역량 면에서 설익은 갑신정변(1884)을 무리하게 추진함으로써 심각한 개혁세력의 약화와 죽음을 초래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2일 해양경찰관 격려 오찬에서 동해 EEZ 해양주권과 관련해 "동해에서 돌발사태 시 대응할 수 있는 정도의 전투력을 갖추고 그 이상은 정치에 맡겨 달라"고 말했다.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조용한 외교로는 문제 해결에 한계가 있어 정면 대결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외적으로 노 대통령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느라고 부산하다.

 

그 답은 노 대통령이 지난 16일 군 주요 지휘관과의 대화에서 "전략적 사고로 미래를 준비하자"라는 제목으로 한 강연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선택하고 있는 용어의 세련도나 논리의 일관성에 문제가 있으나 강연은 대통령의 비전과 전략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는 역사적으로 중.러 같은 대륙세력과 미.일 또는 미.일.영의 해양세력이 역사적으로 한반도를 경계로 해서 대립해 왔으며 이러한 지정학적 악순환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력을 키워야 하며, 다음으로 의존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하며, 마지막으로 전략적 사고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런 비전과 전략은 특히 역사적 안목에 기반을 둘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과거 속의 미래"와 "미래 속의 과거"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역사공부의 진도가 더 나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전통의 천하질서, 근대의 국제질서, 그리고 21세기의 복합질서는 동일한 사고와 행동의 원칙 위에 움직이고 있지 않다. 전통, 근대, 그리고 복합시기의 전쟁은 통사적으로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전쟁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21세기 비전과 전략은 과거사의 통찰 못지않게 미래사의 전망 위에서 가능하다.

 

국력을 키우되 21세기 국력을 키워야 한다. 19세기형 근대국력에 기반을 둔 "호통 외교"로 21세기의 발 빠른 제국들의 "복합외교"를 제압하기는 어렵다. 비분강개를 넘어선 와신상담 외교가 필요하다. 21세기 복합국력 양성에 전력하면서 의존적 사고 탈피라는 변방적 사고를 넘어서서 주변 세력들을 복합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비전과 전략을 마련하자. 그때 비로소 김옥균은 편안히 잠들 것이다.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