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역사의 회전무대

  • 2006-05-15
  • 하영선 (중앙일보)

지난주 노무현 대통령의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하려 한다"는 몽골 발언을 둘러싸고 여야 간에 논쟁이 벌어졌다. 한편 서울대 총학생회가 한총련을 탈퇴하고 모든 학생 정치조직과의 분리를 공식 선언했다. 북악산과 관악산 사이에 상당한 기온차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단순한 기온차가 아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이 한국 현대사의 지나가는 무대의 마지막 장면을 상징하는 것이라면, 서울대 총학생회의 선언은 다가오는 무대의 첫 장면을 상징하는 것이다. 무대의 회전과 함께 새로운 막이 열리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옛 연기를 고집하는 주인공은 새 무대에 설 땅을 찾기 어렵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베이징 6자회담은 지난해 9월 진통 끝에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말" 대 "말"의 약속은 예상대로 "행동" 대 "행동"의 실천으로 옮겨지지 못한 채 허공에 떠 있다. 당연한 일이다. 공동성명의 무대는 냉전, 탈냉전, 그리고 변환의 대사와 연기와 뒤범벅되어 대단히 혼란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북한은 수령체제의 옹호를 위해서는 핵 억지력의 마지막 수단까지 동원하겠다는 냉전적 사고의 결연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미국은 9.11 테러에 이어 이라크전을 겪은 뒤 대량살상무기 테러를 일차적으로는 자유의 확산이라는 방법으로 뿌리 뽑겠다는 변환의 사고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냉전과 변환의 갈등 속에서 국내경제 우선주의의 중국과 민중 우선주의의 한국은 북한 김정일 위원장에게 한 번 더 양보하고 결과를 기다려 보자는 탈냉전적 사고로 북.미 간의 갈등을 풀어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전망은 어둡다. 북한은 한국과 중국이 아무리 많은 양보를 하더라도 수령체제를 양보할 수는 없다. 미국도 당분간 "자유의 성전(聖戰)"에서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다. 한국의 많은 양보는 북한의 전술적 변화를 살 수 있지만 전략적 선택을 결심하게 할 수는 없다. 미국은 한.미 공조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외로운 변환외교의 길을 달릴 것이다. 눈앞에 전개될 지나가는 무대의 마지막 장면이다.

 

서울대 총학생회의 선언은 회전무대의 새 막을 올리는 뒤늦은 새로움이다. 2000년대의 대학가는 이미 1980년대의 대학가를 졸업한 지 오래다. 80년대의 대학가가 오늘의 청와대.여의도.언론방송.학계.시민사회조직의 분위기를 지배하고 있다면, 오늘의 대학가는 2030년의 우리 자화상이다. 21세기의 젊은 그들은 더 이상 자주.통일.반미에 열광하지 않는다. 우리 민족끼리 어깨동무하고 "우리의 소원"을 합창하기보다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꼭짓점 춤추기에 더 익숙하다. 반미자주화의 시민운동보다 사이버공간의 네티즌 모임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국가와 민족과 세계도 중요하지만 개인과 가족이 더 소중하다.

 

급한 것은 미래의 자화상을 그릴 새로운 세대가 탄생했지만 그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세계적 수준의 자화상을 완성할 기성세대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늘의 기성세대가 된 80년대의 젊은 그들은 역사의 회전무대의 극적인 국면변환을 미처 느끼지 못하고 있거나 변환의 속도에 밀려 지나가는 무대의 마지막 장면에 매달려 있다. 2030년 세계 자화상 경연대회의 선발기준은 간단하지 않다.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미래의 어우러짐을, 공간적으로는 동양과 서양을 동시에 품을 수 있는 복합화를 그릴 줄 알아야 한다. 통일과 반통일, 세계화와 반세계화, 성장과 분배의 양극화는 흘러간 노래다. 더 이상 새 무대에 설 자리가 없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지방자치선거를 끝내고 나면 본격적인 대선 후보 경쟁이 시작된다. 21세기 한반도의 국운이 달린 선택이다. 후보들이 지나가는 무대에 머뭇거리면서 새 무대에 서지 못하면 역사의 회전무대는 우리를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돌아갈 것이다. 우리 기성세대의 뒤늦은 깨달음이 중요하다.

하영선 서울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