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선진 경제로 가는 길] 上. 반기업 정서가 투자 걸림돌 경제주체들 기부터 살리자

  • 2005-08-15
  • 이내영 (중앙일보)

한국 경제의 선진화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국민의 경제의식을 선진경제 체제에 걸맞도록 변화시켜야 한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반기업 정서를 완화시키고 기업의 기를 살리는 것이 선진화의 지름길이다.반기업 정서는 기업 경쟁력과 기업가 정신을 떨어뜨린다. 자연히 투자와 기업활동은 위축된다.

어느 사회나 반기업 정서는 있지만 한국의 반기업 정서는 유독 높은 편이다. 세계적 컨설팅 업체인 액센추어가 2001년 실시한 국제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반기업 정서 지수는 70으로 브라질(53), 일본(45), 미국(23) 등과 견주어 매우 높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반기업 정서가 이처럼 높게 나온 일차적 책임은 대기업에 있다. 도덕적 신뢰를 얻는 데 실패했다. 국민은 대기업, 특히 재벌들이 정경유착과 관치금융 등의 특혜에 힘입어 성장했다고 믿고 있다. 또 한국 대기업들의 세습경영.분식회계.문어발식 경영 등은 지속적으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과 정치권 간의 검은 거래의 내막이 대선 비자금 수사나 최근 X파일 사건 등에서 드러날 때마다 국민은 기업에 등을 돌린다. 

한국 사회의 지나친 평등주의 정서도 높은 반기업 정서와 관련이 있다. 우리 국민의 부자에 대한 비판적 인식은 평등주의 정서에서 비롯된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 결과는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조사에서 "부자들은 부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을 것"이란 국민이 70.9%나 된다.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해 부를 축적했을 것"(29.1%)이라는 의견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지나친 평등주의 정서는 기업 활동의 본질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갖게 한다.

우리 국민의 상당수가 기업 활동의 본질을 "이윤 창출"이 아닌 "부의 사회 환원"으로 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상당수 한국 국민은 대기업은 나쁘고 중소기업은 피해자라는 인식이 강하다. 특히 재벌에 대한 반감이 뿌리 깊게 남아 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의 기를 살리지 않고 경제 회복과 경제 선진화를 실현하기는 어렵다. 세계 각국이 무상 토지 제공, 세금 면제 등 각종 인센티브를 주면서 외국 기업의 투자 유치를 위해 애쓰고 있는데, 기업에 대한 반감 때문에 우리 사회가 기업의 투자 의욕을 위축시키고 있는 상황은 안타깝다. 더욱 답답한 것은 이를 단기간에 변화시키는 것이 어렵다는 점이다. 반기업 정서는 장기간 형성된 국민의 의식이기 때문에 제도나 정책 변화로 분위기를 바꿀 수도 없다. 다만 이런 반기업 정서의 골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은 기울일 수 있다.

희망적인 조짐도 엿보인다. 최근 동아시아연구원(EAI)의 여론조사에서 국민은 주요 기관과 조직 중 대기업을 가장 믿을 만한 곳으로 꼽았다.
또 올해 6월 대한상공회의소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 국민의 기업 호감도는 100점 만점에 47.0점이다. 2003년의 38.2점, 2004년의 44.4점보다 차츰 나아지고 있다. 이렇게 기업 호감도가 증가하는 것은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인한 고통 때문에 국민의 기업에 대한 기대가 커진 결과로 추측된다.

그러나 스스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정경유착의 고리를 과감히 끊고 투명경영을 실천해야 한다. 겉으로는 기업의 자율성과 규제 완화를 요구하면서도 속으로는 권력과 유착하는 이중적 태도로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또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깊이 인식하고 윤리경영을 적극 실천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부가 국민의 평등주의 정서에 편승해 포퓰리즘적 경제정책을 추진하게 되면 반기업 정서는 더욱 고착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업은 투자를 중단하거나 한국을 떠나게 된다. 그 경우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은 고갈되고 선진국 진입의 희망은 사라진다. 따라서 정부는 규제는 최소화하고 기업의 투자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한 시장친화적 정책을 적극 발굴해 추진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기업의 이윤추구가 자연스럽게 인정되고 존중돼야만 세계 일류기업들이 나오고 나라 경제가 살찐다. 그 결과로 국민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다. 정부와 국민이 기업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경제 선진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이내영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AI "10년 비전" 토론 참여 교수=김병국(고려대.정치외교학과), 김은미(이화여대.국제대학원), 김의영(경희대.정치외교학과), 나성린(한양대.경제금융학부), 송호근(서울대.사회학과), 윤영철(연세대.신문방송학과), 이내영(고려대.정치외교학과), 이종훈(명지대.경영학과), 이홍규(한국정보통신대.경영학부), 장훈(중앙대.정치외교학과), 정진영(경희대.국제지역학부) 교수 <가나다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