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미 여론주도층 일방주의 거부감

  • 2004-10-01
  • 이내영 외 (중앙일보)

한국.미국.멕시코 국민 대외인식 비교 


"유엔 테두리 내서 정책 결정"엔 의견 갈려
북한 위협에 관한 한 당파 떠나 "적극 대응"


여론(public opinion)은 다수 대중의 인식과 태도를 의미하지만 이런 여론의 형성 과정에서 오피니언 리더, 즉 여론 주도층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특히 미국에선 전통적으로 외교안보 분야의 여론 형성과 정책 결정과정에서 오피니언 리더들의 영향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번 대외 인식 국제 여론조사의 미국 주관 기관인 시카고외교협회(CCFR)는 미국의 일반 국민 여론조사와 별도로 오피니언 리더 450명을 상대로 한 설문 조사도 실시했다. 450명은 연방 상.하의원과 보좌관 100명, 국제정치학 교수 59명, 정부 고위 관리 41명, 종교 지도자 50명,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38명 등이 포함됐다.

11월 미국 대선 후에도 미국의 대외 정책에 오피니언 리더들이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이들 오피니언 리더의 생각과 의견을 살펴보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 일방주의에 거부감=미국 오피니언 리더들의 대외 인식의 특징은 일반 대중에 비해 국제 문제에 미국의 책임과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피니언 리더들은 기아 문제 해결, 지구환경 개선, 약소국에 대한 침략행위 방지, 핵무기 확산 저지, 국제테러 근절 등 각종 국제 문제의 처리에서 미국이 적극적 리더십을 발휘할 것을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에 관해 오피니언 리더들은 미국이 국제규범과 국제기구의 의사를 따를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일방주의보다 다자주의적 외교정책을 추진할 것을 미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 오피니언 리더들은 일반 대중에 비해 국제무역에서 국제무역기구(WTO)의 규범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표시하고 있다. 또한 미국이 반테러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오피니언 리더들은 다른 국가들과 긴밀히 협조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84%였다. 미국 단독으로 반테러 정책을 추진해도 좋은가라는 질문에 오피니언 리더들은 9%만 그렇다고 한 데 반해 일반 국민은 23%가 그렇다고 답했다. 미국이 세계경찰 역할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오피니언 리더의 76%가 부정적인 의견을 표시했다.

◆ 정파에 따라 양분=특별히 흥미로운 것은 미국과 유엔의 관계에 대한 인식이 정당 지지도에 따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공화당 지지 여론주도층 인사들 중 미국이 유엔 테두리 내에서 정책결정을 해야 한다는 데 찬성하는 비율이 26%이고 반대가 72%인 반면, 민주당을 지지하는 여론주도층 인사들은 89%가 찬성이고, 10%가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미국이 현재 정파적 성향에 따라 양분돼 있다는 점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점은 한국 국민 상당수가 민주당이 집권해야 미국의 일방주의적 정책성향이 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 민주당 역시 집권하면 결국 "미국 중심적 사고"를 한다는 경험적 사실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 대북정책 변화 없을 듯=한편 이라크 헌법 제정과 민주 정부 수립을 유엔이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에 오피니언 리더의 75%가 지지했으며, 미국이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은 18%에 그쳤다. 여기에도 지지 정당별로 차이가 존재한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미국의 적극적 개입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민주당 지지자들의 다수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개입이 축소돼야 한다고 답하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조사 결과는 미국 오피니언 리더들이 북한의 위협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적극적 개입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한국을 침략할 경우 미국 단독으로라도 군사적 개입을 해야 한다는 입장에 오피니언 리더들의 82%가 찬성했다.

이는 어떤 다른 나라에 대한 군사적 개입보다 높은 수치다. 북한 위협에 관한 한 적극적 대응을 지지하는 미국 여론주도층의 태도는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 사이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이러한 결과는 미국의 대선에서 어느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대북한 정책 기조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이내영 고려대학교 교수 · 정원칠 부소장


*** 시카고외교협회 보고서 요지

한국은 북핵 외교적 해결 선호
미국선 개발 계속 땐 군사조치

미국 시카고외교협회는 30일 한국 동아시아연구원(EAI) 등과의 3개국 대외인식 조사를 자체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냈다. 다음은 CCFR가 작성한 보고서 중 한.미관계 부분을 요약한 것이다.

◆ 양 국민 인식의 공통점과 차이점=두 나라의 여론조사 비교를 통해 한.미 양 국민이 각종 현안을 바라보는 인식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했다. 우선 두 나라 국민의 대외인식은 많은 공통점이 있다. 두 나라 국민은 국제 테러리즘과 핵 확산을 중요한 안보 위협 요인으로 꼽았다. 또 대다수 한국인은 북한이 한국을 침략한다면 미국이 군사적으로 지원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많은 미국인도 군사적 지원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뚜렷한 차이점들도 발견됐다. 인식의 격차가 가장 두드러진 쟁점은 북한 핵위협과 대응방식이다. 우선 한국인들에 비해 미국인들은 북한 핵위협을 훨씬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또 한국인들은 북한 핵문제를 외교적 수단을 통해 해결할 것을 선호하는 반면 미국인들은 북한이 핵개발을 계속한다면 군사적 조치를 통해서라도 막아야 한다는 적극적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 한.미관계는 전환점에 서있다. 북핵 문제 대응 방식,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 등의 현안을 둘러싸고 양국 간에 의견 차가 나타나고 있다. 북핵 문제에서 중국의 영향력 강화라는 새로운 변수도 등장했다.

따라서 21세기에 발전적 한.미동맹을 지속하기 위해 양국이 공유하고 있는 정치.경제.군사적 이익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게 됐고 폭넓은 수준에서 상호 이해와 협력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 CCFR(www.ccfr.org)은=미국의 비영리 전문 연구기관으로 1974년부터 2~4년 단위로 미국인의 대외인식을 조사, 분석해 왔다. 일반인과 여론 주도층으로 나눠 축적한 자료와 노하우로 미국인의 의식 변화를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기관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부의 대외정책 수립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리=정원칠 EAI 부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