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일본 '애국심 교육'

  • 2006-12-20
  • 이숙종 (조선일보)

일본에서 교육의 헌법이라 불리는 "교육기본법"이 지난 15일 야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국회에서 개정되었다. 1947년 제정된 이후 59년 만에 처음 개정된 이 법은 아베(安倍) 총리가 역점을 두는 교육개혁의 첫 신호탄이다. 아베 총리는 교육개혁을 원하는 여론을 등에 업고 수상 직속으로 "교육재생회의"를 설치, 교육의 질 저하를 초래한 ‘유토리 교육(종합인성교육)’의 개선과 청소년의 연이은 자살을 불러온 "이지메(집단 따돌리기)" 문제 해결에 주력하고 있다. 학력 저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전국 학력조사 실시, 초등학교에 방과 후 어린이교실 운영, 이지메 대책 등을 위해 내년도 교육예산을 4% 증액한다고 한다.

 

교육 내용을 충실히 하고 안전한 교육을 한다는 데 반대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개정 교육기본법에 새롭게 포함된 소위 "애국심 교육"에 있다. 원래 교육기본법의 전문은 교육이 개인의 존엄성을 중시한다는 자유민주주의적 교육 이념만을 담고 있었다. 이는 과거 메이지(明治)시대의 국가주의 교육 이념이 천황제 이데올로기나 군국주의와 같은 전체주의 사고를 길러내고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던 데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었다. "개인의 존엄"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의 보루라는 것을 역사적 체험을 통해 깨달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의 전문에 ‘공공의 정신’을 중시하고,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며, 우리나라와 향토를 사랑하는 태도를 육성한다"는 교육 이념을 새롭게 추가한 것이다.

 

공공의 정신은 일본 젊은이들의 지나친 개인주의로 인해 일하기를 기피하는 현상이 확산됨에 따라 추가된 교육 이념이다. 애국심 교육은 보수주의자들이 15년간의 장기불황으로 무너진 국가적 자존심을 다시 세우기 위해 주장해 오던 것이다. 아베 총리는 그의 "아름다운 나라, 일본"이라는 주장에서 보듯이 국가에 대한 긍지를 중시하는 정치가이다. 일본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긍심 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아베 내각은 교육개혁의 양 날개를 교육경쟁력 강화와 함께 애국심 교육으로 잡은 것이다. 애국심은 개인적 차원에서는 소중한 덕목이지만 이를 국가가 앞장서서 육성하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애국심은 불량배의 마지막 피난처"라는 말이 있듯이 애국심만큼 오용되고 악용되기 쉬운 것도 없다. 이러한 이유로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나서서 애국심 교육을 하겠다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교육기본법 개정안이 방위청을 성(省)으로 승격하는 법안과 같은 날 처리되었다는 사실이 시사하듯이 애국심 교육은 군사 대국화하는 "강한 일본"을 정신적으로 뒷받침해주기 위한 것이다.

 

일본의 일선 학교에서는 "애국적 태도"를 어떻게 평가할지 고민거리가 될 것이다. 아이 통지표에 아무개는 매우 애국적이라든지 애국적이지 못하다고 적어온다면 이런 난센스는 없을 것이다. 일본 내 시민단체나 지식인들은 물론 한국이 염려하는 대목은 애국심 교육이 일본의 과거 제국주의 역사를 미화하거나 국수주의적 의식화로 번지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일본의 지인(知人) 몇명에게 교육기본법 개정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교육개혁은 필요한데 웬 애국심 하며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이가 많았다.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과 숙의 과정 없이 개정된 교육기본법으로 애국심 교육을 밀어붙인다면 애국적이지 않아 보일까봐 다물었던 많은 입이 열릴 것이다. 그것도 성난 입으로 말이다.

 

이숙종 EAI 국제여론조사TF 팀장 · 성균관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