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아메리카제국의 딜레마

  • 2003-01-27
  • 이홍구 (중앙일보)

새해가 시작되면서 이라크의 전운은 더욱 짙어지며 한반도의 긴장도 날로 고조되고 있다. 이렇듯 요동치는 국제정치의 한복판에는 물론 미국이 있다.

 

그 미국이란 나라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전개되는 이념논쟁이나 정책결정은 혼란을 가중시키고 사태를 악화시키는데 기여할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미국은 과연 어떤 나라인가?


세계 통치하려는 유일大國

 

뉴욕 타임스가 금년 첫 일요판에 실은 하버드대학 마이클 이그내티에프 교수의 글은 "아메리카 제국"(Amarecan Empire)이란 표제가 눈길을 끌 뿐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미국의 현주소를 예리하게 짚어보고 있어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신대륙에서 공화국으로 출발한 미국은 스스로 제국이 되기를 원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워싱턴을 비롯한 초기 대통령들은 미국이 세계 전반의 과제를 좌지우지하게 되면 스스로가 지닌 공화국의 정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한 미국이 20세기 역사의 파도 속에서 두 번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승리로 마감하면서 선택의 여지 없이 21세기형 제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오늘날 정치.경제.군사.문화 등 모든 면에서 유일 초강대국인 미국의 압도적 영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미국은 제국주의 시대가 물려준 유산을 정리해야 할 유일한 나라이며 새로운 국제질서의 형성과정에서도 최대 주주임에 틀림없다.

 

한마디로 미국은 제국이 된 것이다. 자의건 타의건 간에 일단 제국이 되고 나면 그에 걸맞은 영화도 있지만 위험도 뒤따르게 된다.

 

그러기에 오늘의 미국인들은, 특히 미국의 지도자들은 바로 미국이 독립한 1776년에 출간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의 쇠퇴와 멸망"을 새삼 정독할 필요가 있다고 이그내티에프는 강조한다. 과연 무엇이 로마제국이 남긴 교훈인가?

 

제국의 쇠퇴는 지도층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선 제국의 영향권을 실력 이상으로 과도하게 확장하는 위험은 일찍이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경고한 바 있다.

 

이에 못지 않은 위험은 멀리 떨어진 주변국가들 사정엔 어두우면서도 로마가 곧 세계라는 엉뚱한 등식을 믿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세계 제일의 강국이란 힘이 곧 세계를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이란 환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로마제국이 남긴 이러한 교훈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20세기의 제국이 얼마나 더 어려운 상대와 맞부딪쳤는가를 인식해야 한다.

첫째로 꼽을 상대는 외부의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자주를 추구하는 민족주의의 세찬 물결이다. 둘째로 조심할 것은 모든 후진국 사람들이 우리를 모방하고 싶어한다고 믿는 제국지도자들의 자기 도취증이다.

 

이렇듯 위험한 덫을 조심스럽게 피해가면서도 21세기의 초강대국, 즉 "아메리카 제국"이 처한 피할 수 없는 딜레마가 있다.

 

독재와 인권유린을 자행하는 정권이라도 평화유지를 위하여 방치하는 것이나, 그 정권 밑에서 신음하는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찾아준다는 명분으로 무력 개입하는 것은 그 어느 쪽도 간단히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데에 제국이 처한 딜레마가 있다.


군사력만큼 외교력도 발휘를

 

이미 제국적 위치에 서 있는 미국이 앞날의 성공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한계를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이그내티에프는 처방하고 있다. 군사력에만 의존하기보다는 외교력을 발휘하는데 치중해야 한다.

 

언젠가는 강대국의 반열에 함께 서게 될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많은 나라들의 위상을 존중해야 한다. 그리하여 국제적 협조체제와 동맹관계를 강화할 때만 아메리카공화국은 로마제국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우방이며 동맹국인 한국으로서는 미국이 스스로의 역사적 위치에 대한 자기성찰의 과정을 밟는 것을 환영한다. 한편,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제국적 위치에 선 미국과의 관계를 각자의 국가이익에 맞도록 조율하는데 경쟁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우리는 지혜로운 민족임을 자처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메리카 제국"과의 동맹관계를 소중히 지켜가는 동시에 자유와 인권을 지향하는 미 공화국과의 호혜평등 관계를 내실화하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