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테러정치

  • 2006-05-25
  • 강원택 (중앙일보)

지난 토요일 일어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테러는 대단히 충격적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자세한 경위는 수사 과정을 통해 밝혀지겠지만 그 동기가 무엇이든 이번 사건은 요즈음 우리 사회가 그리 건강하지 못하다는 징후를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은, 물론 테러와 비견할 정도는 아니지만,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우려할 만한 사회적 흐름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예컨대 황우석 교수 사건에서 나타난 일부 지지자의 황 교수에 대한 맹목적 믿음과 추종에서 볼 수 있듯이 문제 해결 과정에서 과학도, 이성도, 합리적 토론도 중요하지 않았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을 둘러싼 대립에서도 설득.양보와 타협은 오간 데 없고 극단적 형태의 물리적 충돌과 대결만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최근 나타나는 사회적 갈등에서는 양쪽 모두 자기의 주장만이 옳고 상대방의 견해는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여기는 독선적 인식이 팽배해 있다. 갈등의 당사자가 그 사건을 "선과 악"의 싸움으로 간주하게 된다면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굴복시키는 것 이외에 그 갈등을 해결할 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쉽게 굴복하려 하지 않는다면 내가 믿는 "선"을 위해 폭력과 같은 일탈적 행위도 서슴지 않게 되는 것이다.

 

왜 이런 우려할 만한 풍조가 생겨났을까? 서구에서 나타나는 정치적 일탈행위는 기존 정치권에서 수용하지 못하는 뿌리 깊은 정치적 소외감이 형성돼 있거나, 합의와 타협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정파 간 다툼의 결과로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서구 일부 국가에서 나타나는 소수 인종이나 이민자들에 의한 테러나 폭동은 전자의 사례고, 오늘날 팔레스타인이나 이라크, 과거 북아일랜드에서 나타난 테러행위는 후자의 경우다. 두 가지 모두 정치체제가 그 내부의 정치적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고 조정해 내지 못함으로써 생겨난 결과다. 결국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폭력이나 테러와 같은 정치적 일탈행위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테러사건을 포함해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우려할 만한 징후 역시 정치권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 같다. 정당이 사회적으로 행하는 주요 역할은 사회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견해를 대표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함으로써 사회적 통합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의 정당이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정당 정치는 관용.통합.조정보다 배제.독선.증오를 생산해 왔다. 제도권 내 "동업자"라 할 수 있는 정치인끼리도 기본적 신뢰감이나 상호 존중의 마음을 보이지 못했고 심지어 서로의 정당성조차 부정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이처럼 배척과 증오가 정치권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면서 주요 이슈마다 사회가 갈라서고 서로가 서로에게 손가락질하는 세상이 돼 버렸다. 자기들과 다른 견해는 용납하지 않고 욕설과 인신공격으로 몰아세워 내쫓아 버리는 독선의 정치는 인터넷 공간상에서는 더욱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정당들은 사회적 갈등 해결의 중심에 서지 못하고 인터넷이나 일부 당 지지자의 편향되고 과격한 의견에 부화뇌동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걸러 내기보다 이를 더욱 심화시킨 경향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건은 독선과 증오의 정치 문화라는 최근 우리 사회의 병환이 터져 나온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이런 야만적 행위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관용과 공존, 대화와 설득의 정치문화가 독선과 증오의 정치를 대신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결국 정치권의 깊은 자성과 책임의식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다. 박 대표의 빠른 쾌유를 기원한다.

 

강원택 EAI 시민정치패널 위원장 · 숭실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