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국회 04학번'이 성공하려면

  • 2004-05-17
  • 모종린 (조선일보)

17대 국회의 최대 관전 포인트는 2004년 총선을 통해 처음으로 국회에 진출한 ‘04학번’의 성패이다.

총 188명으로 전체 의원의 63%를 차지할 04학번의 앞길이 순탄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이들의 첫 번째 관문은 재선 이상 의원들과의 관계 설정이다.

04학번 초선 의원들이 자신들의 정책적·도덕적 차별성을 내세운 나머지 선배 의원들과 배타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면 국회와 소속 정당 내에서 지지 기반을 상실하고 고립될 수 있다.

04학번의 두 번째 관문은 이상주의의 충동이다. 초선그룹의 주류는 변호사·교수 등 정치현장 경험이 부족한 전문직 그룹과 노동계·학생운동권·재야에서 투쟁 위주의 정치활동을 해온 운동권 그룹이다.

한쪽은 현실정치 감각이 무디고, 다른 한쪽은 지나치게 발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회 일각에서 17대 국회가 학문적 이상주의와 운동권적 이상주의에 휩싸여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을 과잉생산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04학번이 이 두 관문의 통과에 실패하여 일방적이고 원리주의적인 노선을 고집한다면 미국 공화당 94학번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1994년 미국 공화당은 ‘미국과의 계약’이라는 성공적인 우파 개혁운동으로 84명의 정치 신인을 당선시키고 50여년 만에 처음으로 하원 다수당 지위를 탈환했다.

하지만 선거혁명에서 승리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공화당 초선 의원들이 하원 진출 후에도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투쟁적 노선을 고수했고 이는 결국 공화당이 96년 대선에서 패배하게 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미국 공화당 94학번의 실패는 국회의원이 열정, 도덕성, 선명한 이념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와 더불어 포용, 신뢰, 타협 등의 민주적 가치에 따라 국회의원직을 수행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17대 국회에서 운동권 출신 의원들은 제도권 밖에서 사용한 비타협적인 투쟁방법을 지양해야 하고, 전문직 출신 의원들도 학문적·논리적 순수성만을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한국적 상황에서 초선 의원의 성공조건으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개인의 전문성이다.

의원 개인의 정책 능력을 높이기 위해 현재 각 당은 정책실명제, 정책개발예산 증액, 정책보좌진 증원 등 다양한 방안을 고안 중이다. 국회 전체 차원에서 보면 상임위원회제도의 운영 개선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특히 상임위의 권한 강화와 소수 정예화가 긴요하다. 입법 과정에서 위원회에 일정 수준의 배타적 권한을 부여해주지 않으면 위원회와 소속 의원들이 위원회 심의 과정에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동기가 충분치 않게 된다.

또 위원 수의 제한을 통해 상임위 배정에 어느 정도 희소성이 있어야 소속 의원이 상임위 활동에 전념할 동기가 생기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 명의 국회의원을 두 개의 상임위원회에 배정하는 복수 상임위원회 겸직제도의 도입은 재고해야 한다.

초선이 절대 다수인 17대 국회에서 의원들에게 과도한 의정활동 부담을 주어 특정 분야에 대한 의원 전문성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의원의 상임위 업무가 배가됨에 따른 예산 증가는 저비용 정치 추세에도 역행한다. 다양한 의견이 상임위 입법 과정에 반영되도록 하는 문제는 청문회제도 개선과 각 당의 정책위원회 기능 강화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처럼 17대 국회에서 04학번의 성공은 보장된 것이 아니다.

의욕만 내세우지 말고 민주적 덕목과 전문성 확보를 통해 내실 있는 의정활동을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 04학번 성공의 지름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