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미래 성장을 위한 해법 찾기

  • 2004-03-26
  • 이근 (중앙일보)
한국의 일인당 소득이 사교육비 지출 증가 덕에 1만2000달러를 넘어섰다고 한다. 또한 근로자 평균임금이 일인당 국민 소득의 2배로서 미국의 경우 0.9배, 일본의 경우 1.1배보다 월등히 높은 덕에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일인당 임금은 3만3000달러가 넘어 미국보다 높아졌다고 한다. 경제성장의 목표가 잘살아 보자는 것이고 높은 임금을 주면서도 성장을 유지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이므로 반길 만한 일이지만 관건은 이런 상태가 얼마나 유지 가능한가에 달려 있다.
 
현재의 흥청망청이 미래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는 것이라면 현 세대는 미래세대에 미안함을 느껴야 한다. 최근의 청년실업 증대는 이런 생각이 기우가 아님을 보여주는 한 예이고 또 하나의 증거는 투자의 정체다. 즉 투자증대로 이어지지 않는 수출과 일자리로 이어지지 않는 성장이 미래를 불안하게 한다.
 
문제의 원인은 간단하다. 한강의 기적은 교육에 대한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제 시대에 못 받았던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의 대중화에 의한 지식의 확산이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었다. 그런데 학습과 지식에 의해 성장해 온 이 한국이, 막상 지식이 가장 중요시되는 지식기반 경제로 패러다임이 바뀐 이 시점에 바로 이 지식 때문에 성장을 멈추고 있다. 비극이요 아이러니다.
 
경제대국 미국의 힘의 원천은 딴 것은 다 놓쳐도 가장 중요한 두 요소, 즉 국방산업과 교육산업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결코 놓치지 않는 데 있다. 그런데 한국의 대학생 한명에 대한 투자비는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그 정도의 투자를 청년들에게 해 놓고 이미 글로벌화된 노동시장에서 우리 청년들이 취직이 잘 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염치없는 일이다. 현재 한국 대학교육이 길러내는 정도에 맞는 일자리는 중국이나 인도로 옮겨가는 반면 높은 숙련도와 전문지식을 요구하면서 고임금을 주는 일자리에 맞는 지식노동자는 해외에서만 생산되고 있다. 그러니 다들 유학가려 하거나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은 선택인 의사가 되거나 고시를 치려고 야단이다. 과거의 고성장이 교육의 양적 성장에 의존했다면 이제 미래의 성장을 위해서는 교육의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대기업 대 중소기업으로 상징되는 경제의 양극화도 결국 글로벌 지식생산 네트워크에 지속적 참여나 접근을 확보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양극화다. 국제 특허 데이터가 보여주듯 생산되는 신지식의 양은 폭증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역량만으로 이를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나마 중소기업 중에서도 대기업과 협력관계에 있는 기업의 상황이 낫고 중국에 갈 때도 대기업을 따라간 곳은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중국에 진출한 유형으로 꼽힌다. 많은 중소기업의 경우 궁극적 활로는 국내외의 선도기업들로 구성된 네트워크에 참여해 계속 신지식을 수혈 받고 학습하는 채널을 확보하는 것이다. 물론 중소기업을 소모품적 하청자가 아닌 공생관계로 인식하는 대기업의 인식전환도 절실하다.
 
중국산 휴대전화 조립 업체들에 핵심부품과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로열티 중심 비즈니스모델을 개척한 한 중소업체의 성공은 이 회사에 계속 신지식을 공급해주는 여러 외국과의 제휴가 있기 때문이다 즉, 미국-한국-중국이라는 3층차의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가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이 회사 직원들의 주된 일은 중국에 나가서 중국산 휴대전화들의 결함을 발견해 AS 등 기술 지원을 해주면서 시장을 파악하고 다음 제품을 개발해 주는 것이다.
 
세계화가 정부 정책에 주는 시사는 특정 산업 육성의 과실이 국내에 머무른다는 보장도 없고 평생직장도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은 국민에게 최상의 평생교육을 시켜 유연하고 글로벌한 노동시장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좋은 직장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는 것, 즉 전 국민의 "고용가능성"을 높이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