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국정쇄신 외엔

  • 2003-10-20
  • 이내영 (경향신문)

노무현 대통령이 재신임 국민투표를 전격 제안하면서 정치권이 충격과 혼란 속에 요동치고 있다. 헌정사상 전례가 없고 헌법적 근거도 불분명한 재신임투표를 출범 8개월의 정부가 제안하는 이유를 국민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다만 국정공백과 정치혼란이 걱정스럽다. 노대통령은 측근 비리 의혹으로 인한 도덕적 권위의 상실과 축적된 국민의 불신 등을 재신임을 제안하는 이유로 들고 있지만, 재신임 투표로 이러한 문제가 해결될지는 의문이다. 지지도 하락, 국정표류 등으로 인해 생긴 국정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승부수라는 것이 현실적 분석일 것이다.
  
재신임투표땐 국론분열 심각
 
어쨌든 노대통령의 승부수는 일단은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분열돼 왔던 노대통령 지지자들이 결집되고 있으며 여론조사 결과도 재신임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청와대와 통합신당은 고무된 인상이고,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대통령이 거듭 투표 강행의지를 밝히고 있는 이상, 정치권은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에 절차와 시기를 합의해야 한다. 투표를 실시할 수 있다면 그나마 국정공백과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야당이 국민투표에 대해 반대 혹은 조건부 실시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표의 실시여부, 방법과 시기 등에 관해 정치권이 합의에 도달할지는 불투명하다.
 
또 재신임 국민투표의 위헌논란도 있기 때문에, 이 문제가 정리되어야 국민투표가 가능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구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시간도 걸리고 결과도 예측할 수 없다. 나아가 재신임 투표가 진행되면 국정공백과 국론분열이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이미 노사모 등이 결집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세대, 이념, 지역별로 친노, 반노 진영으로 나뉘는 소모적인 선거정국이 다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어려운 경제가 멍들고, 이라크 파병동의, 북한 핵문제 등 국정 현안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을 것이 우려된다.
 
이같은 상황을 모두 감안할 때 노대통령은 이제 재신임투표에 연연하지 말고 과감한 국정쇄신을 통해서 통치위기를 극복하겠다는 의지와 결단을 보여야 한다. 물론 노대통령의 입장에서는 투표를 철회할 경우 그나마 미약한 권위와 신뢰가 상실돼 남은 4년의 국정운영이 어렵다고 판단, 어떻게든 강행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거대 야당이 반대하면 재신임투표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이를 무리하게 강행할 때 극단적 대치정국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설령 재신임에 성공해도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의 주도권을 장악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그동안의 국정혼란과 추락한 지지도의 원인을 찾아내 국정쇄신을 단행하고 과감한 정치개혁을 추진, 추락한 지지를 회복하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 사실 그간 국정혼란이 야당의 발목잡기에도 원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대통령의 말실수, 편파적 인사, 참모들의 능력부족, 측근들의 비리의혹 등 자업자득의 측면이 많다. 우선 대통령 측근의 비리와 SK 비자금에 대한 검찰의 공정한 수사를 통해 비리를 밝히고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 또 내각과 참모진들을 대폭 교체하고 정치자금법 등 정치개혁을 추진한다면 국민의 지지도가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고 본다.
  
국정위기 돌파 "盧의 결단" 필요
 
재신임을 둘러싼 대치정국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야당의 전향적 태도와 협조도 필수적이다. 사실 노대통령이 재신임을 통한 정국돌파라는 극약처방을 택한 것도 집권초기부터 대통령 대접은 하지 않고 흔들기만 하는 야당에 대한 적대감이 반영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노대통령이 재신임 투표를 철회할 수 있는 명분을 주기 위해서도, 또한 여야간의 증오와 오기의 정치를 끝내기 위해서라도 야당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고 국정현안에 대해 협조하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재신임투표에 대한 위헌논란, 국론분열, 그리고 정치권의 합의가 어렵다는 현실을 고려하면, 지금은 노무현 정부가 어렵겠지만 재신임 투표를 철회하고 과감한 국정쇄신을 통해 국정위기를 돌파하는 정치적 결단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