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한국 대통령보다 미국이 영향력 커

  • 2004-09-30
  • 김성한기자 (중앙일보)

대미 관계는…가장 협력할 나라, 미국 53% 중국 24%

 

한.미관계가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3개국 대외 인식조사의 일환으로 한국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는 한.미관계가 2002년 말~2003년 초 최악의 상태를 벗어나 일단 진정국면에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향후 한.미관계가 순항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주요 사안에 대해 응답자들이 "이중적 심리"를 표출함으로써 한.미관계가 "발전"과 "퇴보"의 중대한 갈림길에 놓여 있음도 보여준다.

시청 앞 촛불시위, 이라크 추가 파병을 둘러싼 국론 분열에 가까운 논쟁 등을 거치면서 우리 국민은 유례를 찾기 힘든 압축적인 학습과정을 경험했다. 그 결과 한국 외교정책에 대해 한국 대통령(10점 만점에 6.3점).국회(5.8점).여론(5.7점).시민단체(5.3점).북한(4.8점)보다 미국(6.6점)이 더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도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응답 비율이 51%로, 즉각 혹은 단계적으로 철수해야 한다고 보는 비율(49%)과 엇비슷한 수준을 보였다.

여론조사는 또 북한의 위협을 인식하는 데 한국과 미국 국민의 격차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용납할 수 없다는 우리 응답자의 비율은 39%였다. 반면 핵 물질을 북한이 제3국이나 테러리스트에게 수출했을 경우 미국의 선제공격이 가능하다는 비율은 15%였다. 전자가 후자의 두배 이상이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반테러.반확산의 관점에서 북핵 문제를 다루어 오고 있으므로 북핵이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들어가는 것은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저지해야 한다는 심리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핵물질이 알카에다 수중에 들어갈 경우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국도 공격 대상이 되는 상황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는 게 미국 측 인식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미국에 의한 대북 선제공격이 한반도에서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을 더 우려한다. 우리 국민의 경우 북한이 한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하는 비율(41%)보다 이득이 된다고 생각하는 비율(49%)이 높게 나타난 것도 대북 위협 인식에서 한.미 양국 간에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위협 인식의 격차는 한.미 동맹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므로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쌍방 간에 요구된다.

설문 응답자들은 한.미관계에 대한 이중적 인식도 드러냈다. 이런 이중성은 북한의 위협도에 대해 미국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미 동맹의 미래에 대해선 상당히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서 두드러진다. 주변 4강과 유럽연합(EU) 중에서 한국이 가장 협력해야 할 나라로 미국(53%)을 꼽았고, 중국은 24%에 머물렀다. 한.미 동맹이 한반도 통일 이후에도 지속돼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91%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데 한정돼야 한다는 견해(40%)보다 동북아의 지역 안정자(regional stabilizer) 역할로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60%)도 많았다. 여중생 사망 사건의 여파로 2002년 말 한.미관계가 악화일로에 있을 때 이러한 답변은 상상하기조차 힘들었을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한.미 양국 간 인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미 동맹의 유용성을 우리 국민이 점차 인정해 가고 있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한.미 동맹이 한반도 전쟁 억지뿐 아니라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작동하는 메커니즘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양국 정부가 한.미관계의 청사진을 국민에게 제시해 주길 기대한다.


김성한 교수 외교안보연구원

◆ 조사 참여 기관
한 국:동아시아연구원(EAI)
미 국:시카고외교협회(CCFR)
멕시코:경제연구교육센터(CIDE). 멕시코외교협회(COMEXI)


◆ 한국 측 조사 참여자
동아시아연구원=김병국(고려대),이내영(고려대), 김태현(중앙대), 김성한(외교안보연구원), 남궁곤(이화여대)교수, 정원칠 부소장
중앙일보=신창운 여론조사 전문기자,전영기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