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정치를 바꾸자] 정치개혁 안하면 국가발전 어렵다

  • 2003-11-17
  • 한재현기자 (조선일보)

비례대표 대폭 늘리면 변화 나타날 것

 

동아시아연구원(EAI·원장 김병국 고려대 교수) 정치개혁연구팀은 지난 10일~14일자 본지에 연재된 ‘정치를 바꾸자, 1부 권력투쟁에서 국가경영으로’를 결산하는 토론을 가졌다. 토론에는 연구팀 18명 중 장훈(張勳) 중앙대 교수, 이내영(李來榮) 고려대 교수, 김용호(金容浩) 인하대 교수, 강원택(康元澤) 숭실대 교수 등 네 명이 참석했다. 국회 개혁과 관련된 ‘정치를 바꾸자 2부’는 내년 4월 총선을 전후해 게재할 예정이다.


◆ 왜 지금 정치개혁인가

 

장훈=작년 대선에서 내년 총선까지가 새로운 정치체제로의 전환점이다. 1987년 대선에서 88년 총선을 거치며 3김 체제가 시작된 것과 마찬가지다. 내년 총선에서 누가 당선되느냐, 어느 당이 과반을 얻느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세력들이, 어떤 시스템을 통해 정치권에 유입되느냐이다. 새로운 정치세력이 구 정치세력을 대체해야 하는 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선거· 정당·국회제도가 정비돼야 한다.

 

강원택=SK 비자금 문제가 불거지면서 정치를 이대로 놔두고는 정상적인 국가발전이 어렵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강화되고 있다. 정치체제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국가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내영=기존 정치권이 정치가 해줘야 할 기능을 전혀 못하고 있다. 권력투쟁만 하고 있을 뿐 국가경영에 대한 의지도, 능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현재 구조와 구성원으로는 시대적 문제, 민생 문제를 풀 수 없다. 국민통합 능력도 없고, 개별집단 이익에 앞서 국가 전체 이익을 살피는 공민 의식도 발견할 수 없다.

 

김용호=각종 이익단체, 시민단체, 네티즌들이 정치를 공격하는 현 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 대의정치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포퓰리즘 정치로 흐를 우려가 있다.

 

◆ 개혁의 원칙과 방향

 

이내영=정치개혁에는 여러 가지 목표가 있는데 때로는 상충되기도 한다. 그래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우리 연구팀은 정치의 정책능력과 생산성을 제고하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뒀다.

 

김용호=정치개혁은 궁극적으로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정치개혁이 제대로 되면 국민 일상생활, 민생에 긍정적인 변화가 온다.

 

장훈=독일에서는 2차 대전 직후 대학교수 들이 대거 의회로 갔다. 당시 독일의회는 주로 밤에 열렸는데 교수들이 낮에 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정책세력이 대거 독일 의회에 유입된 것이 독일의 전후 도약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는 분석이 있다.

 

강원택= 정치에 대한 신뢰 회복도 중요한 방향이다. 현재와 같이 정치가 불신받고 있는 상황에선 정치적 리더십이 설 수 없다. 그래서 선거를 포함한 정치과정의 투명성·개방성·민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 구체적인 방안

 

김용호=지금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무능과 불신, 두 가지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의 정치개혁이어야 한다. 무능 문제는 정치주체를 바꿔야 해결된다. 구 정치세력 대신 정책세력이 정치권에 유입되려면 비례대표제를 대폭 확대하고, 정책중심의 정당구조로 바꿔야 한다.

 

정치 불신을 해소하려면 정치과정을 깨끗이 해야 한다. 선거운동 자체를 공영화하고, 정치자금은 단일계좌로만 받아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제안이다. 선관위에 등록된 계좌를 통해 받지 않은 돈이면 대가성 있는 뇌물로 간주해야 한다.

 

우선순위면에서 제도개혁 중 가장 효과가 크고 빨리 나타날 수 있는 것은 선거제도 개혁이다. 내년 1인2표제가 도입되는 것을 계기로 소선거구제 위주의 현 선거제도를 소 선거구 의석반, 비례대표 의석 반으로 만들면 당장 가시적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장훈=우리 연구팀의 제안은 ‘정책세력의 육성’이라는 큰 목표의식을 놓고 분야별로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찾았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그동안 정치개혁에 대한 논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이렇게 한 가지 목표와 방향에 초점을 맞춰 일관성을 유지한 방안은 드물 것이다.

 

이내영=열린우리당, 민주당 등에서 지역주의 완화를 명분삼아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하는 데 동의할 수 없다. 중대선거구제는 당내 파벌을 조장하고, 기성정치인에 훨씬 유리하며 선거자금도 더 많이 든다. 지역주의를 완화하자면 비례대표제를 늘려야 한다. 중대선거구 하면서 비례대표제 같이하자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나라당이 선거구 조정이 어렵다는 당내 사정 때문에 지역구를 늘리자고 나오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없다.

 

강원택=중대선거구제는 무엇보다 새로운 정책세력 등장을 어렵게 만든다. 중대선거구제가 일부 지역주의 완화에 기여한다고 해서 더 큰 가치와 방향을 훼손할 수 없다.

 

또 SK비자금 사건 이후 각 정당이 입을 모아 선거공영제를 주장하고 있는 것 역시 동의하기 힘들다. 정치자금의 투명화라는 본질적인 해법은 제시하지 않은 채, 나라에서 돈을 다 대라는 것 아닌가.

 

◆ 정치개혁이 성공하려면

 

장훈=정치개혁은 자기모순적 목표다. 정치인이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하는 조치를 입법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뿐 아니라 사회 분야의 다양한 의견을 가진 전문가그룹·언론·시민사회단체가 함께 과정에 참여해 정치권을 압박해야 한다.

 

강원택=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가지 정치개혁 조치 중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에 강조점을 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용호=정치개혁을 일시적 대증요법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제도개선만 한다고 정치개혁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주체가 교체돼야 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의식과 관행의 변화다.

 

이내영=총선 전에 관철해야 할 것과 장기적으로 해나갈 것으로 과제를 나눠 접근해야 한다. 당장은 선거제도 개편이 시급하며 선거운동 방식, 정치자금과 관련한 개혁에 먼저 손을 대야 할 것이다. 정당제도는 총선 후에 좀더 시간을 두고 고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연구원 정치개혁연구팀(위원장 박세일 서울대 교수)은 이번 정치개혁과제 연구를 위해 지난 4월 4일부터 5월 31일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14명의 외부 전문가를 초청, 강연을 듣고 관련토론을 가졌다. 다음은 초청강사 명단이다.

박관용(국회의장)
남재희(전 노동부 장관)
임좌순(중앙선관위 사무총장)
김정국(전 재정경제원 예산실장)
추병직(전 건설교통부 차관)
김문수(한나라당 국회의원)
조순형(민주당 국회의원)
이해찬(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이강래(열린우리당 국회의원)
허화평(전 국회의원)
정호영(국회도서관장)
양상훈(조선일보 논설위원)
제프 홀란드(미 의회예산국·CBO 예산분석국장)
경윤호(한나라당 남경필 의원 보좌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