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9월 20일 실시된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연임에 성공했습니다. 이로써 이변이 없는 한 아베 총리는 2021년 9월까지 총리직을 이어나갈 전망입니다. 2019년 11월이 되면, 아베 총리는 일본 역대 최장수 총리라는 기록까지 세우게 됩니다. 이에 EAI는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 요인을 분석하고 향후 일본과 한반도의 미래를 전망해 보고자, “아베 신조 재집권 후 일본과 한반도”라는 특별 논평 시리즈를 기획하였습니다. 이번 논평은 그 시리즈의 첫 단계로, 이정환 서울대 교수와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가 집필진으로 참여한 가운데 아베의 정치적 성공을 한일 양국의 시각에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두 저자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재집권 성공은 야당의 분열과 일본의 경기호조, 아베 정권의 외교 성과, 자민당 내 의원 행동양상 및 강력한 지도자의 처벌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입니다. 다만, 여러 국내외 변수로 인해 아베 총리가 재임기간인 2021년까지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두 저자는 평가합니다. 

 

 

아베 자민당의 장기 집권 요인
이정환 서울대 교수

 

들어가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018년 9월 20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간사장을 누르고 3선에 성공하였다. 2021년 9월까지 예정되어 있는 3년 간의 총재 임기는 2017년 10월의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의 결과로 구성된 중의원이 해산 없이 4년 지속되었을 때의 시점과 일치하게 된다. 이번 총재선거에서 아베 총리의 승리는 ‘아베 1강’으로 상징되는 현재 일본정치의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총 810표 중 68.3%에 해당하는 553표를 얻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베 1강’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이번 총재선거에서 아베가 3연임에 도전할 수 있도록 당 규정을 개정한 2017년 3월 5일에 열린 자민당 당 대회가 오히려 ‘아베 1강’의 현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자민당은 2016년 10월에 당내기구인 당정치제도개혁실행본부에서 제언된 총재 임기에 관한 당규 개정을 최종 결정하였고, 그 안은 기존의 ‘연속 2기 6년’에서 ‘연속 3기 9년’으로 총재임기를 연장하는 것이었다. 2018년 9월 총재선거 결과는 2017년 3월의 당대회에서 이미 예견되어 있었던 것이다.

 

민주당 정권이 제공한 기회

아베를 총리로 세우지 않았더라도 2012년 12월 중의원 선거 이후 자민당 정권이 장기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은 폭넓게 수용되고 있었다. 우선 2009년부터 3년 간 집권한 민주당 정권은 비(非)자민 정치세력의 정치적 토대가 침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민주당 집권은 자민당 내의 정책 지향점에 있어서의 다양성을 왜소화시키고 보수적 사회개혁으로의 수렴화를 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사회부분에 있어서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실망은 민주당이 집권하는 데 주요 핵심 세력으로 작용했던 비자민 지지층의 정치 참여를 축소시켰다.

3년 간의 민주당 집권은 민주당의 분열과 2012년 중의원 선거에서의 괴멸적 패배로 마무리되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가져온 격차 문제를 중심으로 자민당과 정책 대립축을 구축하고 정권 확보에 성공한 민주당 정권은 소비세 인상과 TPP 가입 등의 현안을 중심으로 분열 과정을 경험했다. 자민당에 대한 반대를 제외하고 국가정체성 및 국내외 정책에 있어서 정책 일치감이 매우 낮았던 민주당은 당내 구성원을 묶어낼 정치적 지도력이 부재했다.

2012년 정권을 내준 후 민주당은 아베 자민당과의 정책 대립축을 구축하는 것은 고사하고, 제1야당으로서의 확고한 위상을 지켜내지도 못했다. 2012년 선거에서 의석 57석을 확보함으로써 54석을 얻은 일본유신회를 간신히 물리치고 제1야당의 자리를 지켜냈으나, 당시 비례 득표율에서는 일본유신회보다 300만 표나 적은 표를 획득했다. 이어 2014년 중의원 선거에서는 73석을 획득하였으나, 자민-공명 연립 여당의 326석에 비하면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결과였다. 가이에다 반리(海江田万里)의 뒤를 이어 2015년 1월 민주당 당대표에 취임한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는 2015년 유신의당의 일부와 연대하여 2016년 3월 민진당을 출범시켰다. 2016년 9월 민진당 틀 속에서 처음으로 치러진 대표선거를 통해 출범한 렌호(蓮舫) 대표 체제는 야당 간의 선거협력과 관련해 내부 갈등을 노정했다. 2017년에 들어서는 탈원전 정책노선을 당론으로 하려는 렌호 지도부의 노력은 민진당의 핵심 지지단체인 렌고와 불협화음을 야기했다. 탈원전으로 아베가 이끄는 자민당과 차별성을 두려던 민진당의 노력은 성공하지 못했다. 한편, 2017년 7월의 도쿄 도의회 선거에서 대패한 후 새로 구성된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 지도부는 2017년 가을 중의원이 해산되고 총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 도지사의 인기를 활용하기 위해 민진당을 해체하고 고이케 지사가 이끄는 희망의당으로 흡수합병되는 선택을 했다. 이에 반대하는 세력이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를 중심으로 입헌민주당을 창당하면서, 2017년 10월 중의원 선거에서 민진당은 희망의당과 입헌민주당으로 분열됐다. 보수 양당체제를 구축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반(反) 자민당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은 자민당에 대항하는 역량도, 분명한 입장도 보여주지 못했다.

이 같은 민주당의 분열은 자민당 내 다양한 정치노선이 수렴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2000년대 고이즈미 집권 하에서도 자민당 내에는 국가정체성, 야스쿠니 참배, 북한의 납치 문제 등을 중심으로 보수리버럴과 강경보수 사이의 대결 구도가 존재했다. 2000년대 강경보수를 대표하는 아베는 고이즈미 정권 하에서 자민당 간사장으로 재임하면서 당내에 기본이념위원회를 설치하고, 자민당의 국가관을 확립해 이를 헌법개정과 교육기본법 개정의 근간으로 삼고자 하였다. 그는 헌법개정과 교육기본법 개정을 중심으로 하는 ‘뿔푸리 보수’의 결집 노선을 추구했다. 아베의 ‘뿔푸리 보수’ 노선은 고이즈미의 신자유주의 개혁노선과는 달리 전통주의적 가치관에 기반을 둔 강경보수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하지만 아베의 강경보수 노선과는 달리, 호헌적 입장에서 헌법개정 문제를 대하고 대아시아 유화노선을 지키고자 하는 보수리버럴 세력은 아베의 강경보수 색채가 자민당 내의 정책노선을 장악하는 것을 제약하는 힘이 있었다. 이들은 2006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쟁점화하여 총리가 된 아베가 1년의 재임기간 동안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고 대중 유화노선을 택하게 된 배경이 된다. 또한 자민당이 2005년에 확정한 ‘신헌법 초안’(新憲法草案)에도 아베 등이 주장한 전통주의적 보수 색채가 담기지 않게 영향력을 발휘했다. 2000년대 후반 아베는 자민당 내 세력 분포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자민당 내 나 자신과 같은 진정한 보수가 약 20%, 가토 고이치(加藤紘一)와 같은 리버럴 인사가 12~3%, 나머지는 시류에 편승한다.” 하지만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대패는 자민당 내의 보수리버럴과 강경보수 간의 대립구도에 변화를 가져왔다. 자민당 내에서는 고이즈미가 주도한 신자유주의 개혁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더불어 창당정신으로 돌아가 진정한 보수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공유되었다. 야당이 된 후 총재로 선출된 다니카기 사다카즈(谷垣禎一)는 2000년대 중반에 보여주었던 리버럴한 색채에서 벗어나 보수정당으로서 자민당의 정체성 확립이라는 목표를 따랐다. 다니카기도 시류에 편승한 것이다. 야당 시절 자민당의 시류인 보수정당 정체성 확립에서 그 내용은 아베의 전통주의적 가치관으로 채워졌다. 아베로 대표되는 강경보수 세력은 보수정당 정체성 확립 목표에 대한 자민당 내 흐름 속에서 2005년 ‘신헌법 초안’에 담아내지 못한 내용들을 2012년 당론으로 확정된 ‘일본국헌법개정초안’(日本国憲法改正草案)에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이 초안을 최종적으로 승인한 당시 총재가 가토 고이치의 파벌 계승자로 보수리버럴 세력으로 간주되었던 다니카기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민주당 정권 하에서 야당으로 자리바꿈을 하면서 자민당 내부적으로는 강경보수적 색채가 보다 폭넓게 받아들여지게 된 것이다.

민주당 정권에 대한 실망 속에서 일본 사회의 선거참여에 대한 이탈은 자민당 정권이 유지되는 강력한 요인이 되었다. 2012년 이후 민주당 정권을 탄생시켰던 반(反)자민 성향의 유권자들이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 양상이 발견된 것이다. 2009, 2012, 2014, 2017년의 중의원 선거에서 꽤 일관되게 지속된 지표는 자민당의 비례대표 득표수이다. 자민당은 네 차례의 선거에서 각각 18,810,217표(2009년), 16,624,457표(2012년), 17,658,916표(2014년), 18,555,711표(2017년)를 획득하였다. 비례대표 득표수를 보면, 자민당이 승리한 2012년 이후 선거에서 자민당의 득표수가 증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지난 네 차례 중의원 선거 중 자민당이 유일하게 패배했던 2009년 선거에서 자민당이 얻은 비례대표 득표수가 가장 많았다. 2009년 선거 비례대표 투표에서 29,844,799표를 얻었던 민주당이 2012년에는 9,628,653표, 2014년에는 9,775,991표로 득표수가 크게 떨어지면서 중의원 비례대표 선거의 결과가 바뀌었다. 비례대표 총 득표수가 상징하는 것은 자민당이 대패와 대승을 거둠에 있어서 자민당에 대한 일본 사회 전체의 지지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자민당에 대한 안정적 투표 결과와는 달리 민주당에 기대를 품고 2009년 선거에 참여했던 많은 유권자들은 2012년 이후 정치참여를 외면하고 있는 추세임을 보여준다. 다만, 주목할 점은 2017년 중의원 선거에서 입헌민주당이 11,084,890표를 얻으면서 상대적으로 높은 비례대표 득표율을 보였고, 희망의당이 얻은 9,677,524표를 합치면 민진당에 뿌리를 두고 있는 두 정당의 득표수가 자민당보다 큰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민주당 정권 이후 선거에서 이탈했던 반자민 성향의 유권자 층이 정국의 여건에 따라 다시금 선거를 통한 정치 참여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베 정권의 경제 정책

일본 사회 내 반자민 성향의 힘이 정당 간 경쟁으로 구조화되지 않은 가운데, 아베 정권은 지난 6년여 동안 여론조사에서 매우 높은 수준의 내각지지율을 유지해 왔다. 2015년 안보법제 통과 및 2017년 모리토모 학원(森友学園)과 가케 학원(加計学園) 등 사학 스캔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일관되게 4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유지해 왔다. 아베 정권의 장기 집권은 높은 내각지지도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다. 자민당이 높은 내각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반자민 정치세력의 조직화는 성공하지 못한 반면, 자민당 내에서는 ‘아베 1강’에 도전하는 기류도 발견되지 않고 있다.

아베 정권이 높은 지지율을 누릴 수 있었던 배경으로 성장률과 고용률로 대표되는 경기여건의 개선을 들 수 있다. 아베 정권은 이를 아베노믹스의 결과로 홍보해 왔으며, 이번 총재선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의 핵심이었던 통화정책에서의 양적완화 추진이 경기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물론 장기불황 속에서 설비투자에 소극적이었던 일본 기업들의 투자 증진을 유도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하지만 아베노믹스의 추진과 높은 고용률이라는 지표 사이에는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약하다. 현재 일본의 높은 고용률은 인구감소와 고령화의 사회구조적 변화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책이 경제여건의 직접적인 요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경제여건의 호조는 집권세력에 대해 정치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낳는다.

이번 총재선거에서 이시바는 아베노믹스의 성과가 대도시, 대기업 위주로 과실이 돌아가고 지방과 중소기업으로 파급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총재선거 출마를 포기하기 전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조회장도 이러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은 자민당이 전후정치경제시스템 상에서 지속적으로 수행해 온 재분배 기능을 환기시키면서 아베노믹스의 낙수효과에서 배제된 사회부분의 지지를 확보해 내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아베의 경제정책은 고이즈미의 신자유주의적 개혁과는 달리 사회적 불만의 정치화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아베 정권은 아베노믹스의 제3의 화살로 구조개혁을 설정하고, 매년 일본재흥전략을 책정하고 있다. 하지만 아베 정권의 구조개혁 노선은 재분배 기능을 약화시켰던 고이즈미 정권과는 달리, 인구감소 시대의 지속가능성 제고에 맞춰져 있다. 비효율성을 제거하기 위한 구조개혁 노선은 정책적으로 구체화되지 않았으며, 경기개선의 낙수효과에서 배제될 수 있는 사회부분에 대한 보상 차원의 재정조치도 줄이지 않았다. 아베 정권 아래비효율성 제거 측면에서 가장 두드러졌던 농업개혁도 농협의 거버넌스 개혁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을 뿐, 농업 분야에 대한 재정조치는 축소되지 않았다. 현 정권 하에서 재정건전화 계획이 계속 연기되는 이유는 아베의 정책기조가 비효율적 사회부분에 대한 재정조치 축소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이번 총재선거에서 아베 총리가 ‘1년 안에 생애현역시대에 걸맞은 고용제도를 구축하고, 다음 2년 동안 의료,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 전반에 대한 개혁을 진행한다.’는 청사진을 발표한 것은 향후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이 가지는 정치적 함의를 전망할 때 중요한 참고 사항이 된다. 인구감소로 인한 일본 노동시장에서의 공급 부족은 지금까지 진행된 여성 노동 참여 제고 등의 노동개혁으로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노동시장 참여를 증진시킬 계획과 이와 결부된 사회보장 급부개시 연령 인상 등의 정책을 내포하고 있는 아베 총리의 발언은 수급자 입장(특히 65-70세 사이 고령자)에서는 개인 부담 증가 및 혜택 감소의 요인이 될 수 있다. 이 같이 예상되는 사회적 반발을 아베 정권이 정치적 관심을 피하면서 관리할 수 있을 지가 주목된다.

 

자민당 의원들의 행위패턴과 파벌 구도

이번 총재 선거에서 자민당 국회의원들은 압도적으로 아베를 지지했다. 아베 총리는 405표 중 81%에 해당되는 329표를 얻었다. 그럼에도 이시바가 의원들로부터 예상보다 20여 표가 많은 73표를 획득한 것이 오히려 뉴스거리가 되었다. 80%가 넘는 의원들의 지지가 예상보다 적었다는 것은 현재 자민당 내에서의 아베의 강력한 권력을 보여준다. 아베는 6년 전 2012년 9월에 있었던 자민당 총재선거 1차 투표에서 당원 득표에서 이시바에게 뒤쳐졌음에도 불구하고, 1차 투표와 2차 투표에서 의원들의 지지로 총재로 당선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 비해서도 현재 자민당 국회의원들의 아베에 대한 지지는 상당히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총리에 대한 의원들의 지지 성향은 현 선거제도 하에서 논리적으로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고, 아베의 장기집권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설명이 된다. 하지만 의원들의 행위패턴에 대한 이러한 설명은 최근 자민당 내에서 다시 강화되고 있는 파벌을 고려하면 자민당 내 아베 지지 양상을 이해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 자신의 당선에 이익이 되는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총리/총재를 지지하는 의원들의 합리적 행위패턴에 입각한 설명은 후원회, 파벌, 정무조사회 등 자민당이 1955년 체제 하에서 오랫동안 의존해 왔던 제도의 약화와 총리/총재의 위상 강화가 동시에 예상돼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총재선거에서 보여지듯이 아베 총리의 당내 의원들로부터의 집표 방식은 여러 파벌로부터의 지지 확보에 기초해 있다. 특히 이번 총재선거는 파벌 구도의 설명이 포함될 때 설득력이 높아진다. 아베 정권의 적극적 지지 그룹인 호소다파, 아소파, 니카이파에 소속된 의원 수가 전체 405명 중 198명으로 49%에 이른다. 여러 가지 구설과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아소 다로(麻生太郎)가 아베 정권 출범 후 지금까지 부총리·재무대신 직을 유지하면서 전후 최장기 재무대신의 기록을 세운 것은 현 아베 정권 내 아소의 중요성을 대변한다. 아베 정권 초기부터 아베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온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는 2016년부터 간사장으로 아베 정권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아베 1강’이라고 하지만 주요 파벌의 연합 차원이라는 점에서 파벌 구도 상 아베 정권의 안정성이 발견된다. 물론 이시바 파벌을 제외한 기타 파벌이 아베 지지로 귀결되는 과정에서는 의원들의 행위패턴의 설명이 부합된다. 특히나 다케시타파의 지도부와 참의원 멤버들이 파벌 차원에서 이시바를 지지하고자 했으나 중의원들의 반발로 무산된 점은 아베 정권에 대한 높은 내각 지지도가 의원들의 행위패턴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의원들의 합리적 행위패턴에 입각한 설명이 총리/총재의 인기가 자신들의 선거에 이익이 될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는데, 사실상 자민당 내 의원 행위패턴에서 이익 차원의 논리뿐만 아니라 처벌에 대한 불안감의 심리가 존재하고 있다. 자민당 내에는 지금도 고이즈미가 2005년 우정선거에서 보여준 반대의원들에 대한 처벌의 기억이 강력히 남아있다. 우정선거의 기억은 자민당 의원들에게 강력한 리더십에 도전하는 것을 저어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야당 시절에 자민당 구성원들의 정책선호가 전반적으로 보수화되었다고는 하지만, 현재 자민당 내의 아베에 대한 적극적 지지 양상에서 정책일치감은 핵심 요인이 아니다. 자민당 내 파벌의 재강화는 강력한 총리/총재로부터 처벌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물론 정책과정에서 아베 정권은 고이즈미 정권에 비해서는 당내 사전심사제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같은 관저주도의 정책이라 하더라도 당을 패싱하던 고이즈미와는 달리 당내 과정을 존중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정책과정에서 당에 적극적인 역할을 부여하고는 있으나, 총리 관저의 주도 하에 기본적인 어젠다 세팅이 이뤄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당내 자유로운 의견 피력도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나가며

아베가 향후 3년의 임기를 총리/총재로 끝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베 정권이 향후 추진하려 하는 정책과제는 아베 자민당이 장기 지속될 수 있는 여러 요인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아베가 숙원사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헌법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무력한 야당과 정치참여에서 이탈한 일본 사회가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앞으로 진행될 경제정책 과제들-양적완화로부터의 출구전략, 2019년 가을 소비세율 10% 인상, 사회보장제도 개혁-이 정치적으로 어떠한 함의를 갖고 진행될지 주목된다. 자민당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당은 지지도가 낮은 총리를 끌어내리는 일관된 양상을 보여왔다. 헌법개정과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베 정권이 정치적으로 이를 얼마나 잘 관리해 내는 가가 아베에 대한 자민당 내 의원 및 파벌의 태도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

 

■ 집필: 이정환_ 서울대 교수.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연구 분야는 일본 정치경제와 일본 외교이다.

 


 

아베 정권의 ‘유종의 미’와 한반도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

 

자민당 총재 선거가 열린 9월 20일, 일본 뉴스는 선거보다도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논의로 가득했다. 마지막 임기를 선언하고 나선 아베 신조 총리의 승리는 거의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대항마인 이시바(石破)와의 사이에 극단적인 정책의 차이도 존재하지 않았고, 아베 총리에게 문제는 오직 ‘이기는 방법’뿐이었다. 지난번 총재 선거에서 국회의원은 아니지만 지방당원 득표율에서 이시바가 총리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베 총리가 무효표를 제외하고 국회의원 투표에서는 402표 중 329표를, 지방당원 투표에서도 405표 중 224표를 얻어 승리했다. 아베 정권은 집권이 장기화됨에 따라 아베 총리를 둘러싼 잇따른 추문에 노출되었지만 야권 분열로 구제받고, 게다가 이번에는 이시다의 도전과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고이즈미 신지로(고이즈미 전 총리의 차남)가 “이론(異論)이 허용되는 정당이 있어야 한다.”며 막판에 이시다를 지지한 점 등으로 인해, 오히려 장기 정권의 오만에 따른 비판이 완화되는 행운도 얻었다. 만일, 향후 아베 정권이 임기를 마치지 못해도 자민당 정권은 이어질 기세다.

세계 여러 주요국들이 심각한 분열과 정치적 갈등을 안고 있는 가운데 최근까지 아베 정권이 안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단적으로는 시장이라는 상대가 있는 경제와 외국이라는 상대가 있는 외교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국민들의 만족도가 비교적 높았기 때문이다. 내각부가 오랫동안 진행하고 있는 조사에서 “현재의 생활에 만족합니까?”라는 설문에 대한 응답은 2018년 7월 현재 “매우 만족”과 “만족”의 합계가 75%를 넘으면서 2008년 60%였던 것에 비해 대폭 상승했다. 18~29세 젊은이들의 경우, 그 만족도는 82%로 더욱 높았고, 이는 40대 이상 중장년층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제2기 아베 정권이 출범한 이후, 대담한 양적 금융 완화와 기동적인 재정 운영, 민간 주도의 성장 전략이라는 이른바 ‘아베노믹스’를 내걸고 디플레이션과 맞서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 서구와 비교해서도 극단적인 수준의 양적 완화를 추진했고, 무엇보다 선진국 중 최악의 재정을 안은 채 항상 주가 수준이나 장기 금리와 같은 시장의 감시에 노출되기 시작했다. 과거 최고 이익의 행진이 이어진 대기업을 제외하면 빠른 성장 전략 중 국민들이 성공을 실감하는 것은 5년간 거의 3~4배로 늘어난 외국인 관광객 정도다. 그러나 그 수요가 소비 향상뿐만 아니라 지가(地價)의 하락세 반등이나 중소 기업의 해외 사업 등에도 조금씩 파급되고 있는 반면,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됨에 따라 일자리 부족과 취업 불안이 해소되면서 사회에 만연했던 폐색감의 불식으로 이어졌다.

외교적으로도 거의 매년 총리가 교체된 2006~2012년에 비해 정권이 안정된 가운데 아베 정권은 올림픽 유치 성공을 시작으로 미일 동맹의 강화, 미국의 정권 교체로 내팽개쳐진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의 수습, 일-EU FTA 체결, 평화 협정마저 없는 일러관계의 재검토, 얼어붙은 일중관계의 복원 등과 같은 적극적인 외교를 전개했다. 외교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일본이지만, 국내 정국 혼란에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까지 겹치면서 국제 사회에서 위상이 추락되거나 위축되는 것에 불만이 쌓인 국민들의 심리도 점차 개선되었다. 인구의 약 2%라고는 하지만, 급증하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비교적 관용적으로 나옴으로써 장기간 현안이었던 비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이 아주 조금씩이라도 오름세로 돌아섰고, 반세계화운동(Anti-Globalrism)이 미국과 유럽처럼 내정을 흔들지 않음으로써 외교의 자유도를 지탱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아베 정권이 도쿄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유종의 미’를 거둔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디플레이션 탈피는 애매한 수준에 불과하고, 시장은 기술 혁신의 지체와 이에 따른 성장 잠재력 회복이 지연되면서 생산성 개선의 속도 등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표면적인 무역 의존도는 낮지만 일본 기업은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에 길고 깊고 복잡한 공급사슬(Supply Chain)을 구축하고 있다. 미국만큼 내수에 기댈 수도 없는 가운데, 세계 2대 시장 간의 무역 전쟁의 피해와 불안도 커지고 있다. 미국이 TPP 이상의 농수산물 개방을 요구하고 미-일 FTA협상이 시작된다면 겨우 타협점을 찾아 온 농수산 부문 보호정책이 재현되지 않을까?

외교분야도 다사다난하다. 시장에 쫓기고 있는 아베 정권이지만, 정치적 가치관으로는 말할 것도 없이 헌법 개정이 중심이다. 전력 불보유를 확약했다고는 하나 이시바가 비판한 것처럼 충분한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얻었다고 말하기는 아직 어렵다. 헌법 개정은 주변 외교에 크게 좌우된다. 불행히도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한 외교는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기준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참가 표명이나 북방 영토를 둘러싼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 추진 등으로 인해 균형을 이루어 왔지만, 해양 진출을 강화하는 중국과의 안보 관계에는 어차피 한계가 있어 러시아와 북한도 미국의 경제제재가 지속되는 한 대담히 움직이기는 어렵다.

끝으로, 그런데도 ‘유종의 미’를 모색하는 아베 정권에게 한국과 한반도는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 세계 유일한 핵폭격 피해국가로서 핵무기에 대한 일본의 알레르기는 강렬하다. 정치인들이 북한에 대항하기 위해 핵무기 개발 등을 발언한 한국과는 전혀 달리, 일본에는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미국보다 더한 불신과 증오가 존재한다. 남북 간 화해로 급속히 기운 한국과의 온도 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남북 협력을 둘러싼 한국의 시각이 랜드브리지(Land Bridge) 구상이나 에너지 협력과 같이 대륙 지향적 성격을 띠는 것에 비해, 일본은 인도태평양을 둘러싼 해양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에서도 그 방향은 다를 것이다. 다만 서로 감정론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한국과 일본은 공통의 이해를 가진 부분도 많다. 보호주의의 만연은 상당한 공통의 위협이며, 한국과 일본은 거대한 내수시장을 기술혁신의 실험장으로 삼는 미국과 중국과 같은 성장 구조도 만들 수 없다. 급속한 고령화로 사회보장에 대한 부담 증대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일본의 농업과 한국의 노조 같은 기득권층을 손대기도 어려울 것이다. 국가를 단위로 하는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마찰이 많다 하더라도, 지방과 기업, 개인이라는 작은 단위로 사회∙경제를 보면 공통의 이해관계는 매우 많다. 경쟁적 규제 완화, IT 등 부족한 전문 인력의 공유, WTO의 유지 및 기능 심화 도모 등과 같이 협력할 부분이 많다. 실무적인 협력이 쌓이고 서로의 입장을 명확히 한다면, ‘유종의 미’를 지향하는 아베 외교에도 더 많은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 집필: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_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 미국 예일대(Yale University)에서 국제경제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일본 와세다대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동아시아 발전과 개발 및 경제 시스템이다.

 


 

[EAI논평]은 국내외 주요 사안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심층적인 분석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정책적 제언을 발표할 수 있는 담론의 장을 마련하고자 기획된 논평 시리즈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