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 첫날 북한의 신년사가 발표되었습니다. 북한은 이번 신년사에서 핵무력 강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히면서도 평창올림픽에 참가할 의사가 있다며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이에 우리 정부가 화답하면서 남북고위급회담이 재개되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화해 무드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올림픽 참가에 대한 남북 간 시각 차이를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에 달렸다고 하영선 EAI 이사장은 분석합니다. 북한은 올림픽 참가를 3대 혁명역량 강화 차원에서 접근한 반면, 한국은 이를 북한의 새로운 생존전략의 일환으로 보고 관계개선을 희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한 시각 차이는 추후 한미합동군사훈련과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재개되는 과정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며, 진정한 관계개선은 양측이 새롭게 21세기 공생의 길을 찾을 때 본격화될 것이라고 하 이사장은 강조합니다.

 

 


 

 

김정은의 2018년 신년사는 남북관계 개선의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불러 일으키고 있다. 1950년대 초 처절한 적대관계로 한국전쟁을 치른 남북한은 1972년 7.4 공동성명이래 2007년 남북정상회담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관계개선의 기대와 좌절을 겪어야 했다. 이러한 역사적 전철을 밟지 않고 이번에는 새로운 길을 걷고자 한다면 우선 신년사를 제대로 해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신년사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려면 내용 분석이나 빅데이터 분석과 같은 외면적 글 읽기에 머무르지 않고, 말하는 사람의 내면 세계까지 읽어 보려는 동양 해석학 방법론의 핵심인 이의역지(以意逆志)에 충실해야 한다. 상대방 마음의 소리(意)를 들어서 상대방의 마음이 가는 방향(志)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년사를 낭독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속마음을 읽어서 북한이 2018년에 어디로 가고 싶어 하는가를 알려면 신년사에서 드러나는 김정은 위원장의 지평을 바라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신년사의 전체 구도는 지난해 성과와 금년의 목표를 1960년대 중반이래 강조해 온 국내, 통일, 국제의 3대 혁명역량 강화라는 시야에서 여전히 바라보고 있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우선 신년사는 ‘전체 인민과 인민군 장병, 남녘 겨레와 해외동포, 세계 진보 인민과 벗’이라는 세 청중 집단에게 새해 인사를 한 다음, 2017년을 ‘미국과 추종세력들의 반공화국 압살정책’이라는 최악의 난관 속에서도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눈부신 성과’를 이룩했다고 요약하고 있다. 그 대표적 성과로는 무엇보다도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성취’를 강조하고 있고, 다음으로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 수행의 전진과 과학문화전선의 성과를 꼽고 있다. 결론적으로 ‘공화국의 자주권과 생존권, 발전권을 말살하려는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과의 제재봉쇄책동’ 속에서 이룩한 모든 성과들은 ‘조선로동당의 혁명로선의 승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핵개발로 자초한 생존적 어려움을 보다 본격적인 핵개발로 극복해 보려는 북한의 자기모순적인 노력은 오히려 체제 안보 불안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위기 해결을 위한 주력 역량으로 국내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 핵무력 건설의 승리를 도약대로 삼아 ‘혁명적인 총공세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모든 전선에서 새로운 승리를 쟁취하자!’라는 구호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전선으로는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위해 인민경제의 자립성과 주체성을 강화하고 인민생활의 개선 향상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자립경제발전의 지름길로서 과학기술과 인민경제계획의 작전과 지휘 혁신을 들고 있다. 두 번째 전선으로 사회주의 문화의 전면적 발전을 지적하고 있다. 세 번째 전선으로 자위적 국방력을 더욱 튼튼히 다지겠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핵무기와 로켓 부문에서는 ‘위력과 신뢰성이 담보된 핵탄두들과 탄도로켓들을 대량 생산하여 실천 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네 번째 전선으로는 정치사상의 위력을 들고 있다. 당의 사상과 어긋나는 잡(雜) 사상과 이중 규율을 허용하지 않고 당의 일심단결을 강화하며, 당의 세도와 관료주의를 비롯한 낡은 사업 방법과 작풍을 뿌리 뽑고 혁명적 당풍을 확립하기 위한 투쟁을 강도 높게 벌이겠다고 말하고 있다.

 

다음으로 북한은 당면하고 있는 생존적 어려움을 헤쳐 나가기 위한 보조 역량으로서 통일 역량의 강화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북한은 국내 역량의 강화를 기반으로 해서 통일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첫째,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한반도의 평화적 환경을 마련하고, 둘째, 민족 화해와 통일의 분위기를 적극 조성하기 위해서 한국의 집권 여당은 물론 야당, 단체, 개별 인사들을 포함한 누구와도 대화와 접촉, 내왕의 길을 열어 놓으며, 셋째, 남북 당국이 민족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모든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해결해야 하며, 넷째, 북한은 평창 동계올림픽대회에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으며, 이를 위해 남북 당국이 만날 수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북한 핵미사일 능력의 지속적 발전과 함께 국제제재와 억지체제가 강화됨에 따라 북한의 국제 역량의 강화를 위한 노력은 현실적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 위원장은 ‘제국주의 침략 세력들에 대해서 핵보유국으로서 핵정전론의 원칙에 따라서 맞설 것이라고 주장하고 이러한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나라들과는 선린우호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보여준 세 얼굴의 모습이 2018년의 생존전략으로 구체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북핵위기와 한반도평화문제를 성공적으로 풀어 나가기 위해서는 긴밀한 국제 공조 속에서 다음과 같은 대북정책을 일사불란하게 추진해야 한다.

 

우선,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작은 징검다리 역할을 하게 만들려면 남북한의 평창올림픽에 대한 명백한 시각 차이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다. 북한의 올림픽 참가는 기본 노선의 새로운 변화 때문이 아니라 3대 혁명역량 강화를 위한 것이다. 반면에 한국은 북한의 올림픽 참가를 북한의 새로운 생존전략에 따른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 차는 올림픽이 끝나고 한미합동군사훈련과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이 재개되는 과정에서 드러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명실상부한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이 3대 혁명역량 강화의 지평을 넘어서서 새롭게 21세기 공생의 길을 찾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될 것이다.

 

다음으로 2018년에도 계속해서 핵미사일의 대량 생산과 실천 배치를 생존전략의 기반으로 삼겠다는 북한의 노력이 오히려 체제 붕괴의 위험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스스로 이를 인식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도록 해야 한다. 이를 바깥에서 돕기 위해서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관련 당사국들과 공조하여 북한의 지속적 핵능력 강화에 대한 제재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동시에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에 대한 한반도와 아태지역의 억지체제를 신속하게 완성하여 북핵의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없애야 한다. 북한의 핵개발이 경제적으로 보다 큰 어려움을 불러 오고 북핵의 정치경제적 영향력이 급격히 상실되는 상황 속에서 한국과 주변 당사국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비핵화된 북한의 생존과 번영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는 복합평화번영체제를 새롭게 구상하고 제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변화하는 3대 역량의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에 가장 적합한 21세기의 새로운 생존전략을 스스로 마련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도움과 함께 내부의 자구(自救)적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제적으로는 이미 시장화의 변화를 겪고 있으며, 사회문화적으로도 첨단기술의 발전에 따른 정보화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문명사적 변화 추세 속에서 정치사상전선에서도 21세기에 걸맞게 진화된 비핵경제 병진노선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한국의 대북정책은 장기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

 

 

 


 

 

저자

 

하영선_ EAI 이사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 및 편저로는《복합세계정치론: 전략과 원리 그리고 새로운 질서》,《한일 신시대와 공생복합 네트워크》,《변환의 세계정치》, 《미중의 아태질서 건축경쟁》등이 있다.

 

 


 

 

〈EAI하영선 칼럼〉은 국내외 주요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하영선 EAI 이사장(서울대 명예교수)의 분석과 전망을 통해 적실성 있는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기획된 논평시리즈 입니다. 인용할 때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AI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와도 무관한 독립 연구기관입니다. EAI가 발행하는 보고서와 저널 및 단행본에 실린 주장과 의견은 EAI와는 무관하며 오로지 저자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